이곳에 있으면 제일 걱정되는 존재가 부모님이 아닌 ‘온달이’이다. 5살된 잡종개인데, 녀석이 좀 바보같아서, 아니 바보같이 착해서 붙인 이름이다.
사실 ‘온달이’란 이름은 한국역사를 전공한 내가 붙인 이름이고, 부모님들은 각각 달리 부른다. 어머니는 털이 복실복실하다고 ‘복실이’라고 부르고, 아버지는 ‘반가비’라 부르는데, 사람을 보고 반가와하는 모습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둘 다 꽤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내가 지은 ‘온달이’라는 이름만 부른다.
잡종개답게 온달이는 실내에 들이지 않고 키운다. 겨울이나 비가 올 때에는 현관까지만 개집을 들여놓고 그 외는 마당에서 지내게 한다. 그런데, 이층 내방에는 자주 들어온다. 출입문이 따로 되어 있어서 부모님의 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심심한 온달이가 들어와 내발가락을 슬쩍 깨물고 냅다 도망간다. 그럴 때 화를 내는 척하며 따라가 주면 온달이는 도망가면서 무지하게 좋아하며 웃기까지 한다. 정말이다.
이 녀석이 비록 잡종이긴 해도 귀족개의 혈통을 받았는지 식성이 특이한 데가 있다. 커피와 쵸코렡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걸 보면 아마 서양종이 좀 섞인게 아닌가 싶다. 내가 커피를 끓이면 냄새를 맡고 달려오는데, 그럴 때마다 커피를 서너스푼(밥숟가락으로) 나눠준다. 커피 중에서도 설탕과 크림을 담뿍 넣은 파출부커피를 제일 좋아한다. 초코렡은 너무 좋아해서 거의 숨이 헉헉거릴 정도로 빨리 먹어치운다. 덕분에 회충약 먹일 때 초코렡을 적당히 녹여서 알약을 숨겨서 주면 냉큼 삼켜버리기 때문에 편리하다.
문제는 부모님의 개키우는 철학이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절대로 방에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그 복실한 털이 뭉쳐있어도 목욕시키거나 빗겨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마다 온달이가 걱정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평소에는 1주일에 한번, 겨울에는 2주일에 한번 정도 목욕을 시키는데, 어머니는 내가 전화할 때마다 온달이 목욕시키라고 난리를 쳐야 겨우 한번쯤 씻긴다. 어머니 보기에도 개몰골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을 때일 것이다. 그 때문에 지난 주 집에 들렀을 때는 나흘 동안 두 번이나 목욕시켰다. 벌써 일주일이 되니, 또 걱정된다.
참고로 ‘반달이’는 몇 년전 도쿄로 갈 때 후배들이 준 조그만 곰인형이름이다. 온달이를 알고 있는 그 후배들이 온달이 동생이라며 반달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반달곰을 연상시키는 것이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내 연구실 컴퓨터 책상위에 점잖게 앉아 있다.
온달이와 반달이의 사진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온달이녀석 사진찍기를 너무 싫어해서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쏜살같이 달아나버리니 나원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