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이는 바다를 건너서 부산항에 도착해 있다. 어젯밤 그 심한 바람과 파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항구는 너무나 조용하다. 칠흑같은 어둠 속의 허공과 바닷물 뿐이더니, 사방 가득 항만시설과 아파트와 상업건물들과....이 큰 배가 도착해서 어디로 들어왔는지 입구조차 찾기 힘들 정도이다.


어제 저녁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한다 싶더니 날씨를 예상해서 그랬던가 보다. 저녁에 샤워할 때 약간씩 흔들려서 며칠 전에 했던  헌혈 후유증인가 했는데, 풍랑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한밤 중이 되어 배가 어느 정도 흔들렸나 하면....설명하기 힘드는데...일어서서 움직일 때 바닥이 몹시 흔들려서 침대 이층에 머리를 부딪힐 정도였다. 누워서도 요동을 크게 느낄 수 있고 가끔씩 큰 파도가 정면으로 배를 때리는 소리와 진동을 느낄 정도. 그럼에도 테이블 위의 화장품병이나 찻잔이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화장품도 주머니 속에 다 집어 넣고 찻잔도 고정된 상자 안에 집어넣고서야 다시 자리에 누웠다.


생각같아서는 파도치는 바다를 구경하러 갑판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추워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층침대의 담요까지 끄집어 내려서 덮고는 잠을 자기 위해 생각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견딜만 하다, 곧 잠이 들면 문제가 없겠다. 흔들리는 요람 속의 아기라고 생각하자 라고 생각까지 미쳤을 때, 요람에 누워서 입을 반지처럼 동그랗게 해서 옹알거리던 후배의 2개월 된 아기 얼굴이 떠올라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녀석.


몇 년전 후쿠오카행 쾌속정을 탓을 때 경험했던 파도에 비하면, 이 정도 쯤이야. 사실 풍랑의 정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배로 전해져 느끼는 정도는 그때가 훨씬 더 심했다. 파도에 따라 아래 위로 흔들리는데, 약 20분 정도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었으나, 요동이 계속되고 주변사람들이 너도나도 노란 얼굴로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 역시 구토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후 하선할 때까지 약 3시간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던 것이다.


같은 크기의 파도라도 배의 크기에 따라서 흔들림은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진부한 비유같지만,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본인의 도량의 정도에 따라서 흔들림의 정도가 이렇게 다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나는 페리호가 아닌 기껏 쾌속정 밖에 되지 못한 것이다. 아니 돛단배...아니 나뭇잎 정도? 앞으로 남은 인생의 항해를 위해서 나 자신의 도량을 크게 키울 일이다. 잡다한 생각에 끄달리지 않고 당당하게 나의 길을 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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