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귀해서 글씨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써야했던 옛날에는 거의 모든 문장이 머리속에서 완성되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머리속의 생각보다 손가락이 더 빨리 컴퓨터 위로 글자를 옮겨놓는다. 머리속에서 글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쓴 글을 보고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수정하면서 글이 만들어진다. 이 조그만 문장을 쓰면서도 몇 차례 백키를 눌러야만 할 정도이니...
컴퓨터는 이제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라 내 두뇌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 컴퓨터의 별명을 '나의 전자두뇌'라고 지어놓았고, 컴퓨터는 부팅될 때마다 자기 이름을 나한테 보여준다.
그런데, 나의 전자두뇌가 무뇌가 되어 버렸다. 그저께 컴퓨터가 중간에 꼼짝을 하지 않기에 강제로 밧데리를 뽑고 전원을 끊어 중단시켰는데, 그 다음부터 부팅이 되지 않는거다. 컴퓨터 산 곳으로 가져갔더니, 하드에 이상이 생겼으니 안에 든 데이타를 포기해야 한다고...으...내가 절망적인 표정을 하자 데이타를 살려주는 곳이 있는데 메가당 10만원이란다. 데이타가 3기가가 넘는데 그럼....컴퓨터보다 더 비싼 돈을 들여야한다....
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천만 다행으로 현재 쓰고 있는 논문은 따로 메모리해 두었기 때문에....그 동안 모아놓은 온갖 자료들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나니.... 가슴은 허망하고 머리속은 텅~비는듯. 2년간의 일기와 마태우스타도를 외치며 써놓은 얼마간의 글들도 함께 날아갔다.
당장에야 큰 불편은 없겠지만 나중에 작업할 때 없어진 자료들이 필요할 때마다 이전에 백업시켜놓지 않았던 나 자신을 원망하며 신경질을 내겠지.
그 동안 컴을 너무 믿고 의존하며 살았나보다. 이 참에 독립하여 자유를 되찾는 것이 어떨까....글쎄 가능할까. 적당히 이용만 하되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겠지. 나는 나의 두뇌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