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흰색은 도처에 있다. 無라는 말이 붙는 색이면서 동시에 모든 빛이 합쳐지면 백색이 된다는 것이 나는 늘 재미있다. 


한강의 문장은 늘 섬세하고 예민하다. 한강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흰 색을 떠올렸는데, 그 <흰>것을 얘기하는 책을 냈단다. 당장 주문하고 받아본 책은 우선 들고 다니기에 부담이 없다. 내지가 다소 두꺼운 감이 없지 않아 편히 술술 넘길 페이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히 만져가며 읽을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한강의 문장은 매만질 때 특히 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눈으로 읽기보다 손으로 쓰며 만져봐야 그 말들이 가진 질감과 묻혀있던 함의들이 촉각으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한강의 책을 읽을 때면 늘 글을 '만진다'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은 사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하얀 것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하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창작인 것 같기도 하고, 작가 본인의 자전적 고백을 담은 에세이인 것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시 같기도 하다. 도통 모르겠다. 한강의 글은 늘 시인지 소설인지 수필인지, 약간 아리송해지는 그 지점에서 '한강다움'이 생기는 듯 하다. 한강이라서 소설집이었다. 한강다운 소설이었다.


짧고, 편하고, 그래서 금세 읽었다. 책장을 덮고 한참동안 <흰>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더러워지기 쉬운 색, 그만큼 청결히 세탁하기 쉬운 색, 우리 눈이 식별하는 태양의 진짜 색, 도처에 있는 색, 성스러운 색. 우리는 하얀 강보에 싸여 세상에 태어나 하얀 수의에 싸여 땅에 눕는다. 

하얀 것들은 삶이다. 누런 때가 빠질 때까지 한 번 푹 삶아보고 싶은 삶이 그렇게 참 <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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