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곰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7
이기훈 글.그림 / 리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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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한 반에서 절반 정도가 달동네에 살았다. 친구의 집에 놀러갈 때마다 턱까지 찬 숨을 몰아쉬면서 나는 좁은 계단을 한참동안 올라야만 했었다. 이제는 그 골목은 사라졌다. 아파트숲으로 변해버린 그 동네에 나는 이제 아는 사람이 없다. 동네는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내 친구들도 없고, 좁다란 골목길을 달음박질 해 올라가던 내 유년도 이제 거기에는 없다.

*
이 책은 참 좋다. 이야기도 좋고 연출도 좋다. 그림까지 좋다. 더 좋은 점은 이 동화책을 정말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른들이란 사실이다. 영문 몰라하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동화책을 보여주던 엄마 혹은 아빠가 눈 끝을 찍어내게 만들, 그런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추억에 슬퍼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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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나에게 거대한 곰 같은 곳이었다. 경북의 작은 읍을 떠나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나는 그 크기에 한참동안 아빠 승용차의 창문에 입을 대고 우와우와를 연발했었다. 거대한 다리, 거대한 강, 거대한 아파트, 거대한 터널, 거대한 산, 거대한 타워, 거대한 빌딩. 지하철이 있다는 역이 나에겐 거대한 곰이 사는 굴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곰은 잔뜩 들떠서 골목탐방을 나선 여섯 살 여자아이의 자전거를 훔쳐가는 것으로 첫인사를 건네주었다. 그 자전거는 지금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너는 지금 어느 길을 달리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점심 때 내가 급히 마신 포도맛 탄산 캔 음료가 너의 7번째 후생일지도 모르겠다. 내 자전거 가져 가고 좋았니, 서울이라는 곰아.
나는 이제 네가 자전거를 훔쳐갔던 그 길의 옆골목에서, 아직도 신촌을 시내라고 말하는, 곰을 닮은 남자와 산다.

어쨌건.

이 책은 우리 추억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그곳에서 살았건, 살지 않았건 우리의 옛 기억엔 이런 곰이 있었다. 그 곰이 외로워 나는 울었다. 그 곰이 슬퍼서 나는 울었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어릴 적엔 전구 가는 것도, 자전거 고쳐주는 일도 뭐든지 척척 고쳐주던 수퍼맨 같은 우리 아버지가 예전보다 키가 작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버린 그런 느낌. 철거되는 판자촌이 어릴 적 추억 속 거대한 곰으로 일어날 때의 정적과 그 짙은 외로움을 나는 안다. 결국 홀로 쓸쓸한 우리의 모습을 나는 익숙히 안다. 알아서, 아는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책이다. 모른다면, 그 나름대로 그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응사와 응팔이 논란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것처럼.

*

단칸방에서 다섯 가족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자면서도 가족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친구는 지금보다 더 큰 도시로 이사가면서 자기 방이 생겼고 지금도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나도 여전히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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