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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스치는 바람〉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 1권, 213쪽
 

이따금, 나는 한 섬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 들어 부쩍 생각이 난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섬을 떠올리고, 그 섬을 이야기한다.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섬을 찾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섬을 위해 노력하고, 그 섬을 알리고 그 섬을 노래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고 관심을 주는 데도 그 섬의 이름은 외롭다. 바다에 저 홀로 떠 있는 섬이라 이름마저 외로운 그 섬, 독도(獨島). 

 
2년 전, 나는 독도에 간 일이 있다. 나에게 외로울 ‘독’의 한자를 처음으로 읽고 쓰게 해주었던 동해의 그 작은 섬에 갔던 것은 순전히 일 때문이었다. 새벽 3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한숨도 편히 자지 못한 채로 묵호, 울릉도, 또 독도까지 달려가는 제법 힘겨운 여정이었다. 공장 같은 식당에서 기계처럼 밥을 먹고,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의 험한 바다를 뚫고, 나를 맞던 갈매기들에게 인사하며 독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유난히도 독했던 멀미약에 일행들 모두가 잠에 빠진 그 시간, 난 선실에서 행여 언제 나타날지 모를 그 섬의 첫 모습을 숨죽여 기다렸다. 파도는 높았지만 날은 맑았고, 선창은 이윽고 기다리던 그 섬의 모습을 내게 드러냈다.
거기에 있었다. 홀로 고고히 찬란하던 그 섬. 나는 그곳에서 고작 30분의 입도 시간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그 찬연한 고요함을 만났다. 깊고 푸른 동해에 감싸인 채, 세상 그 어떤 어둠에도 먹히지 않던 그 푸르디푸른 섬. 그래서 괜히 울컥했던, 괜스레 짠했던, 그리고 어쩐지 참 미안했던 그 작지만 아름다웠던 섬.
 
그때, 나는 어떤 시인에 대해 생각했다.
 
그 섬을 닮은 시인이 있었다. 망망대해와 다름없던 시대를 부유하면서도 저 홀로 고고하던, 저 홀로 찬란히 푸르던 그런 시인.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헤던 그런 시인. 무에 그리 부끄러웠는지 시시때때로 마음의 볼을 붉히던 시인은 그 별을 다 헤지도 못하고 떠났다. 그리 하염없이 세던 별들을 한아름 남겨둔 채로. 
시대는 그를 히라누마 도주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윤동주라 기억한다. 우리 가슴에 수많은 별을 남겼던,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 


이 책은 그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네 시가 조선어건 일본어건 상관없어. 그건 조선어나 일본어가 아니라 너 자신의 언어니까.” / 1권, 272쪽
 
 
우리는 윤동주를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윤동주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를 낭송해본 기억이 있을 테다. 우린 그의 시를 읽었고, 그의 시를 배웠다. 하지만 우리는 윤동주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 연희전문학교를 나왔던 그가 어떻게 일본으로 넘어갔고,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는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육사나 이상의 마지막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더욱.
우리가 그의 시를 아는만큼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윤동주가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추측’과 ‘소문’으로만 존재했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해방까지 반년을 남겨놓고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병을 얻었다더라, 강제 노역이 고되 죽었다더라, 고문을 당했다더라 등 그의 죽음에 대해선 수많은 추측들이 존재했다.

 
그중 가장 많이 따라 다녔던 소문은 ‘생체실험’, 즉 ‘마루타’로 이용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형무소에 끌려가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심신이 쇠약해져 죽었다는 것. 그것은 이제 정설이다. 하지만 윤동주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연유에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윤동주는 대체 왜 생체실험의 대상자로 지목되었고,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에 역사가 주는 정보는 단편적이고 허술하다. 
역사의 빈 틈에 의문을 가질 때,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다. 이를 두고 팩션(Faction)이라 하던가. 비어있는 틈새를 메우며 토대를 세우고 이야기는 새롭게 태어난다. 기존에 주어져 있는 단편적인 정보를 토대로 서사가 세워지며, 마침내 이야기는 사라져버린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복원해낸다. 
 
 
증오는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모든 국가와 체제는 책을 두려워했고 책과 불화했다. 책 때문에 나라는 망하고 군주는 쫓겨났으며 귀족들은 망명했다. / 1권, 63쪽
 
 
이야기는 히라누마 도주, 즉 윤동주를 관찰하는 일본인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교토대 문과부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징집된 와타나베는 후쿠오카 형무소로 배속 되고, 소장의 직접 지시로 선임 간수였던 스기야마 도잔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게 된다. 살해된 스기야마는 형무소로 전달되는 모든 문서, 죄수들의 서간 전반 등을 조사하던 검열관이었고 동시에 모든 조선죄수들이 치를 떨던 폭력 간수이기도 했다. 와타나베는 스기야마가 남긴 압수물 등을 조사하며 그의 죽음 주변에 존재하는 조선인 죄수들 몇몇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최치수는 조선인 죄수들 사이의 실질적 보스다. 그러나 와타나베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런 살인사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저 허약하고 파리해보이는 조선인 죄수였다. 수인 번호 645번, 히라누마 도주. 조선 이름 윤동주. 스기야마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시를 쓴 그는 시인이었다.
 
 
“이름은 한 존재의 모든 것을 담은 상징이에요. 한 사람의 얼굴과 눈빛과 몸집과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기억과 꿈과 그리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죠. 하나의 단어가 수많은 느낌을 담고, 한 줄의 문장이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요.” / 1권 , 218쪽
 
 
와타나베는 히라누마를 향해 완강히 저항한다. 총 2권에 이르는 짧지 않은 분량의 글이 진행되는 내내 와타나베는 버티고, 저항하고, 끝내 무너지며 굴복한다. 첫 순간부터 와타나베는 히라누마를 격렬히 경계하지만 몇 겹으로 쌓아올렸던 방벽은 우스울 정도로 간단히 무너진다. 경계하고 감시하던 입장에 있던 와타나베는 스기야마의 죽음을 조사하고, 히라누마 도주를 알아가면서 점점 그와의 대화에 심취 되고 끌려간다. 와타나베는 조선인 죄수들이 부르는 〈히브리 노예의 합창〉을 듣고 싶다는 히라누마를 위해 의무조치 일정을 바꿔주고, 그를 히라누마 도주가 아닌 ‘윤동주’로 부르며, 끝내 스러진 그의 죽음에 아파하고 자책한다. 자신이 되짚어가던 스기야마 도잔처럼 와타나베 역시 불가항력처럼 윤동주에 매료되며 그에게 감화된다. 

윤동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폭력을 쓴 것도, 회유책을 쓴 것도 아니었다. 겉으로는 치료를 가장하면서 실상은 그 몸에 피가 아닌 식염수를 주사하는 생체 실험을 하는 그런 거짓도 없었다. 나라를 위해서, 제국을 위해서, 혹은 이 시대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도 없었다. 그는 시를 썼고, 책을 읽었으며, 이따금은 연을 날렸다. 그는 그저 시인이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활자는 영혼을 가지고 있고 그 영혼은 바이러스처럼 읽는 사람을 감염시킨다. 독서는 치명적인 중독이고 문장의 세례를 받은 자는 평생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2권, P. 65
 
 
이따금 사소한 것들이 많은 것들을 바꿀 때가 있다. 변화는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무 것도 아닐 글, 아무 것도 아닐 노래. 하지만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노래를 부르던 조선인 죄수들의 가슴에 잊지 못할 것들을 새겨넣었고, 윤동주의 시구는 그를 감시하며 지켜보던 일본인 간수의 마음까지 감화시킨다. 
따지고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언제나 한 줄의 글이다. 와타나베를 전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윤동주를 이 차가운 후쿠오카 형무소에 밀어 넣었던 것도 글이었다. 하지만 와타나베에게 잊었던 유년을 되돌이켜 주었던 것도, 폭력간수였던 스기야마가 피아노를 조율하고 시를 쓰게 했던 것도,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 윤동주를 지켜냈던 것도 결국엔 글이었다. 고작 글 몇 자, 고작 글 한 줄. 그 글로 글 속의 수많은 이들은 절망을 이겨낸다. 누구나 절망 앞에서는 똑같은 것처럼, 글로 절망을 견뎌내는 데에도 계급과 국경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간수도 죄수도, 또 전쟁을 일으킨 자도 침략을 당하는 자도 똑같이 절망하고 괴로워하며, 그 절망을 견뎌낼 희망을 간절하게 소원한다. 
스기야마, 와타나베, 또 윤동주. 세 사람은 어쩌면 모두 같은 상처를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대가 안긴 생채기, 시대가 삭제했던 마음들. 그래서 그들은 읽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다. 시대는 그들에게 사소한 인사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하도록 봉해버렸다. 아침 노을을 보면서도, 불어가는 실바람을 느끼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면서도 좋다는 말 한 마디 못하던 시대. 새의 지저귐을 노래하지 못하고, 사랑의 기쁨을 나눌 수 없던 시절. 그래서, 그들에겐 ‘글’이 필요했다. 사랑해줄, 꿈꿔줄, 위로를 건네주며 이 헐벗은 영혼들을 매만져줄 그런 ‘글’.
 
시인은 시를 쓰지 않았다. 썼다 해도 그것은 기법적 의미의 ‘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별을 헤아렸다. 밤이 지새도록 헤아리고 또 헤아린 별들은 이윽고 모든 상처 위에 쏟아졌다. 간수들의 상처에, 죄수들의 상처에 찬란히 쏟아지던 별. 그 별. 그가 그토록 온 마음을 다해 헤아렸던 별, 그 별, 고요히 빛나던 그 처연한 별.
 
그리고 그는 별이 되었다. 시가 되었다.
 


 
나는 그를 잃어야 하는 것이 분했다. 그를 잃어야 할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였다. 나는 친구를 잃어야 하겠지만 조선인 죄수들은 현명한 동료를, 간수장은 용서를 빌 대상을, 간수들은 온화한 모범수를 잃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조선인들은 위대한 스승을 잃을 것이고, 태어나지 않은 일본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증언할 지식인을 잃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지 못할 순결한 시인을 잃어야 할 것이다. / 2권, 240쪽 

 
 
시대가 변했다. 윤동주가 떠난 때로부터 벌써 근 1세기가 흘렀고, 그 사이 우리는 광복을 맞았다. 광복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나라가 반 토막이 났고, 절반이 된 국토에서 형제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고, 터널보다 컴컴했던 시절을 견뎌내며 밀레니엄을 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름조차 생소한 동방의 작은 나라였던 우린 그 사이에 올림픽과 월드컵을 열었고, 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시끄럽다. 내 땅, 내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도 미안할 정도로 당연한 내 나라 섬을 두고 옆 나라에선 연일 분쟁을 걸어오고 이제 곧 재판소에 보낼 거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과거청산도 뭐 하나 이뤄진 것이 없다. 사형을 기다리던 전범들은 종신형으로 감형되거나, 그마저도 흐지부지 되었고 자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숨을 거두고는 제 나라 사당에 이름을 걸어두고 신으로 대접받는다. 당연히 존재하는 역사적인 증거들과 피해자들을 두고도, ‘위안부는 자발적 징용의 증거였다’며 오리발을 내민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제법 시선이 달라지긴 했다. 자기 나라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부끄러워하는 교수들의 모임이 생겨나고,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에 초대 받아 아픔을 함께 노래하는 일본 밴드가 있으며, 이 나라에 아무 연고가 없으면서도 독도 활동에 조용히 도움을 보태는 일본인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보다 사소하게, 조용히, 그러나 조금씩 세상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당장 오늘 내일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10년 뒤가 될지, 100년 뒤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런 날도 올 것이다. 그때의 고통에 더 이상 아파하는 사람이 없게 되는 그런 날. 
 
그날을 위해 바다 위의 외로운 섬은 오늘도 고요히 바람을 맞는다. 그처럼 푸르렀던 시인처럼 고요히 그 바람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 바람을, 하늘을, 별을. 그리하여 이윽고 시(詩)를. 
별을 스치는 수많은 바람들을. 
우리의 염원들을.

 
 
싸움에서 이겼으니 이 연은 네가 가져도 좋아. 하지만 우리는 또 새 연을 만들 거란다. 내일 너의 푸른 연과 맞서기 위해서지. 우린 어쩌면 내일은 너의 푸른 연을 가질 수 있을 거야. 내일은 우리가 이길 거니까. 어쩌면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 2권,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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