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언어 - 탐나는 것들의 비밀 우리는 왜 어떻게 매혹되는가?
데얀 수딕 지음, 정지인 옮김 / 홍시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물건이란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 받는 복잡한 안무의 한 부분이다.


- p.81





우리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언어들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산재해있나. 당장 내 눈 앞만 쳐다보아도 숱한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 지금 지켜보는 이 모니터 화면과 키보드, 누군가의 책상에서 잠시 내 자리로 피난을 온 육중한 스피커, 토너를 갈아줄 때가 된 레이저 프린터, 패션지 부록으로 딸려왔던 탁상달력과 거기에 남겨둔 수많은 약속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나'를 말해준다. 내가 앉은 의자, 내가 걷는 길, 길가에 놓인 가로수와 전등, 매일 나를 실어나르는 버스와 단골 커피숍의 로고가 찍힌 종이컵, 책마다 꽂혀있는 북마크와 책상에 덕지덕지 붙은 색색의 포스트잇, 몇 번 쓰지도 않고 쌓이기만 하는 까만 볼펜들과 몽당 연필, 군데군데 녹이 슨 커터 칼까지.

그것들은 나의 물건이며, 나를 말하며, 또한 '나'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나를 말한다. 그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언어'를 통해.


우리는 정말로 많은 언어 속을 살아가고 있다.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우리가 보고 있는 그 모두가 언어다. 호리호리한 늘씬한 병을 보면 우린 코카콜라를 떠올리고, 붉은 색과 노란 뿔의 조합을 보면 맥도날드를 떠올리며, 색색의 네모가 기하학적으로 맞물린 형태를 보면 몬드리안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가 살며 만나는 그 모든 사물이 우리에겐 언어이고, 그 언어들은 각각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그 '언어'에 대한 이야기다. 디자인 비평서를 점잖게 표방하고 있으나 이 책엔 정작 디자인이 없다. 디자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디자인이 말해온 것들, 디자인이 만들어온 것들이 이 책이 말하는 전부다. 그건 디자인의 세계가 아니다. 디자인과 함께 만들어진, 지금 이 세계, 당신과 나의 세계다. 


디자인은 세계다. 고로, 이 책 역시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곳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사물의 세계다.





디자인이라는 언어도 여느 다른 언어들만큼 급속하게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것은 미묘하고 지혜롭게도, 서투르고 진부하게도 다루어질 수 있다.


어쨌든 그것은 인간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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