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처럼 창조적으로 살아보기
케리 스미스 지음, 임소연 옮김, 임소희(라라) 손글씨 / 갤리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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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직업' 투표를 했었다고 한다. 그 1위가 '예술가'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지내기 때문이라는데, 어쩐지 수긍가기도 하고 아닌 거같기도 한 미묘한 기분. 어쨌거나 사람들이 창작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한다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 보인다.


『예술가처럼 창조적으로 살아보기』는 그런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놀이를 통해 우리 모두 창의력을 키우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읍시다!'라고 말이다.



 



하는 책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쓰자니 이상하다. 이건 읽는 책이 아니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직접 따라해야 아는 그런 책. 읽기만 하면 30분도 채 되지 않아 안에 담긴 텍스트를 다 보게 된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한 번씩 해보면? 여유롭게 잡고 한달은 넘게 걸리지 않을까. 여기서 제안하는 '놀이'는 쉽게 끝내고 다음 걸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유를 가집시다

여기서 시키는 놀이를 하기 위한 필수 준비물은, '여유'. 여유가 없으면 이런 놀이는 하나도 해보지 못한다. 아니, 이건 무슨 초등학교 창의력 교육인가요? 맞습니다. 창의력 교육입니다. 이제까지의 삭막한 삶에서 해보지 못한 여러 체험을 해보는 것. 시선을 바꿔보는 것. 창의적으로 놀아보는 것. 케리스미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 '놀이'들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한다. 

책에는 많은 놀이가 담겨 있다. 일기 쓰기 즐기는 법, 꿈 찾는 보드 게임, 혼자 밤을 보낼 때의 준비물, 휴가 떠난 척 하기 등등.




삐딱삐딱

책에서 상정된 독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미국 중산층 여성들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돈은 별로 없어도 되겠더라) 삭막해진 삶 속에서 뭘 해야할지 모르는 그런 사람들. 그래서 사실 우리나라와는 좀 맞지 않는다고도 느꼈다. 이런 여유가 우리에게 가능한가? 아니 물론 이런 여유를 가지고 살자는 취지이고... 시간을 내서 하자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회의가 들기도 한다. 

놀이들이 참 간단한데도 어렵다. 이것은 시작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르고, 내가 여전히 이런 놀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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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평전
고은 지음 / 향연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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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중고등학교 때 '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열심히 외운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님은 민족과 고국이며, 한용운이 승려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처일 수도 있다는 그런 해석 말이다. 나도 그런 정도밖에 몰랐다. 독립운동가였더니 의기가 넘치고, 승려였다니 자애롭고, 시인이었다니 감성적이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저 님의 침묵에서 보인 이미지만으로 제멋대로 상상해 완벽한 위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그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는가. 고은은 『한용운 평전』을 통해 한용운의 신화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시인이 쓴 시인에 대한 평전이라. 어쩐지 흥미가 갔다.



그는 시인만으로 말해져야하며 그것만으로 말해질 수 없어야 한다. 그는 승려만으로 말해져야 할 때 승려를 넘어서 버린다. 그를 독립운동가로 강조하려고 하면 그런 입장을 어느덧 독선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는 근대 한국 최대의 전인적 규모의 사상가, 예술가, 실천가였기 때문이다.   p.14



 

 



범상치 않은 어린 시절

평전이니까, 한용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보자. 우리 나라 위인들이 흔히 그렇 듯, 그는 천재였다.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하며 빠른 성취를 이루어 내었고, 그런 그에게 가난했던 가족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고 한다. 흔한 위인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는 흔하지 않았다. 너무 똑똑했던 나머지 자의식이 지나쳤던 것 아닐까. 그런 천재들의 사고를 내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는 가족을 버리고 입산했다. 세월에 한탄하고 시대에 한탄하고. 그러다가 입산. 승려가 되었다. 그런데 부목행자가 되어서도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간다. 

아, 잘난 사람이구나. 천재구나. 범인은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구나. 아직 어리고 세상도 잘 모르지만 머리가 너무 좋아서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구나. 이게 젊음의 패기인 걸까. 고은은 이 젊은 시절의 한용운을 이해하는 것같다. 한용운의 젊을 때의 행적을 붓다같은 그 전의 위인들과 비교하며 대단한 가능성을 담은 듯이 이야기한다. 

심지어, 처자식을 버리고 입산할 때조차 붓다의 예를 든다. 그것이 진짜 한용운의 생각이었는지 고은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보는 나는 찝찝하기 그지 없었다. 임신한 아내를 버려두고 산에 들어가고, 아니, 들어가는 건 좋은데, 아내에게 일말의 동정조차 없다는 것이 갑갑했다. 물론 그 속을 어찌 알겠느냐만은, 이후 장성한 아들이 찾아왔을 때도 '넌 내 아들이 아니다'라며 내쳤다는 걸 보면 그리 정을 주지는 않았던 거 같다. 어쨌든 여기서부터 한용운에 대한 비호감이 시작되었다. 



 

 

고은의 《만인보》 中 <한용운>


한용운에 대한 고은의 부정적인 시각

전체적으로 보면 고은은 한용운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고은은 말한다. 한용운의 시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고, 승려로서도 관용이 없었다. 지식인이었고 대중을 선도하고자 했으나, 대중을 경멸했다. 오만했으며, 최남선을 시기질투했다. 권력이 없으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이렇게. 고은은 한용운의 신화를 철저하게 파괴한다. 의사義士로서의 면모도 그의 지배욕과 아집 때문이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저런 평가는 고은의 아주 주관적인 평가(특히 시에 대한 견해에 있어)이기 때문에 상당히 걸러 들어야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기영이 분석한 것처럼 다만 "말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그런 성격에 의해서 사원 생활의 요체인 화중和衆, 화합중和合衆 그리하여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커다란 인품을 갖추지 않고 타자에 대한 관용이 없는 의義의 부분에만 천착했다.   
p.227


그러나 아무리 걸러 들으려고 해도 한용운의 이미지가 쉬이 좋아지지 않는다. 지인들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한용운의 성정은 역시 비호감.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다가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을 법하다. 너무 잘난 척해서 재수 없는 사람. 정도로 요약하면 딱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지식인이었지만 '인간성'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꽝이었다는 사실. 



한용운의 업적

물론 그의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불교에 있어서 그는 그 집요함과 깊은 지식으로 여러 경전을 재했으며, 한국 불교의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 개혁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고, 일부 사심이 보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도로써 많은 것을 바꾸려고 했다. 강연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글을 써 청년들에게 의기를 불어넣었다. 그가 실제로는 '전통적'인 불교의 가치관에 따르지 않았으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해줄 것이다.


또한 그의 의기가 아무리 이기적인 욕망의 발로라고 할지라도, 그가 독립운동가로서 실제로 보여준 기개가 대단하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3.1운동 외에는 별 일을 못하기는 했지만. 3.1운동을 주도한 33인의 대부분이 일제의 강압에 수그릴 때 그만큼은 단호하게 주관을 가지고 굽히지 않았다. 

1919년 3월 11일 경무총감부의 검사 가와무라의 취조서는 "문: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그렇다. 계속하여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며 일본에는 승에 게츠쇼가 있고 조선에는 승에 한용운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통쾌한 한용운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p.266

이런 점에 있어서 한용운은 나 같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기개를 지녔다.



님은 갔습니다

솔직히 그동한 속도감 있게 책장이 넘어가는 소설을 선호해온 나로서는 평전이라는 형식 자체에 애를 먹었다. 원래 평전은 이렇게 곁가지로 새는 것일까. 그럼에도 지난 밤을 꼬박 새워 읽고 나니, 한용운이라는 사람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도 결점이 있는 인간이었다는 것. 한용운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흔히 위인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도 다들 이런 결점을 가진 인간이겠지. 모르고 있을 뿐. 

예술 작품은 예술가를 반영하지만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생각하게 된다. 문학은 작가와 어디까지 분리해서 보아야하며, 어디까지 작가와 관련지어서 생각해야하는가. 항상 제시되는 문제이지만 늘상 어렵기도 하다. 분명한 건 앞으로 님의 침묵을 볼 때, 이제까지 봤던 것처럼 순수하게(?) 보지는 못할 것같다는 것이다. 

한용운은 가버렸다. 내 상상 속의 한용운은 가버렸다. 그리고 난 그냥 보내버렸다. 
환상은 깨진 후에는 그것을 유지할 길이 없으니까. 

그리하여, 님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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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탑 5
전민희 지음 / 제우미디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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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타지 작가를 꼽으라 하면, 반드시 들어가는 이름에는 전민희가 있을 것이다. 이영도와 함께 거론되는 작가. 한국의 조앤 롤링이라고도 가끔 불린다. 『룬의 아이들』시리즈는 일본과 중국에 번역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도. 뭐 그렇단다.  


나도 좋아하는 작가다. 물론 완벽한 작가는 아닐 것이다.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있고, 벌이기만 하고 수습을 못 한다는 평가도 있고, 이야기는 좋지만 깊이는 없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깊이가 있고 없고를 떠나 이야기 자체를 만들어 내는 데는 꽤 능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좋은 스토리텔러라는 데 이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까? 화려한 문장과 묘사도 적절한 편이라 좋아하고. 그 문체는, 뭐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흩날리는 벚꽃같은 이미지로 기억을 하고 있다.




10년만에 나온 태양의 탑


어쨌거나. 장편 시리즈 중 <아룬드 연대기> 그 1부 『태양의 탑』으로 말하자면 비운의 작품이다. 왜? 10년 간 다음 권이 나오질 않았으니까! 왜 작가님 절단신공 펼쳐놓고 10년 동안 다음 이야기가 안 나오나요. 응? 왜? 표지 표절 때문이기는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야... 제우미디어에서 다시 나오기 시작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한동안 나오질 않으니 속이 터집니까 안 터집니까. 


게다가 아키에이지 프로젝트 하시면서 새 책이 거의 나오지 않았지. 태양의 탑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던 지인님은 기다림을 견디다 못해 탈덕하셨다. 휴덕인지 탈덕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나도 신간이 안 나오니 내가 진짜 이 작가를 좋아했던가 긴가민가 할 정도가 되었다. 『전나무와 매』는 제쳐두고. 그건 장편도 아니고, 본편의 외전밖에 안 되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드디어 나왔다. 『태양의 탑 5권』. 10년 전 끊어졌던 부분의 이후 이야기. 신간님을 만나니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이 작가를 좋아했었구나. 이래서 좋아했었구나. 이런 매력이었구나. 고등학생 시절 신간이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가 제일 먼저 달려갔던 그 두근거림이 얼핏 느껴졌다. 그러니까 전민희 작가님, 신작을 내달라니까요. 이제까지 몇 번이나 봤던 책만 계속 봤다 보니 잊고 있었다고요. 간만에 신작을 만나서 읽고 있자니, 책장 넘어가는 게 아까워서 넘길 수가 없다.





중간 권이라는 게 참, 리뷰 쓰기 애매한 책이다. 뭘 말해도 미리니름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용 설명도 좀 힘들고. 그러니까... 대충 얼버무리고 가는 게 좋겠지?


복습은 필수인 듯 한데.

몇 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고, 이제 끝이 보이는 듯 하다. 몇 가지는 정말 충격이었을지도. 근데 본편이 의외로 짧다고 생각된다. 그냥 받아들었을 때도 책이 생각보다 얇네 싶었는데 외전도 들어있으니. 에휴. 뉴 페이스는 뭔가 마음에 들었고. 근데 말투랑 언어가 또 골 썩였다. 단어를 다른 걸 쓰는데 말이 안 통하는 키릴 일행의 그 난감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달까. 

전민희는 작품 속에 이리저리 떡밥도 잘 던져 놓고, 장치도 잘 해놓는 편이다. 이래서 전민희 작가의 글은 두 번째 읽을 때가 더 재미있기는 한데... 이번에는 뭔가 갑갑했다. 세계관 정교하게 짜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연구(or 복습)을 안 하면 이해가 안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권은 유독 심해진 거 같다. 작은 장치들을 비교해보고 정확히 맞물리는 걸 알아채는 즐거움을 예전에는 알았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그게 성격에 안 맞아졌다.

외전 <시간은 긴 것이다>는 아룬드 연대기의 세계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이해가 불가능. 예전에 웹에 한 번 올라왔다 사라진 외전이라고 하는데 책에 실렸다. 고대 이스나미르에 대한 외전인데. 근데 상당히 난해하다. 본문 여기저기서 인용되던 전설적 존재들이 나오는데. 제대로 해독하려면 『세월의 돌』 뿐만이 아니라 태양의 탑 구판까지 뒤적여야 하더라. 시간 순도 뒤죽박죽이라 그야말로 불친절한 글이다. 난 그냥 정리해둔 모님의 글을 통해 이해했다. 덕들에게 감사를. 외전 내용 정리글 [클릭]

"아까 그 빵 좀 마저 주면 안 되겠나?"
135쪽. 이번 권에서 가장 웃겼던 대사.



어쨌거나 세월의 돌도, 태양의 탑 전 내용도 머릿속에서 많이 휘발되어 버려서 다시 읽어야할 듯 하다. 복습은 완결 나면 해야지. 
그러니까, 언제 다음 권 나와? 한 2년 쯤 기다리면 되나? 6권이 완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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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죽다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린다 웰스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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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제외하고는. 단 것이 끌리는 시기에는 엄청나게 먹어대지만, 평소에는 단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맛은 있지만 한 입 이상 먹고 싶지는 않다고 해야하나. 특히나 케이크류, 그 중 초코 케이크라면 유난히 피하게 된다. 런던에서 맞이했던 작년 생일에는 초코 케이크를 두 개나 받았지만, 파티 때 작게 한 조각씩 먹고 다 주방에 방치했다. 결국 플랏메이트들이 다 먹었다. 으엑 달아. 그럼에도 '초코 케이크'가 주는 달콤한 이미지는 나에게도 유효해서 군침이 돌게 한다.



블랙로맨스클럽의 새 책인 『달콤하게 죽다』에서 나오는 킬러 무스도 그 이미지 전달에 성공했다. 책 표지 색깔도 딱 초콜릿이라,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표지만으로도 끌리지 않을까 한다.



 

 

 



킬러 무스


『달콤하게 죽다』 는 코지 미스터리이다. 코지 미스터리는 보통 미스터리, 추리소설보다 추리 과정이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뭐 그런 소설이란다.


 

47세 아줌마 델라 카마이클은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솔로 생활을 하고 있다. 요리 학교를 하다가 처음으로 생방송 요리 쇼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 방송에서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그것도 대형사고. 델라 이전에 쇼를 진행했던 미미 여사가 델라의 무스 케이크를 시식해보고는 죽어버린 탓이다. 생방송 도중에! 죽을 만큼 맛있어 '킬러 무스'라는 별명이 붙은 초콜릿 무스가 진짜 사람을 죽여버린 셈이다. 원인은 무스 안의 땅콩. 미미는 지독한 땅콩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과연 누가 케이크에 땅콩을 넣었던 것일까?

"먼저, 저만의 특별한 초콜릿 무스 케이크부터 만들어 볼가요. 무스는 조리하고 나면 냉장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제 요리 강좌를 들었던 한 여자분이 '죽을 만큼' 맛있다고 하면서 '킬러 무스(killer mousse)'라는 별명을 붙여준 무스랍니다." -p.15


 

귀여운 킬러 무스


한나 스웬슨 시리즈

사실 『달콤하게 죽다』의 시놉시스를 봤을 때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이다. 그 시리즈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1, 2편에 해당하는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과 『딸기 쇼트케이크 살인사건』은 본 적 있다. 달콤하게 죽다와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은 둘 다 요리에 일가견 있는 나이 있는 여성이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려 수사를 하고 범인을 잡게 되며, 그 와중에 연애도 한다는 이이야기이다. 특히 둘 다 그럴싸한 트릭이나 사건 자체보다 주인공들의 소소한 생활이 더 부각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둘 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요리 레시피가 들어가는 점도 같으니 원.

그런데 정말 똑같나? 아니, 분위기가 좀 다르다. 한나 스웬슨 시리즈의 주인공 한나 스웬슨은 30대이다.(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어머니가 결혼 좀 하라고 역성인 노처녀였다) 이 책의 주인공 델라는 47세. 그냥 나이만 많은 것이 아니라 행동이나 생각이 좀 더 원숙하다. 철 없는 노처녀와, 결혼생활까지 겪어본 아줌마의 차이라고나 할까? 한나가 철 없이 탐정행세를 하면서 이리저리 찔러보며 정신을 사납게 했다면, 델라는 '내가 잡혀들어가지만 않으면 상관 없어요. 내 할 일 해도 되죠?'라는 느낌이다. 20년간 형사와 결혼생활을 했더니 자기 음식 때문에 사람이 죽어도 별 신경 안 쓰이는 강심장이 되었나 보다. 델라는 그저 자기 쿠키가 현장에 발견되었을 뿐인데도 적극적으로 수사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특히나 한나 스웬슨은 미스터리를 빙자한 로맨스로 한나가 두 남자를 어장관리하며 왔다갔다 했다. 반면 델라는 결혼생활의 노하우였을까, 아니면 연륜인가. 자신의 마음을 빠르게 정리하고 신속하게 침대까지(..) 간다. 한나에 비해 훨씬 깔끔히 감정을 처리한다.(듣자 하니 3권에서 마무리 되고 결혼도 한다고)

이렇듯 노처녀의 로맨스와 원숙한 미망인의 사건 수사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오 이것이 연륜.

영화 속에서처럼 "멍청한 짓을 하다가 죽는" 여자들 꼴이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괴물이 숨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혼자 어두운 2층 다락방에 올라가는 그런 여자들 말이다. -p.151



 

 

 

마지막에는 소설 내에 등장했던 레시피들이 들어있는데, 음 글쎄. 뭔가 만들기는 좀.... 실패할 거 같다


델라의 일상

미스터리로서의 트릭은 복잡하지 않고 뒤를 후려치는 반전도 없다. 추리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내가 누가 범인일 거라고 짐작을 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델라는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유도해가지만 독자 입장에서야 쉽게 보인다. 

근데 뭐 코지 미스터리를 트릭 보려고 읽는 것은 아니니까. 코지. cosy-. 편한 재미가 있었다. 이웃집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사연이 주는 재미? 47살 아줌마의 로맨스와 일상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대부분이 델라가 새 사업을 하고, 방송 준비를 하고, 요리를 하고, 연애 비슷한 것도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로맨스보다도 열심히 방송 준비하고 귀여운 터피 돌보는 게 중점인 거 같기도 하다. 너무 태평하게 일상을 지내셔서 대체 살인 목격한 사람이 맞는 건가 의심될 때도 있다. 둘이나 죽었는데 왜 이렇게 책이 평화롭지. 하긴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니까 이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죽더라도 자기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거니까. 



델라의 요리

이 책에서 뺄 수 없는 건 요리. 뒤쪽에 실린 레시피가 무려 열 가지나 된다. 그리고 그 열 가지 요리가 다 본문에 나왔던 것들이라는 사실. 먹다 보면 군침이 돈다. 특히 이지 크랜베리 치킨. 먹어보지도 않았지만 치킨이라는 점에서 십점만점이다. 누가 좀 만들어 주세요. 싫다고요? 너무해. 내가 만들면... 잘못 만들었다가 죽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킬러 무스는 별로 먹어보고 싶지 않은데-. 이거 쓰는 동안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안 되겠다. 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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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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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열심히 보던 책, 영화가 그날 꿈에 나온 적이 있지 않은가? 나는 소위 '개꿈'을 잘 꾸는 편이다. 얼마나 잘 꾸냐면, 트위터에 따로 해쉬태그를 만들어 매일 기록할 정도. 그 꿈들은 보통 내가 본 영화나 소설, 혹은 드라마의 이상한 짜깁기가 되어 버린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영화 피아노가 결합되기도 하고, 모바일 화이트 아일랜드 같은 배경에 영국 드라마 닥터후가 등장하기도 한다. '꿈 없는 잠이란 내게 사치로구나.'라고 한탄을 하면서도 '사실 영화보다 내 꿈이 더 재미있어!'라고 주장한다.(그래서 내가 잠이 많나 보다.) 


어젯밤도 그렇게 잠들었다. '오늘은 무슨 개꿈을 꿀까.' 그리고 그 개꿈은 '개의 힘 꿈'이 되어버렸다. 아니 뭐, 딱히 깊은 수사적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책 내용이 꿈에 나온 것이다.





30년간 멕시코에 뿌려진 피의 전쟁


『개의 힘』은 30년에 걸친 마약 전쟁을 다루고 있다. 멕시코와 미국. 마약 카르텔과 마약 수사 전담반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긴 세월에 걸쳐있기에, 많은 이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얽히고 섥히며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생각보다 많은 등장 인물들과 치밀하게 엮이는 관계가 얼핏 『얼음과 불의 노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그건 세븐 킹덤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이건 멕시코와 미국이 배경인 스릴러이지만. 양쪽 다 넓고 큰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까지 다 보여준다는 점이 닮아있다. 물론 개의 힘은 30년이 단 두 권으로 압축되었고, 몇 년 정도는 가뿐하게 뛰어 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쟁에 끼어든 사람들의 면면을 대충 훑어 보자면, 마약 전담 수사반의 아트 켈러. 바레라 카르텔의 아단, 라울, 티오. 뉴욕 불량배 칼란.  그리고 고급 매춘부 노라, 어떻게 된 건지 이들과 다 인연을 맺게 된 후안 신부. 여기에 각자의 부하, 암살자, 상관, 아내, 자식... 


국경의 왕 아트, 하늘의 군주 아단. 한 때 친구였으나 별명이 보여주듯이 숙적이 되는 관계이다. 땅에 그어진 선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 현실과 법도에 맞게 살고, 그 선에 집착한 나머지 모든 걸 버리게 된 사람이 아트이다. 그에 비해 아단은 높게 비상하는 사람. 모든 법과 규율을 비웃으며 날아오른다. 국경을 지키는 아트를 비웃는 초법적 존재. 건드릴 수 없는 존재. 이들은 복수하고 또 복수한다. 그놈의 복수.


"난 단념하지 않았어."

"단념해야 할 거요. 정의란 건 없거든. 그리고 복수를 진지하게 여기지도 않잖소. 당신은 멕시코인이 아니오. 우리는 진지하게 여기는 게 많지는 않지만, 복수만큼은 진지하게 여기거든."

2권 19쪽



친절하게 등장인물 목록과 지도도 따로 제작해주어서 읽는 데 편했다. 미국이든 멕시코든 워낙 지리를 잘 모르니까 지도가 있는 게 정말 유용했다. 



개의 힘, 악.


제목이고 작품 내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개의 힘'이라는 단어는 '악'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30년 간의 전쟁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내가 전혀 모르던 마약의 세계. 그 세계가 얼마나 잔혹한지. 소설은 프롤로그부터가 굉장히 강렬하다. 그야말로 참사. 남녀노소가 마약 전쟁 아래서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피와 시체가 안 나올 수는 없는 법이지만 생각보다 더 잔인했다. 자본이란, 복수란, 마약이란, 그리고, 이데올로기란. 이런 힘을 가진 것이구나. 비교적 평화롭던 초반에 비해 뒤쪽으로 갈 수록 개가 달리는 힘은 박차를 가한다. 나는 초반에 힘을 받는 게 어려웠던 편인데, 막판에 가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관성의 법칙? 악은 멈출 수 없고, 개의힘도 멈출 수 없다.


아단은 숫자를 믿고, 과학을 믿고, 물리학을 믿었다. 바로 이 순간, 아단은 악의 본성을 깨달았다. 악은 추진력이 있어서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었다. 물리학의 법칙이다. 잠들어 있는 모은 계속 잠들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뭔가가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2권 124쪽




사랑이라는 이름, 선.


그런데 소설이 아무리 악을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내면에 있는 악을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 모두가 악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누구나 악을지니고 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사랑'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절대적이고 멈출 수 없었던 악들은 다 그놈의 사랑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가. 자연스레 아트의 편을 들게야 되었지만, 악의 화신이어야 할 사람들의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들에 아단도 다른 편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사랑-선과 악의 절대적인 긴장상태. 줄다리기. 사랑을 위해 악을 포기하고, 악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고, 악이 사랑을 망치고, 사랑이 악을 망친다. 


그 점에서 난 노라가 좋았다. 악에 기생해 살아가지만 순수했고 선했다. 연약하고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그 누구보다 강했다. 총칼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물리적인 힘이 아닌 그녀만의 '매력'으로 강했다. 물론 그녀의 외모, 그녀가 받은 훈련이 다 일종의 '힘'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힘을 현명하게 사용할 줄 알았고, 악의 세계에 살면서도 선을 꿈꿨다. 힘을 폭주시키고 멈출 줄을 몰랐던 남자들에 비해 얼마나 현명한가. 그래서 어젯밤 내 꿈의 주인공이 노라였던가보다.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른 뒤 아트는 가끔 생각했다. 

확실히 아트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었다.

개의 힘.

아트를 티오에게 소개해 준 사람은 당연히 아단이었다.

1권 55쪽




개꿈이 아닌 현실


이 책이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는 마약을 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서로 싸우고, 죽이고, 복수하고, 이용하려 들겠지. 그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당하고 잃고 고통 당할 것이다. 그리고 결코 악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트와 아단이 사라져도 다른 아트와 아단이 그 자리를 메우겠지. '개의 힘'이 내가 꾸는 개꿈처럼 전부 소용 없고 쓸모 없는 공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삼십년의 꿈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그 속에서 깨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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