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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죽다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린다 웰스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제외하고는. 단 것이 끌리는 시기에는 엄청나게 먹어대지만, 평소에는 단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맛은 있지만 한 입 이상 먹고 싶지는 않다고 해야하나. 특히나 케이크류, 그 중 초코 케이크라면 유난히 피하게 된다. 런던에서 맞이했던 작년 생일에는 초코 케이크를 두 개나 받았지만, 파티 때 작게 한 조각씩 먹고 다 주방에 방치했다. 결국 플랏메이트들이 다 먹었다. 으엑 달아. 그럼에도 '초코 케이크'가 주는 달콤한 이미지는 나에게도 유효해서 군침이 돌게 한다.
블랙로맨스클럽의 새 책인 『달콤하게 죽다』에서 나오는 킬러 무스도 그 이미지 전달에 성공했다. 책 표지 색깔도 딱 초콜릿이라,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표지만으로도 끌리지 않을까 한다.

킬러 무스
『달콤하게 죽다』 는 코지 미스터리이다. 코지 미스터리는 보통 미스터리, 추리소설보다 추리 과정이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뭐 그런 소설이란다.
47세 아줌마 델라 카마이클은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솔로 생활을 하고 있다. 요리 학교를 하다가 처음으로 생방송 요리 쇼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 방송에서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그것도 대형사고. 델라 이전에 쇼를 진행했던 미미 여사가 델라의 무스 케이크를 시식해보고는 죽어버린 탓이다. 생방송 도중에! 죽을 만큼 맛있어 '킬러 무스'라는 별명이 붙은 초콜릿 무스가 진짜 사람을 죽여버린 셈이다. 원인은 무스 안의 땅콩. 미미는 지독한 땅콩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과연 누가 케이크에 땅콩을 넣었던 것일까?
"먼저, 저만의 특별한 초콜릿 무스 케이크부터 만들어 볼가요. 무스는 조리하고 나면 냉장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제 요리 강좌를 들었던 한 여자분이 '죽을 만큼' 맛있다고 하면서 '킬러 무스(killer mousse)'라는 별명을 붙여준 무스랍니다." -p.15
귀여운 킬러 무스
한나 스웬슨 시리즈
사실 『달콤하게 죽다』의 시놉시스를 봤을 때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이다. 그 시리즈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1, 2편에 해당하는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과 『딸기 쇼트케이크 살인사건』은 본 적 있다. 달콤하게 죽다와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은 둘 다 요리에 일가견 있는 나이 있는 여성이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려 수사를 하고 범인을 잡게 되며, 그 와중에 연애도 한다는 이이야기이다. 특히 둘 다 그럴싸한 트릭이나 사건 자체보다 주인공들의 소소한 생활이 더 부각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둘 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요리 레시피가 들어가는 점도 같으니 원.
그런데 정말 똑같나? 아니, 분위기가 좀 다르다. 한나 스웬슨 시리즈의 주인공 한나 스웬슨은 30대이다.(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어머니가 결혼 좀 하라고 역성인 노처녀였다) 이 책의 주인공 델라는 47세. 그냥 나이만 많은 것이 아니라 행동이나 생각이 좀 더 원숙하다. 철 없는 노처녀와, 결혼생활까지 겪어본 아줌마의 차이라고나 할까? 한나가 철 없이 탐정행세를 하면서 이리저리 찔러보며 정신을 사납게 했다면, 델라는 '내가 잡혀들어가지만 않으면 상관 없어요. 내 할 일 해도 되죠?'라는 느낌이다. 20년간 형사와 결혼생활을 했더니 자기 음식 때문에 사람이 죽어도 별 신경 안 쓰이는 강심장이 되었나 보다. 델라는 그저 자기 쿠키가 현장에 발견되었을 뿐인데도 적극적으로 수사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특히나 한나 스웬슨은 미스터리를 빙자한 로맨스로 한나가 두 남자를 어장관리하며 왔다갔다 했다. 반면 델라는 결혼생활의 노하우였을까, 아니면 연륜인가. 자신의 마음을 빠르게 정리하고 신속하게 침대까지(..) 간다. 한나에 비해 훨씬 깔끔히 감정을 처리한다.(듣자 하니 3권에서 마무리 되고 결혼도 한다고)
이렇듯 노처녀의 로맨스와 원숙한 미망인의 사건 수사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오 이것이 연륜.
영화 속에서처럼 "멍청한 짓을 하다가 죽는" 여자들 꼴이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괴물이 숨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혼자 어두운 2층 다락방에 올라가는 그런 여자들 말이다. -p.151
마지막에는 소설 내에 등장했던 레시피들이 들어있는데, 음 글쎄. 뭔가 만들기는 좀.... 실패할 거 같다
델라의 일상
미스터리로서의 트릭은 복잡하지 않고 뒤를 후려치는 반전도 없다. 추리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내가 누가 범인일 거라고 짐작을 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델라는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유도해가지만 독자 입장에서야 쉽게 보인다.
근데 뭐 코지 미스터리를 트릭 보려고 읽는 것은 아니니까. 코지. cosy-. 편한 재미가 있었다. 이웃집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사연이 주는 재미? 47살 아줌마의 로맨스와 일상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대부분이 델라가 새 사업을 하고, 방송 준비를 하고, 요리를 하고, 연애 비슷한 것도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로맨스보다도 열심히 방송 준비하고 귀여운 터피 돌보는 게 중점인 거 같기도 하다. 너무 태평하게 일상을 지내셔서 대체 살인 목격한 사람이 맞는 건가 의심될 때도 있다. 둘이나 죽었는데 왜 이렇게 책이 평화롭지. 하긴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니까 이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죽더라도 자기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거니까.
델라의 요리
이 책에서 뺄 수 없는 건 요리. 뒤쪽에 실린 레시피가 무려 열 가지나 된다. 그리고 그 열 가지 요리가 다 본문에 나왔던 것들이라는 사실. 먹다 보면 군침이 돈다. 특히 이지 크랜베리 치킨. 먹어보지도 않았지만 치킨이라는 점에서 십점만점이다. 누가 좀 만들어 주세요. 싫다고요? 너무해. 내가 만들면... 잘못 만들었다가 죽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킬러 무스는 별로 먹어보고 싶지 않은데-. 이거 쓰는 동안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안 되겠다. 시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