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평전
고은 지음 / 향연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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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중고등학교 때 '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열심히 외운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님은 민족과 고국이며, 한용운이 승려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처일 수도 있다는 그런 해석 말이다. 나도 그런 정도밖에 몰랐다. 독립운동가였더니 의기가 넘치고, 승려였다니 자애롭고, 시인이었다니 감성적이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저 님의 침묵에서 보인 이미지만으로 제멋대로 상상해 완벽한 위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그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는가. 고은은 『한용운 평전』을 통해 한용운의 신화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시인이 쓴 시인에 대한 평전이라. 어쩐지 흥미가 갔다.



그는 시인만으로 말해져야하며 그것만으로 말해질 수 없어야 한다. 그는 승려만으로 말해져야 할 때 승려를 넘어서 버린다. 그를 독립운동가로 강조하려고 하면 그런 입장을 어느덧 독선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는 근대 한국 최대의 전인적 규모의 사상가, 예술가, 실천가였기 때문이다.   p.14



 

 



범상치 않은 어린 시절

평전이니까, 한용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보자. 우리 나라 위인들이 흔히 그렇 듯, 그는 천재였다.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하며 빠른 성취를 이루어 내었고, 그런 그에게 가난했던 가족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고 한다. 흔한 위인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는 흔하지 않았다. 너무 똑똑했던 나머지 자의식이 지나쳤던 것 아닐까. 그런 천재들의 사고를 내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는 가족을 버리고 입산했다. 세월에 한탄하고 시대에 한탄하고. 그러다가 입산. 승려가 되었다. 그런데 부목행자가 되어서도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간다. 

아, 잘난 사람이구나. 천재구나. 범인은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구나. 아직 어리고 세상도 잘 모르지만 머리가 너무 좋아서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구나. 이게 젊음의 패기인 걸까. 고은은 이 젊은 시절의 한용운을 이해하는 것같다. 한용운의 젊을 때의 행적을 붓다같은 그 전의 위인들과 비교하며 대단한 가능성을 담은 듯이 이야기한다. 

심지어, 처자식을 버리고 입산할 때조차 붓다의 예를 든다. 그것이 진짜 한용운의 생각이었는지 고은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보는 나는 찝찝하기 그지 없었다. 임신한 아내를 버려두고 산에 들어가고, 아니, 들어가는 건 좋은데, 아내에게 일말의 동정조차 없다는 것이 갑갑했다. 물론 그 속을 어찌 알겠느냐만은, 이후 장성한 아들이 찾아왔을 때도 '넌 내 아들이 아니다'라며 내쳤다는 걸 보면 그리 정을 주지는 않았던 거 같다. 어쨌든 여기서부터 한용운에 대한 비호감이 시작되었다. 



 

 

고은의 《만인보》 中 <한용운>


한용운에 대한 고은의 부정적인 시각

전체적으로 보면 고은은 한용운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고은은 말한다. 한용운의 시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고, 승려로서도 관용이 없었다. 지식인이었고 대중을 선도하고자 했으나, 대중을 경멸했다. 오만했으며, 최남선을 시기질투했다. 권력이 없으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이렇게. 고은은 한용운의 신화를 철저하게 파괴한다. 의사義士로서의 면모도 그의 지배욕과 아집 때문이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저런 평가는 고은의 아주 주관적인 평가(특히 시에 대한 견해에 있어)이기 때문에 상당히 걸러 들어야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기영이 분석한 것처럼 다만 "말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그런 성격에 의해서 사원 생활의 요체인 화중和衆, 화합중和合衆 그리하여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커다란 인품을 갖추지 않고 타자에 대한 관용이 없는 의義의 부분에만 천착했다.   
p.227


그러나 아무리 걸러 들으려고 해도 한용운의 이미지가 쉬이 좋아지지 않는다. 지인들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한용운의 성정은 역시 비호감.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다가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을 법하다. 너무 잘난 척해서 재수 없는 사람. 정도로 요약하면 딱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지식인이었지만 '인간성'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꽝이었다는 사실. 



한용운의 업적

물론 그의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불교에 있어서 그는 그 집요함과 깊은 지식으로 여러 경전을 재했으며, 한국 불교의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 개혁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고, 일부 사심이 보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도로써 많은 것을 바꾸려고 했다. 강연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글을 써 청년들에게 의기를 불어넣었다. 그가 실제로는 '전통적'인 불교의 가치관에 따르지 않았으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해줄 것이다.


또한 그의 의기가 아무리 이기적인 욕망의 발로라고 할지라도, 그가 독립운동가로서 실제로 보여준 기개가 대단하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3.1운동 외에는 별 일을 못하기는 했지만. 3.1운동을 주도한 33인의 대부분이 일제의 강압에 수그릴 때 그만큼은 단호하게 주관을 가지고 굽히지 않았다. 

1919년 3월 11일 경무총감부의 검사 가와무라의 취조서는 "문: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그렇다. 계속하여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며 일본에는 승에 게츠쇼가 있고 조선에는 승에 한용운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통쾌한 한용운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p.266

이런 점에 있어서 한용운은 나 같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기개를 지녔다.



님은 갔습니다

솔직히 그동한 속도감 있게 책장이 넘어가는 소설을 선호해온 나로서는 평전이라는 형식 자체에 애를 먹었다. 원래 평전은 이렇게 곁가지로 새는 것일까. 그럼에도 지난 밤을 꼬박 새워 읽고 나니, 한용운이라는 사람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도 결점이 있는 인간이었다는 것. 한용운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흔히 위인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도 다들 이런 결점을 가진 인간이겠지. 모르고 있을 뿐. 

예술 작품은 예술가를 반영하지만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생각하게 된다. 문학은 작가와 어디까지 분리해서 보아야하며, 어디까지 작가와 관련지어서 생각해야하는가. 항상 제시되는 문제이지만 늘상 어렵기도 하다. 분명한 건 앞으로 님의 침묵을 볼 때, 이제까지 봤던 것처럼 순수하게(?) 보지는 못할 것같다는 것이다. 

한용운은 가버렸다. 내 상상 속의 한용운은 가버렸다. 그리고 난 그냥 보내버렸다. 
환상은 깨진 후에는 그것을 유지할 길이 없으니까. 

그리하여, 님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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