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2 - 대륙에서 키운 꿈
이정근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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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했을 때의 비참함이 어떠한지는 世界史를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봤기에 누구나 쉽게 실감할 것이다. 비록 나라가 망하지는 않고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타국의 지배를 받는 상태에 있다면 그건 나라가 망한 거나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항복을 한 후 조선의 신세가 바로 이와 같다 할 것이다. 말이 좋아 국가이지 삼전도에서 항복을 한 이후에는 청나라의 말이라면 무조건 응하여야 하는 조선을 어찌 독립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자기들의 영토에 편입하고자 할 의도로 침공하였다기보다는 명나라를 멸망시켜 중원을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조선과 명나라가 연합하여 청나라를 협공하는 것을 사전에 끊어놓는 것이 목적이라 할 것이다.

만일 청이 조선을 자기들의 영토로 할 의향이었다면 소현세자 등을 볼모로 잡을 것이 아니라 인조를 폐위시켜 심양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혹시 조선을 침공하여 병합하면 저항이 극심하여 중원을 점령하여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우려되어 전략적으로 그리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旭日昇天하는 청나라의 국력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당시 청나라와 명나라 관계를 잘 활용하였다면 병자호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 증거는 병자호란 9년 전에 있었던 정묘호란이다. 이때에 정세만 잘 판단하였다면 병자호란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병자호란을 겪고도 변할 줄 모르는 인조와 조선 조정이다. 그건 척화파나 주화파나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로서 척화파와 주화파의 차이라면 당장 앞에 닥친 청의 항복요구에 대하여 어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단기응급처치방안에 대한 대응방안의 차이일 뿐 당시 중국대륙의 정세에 대한 판단을 제쳐두고 崇明背淸이란 근본적인 인식에는 둘 다 같았기 때문이다.

세자와 대군이 청에 볼모로 잡혀갔기에 청나라 심양에 수많은 사신들이 오고 갔으면서도 누구 하나 대륙의 정세를 파악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헛된 숭조사상에 빠져 청나라의 요구에 조정 대신들의 생각은 청나라 관리나 역관들에게 뇌물을 주어 임시변통으로 모면하려고만 했으니 어찌 한심하다 아니 할 수 있는가?

한편 왕이라는 자는 적국의 심장부에 가 있는 세자를 통하여 적정을 얻으려하기는커녕 청나라에서 자기를 폐위시키고 불모로 잡아간 세자를 왕으로 세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어 세자의 활동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지경인데 심지어 왕이 세자를 불신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자는 심양에서 욱일승천하는 청나라의 기세를 보면서 나라와 조정이 나아갈 방향을 찾고 있는데 인조와 조정은 이 모양이니 조선의 앞날이 어떠하게 될 것인가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죽어나는 건 민초, 백성들뿐이었다.

개인이나 나라나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그 끝이 무엇인가? 불과 40여 년 전 임진왜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조정은 또다시 병자호란을 맞게 되는 과정을 작가는 예리한 필체로 적시하고 있다.

흔히 역사는 반복한다고 하는데 그때의 상황을 요즘에 비추어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단,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 실천에 옮기는 개인이나 나라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런 개인이나 나라에게는 역사는 똑 같은 일로 반복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 당시 상황을 말없이 알려주는 유적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소공동에 있는 남별궁터의 원구단, 전쟁의 참화에도 무사했는데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 전승 축하 연회가 열리던 심양 황궁 봉황루, 혼하 강변에 있는 영빈관 심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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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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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KBS스페셜시간에 『수단의 슈바이처, 쫄리 신부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 프로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앞날이 보장된 의사이면서 의사로서 그 삶을 버리고 사제가 되었고, 사제가 되어서는 역시 안일한 사제의 길보다는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땅, 아프리카의 오지 중에 오지 불모의 땅, 수단의 남부지방 톤즈에서 聖者의 삶을 살다가 47살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에 대한 프로였다.

그 프로를 보고 그 분이 유일하게 지었다는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구입하여 읽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도움은커녕 해만 끼치다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凡人들이 감히 쳐다보기에 너무나 눈부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  

분명 수단의 땅이면서 그곳에 가려면 자기나라의 首都가 아닌 옆 나라 케냐를 통해야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모든 생필품 역시 케냐에서 조달하여야 하는 곳, 南수단의 오지 톤즈. 그곳에 2001년 한국인 신부가 나타났다.

가톨릭 대학 시절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곳, 어려운 곳에 가서 봉사하겠다던 결심을 실천하고자 케냐를 찾았으나 그곳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낫다고 하여 오랜 내전으로 얼룩진 수단의 남부지방 톤즈를 그의 사역지로 정하고 찾은 것이다.

그 지방의 열악한 사정은 말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섭씨 45도에서 5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기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병원은 물론 교육 등 사회기본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 무엇보다 종족간 불신과 증오로 가득 찬 곳, 아무리 봉사도 좋지만 어찌 그런 곳을 택하셨을까 읽을수록 나로서는 존경스럽다기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석 신부가 그곳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의료혜택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짓는 일이었다. 1년여 만에 병원을 짓는 일을 마무리할 때쯤에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노는 젊은이들을 위해서였다. 성당은 맨 나중에 지었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그곳에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손만 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이라며 눈물과 감동 없이는 읽을 수 없는 8년 동안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그런 그가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봉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의 사정을 알리고 필요한 후원을 얻으려 2008년 잠시 귀국하였다가 주변의 권유로 건강진단을 받았더니 대장암 말기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결국 그는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올 1월에 선종하였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곳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하늘로 떠난 후 그가 운영하던 톤즈의 모든 시설은 버려지다시피 되었다. 뒤늦게 가톨릭과 후원단체에서 나섰지만, 이태석 신부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다.

마침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개봉되었다기에 보러 나섰다. 관객은 십여 명 안팎, 영화관은 텅 비었다. 하기야 요즘 이런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쓸쓸했다.

스크린에는 “울지마 톤즈” 라는 영화 명이 뜬다. ‘수단의 슈바이쳐 이태석 신부’ 라는 글자도 보인다. KBS가 제작한 다큐영화이다.

영화는 책 내용과 달리 이태석신부가 암투병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에서 신부가 되기까지 과정이 나오고, 이어서 수단에서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오랜 내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저주의 나라 수단,  희망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 없는 절망의 땅 톤즈, 이태석신부는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그곳에 간 이유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했다. 

이태석 신부가 떠난 후 목자를 잃은 톤즈의 양들...
생전에 그가 만든 어린 학생들의 브라스 밴드가 톤즈거리를 추모행진하는 모습...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이테석신부의 사진 앞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광경....
모두가 가슴을 울리는 진한 감동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선 명동거리는 영화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광경이었다.
얼마 만에 찾은 명동거리인가? 20년도 넘었을 것 같다. 
휘황찬란한 명동거리, 더구나 요즘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득한 명동에서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도쿄의 어느 거리를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람도 많은데, 왜 이런 훌륭한 일을 하는 분을 데려가시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도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말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나 역시 돌아오면서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하나님은 그리도  매정하고 무정하신가?
그런 분을 벌써 데려가시다니....
소외된 사람, 돌보아 줘야할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과 불평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하실 몫을 다 이루었기에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떠남을 아쉬워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 그 뒷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 땅에 아름다움을 남기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이태석 신부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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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2010-11-1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살아있었던 성인 이 신부님의 명복을 가슴깊이 빌어봅니다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소서
 
완보완심 緩步緩心 -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느리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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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전반전이 있고 후반전이 있다고 한다. 전반전과 후반전을 구분하는 기준이 나이일 수도 있지만, 성공과 출세, 부의 축적에 관심을 가지는 때를 전반전이라 한다면,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때를 후반전이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젊었을 때는 성공과 출세, 부의 축적에 관심이 있고, 노년에 들어서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건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살아본 결과 성공, 출세, 부가 인생이 추구할 근본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이는 젊지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런데 엄격히 이야기하면 사실 삶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젊은 시절 추구했던 성공을 했거나 부의 축적을 얼마나 했느냐 하고는 관계가 없다 할 것이다.)

‘빨리빨리’가 미덕인 사회에서‘천천히’라고 이야기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나 역시 인생이란 길을 가는데‘빨리빨리’가 결코 빠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피곤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리 살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이 책의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緩步 緩心』이라.

이 책은“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緩步), 느리지만 따뜻한 마음으로(緩心)”살라고 강하게 권유한다. 단순히 四字成語를 해설한 것이 아니라, 지은이가 삶에서 겪은 체험과 역사상 있었던 유명인들의 古事를 곁들인 것이 이 책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옛 사자성어에는 선조들의 번득이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이 책에서 인용한 42개의 사자성어 중에서 특히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이 몇 개 있다. 본래의 뜻에 나의 느낌을 한줄 적어보았다. 


和而不同(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다.)
남과 하나를 이루되 나의 특색, 즉 줏대는 유지하라는 뜻이려니...

柔能制剛(부드러운 것이 오히려 능히 굳센 것을 이긴다.)
정말 강하고 심으면 자신에게 강하라는 內剛外柔의 다른 면이려니...

無用之用(언뜻 보아 별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도리어 크게 쓰인다.)
세상에 모든 것은 존재가치가 있으니 쓸데없는 자기비하는 하지 말라는 뜻이려니...

思始觀終(처음을 생각하며 끝을 바라본다.)
늘 초심은 잊지 않으면서 목표를 향해 가라는 뜻이려니...+  

 

인생은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먼 길을 가야할 사람이 가져야할 것은 노자 돈도 건강도 아니요,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이리라. 그건....

멀리 가는 사람은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걷는 사람이다.
(멀리 가려면 뛰지 마라, 쉬엄쉬엄 걸어가거라. 그래야 멀리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단다. 빨리 가려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라는... )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묻지 말고 당신처럼 길을 찾는 사람에게 물어라.
(아는 사람에게 물어 쉽게 가려하지 말고, 친구와 고민하며 찾아가라는....)

소유하면 소유 당한다.
(무엇이든 소유하여야만 직성이 풀리던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소유했다 했던 것이 사실은 그것에 내가 매이는 것이라는 것을...)

비록 타의에 의하긴 했지만 모든 것을 툴툴 털고 산골로 들어온 지 벌써 6년 째, 이젠 세상살이에서 슬쩍 비켜나서 지난 삶을 觀照할 나이가 되었다. 도시에 살면서 가끔 찾아오는 반가운 자식들에게 무언가 삶의 지혜를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이었다. 그런 지난 삶의 흔적이 내 맘과 몸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때로는 기쁨과 환희로, 때로는 좌절과 회한의 아픔으로...

무언가에 쫓기듯 사느냐고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삶을 이 책을 통하여 정리할 수 있음이 첫째 소득이요, 뒤따라오는 자식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음이 두 번째 소득이라 할 것이다.

大器免成(진정 큰 그릇은 완성됨이 없다.)
흔히 대기만성이라 하는데 지은이는 대기면성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이루었다 게으름피지 말고 삶을 마치는 날까지  정진하라는 뜻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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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1 - 망국이 빚은 지옥
이정근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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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나의 그런 상상 중에 가장 아쉬운 사람이 있다면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병자호란하면 인조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북벌준비를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효종)만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엔 소현세자의 존재를 잘 몰랐다. 단지 봉림대군과 같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몸이 약해서 일찍 죽어서 아우인 봉림대군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소현세자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었던 차에 이정근 저자가 오마이 뉴스에 게재했던 소현세자를 책으로 발간하였다 하여 읽게 되었다. 모두 세권이나 우선 1권(망국이 빚은 지옥)을 읽고 느낀 소감을 적고자 한다.

전쟁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구나 패전국 백성들의 참상은 눈 뜨고 볼 수 없다. 인권이 어떻고 하는 지금도 그런데 병자호란 당시에 점령군의 행패는 말해야 무엇하랴.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에서 한양까지 오는 동안 전투다운 전투가 한번도 없이 무혈입성하였다니 도대체 임진왜란을 겪은지 얼마나 됐다고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은 다 어디다 쓰고 국방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광해군의 실정(?)을 빙자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反正을 한 명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잘못은 사대부들이 저질러놓고 그 피해는 몽땅 백성들이 받았는데, 전쟁 후에도 반성은커녕 백성들을 더욱 괴롭히는 후안무치한 조선시대 지도층을 보면서 분노가 일었다.

특히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 서방질을 한 계집이란 의미의 화냥년이란 말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還鄕女에서 유래했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막힐 뿐이다. 원래는 행실이 좋지 못한 남자 무당을 ‘화냥이, 화냥놈’이라 불렀는데 청나라에서 돌아온 환향녀들에게 전가된 것이라 한다. 여기에서 저자가 쓴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입만 살아서, 자기들이 지켜주지 못한 여자들의 정절 타령이나 하고 있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청나라에 끌려가 겁간을 당한 여자들은 물론이려니와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 여자들마저 훼절한 것으로 치부하고 내치려는 것이 조선의 사대부였다.

그토록 절개가 중하다면 나라를 지키지 못해 ‘오랑캐’앞에 무릎을 꿇어 절개를 꺾은 사대부들 자신이 먼저 그 구차한 목숨을 버려야 할 것이었다. 정작 자기들은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무 죄 없이 희생당한 여자들을 두 번 죽이고자 하는 그 후안무치가 놀라울 다름이다.

이역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환향녀를 이렇게 ‘화냥년’이라 매도했다. 지켜주지 못한 자괴감에서 발로한 자기합리화다.

사대부들은 무엇에든 충과 효를 절대 잣대로 들이댔다. 연유야 어찌되었든 훼절은 충효를 거스른 것이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던 자들이 물 만난 고기마냥 목청을 높였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대목이 어찌 그 시대뿐이랴. 조선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200여 년 후에 망국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비록 지금의 모습이지만 과거 역사의 현장을 사진으로 보여 현장감을 주는 것이다. 
 


사진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비극은 비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비극을 반복하는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나라뿐인가? 個人事도 마찬가지이다. 

2권은 대륙에서 키운 꿈, 3권은 압록에 스러진 별이란 내용이라 하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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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스 웨이 - 넬슨 만델라의 삶, 사랑, 용기에 대한 15개의 길
리처드 스텐절 지음, 박영록 옮김, 넬슨 만델라 서문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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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영웅이 있을 수 있을까? 있다면 그건 추종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답답한 현실을 보면 이런 세상을 변화시킬 영웅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이 또한 나의 솔직한 마음이기도하다.

남아공에서는 불과 20년 전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유색인종 차별정책을 쓰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정책을 쓰고 있으며 국민의 90%가 흑인임에도 어떻게 그런 정책의 유지가 가능한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 남아공에도 세계의 여론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어 1990년 대 중반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인종차별정책은 종말을 고하였다. 이로서 백인과 유색인종간 차별은 외형상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쌓인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만델라의 집권으로 오랜 동안 유색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하여 생긴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커다란 과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억압받던 흑인들 분노가 표출되고 반면에 백인들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유혈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남아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온을 유지했다.

또 유색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하는데 절대적 공로자인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최소한 두 번 아니 종신 대통령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 당시 남아공의 분위기는 만델라가 마음만 먹으면 종신 대통령도 가능하였으며, 독립운동을 한 아프리카의 초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종신대통령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 만델라는 한번의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때부터 나는 유혈충돌을 막아내고 흑백화합을 이루었으며, 더구나 장기집권의 유혹을 뿌리친 만델라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발간되어 만델라의 리더십에 대해 알고 싶어 읽게 되었다.

대부분 이런 類의 책은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든다. 심지어 우상화시키기도 한다. 결점은 하나도 없고 무조건 주인공 찬양일변도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만델라의 장점 뿐 아니라 결점도 이야기한다. 흑백통합을 이룬 영웅 만델라가 아니라 인간 만델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목차를 통하여 만델라의 교훈이라는 15가지를 보고는 그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평범한 것이라 생각했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라. 핵심 원칙을 세워라. 다른 사람의 장점에 주목하라. 적을 파악하라. 라이벌을 가까이 하라 등등...

그러나 읽을수록 만델라를 미화시키기 보다는 인간 만델라로서 고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실수한 것, 단점, 인간적인 불행한 과거, 그는 용감한 것이 아니라 용감한 척 했으며, 누구보다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읽을수록 만델라는 영웅이 아니라 친근한 이웃 할아버지로 느껴진다.

만델라가 흑백화합을 이룬 것은 흑인을 백인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겠다는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백인들이 만델라의 집권 후에 자기들에게 닥칠 변화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을 흑인해방과 같은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백인들의 그런 공포심을 해소하기 위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그러나 흑인들은 아주 싫어하는 럭비 월드컵대회를 유치한다. 그러면서 인종차별정책을 쓰는 남아공의 백인정부를 규제하는 국제사회에 더 이상 남아공을 고립시키지 말라고 호소한다.

흑백간의 전면적인 내전이 일어날 위기 때마다 이런 만델라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특히 정치가로서,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한 인권운동가요, 혁명가로서 인생의 황금기인 44살에서 71살까지 27년간 감옥살이한 것은 만델라로서는 분통터질 일이지만 바로 27년 감옥살이가 성숙한 만델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델라 역시 젊은 시절엔 누구보다도 성급하고 쉽게 화를 냈었고 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하고 정치범을 석방하기 전까지는 어떤 협상도 갖지 않겠다고 했었다. 만델라는 창설 때부터 비무장투쟁을 원칙으로 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노선에 반대하여 ANC의 군대인 ‘민족의 창’창설을 주도하고 초대사령관이 되어 무장투쟁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이것 때문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던 그가 27년이란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었을 땐 화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같이 되었고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한 후에 결정을 하는 정반대의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 그가 그토록 증오하고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백인정부와 비밀협상을 벌이기까지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우리에겐 왜 이런 지도자가 없을까 한탄하다가 “역사가 인물을 만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그 순간에 대응하는 정도이다.”라는  만델라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이 말을 남아공에서 만델라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온 것은 남아공 사회가 만델라같은 지도자가 나올 풍토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지 만델라 자기가 위대해서만이 아니라는 말로 해석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만델라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엔 아직도 만델라 같은 지도자를 받아드릴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려면 먼저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런 지도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국가적 사회적 풍토 조성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만델라의 교훈 15가지 모두 소중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서 나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9번째 “라이벌을 가까이 하라.”는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그는 정적들을 각료로 입각시킨다. 凡人들이 실천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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