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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1 - 망국이 빚은 지옥
이정근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나의 그런 상상 중에 가장 아쉬운 사람이 있다면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병자호란하면 인조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북벌준비를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효종)만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엔 소현세자의 존재를 잘 몰랐다. 단지 봉림대군과 같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몸이 약해서 일찍 죽어서 아우인 봉림대군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소현세자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었던 차에 이정근 저자가 오마이 뉴스에 게재했던 소현세자를 책으로 발간하였다 하여 읽게 되었다. 모두 세권이나 우선 1권(망국이 빚은 지옥)을 읽고 느낀 소감을 적고자 한다.
전쟁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구나 패전국 백성들의 참상은 눈 뜨고 볼 수 없다. 인권이 어떻고 하는 지금도 그런데 병자호란 당시에 점령군의 행패는 말해야 무엇하랴.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에서 한양까지 오는 동안 전투다운 전투가 한번도 없이 무혈입성하였다니 도대체 임진왜란을 겪은지 얼마나 됐다고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은 다 어디다 쓰고 국방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광해군의 실정(?)을 빙자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反正을 한 명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잘못은 사대부들이 저질러놓고 그 피해는 몽땅 백성들이 받았는데, 전쟁 후에도 반성은커녕 백성들을 더욱 괴롭히는 후안무치한 조선시대 지도층을 보면서 분노가 일었다.
특히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 서방질을 한 계집이란 의미의 화냥년이란 말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還鄕女에서 유래했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막힐 뿐이다. 원래는 행실이 좋지 못한 남자 무당을 ‘화냥이, 화냥놈’이라 불렀는데 청나라에서 돌아온 환향녀들에게 전가된 것이라 한다. 여기에서 저자가 쓴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입만 살아서, 자기들이 지켜주지 못한 여자들의 정절 타령이나 하고 있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청나라에 끌려가 겁간을 당한 여자들은 물론이려니와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 여자들마저 훼절한 것으로 치부하고 내치려는 것이 조선의 사대부였다.
그토록 절개가 중하다면 나라를 지키지 못해 ‘오랑캐’앞에 무릎을 꿇어 절개를 꺾은 사대부들 자신이 먼저 그 구차한 목숨을 버려야 할 것이었다. 정작 자기들은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무 죄 없이 희생당한 여자들을 두 번 죽이고자 하는 그 후안무치가 놀라울 다름이다.
이역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환향녀를 이렇게 ‘화냥년’이라 매도했다. 지켜주지 못한 자괴감에서 발로한 자기합리화다.
사대부들은 무엇에든 충과 효를 절대 잣대로 들이댔다. 연유야 어찌되었든 훼절은 충효를 거스른 것이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던 자들이 물 만난 고기마냥 목청을 높였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대목이 어찌 그 시대뿐이랴. 조선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200여 년 후에 망국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비록 지금의 모습이지만 과거 역사의 현장을 사진으로 보여 현장감을 주는 것이다.

사진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비극은 비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비극을 반복하는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나라뿐인가? 個人事도 마찬가지이다.
2권은 대륙에서 키운 꿈, 3권은 압록에 스러진 별이란 내용이라 하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