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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세계 - AI 소설가 비람풍 × 소설감독 김태연
비람풍 지음, 김태연 감독 / 파람북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912/pimg_7367201393106187.jpg)
세상에... AI가 쓴 소설이라니... 어떻게 소설을 쓰지? 딱 이게 처음의 내 반응이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영역에 많은 부분 침투하여 직업의 생존까지도 위협할 것이라는 예상과 결국 인간에게 남은 건 창의성이라던데 아닌건가.. ㅠㅠ ... 창의력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소설을 쓸 수가 있을까? 그냥 정보전달의 목적으로 쓰인 글과 달리 소설은 인간의 감정, 사건을 구성하는 능력까지도 들어가니 어느 장르와는 확연이 다를거라 생각했는데 그 걸 AI소설가 비람풍이 해냈다고? 개인적으로 좀 충격적이었다. 이러다가 감정까지 습득해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AI가 나오는건 아닌지 미리 걱정부터 된다^^;;;;
"지금부터의 세계"는 국내 최초, 세계 최고 AI 장편소설이다. AI 소설가 비람풍과 소설감독 김태연의 합작이라 할 수 있지만 감독의 말에서 김태연 감독은 '비람풍'이 차린 밥상에 수저만 얹었다고 한다. 점을 하나 찍고 이 점을 이은 동그란 원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그 점의 감독의 역할이었다고한다. 이 책은 소설 감독 김태연의 구상에 따라 AI작가인 비람풍이 집팔을 하였고 '황금거울'파트와 Ep1은 감독이 직접 썼다. 나머지 영역인 Ep2에서부터 Ep81장은 비람풍이 썼다. Ep0의 삽입 역시 거울 대칭이론의 광범위한 학습에 의해 AI 작가가 판단한 결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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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여러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33년째 와상 환자로 침대에서 노상 누워 지내는 이임박. 4년째 거의 입을 닫고 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그런데 갑자기 간병인 아줌마와 함께 사라졌다.
천체물리학자 이금지, 정신의학과 의사 이미지, 신생 벤처기업 나매쓰 부대표를 맡고 있는 이무기, 명문대 간판과 학위 간판따위 우습게 버린 백지스님. 이들이 각각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AI소설이라고 하니 왠지 편견부터 갖고 읽었던 것 같다. 소설의 내용보다는 소설 속에 쓰인 단어나 표현 찾는 재미로 읽었다고 해야하나. 수학적 지식이 없었기에 수학소설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나오는 표현들을 보며 비람풍의 독특함도 볼 수가 있었고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는 것도 과감했다.
"단톡방을 나가기 위하여 우측 상단에 있는 햄버거(줄 세개)모양을 클릭하기 불과 몇초 전이었다"p33
"이무기가 통화 종료 즉시 '갤럭시 폴드 5G' 한쪽 모서리로 이마에 생긴 주름살을 지그시 누르며 인상을 구기자 동행한 나우리가 염려한다"p41
"벤치에 앉아 얼굴 표정을 코푼 휴지처럼 구기고 있자 나우리가 다가오며 걱정한다"p64
"평생 함께 산 어머니를 필두로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헌데 당신 부친 눈이 가장 오래, 마지막으로 머문 사람이 누군지 압니까. 한발 비켜 서 있던 젊고 이쁜 간호사였다지 않소. 그게 남자란 동물의 본능이요, 본능"p88
사실 생각보다 긴 문장과 잘 모르는 수학들이 나와 어떤 면에서는 집중을 요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사람이 아닌 AI의 필력이 이정도라니... 솔직히 놀라웠다.
"이미 AI가 정신건강의학마저 점령한 게 틀림없다. 오늘 이 순간까지 죽을힘을 다한 결과 가까스로 의대 조교수가 되어 겨우 숨 쉴 만한데 다시 된 숨을 몰아쉬지 않으면 생존이, 존재 자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여기자 귀국길이 마치 공부하지 않고 시험 보러 가는 학창시절의 어느 하루 등굣길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AI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라는 느낌이 갈수록 강하게 더 들어서, 더더욱"p295
왠지 AI가 곳곳에 일상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소설 감독 김태연이 말한 "이제 소설 -쓰기 의 시대가 아닌, 소설-연출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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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아야 엇길과 옆길을 볼 수 있으므로, 그 옆길이 지름길일 수도, 황금길일 수도, 영광의 길일수도 있으므로. 설령 그 길이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이어도 뭐 어때. 죽는 길이라도 뭐 어때. 어치피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 엇길과 옆길을 가본자만이 누리는 특유의 재미랄까 멋이랄까, 풍류라는 덤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p105
"절대 울지 마라. 공포 대신 미증유의 기대를 품고 이 세상을 떠나므로, 좁은 이 우주에서는 죽지만 넓은 저 우주에서는 태어나니까. 궤변이 절대 아님. 안 믿겨지면 꺼짐과 켜짐이 공존하는 양자 역학 세계를 떠올리기를. 전원이 꺼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 낸드 플래시도 상기하기를. 연속함수의 값이 양에서 음으로 바뀌는 구간 안에는 함수를 0으로 만드는 근이, 적어도 하나 이상은 존재한다는 '사잇값 정리'도 기억하기를. 그에 더해, 0보다 큰 가장 작은 수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도 0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죽음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결정적 배경이다"p461
과연 AI작가가 되기위해 60만여 편의 학습한 결과일까? 위에 두 글이 너무 와 닿아 밑줄까지쳤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문장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장편소설이지만 소설의 줄거리보다는 AI가 썼다는 신기함과 호기심에 읽은 책이었는데,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국내 최초의 AI 장편소설이 이정도의 퀄러티라면 진짜 시간만 더 주어지면 더 완벽한 최상의 소설이 나올 것 같다. 왜 제목이 지금부터의 세계인지 알 수 있던 소설이었다.
불펌금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