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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 - 우리 상고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돕는 역사서
북애자 지음, 민영순 옮김 / 다운샘 / 2008년 4월
평점 :
<규원사화>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이며 어떤 내용이 있는 지는 모르고 있었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다가 우연케도 원문과 번역본을 읽게 되었는데 소감을 말하자면 '경악' 그 자체였다.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 스물 세권을 한 권으로 압축하여 읽은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350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위작 논란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밑줄 그으며 읽어 본 문장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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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힘으로 남을 복종시키고자 하는 자는 그 힘이 다하면 사람들로부터 배반을 당할 것이며, 재물로써 남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는 그 재물이 다하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권력과 재물은 이미 내가 가지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일찍이 바라거나 구한 적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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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백골로 향하는 인생에서 어찌 그리도 조급하게 한푼어치의 명리를 가지고 다툴 것인가! 나는 결단코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타고난 성품을 간직하여 뜻을 기르고, 올바른 수행의 길을 닦아 공을 세움으로서 다음 세대의 후손들에게 본보기로 남고자 하는 것이니, 비록 세상이 다하도록 알아주는 자가 없다 할지라도 성냄이 없을 것이나, 혹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 변명을 이해하는 이를 마주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절박하게 접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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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감히 망령되게 단언하지는 못하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분이 세상을 주재하며, 진실을 북돋우고 선을 기르며 흉악함을 소멸시키고자 하면서 만물을 통솔하고 사람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일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도리를 좋아하고 분수를 지키며 괴로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어 힘써 일하면서 함부로 원망을 하지 않는다면 곧 착하다 할 것이며, 품성을 보존하고 뜻을 기르며 착한 일을 행함에 태만하지 않아서 하늘을 우르러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기에 비록 죽는다 하여도 여한이 없다면 역시 족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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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근세의 지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지금 세대의 추세를 그 곁에서 관찰해 보면, 큰 계책은 버리고 작은 욕심만을 꾀하며, 공동을 위한 싸움은 내팽개치고 사사로운 이익만을 도모하며, 조정을 좀먹어 이로써 가문을 다독거리며, 가난한 백성들을 약탈하여 이로써 자신들의 배를 살찌우며, 자질구레한 일들을 가져다 희믈그레한 눈매로 취중에 꿈 얘기하듯 하면서 쓸데없는 승부나 다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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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안으로 친척을 원수로 여기고, 밖으로 원수나 적들과 친하게 지내고도 능히 외롭고 약해지지 않는다면, 곧 천하의 사람들 역시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 시행하여도 어리석지 않다 할 것이며, 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고도 굶주리지 않았다 할 것이다. 조물주에게 어찌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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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이의 사람됨을 자랑으로 여기기에 천하를 대함에도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내가 상고 시대의 용맹스러운 무예에 탄복하고 있지만,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어이하여 모두가 군사의 일에 힘을 써서 동쪽과 서쪽으로 적들을 몰아내고 이 나라를 다시 부강의 강역으로 올려놓으려 하지 않는가. 오호라! 이 몇 가지 일들 또한 지금 비록 혀가 닳도록 말하지만 그저 죽은 아이 나이 헤아리기일 따름이니 다시 무슨 큰 이득이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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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행운은 편중되지 않고 재주는 독점됨이 없기에 백성과 사물에게는 위난이 없을 수 없지만, 가문과 국가의 흥망은 반복됨이 무상하다 하였으니, 지금 조선의 불행 또한 장래 행운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내가 살펴보건대 인심은 분열되고 백성의 사기는 소침하니, 이에 붓을 던지고 길게 탄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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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조선의 형세가 저무는 해를 따라가듯 하기에 단지 허약함만을 돌보아서는 떨치고 나와서 힘을 쓰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볼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조선은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다시 패망할 것이니,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누가 능히 지탱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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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찍이 항상 거론하던 바와 같이, 조선의 근심 가운데 나라의 역사가 없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무릇《춘추(春秋)》가 저작되자 명분이 바로 서게 되고,《강목(綱目)》이 이뤄지니 바른 계통과 가외의 계통이 나누어지게 되었으나,《춘추》나《강목》같은 것은 한(漢)나라 선비들이 자기들의 사상에 의거하여 정리한 생각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전과 사서는 누차의 병화를 거치며 흩어져 거의 없어졌다. 후세에 고루한 자들이 한나라 서적에 탐닉하여 헛되이 사대(事大)와 존화(尊華)만을 옳다고 여길 뿐, 먼저 근본을 세우고 이로서 우리나라를 빛낼 줄은 알지 못하니, 마치 칡이나 등나무의 성질이 곧바르게 나아가고자 하지는 않고 도리어 얽히고 비틀어지는 것과도 같음에 어찌 천하다 하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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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찍이 나라의 역사를 써보고자 하는 뜻은 있었으나 본디 그 재료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으며, 또한 이름 있는 산의 석실에 조차 귀하게 비장된 것 하나 없음에, 나와 같이 씻은 듯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서 이 또한 어쩔 도리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산골짜기에서 청평(淸平)이 저술한《진역유기(震域遺記)》를 얻으니, 그 가운데 삼국 이전의 옛 역사가 있음에 비록 간략하여 상세하지는 않으나 항간에 떠도는 구구한 말들에 비하면 자못 내비치는 기상이 견줄 바가 아니라, ...그 재미로움은 밥 먹는 것도 자주 잊을 지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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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렇지만 지금의 사람 가운데 과연 누가 이러한 것에 뜻이 있어 이 감흥을 같이 할 수 있으리오! 경전에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듣게 되면 저녁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 하였으니, 오직 이를 두고 한 말 같구나. 만약 하늘이 나에게 오랜 수명을 누리게 한다면 하나의 역사를 완성하게 될 것이지만, 이는 단지 그 선구(先驅)가 될 뿐이리다. 오호라!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곡 소리를 내는 자가 있다면, 이는 곧 나의 유혼(幽魂)이 무한히 기뻐할 바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