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0 화


규율의 역사적 시기는 신체의 능력 신장이나 신체에 대한 구속의 강화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가 유용하면 유용할수록 더욱 신체를 복종적으로 만드는, 혹은 그 반대로 복종하면 복종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하는 그러한 관계의 성립을 지향하는, 신체에 관한 하나의 기준이 생겨나게 되는 시기이다. (중략) 규율은 이렇게 복종되고 훈련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냉장실에 있는 식자재라고는 조미료가 필요 없는 된장찌개 양념뿐이었다. 지난 2월에 구입해서 서 너번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은 후 냉장실 깊숙이 밀려나 있었던 것. 밤 10시경, 쿠팡앱을 열어서 1만 5천 원 치 장보기를 한다. 메뉴는 두부+양파+된장찌개소스 조합의 뭔지 모를 국물 요리. 레시피 같은 건 없다. 그냥 내가 가진 냄비 대용 스텐 프라이팬(야심 차게 스텐 프라이팬을 구매했으나 그 어떤 비법을 사용해 봐도 계란 프라이조차도 성공하지 못했다)의 절반쯤 물을 붓고, 싱거운 맛이 날 정도로 된장을 넣고, 내가 먹고 싶은 만큼 양파와 두부와 다진 마늘을 넣는다. 밥은 없다. 통밀 파스타면과 방울토마토도 샀다. 이것 역시도 레시피는 없다. 올리브 오일+마늘 많이+ 토마토 많이 + 파스타면은 적당히 + 소금 약간 넣고 볶는다. 먹는다. 먹을 만한 맛!


작년 8월에 <감시와 처벌> 1부 신체형, 2부 처벌까지 읽고 1년이 지난 지금 3부 규율을 막 시작했다. 신체형과 처벌은 남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규율은 나에 대한 내용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완벽한 신체의 수사학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한 빅씨스의 모닝홈트 영상을 보면서 홈트를 했다. 나는 스스로를 감시하기에 운동을 할 때는 미밴드로 운동량을 측정하고 매일 점수를 확인한다. 나름의 동기부여의 방식이라고 변명을 하는 것도 3부 규율 앞에서는 구차하기만 할 뿐. 순종력이 좋을수록 서열이 높아지는 사회 속에서의 생존투쟁. 아직 서지도 못하는, 이제야 이가 2개 나기 시작한 조카 생각이 난다. 현대의 소아 청소년 의학과 맘카페 집단지성이 검증한 규율에 이미 완벽히 순종해 버린 행복한 아기. 규율에 더 효과적으로, 잘 적응할수록,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아기든, 개든, 고양이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간표는 오래된 유산이다. 그 정확한 모형은 아마도 수도원에서 유래되었을 터인데, 그 형태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수도원에서 사용되어 온 세 가지 주요한 방식-시간 구분을 확립하고 일정한 업무를 강요하며, 반복 주기를 규정하는 일-은 아주 일찍부터 학교, 작업장, 병원에서 재현되었다. (중략) 우선 정교하게 다듬어서 15분, 분, 초의 단위로 계산하기 시작한다.(중략) 즉, 끊임없는 통제, 감시자에 의한 압력, 작업을 방해하거나 산만하게 하는 모든 요소의 제거가 그렇다. 시간을 완전히 유익하게 구성하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미셸 푸코 / 감시와 처벌>



남동생이 광복절 연휴에 조카를 보러 오라고 해서 KTX로 천리길을 다녀왔다. 남동생 부부는 육아에 재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거대했다! 상위 1% 사이즈 아기라고 했다. 아기의 루틴은 이랬다. 7시 30분쯤 일어난다. 분유를 먹는다. 논다. 분리불안 단계라서 혼자 잘 놀더라도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 깬 지 3시간 전후로 오전낮잠 1시간 내외로 잔다. 일어나면 이유식을 먹는다. 양치질을 한다. 또 논다. 분유를 먹는다. 낮잠에서 깬 지 3시간 후쯤 오후 낮잠을 1시간 정도 잔다. 깨어나면 이유식과 디저트를 먹는다. 또 논다. 7시 전후로 목욕을 한다. 마지막 식사로 분유를 먹는다. 양치를 한다. 20시가 지나면 잔다. 아기는 아기방에서 혼자 스스로 잠든다. 아기방에는 캠이 설치되어 있고, 부모들은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으로 아기의 자는 모습을 확인한다. 아기의 하루는 5끼의 식사, 2번의 낮잠, 1번의 긴 밤 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루틴은 99.9% 지켜졌다. 외출 시에도 지켜졌다! 그 어떤 방탕도 나태도 없는 완벽히 갓생 하는 아기의 하루였다. 


아기의 일과에는 그 어떤 불쾌도 불결도 없는듯 했다. 집안의 온도와 습도는 늘 자동으로 조절되었다. 발달 단계에 맞는 국민 장난감(feat. 당근)들이 가득한 거실의 놀이 공간. 기어 다니는 아기의 안전을 위한 아기매트와 울타리. 똥오줌을 한가득 싸더라도 뽀송한 기적의 기저귀. 적외선 온도계로 측정해서 먹이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홈메이드 친환경 유기농 이유식. 마찬가지로 수전에 설치된 온도계로 조절한 체온에 가까운 온도로 채워지는 아기 욕조의 물. 마지막으로 국민 아기침대 일룸 쿠시노까지! 


완벽한 양육을 받는 최초의 인류, 다른 인류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불쾌와 불결이 99% 제거된 상황에서의 아기의 일과란 어째 좀 SF블랙코미디 같았다. 아기는 먹기 싫은 분유를 먹어야 할 때 외에는 거의 울지 않았다. 하루의 70%는 웃었고, 그 웃음의 절반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웃는 것이었다. 


어쩌면 푸코는 인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크라임에 쩔어 있는 나에게 인간의 디폴트는 범죄요, 처벌이 곧 구원이다..라는 생각... 감시가 안전이요, 처벌이 정의인 5G 시대에 푸코가 살았다면 어떤 책을 썼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내 조카의 일과를 양육이 아님 사육이라고 했을지도 모르지. 내가 요즘의 반려동물을 보고 저건 동물사랑이 아니라 동물학대다라고 하는 것처럼. 



240819 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40812 월


아래는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에서 아렌트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한 부분들이다!


내가 참을 수 없이 싫어하는 어느 잡지의 행사였다.

나는 공산주의에 열광하지도 않고 코스튬 파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냥 집에서 조용히 아리스토텔레스나 읽고 싶었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게 사람이랑 어울리는 거보다 만 배 좋다!




나흘째가 되자 검은 유리창 아래서 헛소문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갔다.

여1: 히틀러가 영국을 정복했대요.

여2: 린드버그가 미국의 수상으로 임명돼서 나치와 한 편에 섰대요.

여3: 교황이 나치 완장을 차고 다니는 게 목격됐대요.

여4: 오늘 저녁엔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온대요.


한나: '저건 다 쓸데없는 잡담이야. 옹알이보다 못한 소리지.'


하지만 마침내 합리적인 논쟁을 벌이며 함께 대화를 이어갈, 지각 있고 진실만 말하는 상대를 찾아냈다.

나 자신이었다.

사실 그래서 나는 남들이랑 대화랄까 잡담이랄까 티타임이랄까 

아무튼. 

하지 않는다. 

일단 너무 재미없고, 그 대화 속에 있으면 뇌세포가 파괴되고 사람이 똥멍청이가 되는 것 같기 때문에.

온라인에서도 하나마나한 덕담을 주고받거나 예의상의(?) 공감 누르기 같은 거 딱 질색이고, 솔직히 너무 멍청해 보인다. 

아무튼 그래서 나도 자 나신과의 대화의 방식으로 일기를 쓴다.

남이랑 대화하느니 그냥 일기 쓰면서 내 생각을 나와 주고받고 정리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정신건강에도 좋은 거 같아서이다.




나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품위를 지키라고 말했다.

한나: 여기서 자존감을 잃어선 안 돼요. 화장을 하세요. 머리도 매만지고요. 여러분은 변함없는 여러분 자신이에요.

이 구절은 너무 반갑고 좋아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외모를 꾸미고 관리하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분명 있다는 것을 한나 아렌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청결 그 이상의 관리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행위이다!! 




경비병의 잔인함이나 교도관의 우둔함, 발에 잡힌 물집보다 나를 화나게 하는 건 동료 수감자들이 잘 모르면서 재잘거리는 어뚱하고 어이없는 낙관주의적 환상이었다. 그들은 자존감을 버린 주제에 환상만 불들고 있었다.

여1: 다들 기운 내. 이 정도면 괜찮은 처지잖아!

여2: 말린 생선을 겔피테 피시로 생각하고 먹어봐.

여3: 얼굴 찡그리지 말고 활짝 펴!


난 내게 남겨진 유일한 자유를 행사하고 싶었다.

한나: '저런 건 품위가 아니야. 달콤한 거짓말은 격렬한 욕설만큼이나 우릴 죽이는 독이라는 걸 모르나?'

나에게 긍정을 강요하는 놈들이 제일 싫다. 태어난 것은 축복이고,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하고 어쩌고 저쩌고, 문화는 진보하고 있고 어쩌고 저쩌고. 믿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인간은 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이고 믿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너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은 불행할 뿐이야 라고 말하는 백치들 정말 싫다.



그리고 내가 빠져든 가장 의외의 책은 통속적인 탐정 소설이었다.

매그레

(매우 많은 페이지가 지난 뒤)

남편: 아, 그건 그렇고. 마르세유에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탈출 계획을 세웠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네. 방 열쇠랑 호텔 프런트와의 말싸움이랑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냈어?

한나: 아, 그거. 내가 왜 여름 내내 그렇게 탐정 소설을 파고들었다고 생각해?

남편: 기분 전환용이었겠지. 현실의 공포를 잠시라도 떨쳐내려고.

한나: 아니야. 프랑스 경찰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어. 생각이 가장 중요하니까.


어느 저명한(?) 탐정소설 혹은 수사물 소설 매니아가 매그레 시리즈는 좀 지루하고 꼰대 같다고 해서 매우 실망한 적이 있는 나는 매그레의 범인들이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서 좋아한다. 타고나길 범죄자로 타고난 주인공들은 사실 너무 시시하다. 예들 들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의 주인공같은 놈들. 하지만 <화차>의 주인공이라면 다르지. 그래서  한나가 탈출을 기다리는 무료한 나들들을 매그레 시리즈를 읽으면서 보낸 점이 매우 반갑고 좋았다. 약간의 동질감이 더 들었달까. 그것에 더해서 요즘 내가 <배상훈의 크라임>을 숨 쉬듯 듣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크라임을 듣는 이유는 인간이 얼마나 열악한(멍청하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 존재인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알고 싶어서이다. 범죄, 수사, 재판의 모든 과정의 열악함. 굳이 범죄를 저지르는 열악함. 수사를 제대로 안(못)하는 열악함. 시야가 좁은 판사와 어째 좀 무능한 검사. 아무튼 열악함의 대환장 파티. 



p.s.

14살이 될 무렵, 나는 칸트의 저서를 전부 섭렵했다. 하지만 답을 모르는 일들은 여전히 있었다. 그래서 칸트가 읽은 책들까지 모조리 읽어보기로 했다.

독일어를 읽을 줄 아는 독일계 유대인 한나 아렌트. 부럽구먼. 내 이해력이 더 문제겠지만, 번역된 칸트는 도무지 못 읽겠던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버리지 않고 소장은 하고 있다 ㅠㅠ



그 밤이 지나기 전에 가면 쓴 남자는 내게 청혼을 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권터 슈테른.

학계와 예술계, 재계를 아우르는(그리고 유대 혈통인) 베를린 최고 명문가의 장남이었다.

그는 모차르트를 완벽하게 연주하고

테니스를 완벽하게 치며

우리 엄마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내 앞에 저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사기결혼일 텐데
리플리 증후군 걸린 전청조 같은 범죄자일 텐데, 
한나 아렌트에겐 저게 실화라뉘 ㄷ ㄷ



사람들은 나에 대해 도무지 이해를 못 한다. 그들은 내가 어딘가 덜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세상에서 우리 엄마 한 사람만 빼고). 사실 나는 정말로 바보가 맞다. 그리고 이건 아마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노력을 기울여야 똑똑해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5분 만에 '이해'하는 것도 나한테는 5시간이 걸린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내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이유는 알고 싶어서다. 이해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전혀. 그냥 내가 똑똑해 보이니까 시기할 뿐이다. 비밀을 하나 더 알려줄까? 그들이 하는 말은 어찌나 무식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은 정말로 멍청하다. 미안하지만 대다수가 구제 불능의 바보다. 나를 퇴학시킨 선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래, 그들이야말로 진짜 바보다.

내 주변에서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엄마는 내가 책 읽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이 무지로 인해서 고통받는 것을 그저 방관하고 있다.

내가 일기까지 정성껏 쓰고 있는 걸 안다면 다들 놀라 자빠질지도.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혼자서 인생의 미션들을 해치우면서 하루하루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을 시기질투한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반려동물도 없는 내가 그들보다 더 화창하게 웃으면서 매일을 살아가는 걸 시기한다.

유감스럽게도 난 혼자 있는 게 훨씬 더 좋다. 

그리고 지금 혼자라서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멍청이들이 멍청한 소리를 내는 걸 듣지 않아서 매우 쾌적한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2024-08-1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하다니!! 흥 칫 뿡! 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엄마는 내가 책 읽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
저도요 ㅋㅋㅋ

먼데이 2024-08-13 16:40   좋아요 1 | URL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쟝님 덕분에 잼나게 읽었어요.
그런데 발터 벤야민에게 반해 버렸다능 ㅋㅋ
발터 벤야민이 나치에게 적발되자 독약을 먹고 죽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나에게만 원고를 준 것이 매우 낭만적이었어요!!!!

책을 읽어서 이상해진 게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라서 책을 읽는 건데 ㅋㅋㅋㅋ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요.

- 2024-08-13 21:10   좋아요 0 | URL
아아 그랬지요. 벤야민 ㅋㅋㅋ 저는 잘 모르지만 먼데이님에게 반함을 선사한 그에게 부러움을 느끼며…*
 

240812 월


배상훈의 크라임을 너무 많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한나 아렌트에게 하는 말들 너무 그루밍 성범죄자+사이비종교 교주 같아서 읽으면서 아 시발 더럽다 더러워 연발했다.


고1 윤리책에서 하이데거의 내던져진 존재라는 말을 읽고 놀랐던 기억이 있지만,

하이데거쯤이야 그냥 웃고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윤리책에서의 부처의 공사상 때문이었다.

무로 돌아간다!

죽음이 아니라 무!! 무.무.무.

업의 강둑을 넘어 윤회의 사슬을 끊고!!!


내가 감히 하이데거에게 하고픈 말은

마르틴, 모든 인간은 내던져진 게 아니고, 엄마가 자신의 선택(필요)에 의해서 의지를 가지고 낳은 거란다.

모든 여자들은 의지를 가지고 9개월 동안 임신상태를 유지하고, 목숨을 걸고 출산을 하는 거란다.

내던지는 거 아니란다.

출산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가진 채 아기를 낳는 거란다. 

사소하게는 너는 생리통의 불쾌함과 생리의 불편함도 모르지 않아?

그런데 삶은 던져짐 당한 거라고? 

김난도 납셨네. 아프니까 청춘이지?


태어남에는 의지가 반드시 있다!!

엄마는 아기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다.

아기 입장에서야 태어날지 태어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아기가 재생산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선택할 수 있지.

태어나게 할지 태어나지 않게 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안 그래?

모든 사람은 출산의 의지를 가진 엄마가 낳으니 태어난 것이니까.

남자는 모르겠지만 자궁을 가진 여자는 적어도 자신의 아기를 내던지지 않는다.

그러니 태어남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행위.

마르틴 하이데거는 틀렸다.

자궁도 없는 게 생리도 못 하는 게 어디서 헛소리야 진짜.



!!!!한나에 대한 마르틴의 그루밍 성범죄와 사이비종교 교주스러운 발언들!!!!


마르틴: 한나, 너에겐 누구보다 특별한 힘이 있어.

삶은 던져짐이야. 어두운 숲을 별안간 밝혀주는 '밝음'처럼 네가 내게 던져졌지.

우린 지금 절박함 속에 사로잡혀 있어.

그건 오직 너와 나만이 완성해갈 수 있는 진실이지.

나는 죽어.

그리고 진실을 노래하지.

죽음은 곧 삶이거든.

한나: 마르틴, 죽음이 진실인가요?

마르틴: 그냥 진실이 아니라 유일한 진실이지. 인간을 만드는 건 죽음이야. 그리고 죽음이 의미를 만들지.

한나: 전 두려워요.

마르틴: 뭐가 두렵지? 너의 재능? 너의 천재성? 너도 나만큼이나 잘 알잖아. 진실을 추구하려면 그걸 붙잡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해. 그건 철학자이자 인간으로서 우리의 의무야.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켄 크림슈타인> 


죽음이 곧 삶이다 =>이거 완전 종말론을 부르짖는 교주 아니냐.

가진 걸 모두 쏟아부어야 해 => 종말론이 오기 전에 너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네 재산을 모두 종교에 헌납해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저란 말을 하는 놈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지? 너무 그루밍 성범죄자+사이비종교 교주 같은데 시발.


마르틴: 나의 악마. 나의 성녀

한나: 벌써 17년이 지났어요. 전 그때 나이의 두 배가 됐고요.

마르틴: 나는 해냈다. 한나와 엘프리데 두 여인으로 신성하고 세속적인 사랑 사이의 균형을 맞췄지. 누가 어떤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르틴: '한나는 여전히 나를 매료시키는군.'

한나: '저 눈빛은 무슨 의미지? 사랑? 욕망? 거짓?'

마르틴: '한나를 가져야겠어. 지금 당장.'

한나: 싫어요!

마르틴: 한나, 너는 언제나 제일 영리한 학생이었어. 너와 나, 우리 둘이 손을 잡으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단 하나의 진리를 밝혀낼 힘이 생길 거야. 여기 보이는 산보다 나무보다 거대한 진리지. 언어의 뒤에 숨은 진리지. 우리에겐, 너와 나에겐 현존재를, 존재의 의미를 이해할 힘이 있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의 존재 자체를 연결해주는 진리 말이야. 

(중략)

마르틴: '난 그리움의 신연에서 괴로워하고 있어. 내 다섯 손가락으로 너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단다. 사진 속의 네가 마르부르크의 강의실에서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그 눈빛으로 날 바라볼 때면 더욱 심해져. 그 눈빛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네가... 내 앞에 나타나지...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켄 크림슈타인> 


와놔 이 잡새끼까. 서른이 넘은 한나를 여전히 자신의 10대 학생으로 여기는 이 태도. 그루밍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겠지. 

우리가 손을 잡으면,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니가 그렇게 잘난 놈이라면 제발 혼자 해라 혼자. 혼자는 절대 안 되고 꼭 영감을 주는 뮤즈가 있어야 하나?? 우엑이다. 

두 여인으로 신성하고 세족적인 사랑 사이의 균형 => 여자친구의 순결을 지켜주기 위해 사창가로 달려가는 남자 같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외도를 하는 사람들의 훌륭한 변명 같네.


소아성애자, 그루밍 성범죄자, 사이비종교 교주가 피해자를 세뇌(가스라이팅)시킬 때 하는 개잡소리들과 너무 비슷해서 난 웃고야 말았네.

나치에 가담한 것에 대한 변명 마저도 너무 구차한 것이...


마르틴 하이데거는 실존 말고 자신이 그루밍 성범죄자의 성향이 있는지 아닌지나 좀 따져봤으면 좋겠다.


발터: 그래, 사촌, 신부는 어디서 만났어?

권터: 마르부르크에서 하이데거 강의를 같이 들었어요.

발터: 그 개새끼!

발터: 누구요? 하이데거 교수?

발터: 그래, 나랑 동창이야. 살아있는 건 모조리 따먹고 타락한 가톨릭 신자라고 동정표까지 사서는.. 똑똑한 놈이긴 하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대학 내에서 정치질을 진짜 정치인처럼 하거든.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발터 벤야민의 죽음이 참으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사람 보는 눈도 정확했다! 역시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루밍 성범죄자, 사이비종교 교주, 약간은 리플리 증후군 성향이 있는 사람 같다. 그가 범죄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굳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범죄를 저질렀을 때와 같은 쾌락, 이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
일단 한나 아렌트를 꼬시는 데 성공했고, 굳이 리플리증후군 없이도 좋은 직장, 화려한 인맥과 제자들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종교를 번복해서 계속 바꾸고, 나치에 가담하는 것 등으로 부족분을 채우는 걸로 보아 범죄자 유형임!

마르틴: 한나, 엉터리 같은 필적 감정 따위는 믿지 마. 내 말을 믿어. 난 널 사랑해. 너의 피부와 너의 머리카락과 너의 눈동자와 너의 지성을 사랑해. 그리고 무엇보다 너도 날 사랑하지. 그러니 날 용서해다오. 네게 말했고 세상에도 말했듯이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나치 당원으로 지낸 시간은 아주 짧아. 그쪽에서 날 내쫓았지. 난 유대인들을 진급시키고 추천서도 써줬어. 너와 같은 유대인들이 내게 몰려들었던 걸 떠올려봐. 심지어 레비나스조차도 사유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나라고, 나뿐이라고 말했어. 그리고 너희들 중에, 너희 유대인 중에 네가 제일 똑똑했지. 우리의 천재성을 합쳐서 최대한 발휘하는 게 우리의 의무야. 언어의 뒤에 숨은 궁극의 진리를 파헤쳐야지. 한나, 우리 둘의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는 최최의, 유일한 인간이 될 수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류의 진정한 본성을 밝혀내는 거야. 날 용서해다오.

한나: 인류요? 인류는 이렇다, 인류는 저렇다. 마르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건 인류가 아니에요. 인간들이죠. 한 명 한 명의 남자와 여자, 아이요. 

마르틴: 그건 포기하는 거야. 태만이라고.

한나: 그럴지도 모르죠.

마르틴: 언어 뒤에 숨은 진실을 부정하고 너의 본질을 부정하는 건 옳지 않아. 그건 잘못됐어!

한나: 마르틴, 언어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마르틴: 이디시어? 농담이지? 내가 이디시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잖니. 너도 이디시어를 싫어하잖아.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간 지금 포기하는 건 철학 전체를 부정하는 일이야. 유기하는 거라고. 그럼 내가 무슨 일을 해야겠니? 어부라도 될까? 전차 차장이라도 해?

한나: 그것도 좋죠.

마르틴: 날 우롱하지 마, 한나, 넌 타고난 철학자야. 넌 네 뛰어난 지성을 잃어버렸어. 난 철학이 없으면 죽은 몸이야. 너도 마찬가지고. 

한나: 왜 날 당신의 포로로 잡은 거죠? 

마르틴: 난 그런 적 없어. 네가 자발적으로 갇힌 거지. 내 기억으로는 기꺼이 그랬던 것 같은데.

한나: 난 철학을 버릴 거예요. 

마르틴: 그게 될 리가 없어.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우리 둘의 이름은 영원히 붙어 있을 거야... 시간이 끝날 때까지. 유대 여자와 나치 남자로. =>이것은 교제살인범들이 피해자를 협박할 때 말!!

(중략)

212

한나: 하지만... 사적으로는 당신과 나, 둘만 있는 공간에서는 당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당신한텐 아무 관심도 없어요.

마르틴: 왜지?

한나: 당신은 겁쟁이니까요. 당신은 행동하지 않기로 결심했잖아요. 그런 당신을 이제 떨쳐버릴 거예요. 더러운 세상은 당신을 받아들여주겠죠. 하지만 당신을 필요로 하진 않을 거예요.

마르틴: 그래서 유일한 진리를 포기하겠다는 건가? 그런 말이나 재잘거리면서?

한나: 아직도 모르겠어요? 진실은 하나가 아니에요. 여러 개죠. 

마르틴: 하! 세상에 대해 말하지만 넌 이 세상보다 나은 존재야. 너도 알잖아. 세상은 쓸모없고, 역겹고, 멍청하고, 겉치레뿐이고, 시끄럽고, 로큰롤과 캐딜락, 컬로 영화로 가득 차 있어. 사랑하는 한나. 미안한 말이지만 넌 속물이야. 그것도 아주 끔찍한 속물. 나도 그렇고. 난 동의할 수 없어. 네 말은 못 받아들여.

한나: 나도 아주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요. 모든 사람을 텐트 안으로 불러들이면, 삶은 진정한 자유의 끝없는 사이드 쇼 서커스가 될 거예요.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켄 크림슈타인>


가장 중요한 하이데거로부터의 탈출. 하이데거가 한나를 붙잡으로 하는 말들, 한나 너는 천재야 재능 있어 이런 말들 너무 그루밍 같음... 또한 너 없으면 나 죽음 몸이야 이런 말은 교제살인범들이 피해자 협박할 때 쓰는 말이잖아. 자살 쇼하고 지랄하고 해서 피해자 유인해서 살해해 버리는! 와놔, 배상훈의 크라임을 너무 많이 들은 건가...마르틴 하이데거 범죄자 유형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40811 일


이번 여름도 덥다고 하지만 작년보다는 덜 더운 거 같다.

왜냐 올해는 밤에 자다가 더워서 깬 적이 없기 때문.

밤에는 에어컨 끄고 잔다.

심지어 여름 이불을 덮고 잔다.

알고보면 올 여름밤에 덜 더운 게 아니고

내가 더위를 덜 느끼는 몸으로 변한 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배상훈의 크라임 듣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기도 했거니와

공중도덕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 정도의 멍청한 인간들만으로도

충분히 진절머리 나기에

굳이 범죄를 더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


4년이 좀 넘을 정도의 방송 분량을 역주행해버린 지금은

'인간은 내 예상보다 더 열악하구나...' 하는 현실 직시 중.


특히 '아 진짜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열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범죄 장르는

사이비 종교, 가스라이팅, 리플리 증후군이다.

늘 외롭고+의존적이고+자신의 능력치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세상에 대한 동화적 환상을 가진+ 관종이

지팔지꼰하는 걸 정부(법, 경찰)가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믿는다는 거 너무 게으르고 무책임하지 않나?

믿음의 대상이 신이든, 책이든, 사람이든 간에.

유일하게 믿어야 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 같은 게 진짜 나쁘다고.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 받았을 때 읽고 피식했던 기억이 난다.

책 한 권 읽고 바뀔 인생이면 너무 얄팍한 인생 아닌가 했던.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여기는지,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1도 관심이 없다.

니가 나를 좋게 보든 안 좋게 보든 그건 니 사정, 니 인생관, 니 근본환상일 뿐이지

내 사정은 아니잖아?

라는 생각으로 살면 여러모로 안전하고 쾌적할 텐데.

인생에 똥파리들이 꼬일 일이 없거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