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윤후명 소설가를 만난다. 적지 않은 소설을 읽어 온 내가 읽은 윤후명 작가의 작품은 1996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천지간' 한 편이다. 한국 현대소설에 대한 독서가 부족함을 느끼지만, '천지간'의 '죽음이 죽음을 알아보듯 사랑은 사랑을 알아본다'는 구절이 부족함을 용인하는 하나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약간의 무관심의 허용, 잊혀질 권리와 찾아낼 기쁨을 허락해주는 것이 소설의 참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동인 중 하나.
11년 만에 장편소설을 쓴 윤후명 소설가를 나는 20년 만에 문자가 아니라 실물과 목소리로 읽는다. 그러고 싶었고, 딱 그러고 있는 중이어서, 그랬다. 문학동네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연 상수역 이리카페, 오후 7시 30분. 밤이 골목을 점령하고, 창 사이로 백열등 불빛이 뿜어나온다. 몇 명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등불을 들듯 '피에로들의 방'을 들고 선생님의 부끄러운 소회를 듣는다.
최근 윤대녕 소설가와 비슷한 시절에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박상우 소설가도 만났는데,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받는다. 보다 서정적이지만, 그 역시 한 명의 중년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나고 할까. 윤대녕 소설가는 '독자들이 자신을 만나서 기대가 깨질까봐 앞으로 책만 내고 이런 자리를 갖지 않고 싶다'고 말하는데, 소설이 환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된다.

녹취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트에 적지도 않는다. 소설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이리카페에서 다시 찾고, 윤대녕 소설가와 문학동네 잡지와 소설 단행본 편집자(사회) 분은 충족시켜준다. 그러고 보니 이리카페를 찾은 것도 거의 6년 만이다.
그래도 간략하게 스마트폰에 적은 것을 중심으로 풀어보면, 선생님은 24절기라는 신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그것을 소설에 반영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로 그 이전 시대에서 보이던 고요한 삶의 미풍양속이 훼손되고,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자본을 위계로 한 수직사회가 형성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삶의 복원을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 선생님은 소설의 분위기와 톤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음악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반복해서 듣는데, 이번에는 바흐의 음악을 그렇게 들어서 부인 분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말들을 흘려보낸다. 이리카페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몇 명의 젊은 커플들을 바라보며 꿈을 그린다. 음악인 것처럼 프랑스 소설에 대한 질문과 답변, 소설가가 꿈인 대학생의 질문과 답변들을 듣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다.
강연과 질의응답까지 끝나고 사람들이 선생님 앞에 사인을 받으러 가는 사이, 나는 어두운 거리에서 점점이 뿜어나오는 이리카페의 빛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온다. 선생님의 얼굴을 슬쩍 보고, 편할 때, 마음이 원할 때 윤대녕의 소설을 읽어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이리카페 골목 전에 있던 갤러리에서 6800원에 젊은 화가의 작은 그림 프린트본을 종이 액자에 넣어 산다. 내 돈으로 그림을 산 것은 이 날이 처음인데, 어느 때보다 그 작은 그림을 사고 싶다. 이어폰으로 쟈넷 잭슨의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달리며 멀어지며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