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관련 전공을 공부하던 학부 시절, 그러니까 30여 년 전이다. 발달 심리학 시간에 만난 프로이트는 초면에 너무도 색드립이었다. 구강기, 남근기.... 하는 발달 단계가 일면 공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다해도 프로이트은 왠지 심리학자이기보단 성도착증 환자 같다는 찜찜한 느낌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었고, 발달심리학을 가리치던 교수님의 편견(학자로서의 견해)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대학원에서 심리치료 관련 학과를 전공하게 되었다. 신생학과였고 대학원 2학기부터 실습과목이 있었다. 매주 실습과목은 바로 바로 채점되어 바로 점수가 나왔고, 이걸 합산하면 그대로 학점이 되는 것이었다. 학교 다녀온 밤에는 그 채점표를 들고 점수 계산을 하고, 또 하고, 첫 시간 점수부터 다시 합산하고 평균을 내고.... 그걸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러고 있다는 인식도 잘 못했다.

어느 과목에서 프로이드 심리학을 들었는데, 학부 때도 전공은 달랐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바로 그 프로이트. 심리학자 겸 성도착증 환자, 그였다. 이번 강의에서는 무의식, 자아, 초자아 등이 유난히 귀에 들어왔다. 헌데 그날 수업에서 '여러분이 인식하는 자신은 5%에 불과한 것 아세요? 나머지 95%가 이 빙산 아래 무의식이라는 것이죠' 라는 교수님의  말이 확성기에 대고 하는 말처럼 크게 들렸다.

그리고 수업 마치고 집에 가서 다시 실습 채점표를 꺼내들고 있는 나. '왜 이렇게 뻔히 아는 점수 계산을 하고 또 하고 이러지?' 하고 멈췄다. '무의식적으로 뭘하는 거지?' 하면서. 프로이트 선생이 나를 채근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봐, 네가 왜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점수 계산을 하는지?' 강박적으로 반복하던 행동을 멈추고 내게 물었다. '왜 그래?' '***은 오늘 어떤 점수를 받았을까? ***을 이겨야 다음 학기 장학금 받는 안정권에 들 수 있는데' 아, 내 불안의 근원은 장학금이었고, '다음 학기에 맘 편히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에 맞닿아 있었다. 프로이트 슨상님이 던진 화두에 답하면서 얻은 답이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경험이었고 '무의식에 이끌려 다니는 나'를 확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내 그를 잊었다. 그리고 17년 정도 지난 2015년 새해 첫 책으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_무의식에 비친 나를 찾아서>를 손에 들었다. 단숨에 읽었다. 중학교 3학년 된 딸이 꿈공부 하는 엄마에게 자꾸만 자신의 꿈에 대해 질문을 해와서 딸에게 읽힐 요량으로 주문한 책이었다. 물론 저자 김서영 교수에 쏙 빠져 있기도 했었다. 딸에게 주기 전 내가 먼저 붙들고 읽으면서 프로이트 할배에 대한 오랜 오해를 풀고 새삼스런 감사의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자 강연회에 신청을 하고, 당첨이 되어 카페 <에무>를 찾았다. 아니, 저자 강연회 장소는 왜 이리 야하담? 프로이트스럽게 말이지. ^^ 저자 강연회에서 만난 김서영 교수는 사람이었다.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책은 책대로 그렇게 어려웠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친근하게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었다. 저자를 직접 만난 육성을 듣다보니 프로이트도 사람이고 그를 연구한 김서영 교수도 사람이라서 참 좋았다. 사람이라서 꿈을 꾸고,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자기만의 장단을 찾아가야 한다. 프로이트가 성도착증 환자 취급을 받으며 그 길을 오롯이 걸어 갔다는 것이 새롭게 다기왔다. 

 

전문가 김서영 저자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 정가제가 시작된 이후 괜히 중고서점 들락거리게 되고 책 사는 돈을 아끼게 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신간에도 거침없이 주문하기 엔터를 치게 만드는 저자가 김서영 교수이다. 그녀는 전문가이다. 책의 말미에 쓴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찾고 수련하여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전문가이다' 책은 계속해서 말한다. '하는 일에 대해 물으면 열 시간이라도 쉬지 않고 말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두들 당황할 때 해결의 길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전문가 입니다. 나만큼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늘 할 일이 많죠' 아닌 게 아니라 저자 강연회에서 만난 김서영 교수는 프로이트와 꿈에 관해서 열 시간이라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 충만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았고 아쉬웠다. 책이 담을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이 얼굴을 맞대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녀의 블로그 이름이 <경계를 넘어서>라는 것을 알았다. 경계를 넘어서 대중에게 온 전문가 김서영 교수. 경계를 넘어 온 용기에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프로이트가 그러했듯 금기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은 길을 찾아 헤매는 대중(또는 독자)에게 이정표가 되곤 한다. 참 좋은 책을 써낸 김서영 교수, 그것을 책으로 들어낸 출판사에 진심 감사드린다. 아, 저자 강연회. 물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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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열쇠 2016-08-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김서영 교수님 정말 최고시죠. 공부을 즐기시는 분... 제가 눈물나게 존경하는 유일한 선생님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