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티모시 브룩(Timothy Brook) 교수님의 방한 북토크에 갔었습니다. 22일날 들은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티모시 브룩 저. 조영현 옮김. 너머북스. 2014)의 북토크 후기를 이제야 쓰는 이유는 제가 21일에 거의 나은 줄 알았던 독감이 23일부로 도져서 며칠동안 앓은 데다가 개인적인 일로 요즘 굉장히 바쁘기 때문입니다. 절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북토크가 열린 카페 앞에 세워진 홍보 게시물

북토크를 주관한 너머북스 출판사에서 나온 티모시 브룩 교수의 작품들을 배경으로 전시한 모습. 『하버드 중국사』 중 원·명만 티모시 브룩 교수님께서 쓰시셨지만 이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가 티모시 브룩 교수님이셔서 저렇게 세워놓은 것입니다. 맨 왼쪽의 책은 『능지처참』입니다.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자체가 서구 대중들을 대상으로 쓴 교양 중국사 시리즈 책입니다. 때문에 내용 자체도 그렇게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닙니다. 북토크는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의 첫 부분의 내용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 제국에 용이 처음 출현한 때는 1283년 8월 25일 정오였다. 용이 나타난 곳은 태호太湖에서 75킬로미터 동남쪽에 위치한 진산陳山으로, 이름은 산山이지만 실은 아담한 언덕에 가까웠다......(중략)......진산은 송宋 시대부터 용왕龍王을 기리는 사묘祠廟가 있던 것으로 유명했다. 진산은 또한 용군행사龍君行祠로도 불렸는데, 이는 통상적으로 왕궁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용어로, 용왕 역시 황제처럼 국가의 여러 거주지를 돌아다녔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가뭄이 2년간 지속되고 있었으므로, 그 지역의 현윤縣尹(고영顧泳을 지칭한다.-역주)은 용왕의 환심을 사서 기근으로 바싹 마른 지역에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사원의 수리를 결정했다. 화공畵工이 막 일을 시작한 무렵 천둥, 번개가 치며 일진광풍이 불어와 용의 출현을 알렸다. 그런데 용은 한 마리가 아니라 용왕과 그 아들까지 두 마리였다. 두 마리 용은 잔쯕 겁에 질린 화공에게 나타나더니, 다시 꼬리를 치며 하늘의 구름 위로 사라졌다. 그러자 곧 많은 비가 쏟아졌고, 가뭄도 종료되었다.
(『하버드 중국사-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 p.25~26)

....................응?


현대인들 관점에서 보면 이런 용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 맞습니다. (...) 하지만 기록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책의 앞 부분은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용이 나타나는 기사들이 언급됩니다. 티모시 브룩 교수님은 북토크의 첫 부분을 이 기록을 언급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하 북토크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참가자들의 발언에서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서 제가 메모해 놓은 것을 정리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적은 것입니다.

나는 이 책을 1644년에서부터 1260년으로 역순으로 관심을 가지고 구상해 나아갔다......(중략)......명의 최후 20년(1624~1644)간의 사료를 보면 수많은 재앙-홍수·가뭄·강설·메뚜기 등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사自然史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했는데, 용이 나타난 재앙은 현대 역사가(Modern Historian)의 입장에서 넘겼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현대 역사가로서 이를 간과한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사료를 대하는데 있어서 부적절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용龍은 중국 역사가들이 계속해서 기록한 현상이다. 실제로 중국 기록에서 마지막으로 용이 등장하는 기록은 『청사고淸史稿』에 적힌1905년 기사이다. 중국인들은 현실에서 용을 인식했던 것이다.
캐나다 제자 한 명은 이 책의 앞부분 내용을 보더니 "교수님은 실제로 용이 있다고 믿으시는 것입니까?"[Do you believe that dragon really exist?]라고 질문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 "자네가 뭐라고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네"[It depends on what you think.]라고 답했다.
용이 나타난 기록의 환경을 보면 허리케인, 토네이도 같은 자연현상을 용으로 묘사했다고 생각된다. 이를 감안하고 생각했을 때, 어떻게 보면 우리도 용을 본 적이 있다.

티모시 브룩 교수님과 통역을 해 주신 유광훈 박사님. 제가 중간쯤에 앉아 있어서 사진 구도를 최대한 잡아본 것이 이 정도.......ㅡㅜ....일어서서 찍기에는 뒤에서 서서 듣고 계신 분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어서.......(...)

용은 황제만이 통제할 수 있는 (신神적) 동물이다. 따라서 용이 나타났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에서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는 징조이다. 첫번째는 황제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능력, 도덕성 등이 결여됨-에 용이 나타났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황제는 영명한데, 백성들이 황제를 따르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징계하고자 나타났다고 해석되었다.
때문에 처음으로 돌아가서 용이 나오는 기사들을 분석해 봤더니 기후조건 악화, 환경변동과 그에 따른 위기 시기에 용이 많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단서로 잡아 용이 있다는 기록을 모두 찾아내고 다른 재앙-홍수·가뭄 등-을 찾아 통계를 내 보았더니 패턴이 있었다.
원·명 시기에 총 9번의 (기후적) 늪이 있었다. 재앙이 반복되고, 연동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반복되면서 정치적 변동이 뒤따랐다. 3번째 늪에서 원이 멸망했고, 300여년 뒤 6번째 늪에서 명 제국이 멸망했다.

이어서 교수님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이 책을 구성하셨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왕조(Dynasty)는 시대판단의 주기이고, 용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코드(code)였다. 내가 자연재해를 다루긴 했지만, 자연재해는 시대변동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중략)......이 책에서 유교, 불교, 관료제같은 요소를 설명하면서 광범위한 개념을 일반화하지 않으려고 했다. 개개인 삶의 특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가령 나는 이 책에서 중국인(Chinese)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 당대 중국인들은 자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당대 원나라나 명나라 사람에게 "당신은중국인입니까[Are you Chinese?]"라고 물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명이라는 왕조는 시대가 귀결하는 결론적 의미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파악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잡았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접근의 시작점으로 잡아서 작은 맥락에서 큰 맥락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재구성하였다. 가령 책에 나오는 소주蘇州의 은 세공가*는 탈세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뇌물을 내고 탈출했는데, 마카오에서 결국은 중국 관원에게 체포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전 세계적인 흐름의 단면을 보여준다. 원나라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시장권으로 묶었고, 명은 세계 교역권의 성립하고 거기에 편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은이 주요 교환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 책 p.415(Chapter.9)

용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기후변동과 시대변화, 개인의 삶을 잡아내고 당대의 전체 사회상을 매끄럽게 이어가며 잡아가는 진행이 책의 서술의 논지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책 전체의 내용을 말끔하게 잘 요약해서 그 짧은 시간(30분 남짓) 안에 훌륭하게 풀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세계화·자연재앙/자연파괴·정치적 변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써 현대의 문제를 가지고 당대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자 했다고 저술 의도를 말씀하셨습니다.(이건 종국에는 역사학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철학 교수님께서 질문하셨는데(정확한 성함 말씀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정확히 어떤 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현대 중국에 대해서 어떻게 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답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중국과 명 후기는 유사해 보인다. 동시에 일본/한국과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세계대전 후 변화하면서 정치적 능력을 추구하였고 이를 성취했지만 중국은 이를 이루지 못했다. 참고로 명 후기 사회변동 속에서 사상가 이지(이탁오)는 정치적 자주권을 주장했다. 현대 중국의 모습과 명이 일치한다고 하기에는 무리지만, 변화의 조짐에서는 유사하다고 본다.
그리고 기후 변화와 관해서 우리에게는 아직 '용의 출현'과 같은 재해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기후변화에서 비슷한 패턴이 보이기 때문에 미래를 염려한다......(후략)......
잠시 내 개인적인 내력을 이야기하겠다. 나는 1972년-아마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서 1974년에서 1976까지 중국에 거주하며 공부했는데, 이 때 읽은 명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친근감을 느꼈고, 그들의 생각과 고민에 대해 흥미를 가지면서 이쪽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다.......(중략)......개인적인 역사를 쓰더라도, Institution*을 유의하길 바란다.
* 사회 조직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두번째 질문은 책을 번역하신 조영헌 교수님(고려대 역사교육과)의 질문이었습니다. 역사학의 고전적인 질문인 "역사(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였습니다. 질문과 동시에 조영헌 교수님은 교수님께서 나름대로 생각하는 역사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문제 의식을 가지고
-과거를 탐구함으로서
-미래를 엿보는 일(예측이나 관측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 주십시오)

책을 번역해 주신 조용헌 교수님. 이 사진 역시 구도가 좋지 않습니다. ㅠㅠ

티모시 브룩 교수님은 조용헌 교수님의 질문에 대해 "I like your definition"이라고 운을 떼시면서 역사의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왜 과거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가?[Why do we have interest about past?] 그것은 우리가 배우고 아는 역사는 우리를 특정인으로 만들기 위한[intend to make me as who I am] 역사이자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목적성을 가지고) 주어진 역사이다.[Every history is given history]
역사가는 그런 과거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History is a way to know where we are]*  레닌같은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보면서 뒷걸음질로 미래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의 효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역사를 그저 사건의 연속으로 생각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저변에 깔린 역사적 배경을 말하면 "그것 정말 놀랍네요!"**라고 반응하고 만다.
* 꽤나 중의적인 의미입니다. 단순한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역사적으로 어느 위치에 서서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방법이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 가령, 우리가 돈을 위탁보관하고, 대출 및 수익사업 통해 이자를 주는 금융기관을 은행銀行이라고 부르는 배경에 송대 이후 중국의 상업발달과 은의 유통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질문했습니다. 1644년 명제국 멸망의 원인에 대해 보통 여진족의 발흥과 사르후 전투(1619)의 패배가 주로 언급되는데, 이 책에서는 자연재해를 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여진족이 아니었다 해도, 자연재해로 인해 야기된 정치적 변동이 명을 멸망시켰을 것이라고 보시는지 견해를 여쭈어봤습니다.
교수님은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

학생의 질문은 가정형인데, 꽤 좋은 질문이다. 무엇이 역사를 움직이는지 사고하는 훈련을 돕기 때문이다.
우선,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패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재정적 문제, 지휘관의 자질, 여진족의 통합성, 몽골족과의 동맹 등......이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명이 멸망한 이유이지, 나는 환경요인을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자연재해는 결정인자관점보다는 여러 요소를 정리하고,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수단으로 사용한 영향인자이다.
기상악화는 명 조정의 세수稅收 수입을 줄였고, 이에 따라 군비도 줄어들어 명의 군대는 부실한 장비를 들고 싸워야 했다. 여진족 또한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아 농업과 수렵으로 인한 수익을 더 얻었더라면 누르하치에 의한 부족통합의 동기가 작았을 것이다.
어떤 특정 요인이 결정적으로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파악하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여러 요소를 포함해서 역사를 읽어야 한다.

이어서 『하버드 중국사-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에서는 당대의 풍경화가 기상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서술에 대해 동양회화를 전공하신 분께서 동양회화는 단순히 보이는 모습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회화 경향의 변화, 즉 사계절의 순환이라는 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답변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제가 미술사에 약하다 보니 요약해 쓴 것이 상당히 조잡했습니다. 이를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책에서 모아 나열한 그림들은 논리를 수월하게 설명하기 위해[for convenient explaining logic] 사용한 논증수단이었다. 회화는 현실을 어느정도 반영하는 간접적 관계가 있는데, 가령 유럽에서 17c 초 대설을 겪은 기억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white christmas 상像을 만들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방금 질문해 준 것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연구 및 개정판 작업에 꼭 반영하겠다.
* 개인적으로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석학이 보여준 겸허한 자세에 놀랐다. 

그 다음 질문은 왕의 통치와 자연 재해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는지였습니다. 교수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미국인들은 클린턴(Clinton) 재임시기를 좋았던 시절로 좋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좋은 기후는 풍요로운 농업생산을 끌어내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차원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황제를 성군으로 기억하는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물론 어느정도 영향은 있을 수 있다. 1449년 토목의 변으로 잡혔다가 돌아온 정통제가 쿠데타로 복위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태제 시기(1450~1455)의 기후가 최악이었기 때문이었다. 기후가 좋았다면 '현재 황제가 부도덕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여론을 얻지 못해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상악화가 정통제 복위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고 이를 절대적인 조건으로 보면 안된다. 가령 16c 가정제가 재위했던 시기에는 기후가 좋았고, 그에 따라 명은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하지만 그는 최악의 황제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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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에 나온 질의문답이 하나 있었는데, 이 질문과 답변은 책을 번역해 주신 고려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조용헌 교수님이 수업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연출한 부분입니다. 때문에 제가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내용을 필기했지만, 그분과 따로 협의를 거치지 않았던 이상 제가 무단으로 전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당 내용은 여기에 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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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으로 요하문명과 동북공정에 대해 제 3자 입장에 계신 교수님의 견해를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그 분야는 자신의 전공이 아니어서 충분한 대답을 해 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그 부분은 내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답변을 할 수 없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만주라는 공간이 한국·중국·러시아 등 여러 국가의 관심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What is going on this zone?] 계속해서 논의를 하고[keep talking about issue]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keep asking yourself]는 정도로 말하려고 한다.

질의 및 답변 시간이 끝나고 저자 사인 시간에 받은 교수님의 사인. 영자 사인과 卜正民이라는 교수님의 중국식 이름을 나란히 사인으로 사용하십니다.

우선 귀중한 기회를 준 알라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덕분에 세계적인 석학을 만나 대화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번역해 주시고 열정적으로 북토크에 임해주신 조용헌 교수님, 통역을 해 주신 유광훈 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이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탐구한다는 것』(남창훈 글. 강전희·정지혜 그림. 너머학교. 2010)을 증정해 주신 너머북스 이재민 대표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너머북스는 다양한 역사책을 포함해 마르티나 도이힐러, 존 B. 던컨, 미야지마 히로시 등 외국의 한국사 학자들의 저서들을 꾸준히 번역해 대중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조만간 『하버드 중국사-송. 유교 원칙의 시대』 및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의 한국의 씨족연구도 번역해 내 주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들 기대하겠습니다.

Last, I appreciate to professor Timothy Brook. Thought he was tired because of his busy schedule, he talked and answered sincerely to the audience. I took last part of this writing to thank his wonderful lecture and sparing his busy time for Korean readers.


※ 이글루스의 블로그에 거의 같은 글을 썼습니다. (주소: http://xuecheng.egloos.com/4176372) 추후 인용이나 저작권 관련 문제가 되는 내용들은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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