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촌 땅을 밟아 본 것이 얼마만이던가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서서히 바깥세상의 공기를 머금을 무렵 화려한 신촌의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들렀지만 여전히 신촌의 밤은 이글거리는 불타는 거리다. 이곳에는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추억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 역시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오늘 사랑이라는 주제를 만난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사랑이 특별 하다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이 진부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사랑이 빠지면 앙꼬가 없는 찐빵이 되어버린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은 둘이 마주쳐서 진리를 생성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은 마치 벗은 몸을 거울에 비추는 것과 같은 느낌이 되기도 한다.

저자 강연회로 가는 길에 오늘 꼭 확인해 보고 싶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한귀은 교수님이 인터뷰에서 했던 자신의 사랑에 대한 생각.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게 사랑이란,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죠라고. 왜 단 한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 사랑인 걸까?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저자가 너무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 생각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소개되고 처음 느낌은 정말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 가시는구나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사랑이야기를 많이 해서 젊어지시는 건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안티에이징과 프로에이징을 함께 갖췄다는 느낌이랄까

강의는 Q&A를 포함해서 2시간정도 진행됬다. 당연하겠지만 사랑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들이 많았고 또 저자가 에너지가 넘쳐서인지 언제 2시간이 지나갔을까 할 정도로 열정의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강의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의 모든 사랑은 실패한다. 무슨 뜻인가? 인간에게 영원이 아닌 시간이라는 축복이 있기에 인간의 삶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은 사랑을 하고 또 실패를 하고 다시 사랑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죽음이라는 벽에 부딪치게 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 세상의 모든 사랑이 실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아름답게 실패할 수 있는가를 배워야 한다.

한귀은 교수님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의 실패에 대처하는 법은 틀리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랑을 아름답게 실패하기 위해 반드시 불신, 분노, 슬픔,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여자의 경우는 대부분 4단계를 잘 거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여자의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이 되지만 남자들은 슬픔이나 애도의 과정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 이전의 사랑을 무덤처럼 가져가는 것이라고그래서 남자들이 첫사랑을 못 잊는 것이라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에 투영해 보면 일견 타당하다!

둘째, 사랑은 상상계(the imaginary)와 실재계(the real) 그리고 상징계(the symbolic)를 통해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상상계라는 것은 마치 태아가 엄마에게 느끼는 동일시와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2002>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이 클로이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그녀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며 우리는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동일하다. 그리고 상징계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그리고 뚜렷하게 구분되는 그런 상태다. 노년의 부부가 손을 꼭 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해 아주 오랜시간 쌓아온 신뢰에 기반한 믿음이 있고 그것은 부부라는 사이를 더욱 공고히 해준다. 서로가 가진 상대에 대한 가시화된 지식으로 인해 상대에게 더욱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재계다. 교수님은 실재계는 상징계를 뚫고 나오는 순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순간은 사랑을 폭발적으로 증폭 시킨다고 말한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마지막은 선물(Present)이다. 선물은 무엇인가를 대리 상징한다.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포이에르 바하는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을 통해 페티시즘 Fetishism 이라는 개념을 내 놓았다. 우리말로는 물신성이라고 해석되는 이 개념은 대략 이렇다. 천지창조와 세상 유일의 선()으로 대표되는 신을 믿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위안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해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형상에 신성성을 부여한다. 그것이 곧 물신이다. 그런데 문제는 물신이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거꾸로 자신을 만들어낸 존재인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 보이지 않는 물신의 힘에 의지하게 되고 믿음이라는 것으로 물신의 종을 자처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만들어진 물신은 상대와 동일시되는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선물이 물신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로테는 리본을 베르테르에게 선물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끼는 것이니 잘 간직해 달라고 말한다. 여기서 로테가 준 리본은 물신이 되어 베르테르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선물은 관계를 보이지 않게 이어주는 선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선물을 잘해야 한다. 내가 준 선물에 대해 보답을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 교수님 생각이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그게 가능하겠는가그러나 선물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충분히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의를 마치면서 처음 내가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교수님이 왜 사랑이란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라고 했는지 말이다. 우리는 사랑의 목표를 아주 높고 이상적으로 잡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에서 가장 처음 언급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좋음의 실현을 추구한다라는 의미. , 사랑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좋음을 추구하면 그것이 곧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앞에 있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에 간직해 가는 것이 진정 멋진 사랑이 아닐는지

솔직히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에게 저자가 쓴 2권의 책과 이번 강연이 많은 사유를 하게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노래하는 멘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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