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7시에 다녀온 과학 강연(정확히는 대담)은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20주년 기념판 발간을
기념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가 펴내는 웹진 <크로스로드>와 <프레시안>의 서평 섹션
'프레시안 books'가 함께 하는 '과학 수다'의 공개 수다
였습니다.

프레시안 과학수다는 지금까지는 비공개로 이뤄졌습니다. 이번 대담이 아홉 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담당 분야의 전문가 한두 분과 기획위원 천문학자 이명현 씨, 과학전문기자 강양구 씨가 함께 하나의 주제를 놓고 질문과 대답, 약간의 토론을 하는 형태인데요. 사실 제가 과학수다에 대해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담을 정말 재미있게 듣고 나서, 이전의 기사들도 찾아보게 되었죠.

(물론 sf팬이라 '크로스로드'는 예전부터 종종 다니고 펴내는 단편집도 꼬박꼬박 샀습니다만,
요 1년간 전직 준비로 인문사회 쪽 책을 주로 읽다 보니 신경을 못 썼네요. 반성.)

이 날 카페 '다리'는 눈을 빛내며 열정적인 태도로 강의를 듣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저도 그중의 한 사람이죠.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고, 실제로 그랬으니까요,뭐. 사실 이 날의 
대담 주제인 '카오스'에 대해 흥미가 상당히 많았어요. 그래서 회사 회식과 시간이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대담에 참여했다가 회식 자리로 오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했습니다.

사실 카오스 이론은 생각만큼 sf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 듀나의 '나비전쟁' 정도? 양자역학의 이론을 응용한 글은 많지만요.

많은 사람들이 카오스 이론은 '뭔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이론' 이고, 양자역학은 '불확정성 원리'로 대표되는 과학이다 정도로 이해해 둘을 비슷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는 것이 대담의 중요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카오스 이론은 기본적으로 (양자역학과는 현상을 보는 틀이 완전히 다른) 고전역학 안에서 설명 가능합니다. 양자역학은 측정에서 오차가 생기고, 그 결과 한 요소를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어서(불확정적이라서) 기본적으로 확률을 사용하는 과학입니다. 현상에 대해서 '불확실하니 다 알 수 없다' 는, 철학적으로는 비결정론적 관점이죠.

카오스 이론은 측정에 오차가 있고 그 오차를 무한히 줄일 수 있다면 현상을 원칙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알기가 어려워서 알 수 없다는 입장으로, 기본적으로는 결정론적 관점입니다.우리가 알 수 없을 뿐이지 우주는 결정되어 있다는 거죠.

양자역학과 카오스 이론의 관계, 불확정성 원리와 카오스의 관계 등 이 부분에 대해 참석하신 분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셨어요. 대담을 다 듣고 나니 웬만큼은 정리가 된 듯...도 한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이해했느냐죠.
곧 강양구 기자님이 더 잘 정리한 자료를 프레시안 북스에 올려 주실 것이라 믿고, 저는 제가 이해한 대로 간략히 요점을 정리해 보렵니다.(과학에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더 관심이 많은 '일반인'의 입장에서요.)

카오스 이론은 '혼돈 속의 질서' 혹은 '무질서 속의 질서' 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이해한 카오스 이론의  핵심 원리와 논점들은

1. '아주 복잡해 보이는 현상에 실제로는 무척 간단한 질서(원리)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복잡한 현상에 복잡한 원리가 숨어 있을 수도 있고요.) 이 복잡한 현상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게 카오스 이론이고요.
무질서해 '보이는' 것에서 '질서'를 뽑아내는 거죠.

2.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은 작은 초기 오차가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나중의 복잡한 상황에 대해 예측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고 합니다.
오차가 아주 적어도(나비의 날갯짓), 결과는 무척 상이할 수 있다(태풍이 올 수도 있고/안 올 수도 있고)는 거죠.

3. 카오스 이론으로는 현상이 복잡해져가는 양상을 파악해 이것이 언제 복잡해지는지 그 시점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있으나, 초기 효과에 대한 오차가 결과에 이르러서는 엄청나게 커지므로 결과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측 가능성+예측 불가능성)

카오스 이론의 '예측 불가능성'은 원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함을 얘기하는 것입니다.'실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쓰이거나 응용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적었고, 그래서 80년대에 붐을 일으킨 뒤 90년대에 세가 주춤하고, 2000년대에는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던 과학자 대부분이 복잡계 과학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 카오스 이론과 복잡계 이론(과학)의 차이점
카오스 이론은 단순한 계(낮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상이한 결과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고,
복잡계 이론은 변수가 많은 복잡한, 혹은 차원이 높은 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카오스 이론은 기하학으로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위상공간에서 특정 점이 블라블라...), 4차원 이상은 인간이 기하학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연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그 이상의 차원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 복잡계 이론이 생겨났다고 합니다.(컴퓨터 없이는 연구가 거의 불가능하죠)

5. 카오스 이론이 '혼돈 속의 질서'를 시간적으로 보고 표현한 것이라면
프랙탈 도형은 이를 공간적으로 보고 표현한 것
(남아 있는 운동의 자취가 이런 도형/ 구조를 보인다는 거죠)
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구독하던 뉴턴이랑 과학동아에서
프랙탈 도형은 물리도록 봤는데 소용이 없었나벼)

6. 날씨는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 예측할 수 있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변수가 많지 않지만 차원이 높아서 우리가 규칙을 찾기 힘든(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찾지 못한 것) 카오스 현상이라면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예측이 가능합니다. (초기 오차에 따른 결과 변화가 크지 않은 가까운 며칠의 날씨는 예측할 수 있지만, 초기 오차 때문에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장기적 날씨는 실제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거죠.)

반면 날씨가 변수가 매우 많아서 결과가 복잡해지는 현상이라면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으므로 카오스 현상이 아니고, 그냥 복잡한 현상이라는 거죠(복잡계 이론으로 설명?)

그런데 현재로서는 날씨가 이 중 어떤 현상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겁니다(정보가 부족해서). 인간의 심리도 마찬가지 이유로 아직은 판단 보류고요.(퀘스천 마크가 너무 많아서)

이 기본적 내용들에 대해 생각을 좀 정리하신 다음에 <카오스>를 읽으신다면 훨씬 책읽기가 쉽고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작 저는 아직 개정판을 사 오고선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요. 이번 주말엔 읽고 말 테다! (대학교 때 예전 번역으로 읽었단 기억은 나는데, 제대로 기억나는 내용이 없으니 다시 읽어야죠.)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기본적으로 제가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의도에서 쓴 글이니 좀 횡설수설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고, 고급 지식은 근처의 지식인에게 문의하시는 쪽이 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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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2013-07-1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하고 자세한 리뷰 고맙습니다. 이런 후기가 올라올 때마다 너무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하나 2013-07-24 11:17   좋아요 0 | URL
제가 정리하려고 쓴 글인데 이런 과한 칭찬을 듣다니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