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글을 읽고나면 스스로 조금 가라앉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문체의 어려움이 느껴진 탓도 있지만 조금 어두운 이야기라고 여겨지곤 하였다. 

  그런데, 최근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신경숙 작가의 글이 맞나?" 싶을만큼 유쾌하고, 짧은 글 속에 책장이 잘 넘어가는 경험을 하였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내가 직접 경험을 하였거나 내 주변에서 누군가 경험했을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하하하" 웃게 하는 경우도 있고, 요즘 표현대로 "웃프다"라고 이야기할 만한... 읽고 나서 빙그레 미소를 짓게는 하지만 왠지 조금 쓸쓸한 느낌은 남아서 여전히 신경숙 작가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글을 쓰는 작가와 만남, 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곤 한다. 책을 쓴 작가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기도 하니깐...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일종의 연대의식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시간. 나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신경숙 작가님과 함께 했던 이 시간이 아마도 시간이 흘러 아주 작은 기억으로 남는 다면, 나는 작가님께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생각을 가다듬던 짧은 적막과 이야기 중에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실 때의 그 느낌이 간직될 것 같다. 또 사인을 받고 나오면서 보았던 달도...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 2013년 4월 24일 (수) 19:30 @ 카페 꼼마 1호점



진행: 뮤지션 시와 _ 여는 노래 <랄랄라> <잠 못 이룬 당신> 

  "2006년에 데뷔한 7년 차 가수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깊은 슬픔》과 《외딴방》을 읽었었는데 이런 자리에 서게 되어서 영광이니다. 어린 시절에 신경숙 작가님 글을 읽으면 이렇게 성장합니다. (웃음)" 

 

Q. 오늘 오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고, 어떤한 마음으로 오셨을지 궁금합니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출간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한 시간 정도 하고 왔습니다. 인터뷰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데, 말을 잘하는 경우고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오늘은 말이 잘 되었던 인터뷰를 하고 왔습니다. (웃음)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은 폐간 되었지만, 서평잡지 <북새통>이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을 묶은 책입니다. 2년 동안 연재를 했는데, 스물 여섯 가지 이야기입니다. 제가 쓰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썼습니다. 혼자서 밤에 산책을 하다보면 하늘도 보고 하는데... 그때 보았던 것이 달입니다. 그 달에게 말을 걸기도 하면서 글을 썼는데, 그 달이 여러분, 독자분들이라 생각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쓴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 직접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달라는 독자분들도 계셨고, 사람들을 만나서 제가 웃으면 주변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의외로 잘 웃으시네요.", "웃으실 줄도 아시네요." 라는 반응을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던 글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었습니다. 

  한 달에 하나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글을 쓰기 위해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다보니 저의 일상 재발견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한 달동안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시간도 되었고, 인상 깊던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이야기를 덜어내야 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책에 실린 이야기는 그런 순간의 선택된 글들 입니다.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글이 있다는 반응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달()은 해()와는 다른 느낌으로 은근하게 환한 느낌이 들잖아요. 해와는 또 다른 느낌도 있고, 모성의 느낌을 갖고 있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이번 글들은 한번 쓰기 시작하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썼습니다. 마침표를 찍고 자리에서 일어섰던 글들입니다. 마감 덕분에 그렇게 쓸 수 있던 것도 있었지만, 짧은 글이라고 쉽게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편을 쓰는 것보다 쉽게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장편은 작가가 처음부터 이야기를 만들면서 인물의 머리길이, 옷, 이야기의 복선을 고려하면서 썼다면, 짧은 글은 함축적인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되어서 한 문장을 쓰더라도 조금 신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독자들의 반응? 저의 느낌이기도 했는데, 저의 이야기라는 느낌으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달의 이미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어머니 같은 모성의 느낌도 있으니깐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독자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글이 있어서 공감이 되고,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해서 그런 것이 같습니다. 작가와의 만남 신청하면서 남긴 덧글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Q. 우연한 기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질문보다는 늘 작가님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입니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는 독자가 있다는 것은 글쓰는 작가로 독자에게 감동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전에 썼던 저의 작품들이 시간이 흘러서 지금의 스무살, 또는 고등학생들이 읽고 있다는 것은 작가를 긴장시키는 일입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하고 계신 독자분께 감사합니다. 사인회나 오늘처럼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에 즐거운 경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연재를 계속하고 있었다면 오늘 여기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썼을 것 같습니다. 

 

  독자에게 감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가와 독자는 책을 사이에 두고 시간을 통과합니다. 행복 일이기도 하고, 기쁜 일인데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가장 늦은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에 비하면 느린 일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오랜 시간동안 마음이 벽돌처럼 쌓여서 읽는 사람에게로 전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지만, 언어로 각인된 이미지에 독자가 공감하면 이전과 다르게 변화하게 합니다. 그 흔적이 가장 오랜시간 동안 남아서 직접적으로 마음 안에 반영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글쓰는 사람으로 참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시간이 직선이 아니라 둥근 것 같습니다. 과거 속에 미래가 존재하기도 하고, 30년 전 순간인데...  현재의 시, 소설 속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시각으로 변화를 하기도 하고, 우리가 지낸 어제가 내일이기도 하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살아가는 날들은 이전의 시간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미래가 담겨 있기도 하고 그와는 반대로 먼 과거가 있어서 문득,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Q. 책을 읽으면서 특히, "모르는 사람에게 쓰느 편지" 속 삽화를 보고 놀랐습니다. 할머니가 돌아 가신 경험때문에 생각이 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삽화를 그린 삽화가 (방현일)를 직접 만난 것은 한 번뿐이었는데 유머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느낌이었어요. 상실하면 그런 느낌일 것 같다고 삽화를 그려주었는데, 그 삽화를 보고 할머니가 떠올랐다면 앞으로의 시간에도 조금 더 자주 그런 느낌과 마주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포스트잇 질문

Q. 여전히 유지태씨를 좋아하시나요?

  네. "아직도"가 아니라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또 큰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영화 <동감>에서 봤을 때와 지금의 변화를 생각하면 본(本)이 작은 것에서 커져가는 것을 보여주는, 나무 같은 사람 같아요. 지금은 영화를 출연하는 것에서 영화감독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 또 책도 많이 읽으시고...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Q. 소설가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 좋은 점은?

  눈물 한 방울처럼 작은 것을 보는 것에서 시작해서 이야기들이 모여 새로운 한 세계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때의 느낌. 물론, 그것이 언어 속에 갖혀서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품 속 은서, 리진, 윤희, 영서, 미루 같은... 아, 그들에게 갑자기 미안해지네요.

  제가 만든 인물들을 인간의 영역에 섞어놓는 역할이 작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흔들렸다." , "소설 속 인물과 공감 되어 좋았다." 는 반응.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의 성장을 보는 것도 좋은 점 같아요. 원래 이 인물은 잠깐 동안의 필요에 의해서 도구적으로(?) 설정한 인물이었는데 결국 그 인물이 작품 끝까지 남게 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잘 눈치채지는 못하시겠지만, 《깊은 슬픔》 속의 화연은 은서에 방에 노크를 하기 위한 인물로, 노크하는 순간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모든 작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의 경우는 소설을 쓸 때, 소설의 3분의 1 정도는 소설 속의 인물에 전적으로 개입 해서 지어내는 느낌이라면, 그 이 후로는 인물들이 각자의 길을 갑니다. 각자의 생명력을 갖고 그들의 생명력대로 움직입니다. 자기 스타일로 그 생을 살아가는 것이죠. 

  → 작가님 이야기에 공감이 되는 것이 작가님도 글쓰는 순간의 집중을 하면 그들 각자의 길을 간다는 이야기처럼, 저도 노래를 만들 때, 노래의 3분의 1 정도의 멜로디만을 만들면 나머지는 그 노래가 자기의 길을 가게 됩니다. 

 

Q. 국어 교사의 질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괴로운 마음이 듭는 것이 문학작품을 먼저 시험으로 접하게 되어서 각자 감상하는 느낌이있는데, 정답만을 고르려고 하는 문제?

  저라고 해답이 있겠어요. (웃음) 문학시험의 텍스트로 외딴방》이 수록되고 교과서에서도 실렸다고 하더라구요. 

  글쓰는 순간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글쓰는 순간의 경험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밤에 외딴방》의 한 부분인 죽은 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던 경험이있습니다.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고 또 누르면 나가려고 했는데, 사실은 의자에 걸어놓았던 물건이 떨어졌던 소리입니다. 그때의 저의 느낌을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근접하는 답은 존재하지 않을까요? 시험은 시험으로써 접근하는 것을 찾고... 시험 이후에 시험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읽는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다시 읽는 기회를 주는 것. 문학 작품을 접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마침표는 작가가 다 썼을 때 찍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침표는 누군가 읽는 것으로, 독자가 읽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읽는 이에게 들어가는 것 아닐까요?


  친구가 들려준 어느 어부의 이야기를 듣고 만든 노래.  가수 시와가 마지막으로 들려줄 곡 <마시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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