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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2011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씨즌2’가 시작된 이후로 매년 한두 권의 답사기가 빠지지 않고 출간되었다. 이제는 답사기를 읽는 것의 나에게는 하나의 연중 행사로 굳어졌다.
답사기 6권은 휴가 기간으로 사람이 많지 않던 지하철에서였고, 답사기 7권(제주편)은 추석 연휴를 앞둔 주말, ‘나는 언제쯤 답사기에 소개된 제주도를 가게 될까?’ 기대하고 계획하며 읽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로 일본을 몰랐나?’ 놀라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일본편 네 권을 지나서 다시 국내편, 여덟 번째 답사기가 돌아왔다.
유홍준 교수는 굉장히 부지런한 작가다. 답사기뿐 아니라 《한국미술사 강의》 까지. ‘책을 써주는 다른 작가가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생길만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제주편》 이 출간되고, 기회가 닿아서 유홍준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후에 사인 받으며, 역시나 답사기의 다음 행로에 대해서 질문했다. 또, <월간 중앙>에 연재는 되었지만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남한강변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막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에게 다음 올림픽 계획을 묻는 것 같은 힘 빠지게 하는(?) 질문이다.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부담을 드리는 질문이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서 내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여덟 번째 답사기를 만나니 세월의 흐름과 답사기를 읽은 독자로의 감회가 겹쳐져 이번 답사기가 유독 반갑다.
연재 때 읽은 글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정호승의 시 <폐사지처럼 산다> (p.342) 덕분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2월쯤, 설날에 만나 자주 듣게 될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처럼 산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순간, 시가 말하는 심정과 읽던 내가 만나던 찰나를 잊지 못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묻지도 않겠지만 이번 답사기 남한강 편의 하이라이트 혹은 가보고 싶은 곳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남한강변의 폐사지 (여주 신륵사) 답사를 꼽고 싶다. (두 번째는 유홍준 교수의 특청으로 갔다던 성신양회 채석장이고, 세 번째는 죽령역이다.)
답사에도 등급이 있다면, 가장 높은 고수들이 가는 곳이 바로 폐사지이다. (내가 답사의 고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사라진 절터를 가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만, 슬플 때 신나는 노래로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려 하는 것보다 슬픈 노래를 듣고 난 후에 오는 시원함. 울고 났을 때 느껴지는 후련함 같은, 적막함이 주는 이상한 위로와 지쳤을 때 다시 한 발을 내딛게 하는 기운이 느껴질 것 같다. 이런 정서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폐사지의 내력에 대한 배경을 알아야 역사적 상상력이 더해져 한층 더 깊은 정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폐사지에서 느껴지는 처연한 마음이 영월의 김삿갓 이야기에서, 단종이 머물던 청룡포에서, 장릉에서도 이어진다. 남한강 답사가 수려한 자연 풍광과 호젓한 길이 (p.20) 주는 눈요기도 좋지만 그 뒤에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남다른 서정으로 다가온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기록된다고 하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 패배자들의 서사가 더 매력 있고, 사람을 끌리게 한다. 오래 전부터 기록된 역사 이면의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퇴계 선생과 기녀 두향의 사랑으로 (p.158) 퇴계의 매화 사랑의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p.160) 근엄하게만 여겨지던 퇴계 선생의 다른 면모를 본 듯해서 슬며시 미소 짓게 한다. 또, 바보 온달 이야기의 주인공은 평강공주 (p.249) 라는 글을 보니 내가 알던 이야기의 다른 면이 보인다.
‘4세기 백제 근초고왕, 5세기 고구려 장수왕, 6세기 신라 진흥왕.’ 국사 시간에 무조건 외웠던 것이라 지금도 기억난다. 지도를 보고 어느 시대인지 유추해서 문제를 풀었다. 단양의 신라 적성비 의 실물 (p.187), 충주의 중원 고구려비 (p.309) 이야기를 실제 모습과 함께 배웠다면, 덧붙여진 스토리의 흐름을 배웠다면, 국사시간이 조금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수업시간에 중요하다며 설명했던 것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농담은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처럼 답사기에도 유쾌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청풍의 한벽루 앞에서 “이 한벽루 하나만을 보기 위해 청풍에 온다 해도 그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p.118) 라며 한껏 기대를 부풀게 하고 공사 가림막이 높이 둘러져 있던 허망함을 묘사한 장면에서 웃기면서, 슬픈 감정이 전해졌다. 그리고 똑같이 허망한 공사 가림막 때문에 보지 못했던 교토 우지의 평등원 봉황당 앞에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공사중인 것을 본 사람은 몇이나 될 것 같아? 그런 걸 찍어야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3권》 p.270) 라며 허망함을 모면했던 농담이 떠올라서 크게 웃었다.
지난 7월 덕수궁에 갔을 때 석어당에도 공사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일부러 보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은 걸까?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허망함과 아쉬움을 피하는 길이겠지만 즐거운 에피소드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답사기를 답사기만의 매력으로 만드는 게 답사 가는 길을 빠짐없이 알려주고 관련된 이야기를 덧붙이며, 답사를 오고 가는 버스에서 벌어지는 강의와 대화 때문이다.
하대 신라 구산선문에서 자기 고향의 법흥사가 불려지지 않자 “영월 법흥사!” (p.40) 라고 외친 일화. 의외로 서정성을 가진 친구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고, 안목 깊은 선생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여행은 그 사람의 알지 못하는 새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p.268)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특히 여행은 (답사도) 어디에 가느냐 못지 않게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 (p.175) 눈 앞에 산해진미가 있어도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부러움과 동경이 저절로 일어난다. 영춘가도를 달리며 사랑하는 그 모습 그대로의 상처 받지 않은 관광지에 대한 고마움 마음을 (p.222) 전하고, 촌의 읍내에서 자란 학생들과 옥수수 밭 이야기를 나누며 (p.224) 푸근한 답삿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답사기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답사의 순서에 따라서 달라지는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곳을 가기 전 알 수 있는 정보는 정말 많다. 검색을 하면 어디가 처음이고, 끝인지 감이 안 올 때가 많다. 그럴 때 책이 주는 시작과 끝의 느낌에 안심한다.
폐사지 답사는 거돈사부터 가야 깊은 정취를 느낄 수 있고, (p.344) 네비게이션의 안내만 보고 가면 거기까지 도착하는 길의 모습이 생략되기 때문에 “답사는 그렇게 가면 안” (p.345) 되며, 일정과 동선을 고려해서 어느 때 가야 유리하고 (p.362), “남한강변의 폐사지 답사의 종점은 국립중앙박물관 옥외전시장이 된다.” (p.401) 고 세심하게 안내한다.
미술관에서 어떤 순서로 작품을 감상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정서가 달라진다. 작품을 다시 보고 싶게 하고 관람객의 기억에 오래 남도록 배치를 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라면, 답사를 이끌고 어떤 순서로 문화재를 감상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절대평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평가를 많이 해본 경험이 필요하다. (p.152, p.414) 그래서 단원의 「옥순봉도」 라는 같은 화제(畫題)를 다른 시기에 그린 작품을 봐야 하고, 원종대사 승탑을 보고, 국보 제4호 승탑을 보게 되면 느끼는 감상이 달라진다. (p.151, p.413)
답사기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이자 정자(亭子)의 나라이고 (p.130) 산성(山城)의 나라 (p.241) 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누각은 건물보다 위치가 중요하고, (p.235~p.236) 산성의 자리 앉음새의 큰 의미가 있다. (p.185) 불상에서 부처님이 바라보는 곳이 좋은 전망이며, (p.309) 옛 절집 자리는 하나같이 명당이라는 것은 (p.355)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가 아니라면 누가 알려줄까?
비단 문화재에 국한하지 않고, 자연풍광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드러난다. 고즈넉한 시골의 자연경관, 법흥사의 솔밥 (p.47), 거돈사의 거대한 느티나무 (p.351) 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저자가 나무 이름을 중요하게 알려주는 것도 이유가 있다. 사람도 통성명을 하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처럼, 나무의 이름을 알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읽은 일화인데, 층간 소음의 해결책이 윗집 아이의 이름을 아는 것이라 했다. 윗집 아이가 뛰어 놀면 올라가서 혼내고 따지기 전에 과자 한 봉지 들고 올라가서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고 대화하라는 것이다. 누군지 알게 되면, 이름 모르는 누군가에서 내가 아는 아이가 뛰는 것으로 그것이 이해되고 용서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름 모를 나무와 새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무와 새가 되면 또 다르게 보이고, 알기 때문에 조금 더 좋아하게 된다.
여행 전에는 당연한 일이고, 처음 가보는 곳이면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정보의 양만 무한정 늘어난다. 그 중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적지 않다. 반면 책을 통해 얻는 정보는 그렇지 않다. 특히 답사기는 저자에 대한 오랜 신뢰로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답사기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좋은 안내자 덕분에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범위 안에서 여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실패의 확률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답사기로 크게 알려져 곤혹을 치르거나 사람이 몰리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염려 아닌 염려를 하게 된다.
오랜만에 국내편 답사기를 읽으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 지도 앱을 통해서 설명하는 지역을 직접 찾아보며 함께 답사하듯 책을 읽었다. 막연하게 ‘어디쯤이겠거니’ 라는 생각에서 찾아보고, 로드뷰와 스카이뷰를 통해서 유적지의 모습을 조금 더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명작을 봐도 ‘좋다’, ‘멋지다’, ‘대박!’ 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답사기는 좋은 것을 마음껏 찬미하고, 무엇이 좋은가를 때로는 수업시간의 교수님 강의처럼, 때로는 시인의 심정으로 들려주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앞으로 답사가 또 어느 곳으로 이어질까? 충청북도의 저금해둔 답사처 (p.7), 수도권 답사기 (p.7). 다음 번 답사기로 정해진 서울 편 (p.9) 등. 아직 가야 할 곳이 남아 있고 여전히 남은 이야기가 있다. 즐거운 글 읽기와 행복한 답삿길을 뒤를 따라가는 마음으로, 와유(臥遊)하는 마음으로, 또 다음 번의 답사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 창비 책 읽는 당 17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 출간 전, 가제본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