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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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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씨즌2’가 시작된 이후로 매년 한두 권의 답사기가 빠지지 않고 출간되었다. 이제는 답사기를 읽는 것의 나에게는 하나의 연중 행사로 굳어졌다.

  답사기 6권은 휴가 기간으로 사람이 많지 않던 지하철에서였고, 답사기 7권(제주편)은 추석 연휴를 앞둔 주말, ‘나는 언제쯤 답사기에 소개된 제주도를 가게 될까?’ 기대하고 계획하며 읽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로 일본을 몰랐나?’ 놀라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일본편 네 권을 지나서 다시 국내편, 여덟 번째 답사기가 돌아왔다.

  유홍준 교수는 굉장히 부지런한 작가다. 답사기뿐 아니라 《한국미술사 강의》 까지. ‘책을 써주는 다른 작가가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생길만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제주편》 이 출간되고, 기회가 닿아서 유홍준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후에 사인 받으며, 역시나 답사기의 다음 행로에 대해서 질문했다. 또, <월간 중앙>에 연재는 되었지만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남한강변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막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에게 다음 올림픽 계획을 묻는 것 같은 힘 빠지게 하는(?) 질문이다.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부담을 드리는 질문이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서 내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여덟 번째 답사기를 만나니 세월의 흐름과 답사기를 읽은 독자로의 감회가 겹쳐져 이번 답사기가 유독 반갑다.

  연재 때 읽은 글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정호승의 시 <폐사지처럼 산다> (p.342) 덕분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2월쯤, 설날에 만나 자주 듣게 될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처럼 산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순간, 시가 말하는 심정과 읽던 내가 만나던 찰나를 잊지 못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묻지도 않겠지만 이번 답사기 남한강 편의 하이라이트 혹은 가보고 싶은 곳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남한강변의 폐사지 (여주 신륵사) 답사를 꼽고 싶다. (두 번째는 유홍준 교수의 특청으로 갔다던 성신양회 채석장이고, 세 번째는 죽령역이다.)

  답사에도 등급이 있다면, 가장 높은 고수들이 가는 곳이 바로 폐사지이다. (내가 답사의 고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사라진 절터를 가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만, 슬플 때 신나는 노래로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려 하는 것보다 슬픈 노래를 듣고 난 후에 오는 시원함. 울고 났을 때 느껴지는 후련함 같은, 적막함이 주는 이상한 위로와 지쳤을 때 다시 한 발을 내딛게 하는 기운이 느껴질 것 같다. 이런 정서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폐사지의 내력에 대한 배경을 알아야 역사적 상상력이 더해져 한층 더 깊은 정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폐사지에서 느껴지는 처연한 마음이 영월의 김삿갓 이야기에서, 단종이 머물던 청룡포에서, 장릉에서도 이어진다. 남한강 답사가 수려한 자연 풍광과 호젓한 길이 (p.20) 주는 눈요기도 좋지만 그 뒤에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남다른 서정으로 다가온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기록된다고 하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 패배자들의 서사가 더 매력 있고, 사람을 끌리게 한다. 오래 전부터 기록된 역사 이면의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퇴계 선생과 기녀 두향의 사랑으로 (p.158) 퇴계의 매화 사랑의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p.160) 근엄하게만 여겨지던 퇴계 선생의 다른 면모를 본 듯해서 슬며시 미소 짓게 한다. 또, 바보 온달 이야기의 주인공은 평강공주 (p.249) 라는 글을 보니 내가 알던 이야기의 다른 면이 보인다.


  ‘4세기 백제 근초고왕, 5세기 고구려 장수왕, 6세기 신라 진흥왕.’ 국사 시간에 무조건 외웠던 것이라 지금도 기억난다. 지도를 보고 어느 시대인지 유추해서 문제를 풀었다. 단양의 신라 적성비 의 실물 (p.187), 충주의 중원 고구려비 (p.309) 이야기를 실제 모습과 함께 배웠다면, 덧붙여진 스토리의 흐름을 배웠다면, 국사시간이 조금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수업시간에 중요하다며 설명했던 것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농담은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처럼 답사기에도 유쾌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청풍의 한벽루 앞에서 “이 한벽루 하나만을 보기 위해 청풍에 온다 해도 그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p.118) 라며 한껏 기대를 부풀게 하고 공사 가림막이 높이 둘러져 있던 허망함을 묘사한 장면에서 웃기면서, 슬픈 감정이 전해졌다. 그리고 똑같이 허망한 공사 가림막 때문에 보지 못했던 교토 우지의 평등원 봉황당 앞에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공사중인 것을 본 사람은 몇이나 될 것 같아? 그런 걸 찍어야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3권》 p.270) 라며 허망함을 모면했던 농담이 떠올라서 크게 웃었다.

  지난 7월 덕수궁에 갔을 때 석어당에도 공사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일부러 보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은 걸까?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허망함과 아쉬움을 피하는 길이겠지만 즐거운 에피소드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답사기를 답사기만의 매력으로 만드는 게 답사 가는 길을 빠짐없이 알려주고 관련된 이야기를 덧붙이며, 답사를 오고 가는 버스에서 벌어지는 강의와 대화 때문이다.

  하대 신라 구산선문에서 자기 고향의 법흥사가 불려지지 않자 “영월 법흥사!” (p.40) 라고 외친 일화. 의외로 서정성을 가진 친구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고, 안목 깊은 선생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여행은 그 사람의 알지 못하는 새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p.268)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특히 여행은 (답사도) 어디에 가느냐 못지 않게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 (p.175) 눈 앞에 산해진미가 있어도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부러움과 동경이 저절로 일어난다. 영춘가도를 달리며 사랑하는 그 모습 그대로의 상처 받지 않은 관광지에 대한 고마움 마음을 (p.222) 전하고, 촌의 읍내에서 자란 학생들과 옥수수 밭 이야기를 나누며 (p.224) 푸근한 답삿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답사기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답사의 순서에 따라서 달라지는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곳을 가기 전 알 수 있는 정보는 정말 많다. 검색을 하면 어디가 처음이고, 끝인지 감이 안 올 때가 많다. 그럴 때 책이 주는 시작과 끝의 느낌에 안심한다.

  폐사지 답사는 거돈사부터 가야 깊은 정취를 느낄 수 있고, (p.344) 네비게이션의 안내만 보고 가면 거기까지 도착하는 길의 모습이 생략되기 때문에 “답사는 그렇게 가면 안” (p.345) 되며, 일정과 동선을 고려해서 어느 때 가야 유리하고 (p.362), “남한강변의 폐사지 답사의 종점은 국립중앙박물관 옥외전시장이 된다.” (p.401) 고 세심하게 안내한다.

  미술관에서 어떤 순서로 작품을 감상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정서가 달라진다. 작품을 다시 보고 싶게 하고 관람객의 기억에 오래 남도록 배치를 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라면, 답사를 이끌고 어떤 순서로 문화재를 감상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절대평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평가를 많이 해본 경험이 필요하다. (p.152, p.414) 그래서 단원의 「옥순봉도」 라는 같은 화제(畫題)를 다른 시기에 그린 작품을 봐야 하고, 원종대사 승탑을 보고, 국보 제4호 승탑을 보게 되면 느끼는 감상이 달라진다. (p.151, p.413)

  답사기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이자 정자(亭子)의 나라이고 (p.130) 산성(山城)의 나라 (p.241) 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누각은 건물보다 위치가 중요하고, (p.235~p.236) 산성의 자리 앉음새의 큰 의미가 있다. (p.185) 불상에서 부처님이 바라보는 곳이 좋은 전망이며, (p.309) 옛 절집 자리는 하나같이 명당이라는 것은 (p.355)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가 아니라면 누가 알려줄까?

  비단 문화재에 국한하지 않고, 자연풍광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드러난다. 고즈넉한 시골의 자연경관, 법흥사의 솔밥 (p.47), 거돈사의 거대한 느티나무 (p.351) 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저자가 나무 이름을 중요하게 알려주는 것도 이유가 있다. 사람도 통성명을 하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처럼, 나무의 이름을 알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읽은 일화인데, 층간 소음의 해결책이 윗집 아이의 이름을 아는 것이라 했다. 윗집 아이가 뛰어 놀면 올라가서 혼내고 따지기 전에 과자 한 봉지 들고 올라가서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고 대화하라는 것이다. 누군지 알게 되면, 이름 모르는 누군가에서 내가 아는 아이가 뛰는 것으로 그것이 이해되고 용서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름 모를 나무와 새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무와 새가 되면 또 다르게 보이고, 알기 때문에 조금 더 좋아하게 된다.


  여행 전에는 당연한 일이고, 처음 가보는 곳이면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정보의 양만 무한정 늘어난다. 그 중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적지 않다. 반면 책을 통해 얻는 정보는 그렇지 않다. 특히 답사기는 저자에 대한 오랜 신뢰로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답사기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좋은 안내자 덕분에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범위 안에서 여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실패의 확률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답사기로 크게 알려져 곤혹을 치르거나 사람이 몰리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염려 아닌 염려를 하게 된다.

  오랜만에 국내편 답사기를 읽으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 지도 앱을 통해서 설명하는 지역을 직접 찾아보며 함께 답사하듯 책을 읽었다. 막연하게 ‘어디쯤이겠거니’ 라는 생각에서 찾아보고, 로드뷰와 스카이뷰를 통해서 유적지의 모습을 조금 더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명작을 봐도 ‘좋다’, ‘멋지다’, ‘대박!’ 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답사기는 좋은 것을 마음껏 찬미하고, 무엇이 좋은가를 때로는 수업시간의 교수님 강의처럼, 때로는 시인의 심정으로 들려주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앞으로 답사가 또 어느 곳으로 이어질까? 충청북도의 저금해둔 답사처 (p.7), 수도권 답사기 (p.7). 다음 번 답사기로 정해진 서울 편 (p.9) 등. 아직 가야 할 곳이 남아 있고 여전히 남은 이야기가 있다. 즐거운 글 읽기와 행복한 답삿길을 뒤를 따라가는 마음으로, 와유(臥遊)하는 마음으로, 또 다음 번의 답사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 창비 책 읽는 당 17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 출간 전, 가제본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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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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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0주년 기념 강연이 있었다.

(http://blog.naver.com/star146/140189625370)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는 유홍준 교수님의 강의라는 것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참석하게 되었다. 그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집필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의 여정이 규슈와 아스카 ∙ 나라를 거쳐 네 번째 이야기인 교토의 명소편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함께한 시간이 그렇듯이 일본편의 이야기를 보며 들으며 답사 현장에 동행한 답사객은 아니었지만, 글을 읽는 한 명의 독자로 그들의 답사길에 동행한 느낌이다.

  특히, 교토 이야기를 다룬 일본편 3권과 4권에 내가 더 주목하게 된 것은 비록 하루 코스였지만, 청수사와 금각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술을 비롯한 문화미란 아무런 노력 없이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p.12) 에 봤지만 무엇인지 몰랐고, 읽었지만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던 나 스스로가 아쉬울 뿐이다.


  교토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만 17곳에 이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처럼 가봐야 할 곳, 이야기해야 할 곳이 많은 곳인데, 저자가 "즐겨 말하는 미적분 풀이 방식(의) 해답을 찾"아 (p.6)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사실상 교토의 아름다운 정원을 두루 답사하는 순례기" (p.5) 이다.

  답사기 일본편을 따라 읽지 않았다면 "독자들이 다소 어렵게 느끼며 읽기 힘들어 할지도 모" 르지만 (p.7) 저자 특유의 문체 (수다체라고 불리는) 덕분에 한결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본미의 해답을 찾아가는 교토의 여정이라는 ‘일본 문화’ 이야기. 그리고 답사기 일본편 전체를 꿰뚫고 있는 다른 하나의 축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 를 보는 것이다. 저자가 지은원과 건인사를 찾은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일본인들)은 내력이 있어 이 절(지은원)을 찾지만 우리(한국인)는 사연이 있어서 이 절을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p.44) 결국 이런 과정을 우리가 우리나라 안에서만의 닫힌 시각이 아닌 일본을 통해서 우리를 열린 자세로 볼 수 있다. 쌍방적인 시각을 통해서 우리의 것을 다시 바라 보는 것이 해외답사를 장점이다.

  금각사는 "내가 아는 미에 관한 형용사를 다 동원해보아도 금각의 아련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엔 부족함이 있다." (p.151) 라고 마음껏 찬미하며, "용안사 석정은 관조의 정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선 그 자체를 정원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p.168) 라고 표현한다. 가쓰라 이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용안사가 단편소설의 명작이라면 가쓰라 이궁은 장편의 명작이라고 했다. (p.298) 는 인용을 한다. 답사처 혹은 자연경관이 멋진 곳에 가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감탄사나 “멋지다” , “예쁘다” 정도이다.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여서 느껴지는 감동도 덜하고, 시간이 지나서 그곳에 다녀왔다는 기억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로, 스토리텔링으로 기억될 때 느껴지는 울림이 더 커지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 주는 것이 답사기만의 매력이다. "사물에 대한 언어가 발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에 대한 인식이 섬세하다는 의미" (p.273) 인데,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적은 나의 안목을 돌아보게 된다.

  아름다움을 마음껏 찬미하기도 하지만, 국내 답사기처럼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답사 고수답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시각은 공정해야 하고, 잣대는 똑같아야 한다." (p.60) 에서 나온 태도일까? 

  금각사의 놓여진 벤치 3개에 대해서 "그것도 촌스러운 파란색이다. 뜻은 알겠지만 볼 때마다 좀 금각사다운 품격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p.148) 또 용안사 연못가의 플라스틱 보호책 (p.191), 태평양 전쟁 때 버마에서 죽은 이를 위한 위령탑 (p.192)의 허점에 대한 부분도 "내가 남의 나라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이런 유감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용안사는 스스로 말하듯이 세계유산이기 때문이다." (p.192)


  처음 답사기 일본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직 우리나라에도 남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국내편은 앞으로 지속된다. 답사기 일본편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결국 우리 문화에 대한 보다 풍성한 시각이다. 문화에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는 훌륭한 석정이 있는데, 수학원 이궁이라는 멋진 정원이 있는데 우리는? 이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 지성의 현실이다. 대부분 자기 문화, 자기 역사에 깊은 애정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없었으면서 남의 문화에 경탄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다." (p.359)
  "일본에는 선의 정원인 석정이라는 뛰어난 관조의 공간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삶의 내용을 다 받아내는 마당이 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 훌륭한 공간을 갖고 살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p.195)
  우리나라의 마당이 그런 공간이고, 보길도의 고산 윤선도의 원림이라는 소중한 공간이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 손에 있는 보물은 알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는 내 삶의 태도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개인에게 자존(自尊)이 중요하듯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은 것이 필요하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백제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란 의자왕, 삼천궁녀, 낙화암처럼 멸망 직전의 혼란기에 대한 이야기뿐일까? 백제 문화의 우수함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역사는 문화유산과 함께 기억할 때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이것이 문화사적 시각의 강점이다." (p.10) 한국사교육의 문제도 이런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조금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답사기를 읽으며 좋은 것, 책을 읽으며 좋은 것은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내가 약간 달라졌다고 생각될 때이다. 이웃이라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막연한 이미지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일본의 보편적인 특질은 깔끔한 것, 획일적인 것, 인공적인 것, 섬세한 것, 그리고 작은 것에 대한 집착이다. (……) 간소하면서도 집약적인 미학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 웅대하고 대담한 세계를 개척한 창조력도 있다. 극과 극의 공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p27, p.28)
  "일본은 원래 하나의 룰이 정해지면 일사 분란하게 따르는 전통이 있어." (p.134)
  "일본 사람들은 한번 해놓은 것은 잘 바꾸지 않습니다." (p.191)

  답사기를 따라 읽으며 가장 좋은 것을 하나 꼽으라면, 아무래도 (p.166) ‘답사처의 동선’ 에 대한 이야기이다. 답사처에 따라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보아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여행기와 가장 다른 점이다.
   "지난번 대각사에 갔을 때 안내원에게 대각사 낭하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거침없이 정침전 앞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p.80) 국내편의 서산마애불 관리인 성원 할아버지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p.32), 경복궁 관리소장의 "비오는 날 꼭 근정전으로 와 박석 마당을 보십시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p.36) 처럼 문화유산과 오랫동안 함께 한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천룡사는 "주차공간과 관람 동선을 차단하여 번잡스럽지가 않다." (p.105) 또, "천룡사 답사는 그 피날레가 죽림이라는 것이 큰 매력이네요. 다시 온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는 것과는 여운이 다르잖아요." (p.119)
  이처럼 답사를 단순하게 그 문화유산을 보는 것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정과 언제 가서 보는 것, 어떤 곳에서 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가를 알려준다. 은각사의 참도 (p.205) 처럼 그런 동선을 거쳐서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한 그대로 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어진다. 문화유산이 있는 곳에 그냥 차를 타고 가서 인파를 해치고 빨리 보고, 기념 사진만을 찍고 빨리 다른 것을 보는 것과는 분명 히 느끼는 감동이 다를 것이다.

  여행을 하면 어느 곳에 가든 꼭 잊지 않고 가게 되는 곳이 있다. 내 지인은 유럽여행을 가면서 꼭 가야 할 곳으로 어떤 도시를 가든 ‘클럽’과 ‘시장’을 꼭 간다는 원칙이 있었다. 반면에 저자가 말하는 여행의 기술은 저자는 먼저 "걸어야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느낄 수 있" (p.365) 으며, "에브리바디(everybody)의 에브리데이 라이프(everyday life)를 느낄 수 있는 곳" (p.367) 으로 "그 도시의 대표적인 유적지를 본 다음에는 첫째는 박물관, 둘째는 책방, 셋째는 번화가 뒷골목, 넷째는 앤티크 숍, 다섯째는 재래시장 또는 마트" (p.367) 를 꼽았다. "그러나 문제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많아서다." (p.366)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의 표준 일정표(?) 혹은 나침반을 얻은 기분이다.

  답사도, 여행도 결국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나눈 이야기가 오래 기억된다. 답사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가의 죽림을 보며 헤겔의 논리학을 떠올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p.124) 상국사의 「묵산수」를 보고 회화사 전공자가 느끼는 감각적 직감에 대해서 뉴욕 거리에서 만난 동양인의 비유로 표현하여 (p.139) 초심자에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준다. 문화유산 답사라고 해서 과거만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p.164)
  새치기를 하면서까지 셋슈 서거 500주년 기념전에 입장하고, (p.142), 고봉암 입구에서 비질하는 관리인을 피해 다실로 들어가는 앞마당의 사진을 찍는 모습이 (p.292) 눈에 선하게 그려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에서라면 ‘관리인의 유도리 덕분에 입장할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역시 "일본은 유도리가 너무 없고, 한국은 유도리가 지나치게 많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p.13) 는 말이 한치도 틀리지 않았다.

  시간의 경과함이 느껴져 마음을 한없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그 옛날 구속학생이던 나는 어느새 정년퇴임하는 나이가 되었고 어머니 친구분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p.218) 
  지식인으로 답사기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난들 왜 귀찮고 힘들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해서 그에 응하는 것이니 지겨워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 바 있다. (......) 그러나 내 나이도 이미 정년을 넘겼으니 그게 얼마나 이어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p.245)
  헤이안도(平安堂) 고서점의 주인이 바뀐 것을 보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책을 열 권쯤 구입하고 나와 간판 앞에서 처음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돌아왔다. 내 추억을 위하여." (p.371) 
  시간이 지나는 것에서 모두가 같지만, 독자의 욕심으로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기대는 여전할 것이다.
  "한국사를 동아시아 역사 전체 속에서 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항시 우리의 시각을 국경선 너머로 넓혀야 한다고 생각" (p.8~9) 으로 "진작부터 중국 답사기와 일본 답사기를 염두에 두" 었다. (p.9) 미완의 여로로 남아 있는 답사기의 다음 이야기. 다음 번 답사기로 국내편이 될지, 중국편이 될지 잘 모르지만, 그 여정에 늘 기대하며 기다릴 것이다.

  답사기 일본편을 이전부터 따라 읽지 않았다면 약간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다. (나도 이전의 책을 펼쳐보며 시대와 공간에 대해서 비교하며 읽었다.) 나 같은 독자를 배려하여 책 중간 중간에 요점 정리도 해주시고 새로운 정원의 양식을 설명하시며 앞의 이야기도 다시 확인이 되어 이해하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부탁을 했다.
  "그것은 세 번째 책은 드러누워서 읽지 말고 앉아서 읽어 주십사는 부탁이다. 책상에 앉아 밑줄까지야 그을 일 있으리요마는 이야기의 행간에 들어 있는 상징과 은유를 간취했을 때만 나의 뜻이, 아니 문화유산의 진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부탁 드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p.13)
  이 부탁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을 먼저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후에 읽을 독자에게 한다. 
  끝으로 답사기 일본편이 일본학 입문서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성실한 믿음으로 이웃과 교류" 하려는 (p.441)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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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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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의 첫 번째 규슈편이 이야기와 자취로 이루어져 있어 유물 자체가 주는 감동이 없 (일본편1 p.26) 던 것이 아쉬웠다면, 아스카나라편은 문화유산 자체가 주는 미학과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국내답사기를 읽었던 느낌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이 일본편 2권 아스카나라편이다.

 

특히, “아스카와 나라는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가는 답사의 핵심이며, 일본 고대문화의 하이라이트이다.” (p.17) 또한 봄 벚꽃과 가을 단풍은 참으로 아름답다. 일본다운 색감이 무엇인지를 나라처럼 잘 보여주는 곳이 없다.” (p.17) 저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처럼 일본 답사 일번지가 이번에 소개되는 아스카 지역이다. (p.25) 꿈의 여로라고 불리듯 우리에게 친숙한 들판. 이국과 같지 않은 친숙함에 한국인이라면 일본답사의 일번지로 삼을 만하다. 이러한 아스카에는 위용을 자랑하는 사찰, 궁궐, 저택도 없지만 들판을 감싸고 도는 산자락에 아스카시대 유적들이 어깨를 맞대듯 촘촘히 있는 모습 때문에 이전의 영광을 뒤로 한 폐사지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전에 언급한 답사의 급수라는 것이 떠올랐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것, 그 입장료가 비쌀 수록 하수이고, 잘 알려진 관광지로 가는 것도 하수이다.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의미 있는 문화유산을 찾아내는 것이 중수이고, 답사의 고수들이 하는 것이 폐사지 답사라고 들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단출하게 남아 있는 몇몇 유적들과 그 터 앞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느끼는 바도 있을 것이고 우리들의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모습을 회상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을 꿈의 여로라 부르며 한나절 답사처로 소개한다.

, 우리나라에서 외면 아닌 외면을 하고 있는 것을 일본에서 가치를 발견한 사례가 있다. 나는 가야라고 하면 김수로왕, 가야금, 우륵 등 멸망한 흔적 이외의 것은 알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일본은 어느새 가야의 문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껏 우리나라에서는 가야문화전을 이런 규모로 개최한 적이 없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질타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증으로 제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네 만들어야 마땅한 일 아닐까. 국내에선 가야가 잃어버린 왕국이 되는 사이, 일본인들은 뼛속까지 가야사를 느끼고 있는 셈이다.” (p.47) 한 왕조를 기억하는데 있어서 쇠락해가는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왕조 문화의 전성기가 어떠하였는지를 알지 못하고 멸망 전 쇠락만을 기억하는 것도 승자의 입장에서만 역사를 바라보는 좁은 시각이다. 만약 조선의 문화를 세종대왕 시기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아닌 나라가 쇠락해가는 시기의 역사만을 기억한다면 단편적인 이해해 그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대 국가로 나아가지 못한 연합국, 가야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하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같지만, 다른 점을 알게 되었다. 비교를 통해서 우리의 특징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먼저, 한국의 건축은 하늘을 향해 날개짓하는 상승감의 표정이 많은 데 비하여 일본의 건축은 대지를 향해 낮게 내려앉은 안정감을 강조한다. 그것은 미감의 우열이 아니라 두 민족의 정서의 차이일 뿐이다.” (p.132) 법륭사 답사를 통해서 일본의 직선의 미를 보며 우리나라 곡선의 아름다움과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자연과 뒤엉켜 하나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관조하고 또 관조한다. 그것은 자연을 대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태도의 차이기도 하다.” (p.175) 일본 정원의 나무는 잔가지까지 인공의 자취가 드러나도록 매만져야 하고, 한국 정원에서는 본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 (p.176) 같은 자연을 보고서도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어느 것에 우열의 차이라기 보다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일본에게 배울 점도 있는데, 먼저 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태도와 방식은 우리가 일본에서 배울 점” (p.68)이다. 신라가 보내주었던 유물을 포장한 포장지조차 간직하고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시노의 사쿠라를 즐겼다는 그때의 모습과 거의 똑같이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니(……) 옛것을 아끼는 마음은 가히 끔찍한 정성이라 할 것이다.” (p.177) 새 것과 개발이 미덕이던 시대는 이제 조금 지나간 것 같다. 잊었던 우리 것에 소중함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마치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막사발을 천연의 멋이 담긴 높은 미학의 다완으로 재발견한 것은 그들이 한국의 좋은 면을 받아들여 자기화한 경우이다. (p.180)” 그들의 좋은 점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과 수용능력이 필요할 때이다. 나는 우리가 그 누구보다 그것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반찬들을 모아서 비빔밥을 만들어 새로운 맛이 탄생하듯이 좋은 것들을 배우는 열린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답사기에도 빠짐없이 함께한 분들의 이야기. 같이 동행한 일행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저자 자신이 아스카 들판을 자전거로 다녀본 경험. 그리고 우동과 닥광 에피소드 (p.90)에 저절로 미소가 일어났다. 그리고 아마카시 언덕 마루에 올라서 벗과 나눈 대화 (p.120)에서 코 끝이 찡해지는 배려의 마음을 보았다. 답사기의 한 장()을 할애한 법륭사에 관한 나는 법륭사 하나를 본 것으로도 이 답사는 대만족입니다. 그 앞은 법륭사의 서막이고, 그 뒤는 법륭사의 여운이었네요.” (p.122) 이 동행자의 한 줄 평은 감상자의 수준에 맞게 보이는 것이라는 평론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흥복사의 라후라 상을 본 특수교사의 이야기는 어떤 전문가의 설명보다도 명징하게 그 문화유산을 기억하게 도와주는 또 다른 교재였다. (p.230)

 

아스카나라 이야기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가다 오는 것은 몇 해 전 오사카를 포함해서 간사이 지방에 일주일간 여행을 하면서 다녀왔던 곳이 혹시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저자처럼 그 지방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지도로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한 여행이 아닌, 인솔자를 따라다니는 느낌이 강했던 탓에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지만 동대사의 대불과 동대사 경내를 걸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조금 아는 이야기가 나오나?’ 했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있었지만, 빠뜨린 것이 더 많았다. 심지어 나라에 갔을 때는 일본인 친구들도 있었는데...... 동대사 경내에 있는 사슴에 정신이 팔려서 남대문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렸었다. 외국을 여행할 때는 그 나라 그 시대 역사의 줄거리, 그리고 당시의 역사적 과제와 이를 풀어간 상징적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각 유적이 갖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p.79) 문화유산에 찾아갈 수는 있지만, 그 이면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저자가 알려주는 여행의 Tip을 새겨들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던 많은 유물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만 들을만한 귀가 없다면, 앞에서 단지 멋지다.’ 라는 단순한 평만 한다면, 그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것처럼 말하지 않는 것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예술미, 문화미를 알기 위해서는 본 그대로의 날 것의 감상도 필요하지만 아는 것이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억지로 다녔던 그 많은 박물관의 유물 중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를 보더라도 잘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실감한다.

 

지난 규슈편에 나온 탁족하는 스승 옆에 다가간 저자의 이야기, (일본편1 p.302) 유어예(游於藝)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 (일본편1 p.302) 에도 감동이 있었고, 아스카나라편에서의 동주 선생과 저자가 나눈 대화가 주는 울림이 사뭇 크다. 유군, 인생이 끝나가는 이순간에도 생생히 기억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아. 어떤 박물관에 가서 본 유물 중 평생을 떠나지 않는 명작이 한 점만이라도 있다면 그 박물관은 훌륭한 박물관인 줄 알게나.” (p.220) 본 것을 모두 다 기억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게 마련이지만, 기억에 남을 것이 무엇이 있을지? 많은 문화유산을 본 것은 아니니깐 나에게 적용하여 본다면, 어떤 책이 기억에 남을까? 나도 저자처럼 고민해본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구절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에서 인용되었던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에 응분(應分)하여 울려지나니” (답사기. 2 p.9) 이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되돌아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 시리즈를 앞으로도 계속 끌고 나갈 것 같다. 일본이라는 곳에 남아 있는 우리의 문화를 찾기도 하고 그들 나름대로 우리가 비추어준 빛을 자기화하여서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한 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중에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끌어들이는 보편적인 명작도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너무 극찬하면 한 쪽에서 약간의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한국인의 한계를 갖고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이국의 역사, 지명, 인물의 이름까지 친숙하지 않게 다가올 때도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런 어려움을 탓하며 외면만 할 수는 없다. 마음을 다 잡고 편안하면서도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 답사기를 다시 한번 주목하여 본다.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되어 다음 편 교토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일본편도 여력이 된다면, 오사카, 도쿄, 대마도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즐거운 답사길과 행복한 책 읽기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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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1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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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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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검색어가 무엇일까? 관심이 가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관심과 비례해서 정보를 접하는 길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 관심을 가졌던 일에 대해서 시들해지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런 것도 있었나?’ 하면서 무심히 지나가곤 한다. 시간이라는 시련 앞에서 쉽게 휘발되어버리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최근의 나의 모습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는 시간이라는 시련에서 살아남은 것. 그것을 우리는 클래식, 즉 고전(古典)이라고 부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어섰고, 시간의 무게가 더해갈수록, 점점 더 이야기를 보태지면서 한층 더 성숙하는 느낌이 드는 책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다. 이번에는 유홍준 교수가 눈을 일본으로 돌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출간되어 나온 20여 년 전이 아니라, “시즌 2”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물론 이 책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나누어주던 프린트에 읽어야 할 필독서 목록에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 이후로 도서관에 가서 읽어보려 시도하였지만, 책 겉 표지만 확인하고 서가에 그냥 넣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 이후 답사기가 계속 되고 있다는 것도 책의 겉 표지만 보았을 뿐이다.

2년 전, 우연히 들었던 강의에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유홍준 교수가 언급되었고, 때 마침 시즌 2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인생도처유상수》 가 출간되었다.

내가 변했던 것일까? 유홍준 교수의 글이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역시 모든 일이다 그렇듯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느껴서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부터 시즌 2를 시작으로 이전의 글까지 읽게 되었다.

책의 설명을 읽고, 다시 앞 페이지의 사진을 다시 보았을 때 조금 달라져 있는 사진의 모습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 문화재를 보는 나의 눈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의 좋고 싫음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여행을 많이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답사라면 망설임 없이 시작할 것 같다.

 

시작이 조금 길어졌다. 일본편의 시작 규슈지방이다. 여행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일정을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이다. 규슈를 북북와 남부로 나누어 북부 규슈 3 4, 남부 규슈 2 3일의 여정으로 답사를 시작한다.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지만, 정말로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르게 있다는 생각을 페이지 넘길 때마다 하게 된다. 특히 역사적인 사실. 시대사적인 구분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움을 느낀다. 조금 어렵게 다가올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서 책은 시대별로 답사를 시작하고 있으며, 여정에 별다른 무리가 없도록 계획되어 있다.

일본이 왜 이렇게 가깝고도 먼 이웃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p.5) 로 정리한다.

나 역시도 일본이라고 하면, 벌써 색안경 아닌 색안경. 이미 편견에 쌓여 묘한 적대감을 느끼곤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시각이며, 편향된 시각이다. 동아시아 역사 전체 속에서 한국사와 일본사를 보아야 우리의 역사도 일본의 역사도 제대로 인식될 수 있다.” (p.8) 문화라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로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없듯이 우리의 것만이 우월하다는 시각을 버리는 것에서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두 나라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 사전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비판적인 열독의 과정을 거친 것이 인상적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자칫 독선적인 시각에 머물 수 있는데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일본편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일본 속의 한국문화일본 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규슈편에는 일본 속의 한국문화에 방점이 찍고 읽게 되면, 까맣게 잊어버린 우리 역사 이야기도 되살아나고, 그때 그 시절에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도 얻게 된다.” (p.26) 장점도 있다. 여행지에서 내가 달라져 보이듯이 우리나라를 떠나서 일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쌍방적 사고의 기회도 제공해준다.

규슈편에서는 “2300년 전 벼농사를 갖고 규슈로 건너와 일본 열도에 야요이시대를 개척해간 조상들의 옛모습과 임진왜란 때 이곳에 끌려와 결국 일본에 도자기혁명을 일으키고 세계도자기시장을 제패한 우리 도공들과 그 후손의 수고로운 일생 (……) 그리고 663년 백촌강 전투” (p.322) 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이 정착한 곳은 그들이 떠나온 곳과 유사한 들판과 능선이 펼쳐진 마치 우리나라 한 구석을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요시노가리 곳. 그리고 도래인의 이민으로 “일본 열도에 문명의 서광은 마침내 2300년 전에 한반도에서 비쳐왔습니다. 쌀농사와 청동기문화가 한반도로부터 들어” (p.35) 왔다. 일본의 고대문명은 한반도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p.9) 이런 사실은 말하지 않는 유적과 출토된 유물들이 증명하고 있다. 요시노가리 유적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에 소개된 부여 송국리 유적과 비교해서 볼 만한 곳이다.

 

물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된 유적에 대한 설명,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그 문화유산 자체보다 그 곳에 가는 과정. 여정의 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특히 좋다. 문화유산에 가면서 과거 사람들이 그곳에 위치를 정한 이유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이전의 문헌까지 참고하면서 설명해주는 여정묘사가 나의 마을을 늘 따듯하게 해준다. , 계절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려주고, 최적의 시기가 언제인지 조언도 잊지 않는다.

여행의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음악이 있는 답사를 위해서 답사음반도 직접 선곡하여, 문화유산 그 자체만큼이나 그것을 보러 가는 길에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함이고, 버스 속 강의는 참으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졸 수는 있어도 도망가지는 못하기 때문에 수강자의 집중력도 높다.” (p.306) 집중력 높은 강의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여겨진다.

클래식 FM의 선곡에 훈수를 두고 (p.62), 런던 올림픽 때 선수들의 트위터 내용을 통해서 현해탄에 관해서 설명하며, (p.82) 도공의 부인으로 일본에 가서 그녀 자신도 도공이 된 백파선의 이야기가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의 이야기 (p.166)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다케오 올레가 제주 올레가 수출되어 만들어진 규슈 올레 라는 것 등. 이처럼 배우는 것 같지 않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부한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되는 것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이야기로 기억되어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개인 성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는 국사 수업도 이렇게 진행한다면 조금 더 흥미로울 수 있지 않을까?

 

규슈편에서 우리나라의 것인데, 일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것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와 도자기 관련된 기술이다. 나의 이런 생각도 당시의 정황을 모두 무시한 민족이라는 개념에 너무 치우친 인식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가장 크게 오해하는 부분도 이러한 단선적인 시각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의 추이와 당위성만 생각하고 그 변란 속에서 겪어야 했던 인간 개개인의 상황은 잊어버리는 수가 많다.” (p.178) 저자의 지적은 정말로 타당한 것이고 역사적 사실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태도이다.

새로운 문화, 고급문화를 일으키는 것은 공급자의 일이지만 그것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은 소비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 (p.174) 당시 일본에서는 다완(茶碗) 하나를 성()과 바꿀 만큼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 사회였기에 도공들의 위상도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저자처럼 아리타와 이마리의 모습에서 부러움과 아쉬움을 함께 느낀다. 일본은 우리 도자기 기술을 가져다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도자기왕국으로 발전했는데 우리는 그 원조 격이면서 왜 그러지 못했는가에 대한 한탄이다. (p.122)” “우리는 고유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고, 일본은 그 고유기술을 통째로 가져가 자신들의 위대한 도자기 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반성할 대상은 우리 자신이다. (p.123)”원조가 우리라는 이야기 말고, 다른 새로운 문화로 바꾸어가려는 노력은 우리가 일본에게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다. 몇 해전 막걸리 열풍도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문화를 놓고서 우리가 원조다.’ 라는 말보다 더 좋은 품질로 개량하려는 그들의 태도, 좋은 것이 있으면 누구의 것인가에 관여하지 않고 벤치마크 하려는 모습은 눈 여겨 봐야 한다.

 

국사 시간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백촌강전투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당시의 정세. 사실상의 오국시대 (p.7)로 봐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도 당시의 정세를 감안한 탁견이다. 민족과 민족어, 국사와 국어 등이 근대의 산물로 여겨지는 것처럼 삼국시대의 왜국이 무조건 적일 것이라는 생각에도 의문을 갖고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의 고대사와 한일관계사를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주의의 세례를 깊이 받은 우리로서는 으레 고구려, 백제, 신라는 동족국가이고 왜는 외적이라는 전제하에 고대사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은 훗날의 이야기다.” (p.220)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사진이 너무 좋은 책이다. 마치 그곳에 동행하는 느낌을 주는 소위 수다체라고 불리는 글쓰기와 현장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진이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끝으로 저자가 밝힌 문화유산의 답사 이유는 이렇다. 내가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거기에 그곳이 있기에 나는 간다. 그리고 목적지에 있는 문화유산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오가는 과정까지 답사라고 생각한다.” (p.299) 나도 저자의 이 표현을 빌리면 나는 거기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있어서 읽는다. 그리고 함께 감동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문화유산의 소개뿐만 아니라 그 속에 함께하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로 나를 이끌어준다. 앞으로 계속될 여정에 또 기대를 하면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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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30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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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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