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문 회화나무


아직 나뭇가지에 새순 돋지 않았고

봄비가 소름 돋게 할 정도로 서늘하지만

창덕궁 정문 돈화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늠름한 회화나무 세 그루가 장엄하다


주나라 때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삼정승이 정사를 논했다는 예에 따랐다

1824-1830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동궐도에 그려져 있으니 나이는 300살쯤 된다

금천 너머 회화나무를 비롯하여

돈화문 일대의 회화나무 여덟 그루는 천연기념물이다

행랑 앞 세 그루 외 다섯 그루는

400살 정도 된다


회화나무는 수백 살에서 천 살을 살 수 있다

나뭇가지의 뻗음이 조금은 제멋대로인데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하여

학자수(學者樹, scholar tree)라고도 한다

양반들은 집 앞에는 회화나무를

집 뒤에는 책 읽는 데 필요한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쉬나무를 심었다.

 

 

 

 

빗소리


박상진 선생님은 준비를 철저히 하셨다

폭우가 온다고 일기예보를 하여 방수복에 장화

추울 것에 대비하여 내복도 입으셨다

출판사에서도 대표를 비롯하여 다섯 명이나 왔다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는 셈이다


돈화문 매화나무와 복사나무

금천교 버드나무와 느티나무

봉모당 700살 향나무

구선원전 측백나무

궐내각사 뽕나무

인정전 자두나무와 박석과 조릿대


선생님의 설명을 계속 듣다가

대조전으로 가기 전에 잠시 쉬었다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땅바닥에 생긴 조그만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정겹다

성품이 어진 동화작가

임어진 선생님이 옆에 앉아 더 그렇다

도심 한복판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비오는 봄날의 풍경이 평화롭다

이런 시간을 자주 몸에 새기면

멋진 할아버지 박상진 선생님처럼

주름살도 아름답게 될 수 있으려나.

 

 

 

 

자시문 만첩홍매


대조전 화계

후원을 뒤덮은 참나무

화계의 앵두나무

성정각 살구나무와 감나무

자시문 매화나무

낙선재 소나무와 산수유와 쉬나무


나무에 얽힌 사연을 듣다 보면

소중하지 않은 나무가 없다

한결같이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시문 매화나무는 지난주에 추운 때가 있어

몽오리를 채 터뜨리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꽃망울을 터뜨린 꽃도 있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 며칠 내로 활짝 피겠다


선조 때 명나라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꽃잎이 여러 겹인 만첩홍매이다

임진왜란 때 가져왔다면 400살은 되었을 텐데

원래 나무는 죽어버리고 다시 심은 나무이다

나무도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다.



201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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