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서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갖고 돌아온 시골의사 박경철의 저자 강연회. 책의 내용 중편안한 부분들만을 발췌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책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질문에서 나왔던 것처럼 서양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해답에 가깝다. 독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만을 받아들여라. 그리스 신화라는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충분히 그 속에 얻을 것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에 함께 여행하는 느낌, 부지런하지 못해서 여행의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 정도를 준비하고 떠난 여행이니 발길이 닿는 곳마다 그 속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나에 완전히 몰입하는사람에게서 보이는 미소. 20대의 꿈을 고이 간직해서 50대에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에게도 나의 이상화된 모습의 영웅이 있는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영웅이 있어 누군가 물었을 때, 무의식 중에 준비하지 않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저자 강연회  

그리스 문명에서 길어올린 것들, "그리스의 어제와 오늘"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저자 강연회 2013년 3월 11일 (월) 19:00 @ 연세대학교 백양관

 

  오랜만에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것이라 떨리는 마음이 듭니다.   제가 그리스를 여행한다고 했을 때 저의 주변에 반응은 대체로 아래의 세 가지였습니다. ① "시간이 많구나."  ② 비행기 표 값만이 얼마나 드냐? ③ 도대체 왜 그리스인가?

 

왜 그리스인가? 

  그리스 여행의 시작은 스물 여섯 살에 우연히 만났던 책 때문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단골서점에서 제목이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 있었습니다. 눈에 띤 책의 제목은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다》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역시 책은 제목이 반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의 책 제목이 《문명의 "배꼽", 그리스》입니다. (웃음) 

  저는 성실하지는 않지만 신자입니다. 그래서 제목에 눈이 갔습니다. 위의 책을 펼쳐들 때, 옆에 같이 꽂혀 있어서 같이 딸려온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와《미할리스 대장》이었습니다.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다》를 처음 읽으면서의 느낌, 정서는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뭐지?" 뭔가 뚜렷하게 길어 올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슴 속에 뜨거운 것, 무엇인지 모르지만, 불이 확 붙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처음 책을 읽은 때부터 10년이 지나, 제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읽으니 마치, 비가 내리면서 불이 사그라드는 듯 한, 촉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다시 10여 년이 흘러서 40대 중반 의사가 되어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모든 책을 읽고나서야, 20년이 지나고 비로소 이제 무언가 길어 올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단골 책방의 서가를 둘러보던 그 청년은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다》라는 책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이름도 낯선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 그리스 작가의 책을 산 청년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단숨에 읽어버립니다. 작은 불씨가 큰 산을 태우듯, 책을 읽어가면서 그의 가슴에는 점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이 일었습니다. 마침내 그 뜨거운 불길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입니다. 그 불도장 같은 강렬함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아니 갈수록 더욱 강렬해지면서 지천명의 나이가 되기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 그리스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끔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이십대의 청년이 가슴에 새긴 꿈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한 긴 여행의 기록입니다. (...) 

 

 《문명의 배꼽, 그리스》 p.5 ~ p.6

 

  저에 대한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은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너는 누구인가?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① 의사? 진료를 보지 않으니 장롱 면허입니다. ② 경제 전문가? 경제학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③ 작가? 저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남이 생각한 것, 제가 본 것을 정리하는 사람이니 "나레이터"에 불과 합니다. ④ 그렇다고 방송인? 방송인이라고 하기에는 저의 외모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⑤ 청년 강연을 많이 하는 것을 두고 선동을 하고 다니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두리번 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이유가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의 영혼때문이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이 마치 연가시처럼 나를 지배했습니다. 

  이런 망상에 빠져있습니다. 망상이 지나쳐 지난 20년 동안 그의 저작을 읽으면서, 하나의 결심을 했습니다. "그의 흔적을 따르는 순례 여행을 해보자." "쉰이 되기 전에 시작하자." 는 나와의 약속을 했습니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이 생겼을 때, '이전에 나와 했던 마음의 약속을 지키자.'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흔적을 따르는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 우정 "모든 선의를 베푸는 것이 친구이다"

  그리스 여행의 시작은 다른 여행객들처럼 아테네가 아니었습니다. 아테네에 도착해서 고민 없이 바로 그의 고향인 크레타 섬으로 직행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공항의 이름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입니다. 

  만약, 한국의 공항이름을 누군가의 이름으로 한다면, 그게 가능할까요? 자부심을 갖는 인물은 있지만, 공항이름으로 붙이기는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50%가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크레타섬에서도 처음으로 간 곳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라는 세 문장이 써 있습니다. 

  20년 동안을 동경했던 대상의 무덤 앞에서 절을 하고, 우조(그리스 증류수)를 사다가 무덤의 주변에 뿌렸습니다. 만약, 남미에서 온 외국인 한 명이 우리나라의 윤동주 시인, 이육사 시인의 시비나 무덤에서 저처럼 행동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할까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광경이라고 생각을 해서 제가 절하는 모습을 사진을 찍으며 궁금해 하였습니다. 

  

  주변의 그리스 사람들이 놀라워하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한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인데, 내가 한 행위는 돌아가신 분에게 하는 최고의 경의를 표현하는 행위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He is my Hero." 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은 준비하지 않은, 무의식적으로 나온 대답이었습니다. 

그 무리 중에서 한 분이 나와서,

  "나는 크레타섬의 택시기사이다. 괜찮다면 내일 내가 당신을 위해 무보수로 크레타섬을 안내해주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다닌 초등학교, 그가 소꿉놀이했던 동굴 등 제가 자료를 조사하면서 알지 못하던 곳까지 둘러 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로또"에 당첨된 것 같았습니다. 

  택시기사의 안내가 끝나고 저에게 "괜찮다면, 저녁을 대접해도 되겠냐?" 고 했습니다. 

  그리스의 식사방식이 마음에 대는 것이 다른 서구 나라처럼 에피타이저 나오고, 메인요리 나오고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샷으로 다 나옵니다. 맛있게 그 택시기사의 식사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머리 속으로는 계산기가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국민소득을 계산해 볼 때, ( '썩어도 준치' 라고 그리스는 지금 비틀거리고 있지만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입니다. 망해서 3만 달러. ) 얼마를 주어야 적당할까를 계속 계산하면서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머리속의 계산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숙성된 와인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얼마를 드려야 할까?' 고민하며,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니, 제주도에서 안내받고 저녁 먹은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을 그리스의 수준에서 생각해서 봉투에 사례를 담아 드렸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완강하게 마음으로 거절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것을 거두며 물어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저에게 잘 대해주시는 것인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내게도 영웅이다. 그러니깐 우리도 친구이다." 라는 답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친구관계에서는 '물리적 시간'을 중요시합니다. 당신과 내가 학교, 생식기 친구처럼... (웃음) 그러나 그리스에서 만난 이 분은 "가치, 지향점, 철학이 같다면 친구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치가 일치하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만남을 통해서 서로 북돋우며 자극하고, 격려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렇지만, 물리적 시간의 친구와 만나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요? '검색어 1위가 무엇이더라.' 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그치기도 합니다. 

 

 

"영웅"이라는 단어

  왜 그 사람이 당신의 "영웅"인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영웅이란 나의 가장 이상화 된 나의 모습이다. 그와 부합하는 모습을 찾아 그를 닮아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시선으로 아키텍쳐(architecture) 가 아닌, 본질을 보았으면 좋겠다.

  이상화 된 모습은 무엇이고, 현재 실존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영웅이라 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모습은 우리의 가장 저열하고, 가장 저급한 욕망이 투여된 모습입니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가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영웅의 기준에 부합하나요? 

  우리에게 영웅은 우리의 내밀한 욕망만이 투사된 대상이 아닐까요? 

  나의 가치관, 나의 인생관이 같은 영웅의 대상을 찾는 것.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이상화된 모습의 영웅을 찾아야 합니다.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그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분쟁지역은 피하는 것이 여행자의 태도입니다. 총성을 듣고 저는 그곳을 피해서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을 돌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그리스 언론에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총성은 은퇴한 치과 의사의 권총자살이었습니다. 

  그리스는 현재 국민연금의 60%가 삭감되었고, 추가로 20% 삭감이 논의 중입니다. 

 

  (...) 자살한 치과의사가 남긴 유서는 다음날 그리스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나는 조국을 믿고 성실하게 일하며 연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조국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내게 이런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 

 《문명의 배꼽, 그리스》 p.5 ~ p.6


  그리스인다운 어법의 유서였습니다. 이 사건의 파장이 커져서 그리스의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를 촉발시켰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1997년 한국의 IMF 구제금융을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경제부총리가 외환위기 이후에 IMF의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는 장면이었습니다.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입니다. "스파르타식 교육"  저의 학창시절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였습니다. 석차 1등이 하락하면, 1대씩 맞는 시대였습니다. 또, 스파르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화 <300>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스파르타는 더 대단한 국가였습니다. 9,500명의 스파르타 시민이 43만~45만 명의 아테네를 정복하고, 지배했습니다. 지중해의 패권 국가로, 아테네를 공기돌처럼 갖고 놀듯 하였고. 800년간 무패의 부대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법치의 실현입니다. 스파르타는 80년 간 법의 개정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말은 법을 어기거나 법의 개정을 말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에서는 모두가 법을 지키고 싶어하고, 법은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행복

  페르시아(이란)인 여자, 그리스 인 여자들은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느낌이 듭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엘레강스(elegance)한 느낌이 듭니다. 이지적이고, 우아한 느낌. 여신의 후예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찾은 식당의 여인도 그랬습니다.

  유적을 돌아보다, 오후 3시 경에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근처 식당에 갔습니다. 56세, 55세 부부가 한국에서라면 그럴 수 없는 모습으로 코를 가까이 맞대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리였다면, "분명히 부부관계가 아닐꺼야. 불륜아닐까?" 의심을 받을만한 모양새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그 분들에게 멍청한 질문들을 하였습니다. 

① "두 분 부부이십니까?" 

    "네, 부부입니다."

② "이 식당의 주인이십니까 (당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 국립은행에서 일했는데, 경제위기로 구조조정 되고, 지금은 장인어른이 운영하시는 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중입니다."

③ "그러면 어떻게 지금처럼 행복해보일 수 있습니까? 지금 행복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내가 지금 불행해야 한다는 말하는 것인가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직장을 잃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불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인생이란 행복한 것입니다. 삶은 경이로운 것입니다. 주변에 좋은 것들이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보석같은 자녀들과 동네에 이사를 와서 새로 사귄 스무명의 친구들, 올리브 색깔 같은 바다, 지중해의 햇살처럼 행복의 요인은 별처럼 많습니다. 삶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단지, 행운과 불운이 있습니다.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것이 삶입니다 . 길거리에서 돈봉투를 주었다고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운이 좋았다." , "행운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것처럼 현재의 실직도 가끔 있는 불운입니다.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바탕이 행복이라는 것에 변함은 없습니다."

 

 

끝으로... 

  그리스에 다니면서 느낀 것 중 우리와 삶의 방식을 비교해서 더 나은 것을 채택하려 합니다. 문화, 문명, 삶을 이해하려 합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없이 3월 19일에 다시 그리스로 출국합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이렇게 모여서 함께 눈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눈 것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에 나가서는 2권을 탈고하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이런 여행을 앞으로 19년 6개월 더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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