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소극장 (사진 : 문학동네 제공)

   ‘작가와의 만남’은 산울림 소극장에서 진행되었다. 무대는 윤성희 작가님의 행간처럼 찰랑찰랑했다. 황현진 작가님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처음’의 생기로움이 물수제비처럼 튀었다. 가운데엔 한창훈 작가님이, 공기 속 어느 입자의 입질을 기다리듯 앉아 계셨다. 탁자에는 <구경꾼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꽃의 나라> 세 권이 나란했다.


윤성희 작가님 (사진 : 문학동네 제공)
 
  당신들은 무대에 우리들은 객석에 앉았다. 한창훈 작가님껜 산울림 소극장이 참 멀었다. 오시는 데 이틀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너무 넓어서 여수(에서도 거문도)와 서울은 이일생활권이다. 황현진 작가님껜 작가로서의, 윤성희 작가님껜 사회자로서의 첫 무대였기에 두 분은 자주 (따로 혹은 같이) 홍조를 켜주셨다. 참 사랑스러운 무대조명이었다. 
 

 

  

 

 
  첫 책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를 만날 수 있게 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황현진 작가님을 만났다. 작가님은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책 표지와 날개에 적힌 ‘황현진’이라는 이름이 당신 이름인지도 잘 모르겠고, 인터넷 서점에서 읽은 ‘소설가 황현진’이라는 문구가 기쁘기보다는 어리둥절하고, ‘소설가’ 뒤에 붙은 ‘황현진’라는 이름도 ‘황현진’ 뒤에 붙은 ‘소설가’라는 이름도 무서워서, 이름을 말하기도 부끄러운데 말할 거라곤 이름뿐이라고 하셨다.

 
황현진 작가님 (사진 : 문학동네 제공)

  작년 신춘문예. 황현진 작가님의 응모작 모두가 떨어져 있는 자리에 악과 깡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의도도 계획도 없이 장편을 시작하셨다. 첫날 생각보다 많은 분량이 써졌다. 왜 그랬을까. 지금까지와 달리 덜 어려웠다. 보람찼고 행복해서,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루에 열다섯 장씩 꾸준히 쓰셨고 두 달이 흘렀다. “흩어진 별들이 별자리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작가님은 지금도 그 두 달을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덧붙이고 나서 웃음도 덧붙이셨다. 작가님의 웃음 성분을 분석한다면 ‘그 두 달’이 다량 검출될 것 같았다. 

   
  한창훈 작가님이 여수에서 출발해 (황현진 작가님의 소설 무대인) 용산구 한강로 101-9번지에 가려면 며칠이 걸릴까. 실제로는 없는 주소지만 한창훈 작가님이라면 가실 수 있으리란 터무니없는 생각이 든다. 웬만해선 못 가는 그곳은 황현진 작가님이 만든 공간이다. 작가님은 “흰 종이에 매달리는 동안 스쳐갔던 것들”의 삶터 용산구 한강로 101-1~15번지를 시공했다, 흰 종이에.


  “한 번도 그 떠나는 뒷모습을 모른 체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우리, 오래, 같이, 살아요.”라고 말하고 싶어서였을 것 같다. ‘작가의 말’에도 적혀 있는 이 말은 <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 전반에 후시딘 연고처럼 스며 있는 말이다. 언제고 황현진 작가님을 다시 만나면, 그래서 그 앤, 요즘엔 어떻게 산대요? 라고 묻고 싶을 독자는 나 말고도 많을 것이다. 걔네들이요, 만생이랑 유진이랑 오선이랑 태화랑…. 미미 언니 안부도 궁금해요. 저는 만생이가 휴대폰에서 그 사진을 지우는 대목이 제일 싫었어요. 언제고 만나면 보여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외설스럽다고 안 보여주면 (작가님이 하이테크 펜을 그랬던 것처럼) 훔, 쳐, 서 보려고 했는데.


  스치거나 스몄던 인연들을 불러 모을 공간을 만든 이유를 작가님께 묻는다면, 그처럼 바보 같은 질문이 또 있을까. 그래도 묻는다면, 작가님은 웃기만 하실 것 같다. 그 웃음 속에는 어떤 성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까. 어떤 모양새로 함께 있을까. 그것은 용산구 한강로 101-1~15번지 풍경과 닮은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황현진 작가님의 웃음이 좋다. 

 

 
 


  


  한창훈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작가는 고향을 책임져야 한다고.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 생각, 환경, 상처를 써야 한다고. 당신이 책임지는 장소는 여수다. 거긴 내 고향이기도 하다. 차비도 시간도 없는데 고향에 가고 싶을 때 나는 내 책장까지 걸어간다. 거기 여수가 꽂혀 있다. 서울과 여수가 한창훈 작가님껜 이일생활권이지만 나에겐 이초생활권이다. ‘고향을 책임지는 작가’와 동향이라는 건 이토록 어마어마한 행운이다. 

  
한창훈 작가님 (사진 : 문학동네 제공)

  한창훈 작가님은 1980년 5월에 16살이었다. 술도 마시고 야구방망이로 맞기도 하고 물론 보복도 하고, 클럽에도 가입해서 패싸움은 주로 광주 황천강 근처에서 했지만, (황현진 작가님과 달리) 뭘 훔치지는 않았던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친구가 훔쳐다 주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아무렴 내가 착했겠어요?” 산울림 소극장에서 마이크 대고 하신 말씀이다. 이런 말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그러게요, 할 수도 없고, 그럴리가요, 할 수도 없고.


한창훈 작가님 (사진 : 문학동네 제공)

  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말의 양감도 질감도 모른다. 뒤풀이 술자리에 따라가 한창훈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모른다. 저 분은 아시겠구나, 싶을 뿐이다. 1980년 광주에서 작가님의 팔뚝 바로 옆을 스쳐갔던 총탄은 꼬리가 엄청나게 길었다. 별에서 별까지 거리를 (광)년 단위로 재듯, 총탄의 꼬리 길이도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다면 최소한 31년이다. “여기를, 응, 여기를 지나갔는데….” 말씀하며 팔뚝 바로 옆 허공을 가리킬 때 작가님은 아직도 스쳐가고 있는 총탄의 꼬리를 느끼시는 것 같았다. 작가님은 오랜 시간 그 꼬리를 문장 단위로 자르는 작업을 하셨다.


  1980년 5월 어느 날, 16살이었던 작가님은 띄엄띄엄 들려서 더 무서운 총소리를 들으며 네 살 많은 형과 4홉 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16살 고등학생과 20살 형은, 도와달라는, 시민군이 되어달라는 말을 들었다. 방문을 열고 호소했던 사람은 다음 집으로 걸음을 옮겼고, 남은 둘은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우리가 시민군이 되면…. 네가 총을 맞으면 내가…. 내가 총을 맞으면 네가…. 16살짜리와 20살짜리가 그런 대화를 나눴다. 결연해지고 의연해지면 술맛이 싱거워진다고 한다. 한창훈 작가님이 기억하는 그 때 그 술컵은 중국집에서 쓰는 싸구려 보라색 물컵이었다. 작가님께는, 31년이 흐르도록 금 한 줄 가지 않고 색 한 톤 바래지 않는, 지독하게 튼튼한 컵이다.


  5.18이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지 누구나 안다. 그 누구가 “오래지 않아, 대통령이 되었다(272p)”는 것도 거의 다 안다. 그러나 그날 금남로와 충장로와 도청 근처에서 공수부대를 만난 광주 사람들이 ‘그랬던’ 이유는 몰랐다. 작가님이 알려주셨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혹시 전쟁 났나요? 그게 아니라면 표지판을 잘못 읽으신 모양인데 사단 훈련장은 저 남서쪽에 있어요. 사람들이 직접 물어보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동작이 매우 재빨랐기 때문이었다. 군인들은 뛰어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184p)”


  “생생하던 사람 하나가 피를 흘리며 축 늘어지기까지가 채 삼십 초도 걸리지 않(173p)”던 현장의 폭력성이 지금은 잘게 분쇄되어 일상 속에 흩뿌려져 있다. 작가님은 한 존재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만나는 세 단계의 폭력을 쓰고 싶으셨다. 가정 폭력, 사회적 폭력, 국가의 폭력이 그것이다. 그래선지 <꽃의 나라>의 배경이 되는 모든 폭력들에는 자행된 시기도 지명도 없다. 폭력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한창훈 작가님만의 방식을 따라가 보면 5.18을 포함하는 폭력의 역사가 더 아프게 흘러온다.
  

 

 

  

 


  독자가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공부만 안 하는 모범생이었던, 술까지 마시고도 훔쳐본 건 두부 한 모가 전부인 윤성희 사회자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창훈, 황현진 두 작가님을 괴롭힐 만한 질문을 해주시면 고소할 것 같아요.”


윤성희 작가님 (사진 : 문학동네 제공)

  좋은 질문들을 거쳐 한창훈 작가님은 좋은 답들을 들려주셨다. 작가님은 섬이라는 변방에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모습과 언어들을 보았고, 이번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이거구나 싶어 작가가 되셨다. 유머는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서 환경이 고통스러울 때 발달한다고 하셨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고통을 통과한 유머’는 첫 책 <홍합>부터 <꽃의 나라>까지 그득그득하다. (이 문장을 책임지기 위해 어서 마저 읽어야겠다.)


황현진 작가님 (사진 : 문학동네 제공)

  “시를 못 써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문을 연 황현진 작가님은 소설은 시와 다르게 한 문장 한 문장 쌓이는 게 보람찼다고 하셨다. 시를 쓸 때는 하루하루가 아까웠는데 소설이 구해주었다고. 어떤 독자님이 주인공이 남자인 이유를 물었다. 작가님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구였다고 하셨다. 유진이나 오선 혹은 다른 XY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속편을 읽고 싶어진 독자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님이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객석 어딘가에 만생 군이나 태화 군, 오선 양, 유진 양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난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참 기대된다. 즉슨 기다려진다. 


 

 

 

  


  ‘작가와의 만남’은 정말 재미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윤성희 사회자님의 역량 덕분이었다. 당신들의 소설 못지않게 재미났던 몇몇 대화를 캡처했다. 덧붙이며 글을 마친다.
 

윤성희 : 황현진 작가님은 <꽃의 나라>에서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황현진 :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창가에 갔다가 돌아온 주인공이 내심 찝찝해 하다가, 아, 키스를 못해서 그렇구나! 하고, 밤중에 되게 안타까워하는 장면이요. (웃음)
윤성희 : 나도 그 장면이 좋았지만 ‘그렇게’ 웃음이 나진 않던데.
황현진 : 한창훈 작가님의 경험담이 아닐까 싶어서요.
한창훈 : 그건 절대 말할 수 없지.



한창훈 : <꽃의 나라> 쓰면서 완전히 진이 빠져서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해. 놀고 싶지. 생각이 고이도록.
윤성희 : 노는 것 중요하죠. 자기만의 스타일로 잘 노는 작가가 좋은 작가예요.
황현진 : 그건 자신있습니다!
한창훈 : 이 행사 끝나면 슈퍼에서 소주 세 병만 훔쳐 와.
윤성희 : 황현진 저 친구는 골뱅이도 훔치다가 걸렸더라고요.


 
한창훈, 황현진 작가님 (사진 :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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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화현 선생님의 강연에 대녀와서
    from 뚱단지 공작소 2011-10-15 21:35 
    집을 나서려는데 우박이 내리고 비가 퍼붓는다. 아이 둘까지 달고 가야하는데,,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첨가보는 길 딸린 아동 둘 비오고 바람불고 딱 2분간 고민하다가 그냥 집을 나섰다,오랜만에 가보는 홍대앞 정말 젊은 기운이 푹푹 풍긴다. 길치로 여기저기 물어가며 찾아간 마포 평생학습관, 점심 못먹어 배고프다는 아이들 일단 근처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서 먹이고 도서관 어린이실에 집어넣고 5층으로 갔다.아... 없다. 사람들이 너무 없다, 비가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