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 강연회날인 줄 알고 있다가 하마터면  길을 나설 뻔 했었다. 하여튼 가을에 건망증이 더 심해진다니깐. 
  일요일,이름도 낯선 6호선 광흥창역 2번 출구에서 내렸는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 서둘러 택시를 잡고 서강도서관에 가자고 하니 기사님도 잘 모르신다며 요리조리 둘러보는데 글쎄 2번 출구 바로 앞이 목적지였다.  아까운 택시비만 나갔다. 우린 2번 출구에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 올라 오느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가까울 줄이야...어딜 가면 꼭 이렇게 한 번씩 일이 꼬인다. 

일찍 가서 좋은 자리 맡아야지 하던 야무진 꿈은 깨지고 뒷자리만 남아 있었다.  딸은 앞에 쭈~ 욱 전시된 이보나씨의 그림책을 구경하고, 난 얼른 자리를 잡았다. 뒷자리마저 놓치면 서 있어야 할 듯하여. 

 

이번에 도서실에 들어올 책도 몇 권 보인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되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바로 이보나씨 남편분과 큰 아들이었다. 용기 내어 사진 좀 찍을까요?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맨 마지막 아들에게만 살짝 말하여 사진을 찍었다.   남편분과는 사진을 못 찍었다. 부인이 하시는 말을 워낙 열심히 들으시는 바람에 중간에 사진 찍자고 하면 방해할까 봐 꾸욱 참았다. 부인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는 게 역력히 보였다. 가족이 함께 사인회에 오셔서 인터뷰도 하시고, 진행자가 무리하게 시킨 즉석 요청(폴란드 동요 부르기)도 거절하지 않고 열심히 해 주시는 걸 보고 감동 받았다.  이보나씨 말이 가족들은 한국에 오면 열심히 관광 다니시고, 자신은 서점에 가서 한국 책들을 구경하신다고 .... 한국 그림책들은 수준이 매우 높고 볼료냐 등 국제 도서전에 나가면 정말 한국책들이 굉장히 우수하단 걸 느낄 수 있다시며 그 중 권윤덕 작가님의 <꽃할머니>와 유주연 <어느 날>을 뽑으셨다.  둘 다 나도 무척 좋아하는 책이라서 반가웠다.

 

 

 

 

 

 

 

우리나라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특히 막걸리, 소주, 김치 등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자신이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고 하셨다.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다.

 

강연회 초반에 한 가족이 낭송해주는 이보나씨의 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를 감상하였다. 끝까지 읽어 보진 못했었던 책인데, 엄마가 아끼던 식탁보에 그만 이렇게 다리미 자국을 남긴 딸이 엄마에게 야단 맞을 걱정을 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주 기발한 그림책이었다.  작가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그걸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가는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고 한다. 책 내용 속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그건 비밀!  이렇게 딸의 실수와 잘못까지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넉넉한 부모가 되어야 할 터인데....

 

 

  

 



두번 째로 읽어 준 그림책이었다. 상상 그림책 3번째 시리즈로 생각, 상상력, 창의력이 과연 어디서 오는 지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 과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그림책이었는데 누구나 한 번은 모두 해 봤을 질문. " 어디서 생각이 오늘 걸까?"를 진지하게 고찰해 보는 그림책이었다. 작가는 상상 그림책 시리즈가 그림이 단순하여 쉽게 보이고, 그래서 작업도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그림책들이야말로 더 생각을 오래, 많이, 논리적으로 해야 해서 더 어렵다고 하신다.  특히 단순한 형태들에 뭔가를 덧붙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용을 담아 내야 하고, 그 내용이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마저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에 몇 배 더 힘든 작업이라고 하신다. 

  

 

상상그림책 시리즈 중 나머지 하나는 바로 나에게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게 해 준 이 책이다.<학교 가는 길> 원제는 <내 발자국>이었다고... 



 

  

 

 

 

 

 

  이보나씨와 통역자 이지원님의 나긋나긋한 말이 참 인상적이다. 귓속말처럼 작게 속삭이는 것이 항상 소리 지르는 아이들과 생활하는 나로서는 참  낯설었지만 저렇게 말하는 데도 다 들리고 통하는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작은 소리로 교실에서 말하면 좋으련만 발표할 때와 떠들 때 목소리 크기가 마구 바뀌곤 하니....이보나씨는 굉장히 여성스럽고 수줍음이 많아 보이셨다.

  폴란드 작가가 어떻게 한국과 인연을 맺어 한국에서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바로 이지원 번역가님의 노력 덕분에 논장이라는 출판사와 인연을 맺어 이 곳에서 이보나씨의 그림책을 첫 출간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는 출판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다른 출판사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15권의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는데 정작 본국에서는 자신의 그림책이 유명하지 않다고....  가장 재미있게 작업을 한 그림책은 바로 <생각하는 ABC>이란다. 이번에 우리 도서실에도 비치하려고 주문을 넣었다.  먼저 출간한 <생각하는 ㄱ ㄴ ㄷ>은 전혀 한글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책인데 그만큼 작업이 어려웠지만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논장 출판사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나중에 사인을 해 주시는데 일일이 한글 이름을 그려 주시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동 받았다. 나중에 사인 받으신 분들은 아마 한글 이름을 못 받으셨을 지도 모른다. 이보나씨가 너무 힘들어하셔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 딸이 용감하게 질문을 했다. 쟤가 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나 궁금해졌다. 아이가 질문을 하기 전에 이보나씨가 자신은 미술학도이지만 수학을 잘하고 좋아했다면서 예술쪽 사람들도 수학을 잘하면 좋겠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 딸이 그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 제 꿈은 예술쪽인데요 꼭 수학을 잘해야 하나요?" 이렇게 질문을 한 것이다. 장안이 웃음 바다가 되고, 이보나씨도 급히 손사래를 치시면서 " 절대 아니라고,  수학 못해도 된다고... 예술하는 사람 중에 수학 못하는 사람 많다고"  아이에게 용기를 주셨다. 만인에게 웃음을 선사한 우리 딸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이렇게 주눅 들지 않고 어디서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쭈욱 그렇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분들의 질문과 이보나씨의 성의 있는 답변이 계속되었다. 오신 분들중엔 편집자도 계시고, 사서도 계시던데 일반인인 내가 당첨된 게 완전 행운 같아 보였다. 그런데 하루 지나고 나니 질문과 답변이 생각이 잘 안 난다. 메모를 했어야 했는데.... 어서 그 습관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따. 이보나씨가 독자 모두를 공동 저자로 생각하여 이야기의 끝을 항상 본인이 일방적으로 끝맺는 게 아니라 독자도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열어 놓고 있다는 바로 그 말씀이었다. 언제 아이들과 함께 <학교 가는 길>을 읽고 발자국을 가지고 여러 가지 창의적인 생각들을 끌어내 봐도 좋겠고, <생각연필>을 읽고 연필에서 연상되는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 이보나씨의 말대로 공동 저자로서 이런 작업들을 함께 해 보면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어디서 오는 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사인 또한 아주 정성스럽게 해 주신 이보나씨와 함께 오신 남편과 큰 아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하고, 이렇게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신 논장과 알라딘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꼭 하고 싶다.  

딸이 가져 간 책 <마음의 집>에는 김희경 작가님의 사인이 들어 있어서 그걸 보여 드리니 매우 반가워하셨다.  

 

 질문하는  딸의 모습

 

 

 

 

한글 이름을 보고 열심히 따라 그리시는 이보나씨

 

 

  

사인 받은 후 이보나씨와 함께 

 

 

 

 

 

 

  



 

 

 

 폴란드 노래 부르는 이보나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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