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심리학책을 참 많이 읽은 것 같다. 시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책으로 이해해보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나고 나니 나를 인정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안정을 많이 찾았다. 사람 때문이든 일 때문이든 심리적 압박이 올 때 제일 먼저 나는 심리학책을 쥔다. 이 행동이 지나쳐 다 아는 내용임에도, 또 구매하거나 새로운 심리학 신간이 올라오면 꼭 눈도장을 찍는다. 이번에 찍힌 책은 최병건 신경정신과 의사의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는 책이다. 책 소개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마음을 알기 위해서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위안을 얻거나 마음의 문제를 파악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마음을 외면하는 방법으로서 독서를 택한 것이라고 한다. 진짜 마음을 알아가기란 어렵고 두렵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 자신의 마음을 끼워 맞추고는 자신의 마음을 찾았다며, 깨달음을 얻었다며, 치유와 성장이 그럴듯하게 이뤄진 것처럼 말한다. 물론 당사자들이 이런 거짓말을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들키기 싫은 마음이 그들을 조종한 것이다.'
 


이 글을 보고 뜨끔했다. 그래서 저자와의 만남을 신청했고, 7월 6일 저녁 7시 30분에 신촌비즈 센터를 찾아가게 됐다. 저자 최병건씨의 처음 계획은 단촐하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신청자가 너무 많았단다. 그래서 신청자를 모두 수용하고, 강연형식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덕분에 준비된 게 없다고 했는데, 정말 생각나시는 데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약간 뜨는 느낌이 있기도 했다.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의 차이, 생물의 진화에서 시작된 신경계-뇌 변화에 대해 설명을 했다. 마음을 이해하는데, 철학적 인문학적 사유보다는 진화생물학이 더 유용하다고 한다. 생명 중추부터 본능을 관장하는 뇌, 감정을 이해하는 뇌, 합리적 이성의 뇌까지 순서대로 설명을 했다. 강연 중간에 최근에 벌어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을 화제로 무의식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동안 책으로만 이해하던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명징하게 이해하게 됐다.

해병대 폭력문화에 자의든 타의든 가담하게 된 사람들은 “안보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폭력도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 자체가 자기 자신도 모르고 말하는 무의식적 거짓말이란다. 기강을 잡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은 남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말 그대로 ‘그냥 못된 사람’이라고 했다. 저자가 단호하게 말하는 데 속이 시원할 정도였다. “나는 너만 보면 화나!”, “네가 일을 못하니까 혼나는 게 당연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예로 더 들 수 있다. 이 말은 진실도 거짓도 아니란다. 제 3자의 눈으로 봤을 땐 ‘그냥 뿜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가 낮은 성적표를 받아온 자식에게 “내 미래가 걱정이 돼서 화난다”라고 하는데, 사실은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화란다. 속으로 더 들어가보면 00엄마한테 기죽겠구나, 내 인생에 아픔이 생겼구나 등의 생각이 든단다. 이때 ‘애 성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라고 자기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애를 팰까?’도 아니다. 그렇게 마음 밖에서 답을 찾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마음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가 가장 좋단다.

편견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잘생긴 사람을 보면 좋은 느낌이 드는데, 이건 본능그대로라고 했다. 이와 달리 문화적 편견은 좀 재미있다. 예를 들면 백인을 보면 괜히 훌륭해 보이고, 동남아시아인을 보면 괜히 모자라 보이는 것이다. 이때 운동권은 편견은 안된다,  편견을 행동으로 옮기면 안 된다고 속박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 분석쪽에서는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보자고 한다.

무의식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과대망상에 혁명을 준 위인을 얘기했는데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드 이야기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강연 2시간 중에 50분이 지나서부터 독자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이게 더 흥미로웠다. 다른 정신과 교수의 강연을 듣고 와서 비교 설명을 하는 독자가 있었다. 앞의 내용은 정확하게 들리지 않아 기억이 안 나는데, “하지현 교수에게 들을 것인데, ‘인간관계를 너무 이상적이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중학생 아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걱정하는 어머님 질문도 재미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스트레스 지수가 아주 낮단다. 그래서 인생 목표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걱정이 크다고 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스트레스가 지나친 것도 문제지만 너무 없는 것도 걱정이겠다 싶었다. 헌데 최병건씨의 날카로운 질문에 놀랐다. “아이의 성적이 어느 정도시죠?”라고 하는 것이다. 대답을 망설이던 어머님이 “상위 10%”라고 하는데 강연장이 술렁했다. 역시 정신과 의사라 다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놓은 답는 “나도 최근에야 내 인생의 목표를 겨우 찾았는데, 중학생이 벌써 인생계획을 설정하고 날을 세워 실천하는 게 더 이상하고 무서운 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느 여성독자분이 “책에 나오는 병적인 성격들이 모두 나에게 적용돼서 놀랐다”고 했다. 저자님의 답은 “병적인 성격을 읽고 고르게 1~2개씩 적용되는 건 건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중에 1가지 성격에 많이 적용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니냐?”고 했다.

강연 마지막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심리학책이 시중에 너무 많다며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마음을 돌보는데 있어 대량생산되는 치료법은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심리학에 있던 개념인데 팔릴만한 내용을 뽑아 편집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심리학책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했다. 일기나 글쓰기도 권했다.

친구와 동석한 자리였는데, 친구가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나도 물론 좋았다. 특히 저자님의 잘생긴 외모와 차분한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책날개에 사진이 없었는데, 강연장에서 직접 볼 수 있어 행복했다. 

[토즈의 가장 큰 홀이라고 했는데 청중이 가득 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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