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오다. 

(원문은 블로그로. http://hwanyou.net/664)





알라딘을 통해서 <황석영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참석 할 기회를 얻었다. 내년이면 문학인생 50년, 롤러코스터 같았던 인생 만큼이나 최근엔 시끄러운 소리도 참 많았다. 알고 있다. <강남몽> 표절논란도 그랬고, 정치참여 논란도 있었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냥 나는 내가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 <낯익은 세상>을 집필한 작가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나는 그 자리에 참석 할 수 있었고, 그 날은 태풍이 지나가고 간만에 하늘이 개었던 날이기도 했다.



작가와의 만남이 열리는 곳은 정독도서관. 가는 길목엔 이렇게 가로등마다 배너가 달려 있었다. 유월의 비를 잔뜩 머금어서인지 더 푸르렀던 앞뜰을 지나 시청각실이 있는 1동으로 직행. 여유있게 온다는 것이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일찍 부지런 떤 사람은 앞 줄에 앉을 수 있다는 것! 30분이나 먼저 입장해서 일단 세팅된 무대를 한 컷 담아보았다.

소설 <낯익은 세상>은 '꽃섬'이라 불리는 쓰레기장이 주 무대이다. 거대하고, 흉물스럽고,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나는 쓰레기매립지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도시의 산동네 판잣집에서 살던 열 네살 소년 딱부리는 엄마와 함께 '꽃섬'으로 들어오게 된다. 희망과 행복만 있을 것 같던 '꽃섬'이라는 예쁘장한 이름과 달리 딱부리의 눈에 비친 '꽃섬'은 사람들의 욕망으로 가득찬 곳, 그 욕망들의 찌꺼기들이 버려져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중심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곳에서마저도 사람들은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고, 좀 더 값이 나가는 쓰레기를 찾아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코를 비틀어 쥐게 만드는 악취가 진동하는 그 곳이 '낯설다'고 할 것이 분명하지만, 결국엔 그 곳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아주 낯익은 세상이라는 것을 딱부리는 열 네살 나이에 알아 버린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사람들은 그 곳에 몰려 들었고. 어른이나 아이 너나 할 것 없이 상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입고, 먹고, 누울 공간만 있으면 그 곳이 쓰레기장이라도 괜찮았다. 그 곳도 삶의 터전이었고, 다닥다닥 붙은 오두막이라 해도 내 집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딱부리의 엄마도, 그 곳 사람들처럼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삶의 희망을 캐내려 애썼다. 엄마는 돈을 캐고, 딱부리는 슬픔을 뒤지고 있다.

 

황석영 작가 옆에 함께 자리한 김나영 평론가가 물었다. '낯익은 세상'이라는 장편은 한 숨에 읽고, 한 번 더 읽고 싶게 되는 소설이었는데, 왜 제목을 '낯익은 세상'이라 붙이시게 되었는가, 하고. 작가님의 대답을 듣자니, 이 소설의 원제는 "풀꽃" 이었다고. 그러다보니 너무 생태적, 환경 운동적 냄새가 나더란다. 그래서 몇 가지 제목을 생각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세상이 낯설다는 걸 아이러니 처럼 뒤집고 싶었다고. "낯설긴 뭐가 낯설어. 니가 만들어 놓은 세상인데."
과거 쓰레기로 가득 뒤덮였던 곳은 흙으로 뒤덮여져 새로운 공원으로 거듭나고, 쓰레기 더미에 몰려드는 파리떼처럼 자본주의의 냄새를 맡고 그 곳에 새로이 높이 솟은 빌딩과 아파트를 향해 사람들은 몰려든다. 낯선 세상이 낯익은 세상이 되고, 낯익은 세상이 또한 낯선 세상이 된다. 두 세상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존재한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엄마가 꽃섬으로 자신들 모자를 이끈 아수라 아저씨와 방을 함께 쓰는 사이가 되면서, 딱부리는 아저씨의 아들 '땜통'과 형제사이가 된다. 딱부리는 땜통을 통해서 알게 된 빼빼엄마와 만물상 할아버지, 도깨비 김서방네 가족 이야기를 알게 되며 소설은 전개가 된다. 소설은 꽤 빠른 흡입력으로 독자를 '꽃섬' 한 가운데 데려다 놓는다. 거기엔 쓰레기더미를 뒤지다 죽은 동물 사체를 보고 놀라는 엄마도 있고,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어 보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아수라 아저씨도 있다. 호기 좋은 친구 두더지도 있고, 시간이 되면 발작을 하고 버드나무 할미로 변하지만 어쩐지 따뜻한 빼빼엄마도 있고, 한 없이 사람 좋을 것 같은 만물상 할아버지도 있다.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를 물었을 때 꽃섬에는 사실 계급도 존재하고, 선과 악도 존재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고, 있는 그대로 보고 흡수할 수 있어서 그리하였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보는 세계가 그렇다고. 상황이나 조건을 객관화 시킬 수가 있다고. 소설이 시대적 배경도, 장소적 배경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도 모두 추상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큰 보편적 틀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간중간 질문에 답을 하시다가 갑자기 질문이 무엇이었냐고 되묻기도 하시면서 웃음을 주기도 하셨다. 소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은 9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중간에 좀 답답스런 질문도 몇 개 있었지만(책에 관한 질문만 하면 안 되나. 사실 이 책의 내용에 관해서라면 작가님께 궁금했던 질문들이 많았는데 그런 시간들이 빼앗겨 아쉽다. 가령 이 책 말고 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든지, 뜬금없는 정치관련 루머에 대해 이야기한다든지.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질문들에 대해서 성의껏 대답해주셨다. 열심히 적고, 기억했고.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작가님은 오히려 강남몽을 쓰면서 강남 중산층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 보다 하층민을 그리는 것이 더 쉬웠다고. 영등포에 살던 어린 시절에 봤던 직접 풍경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그러다 보니 우리가 '아닌 척'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할 말이 많아졌다고. 치우고, 소독하고, 은폐하고, 문명화 하는 과정에 대한 것들.

지금 가난을 모르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책도 많이 읽고, 20대가 자기 문제에 박 터지게 고민하고 싸우라"는 것. 자기의 생존, 자기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맨 손으로 되는게 어디있어."   



환유, 라는 이름을 보시곤 성이 "환"이냐고 물으신다. 그건 아니고, 닉네임이라 말씀드렸더니 비유, 대유.. 할 때 그 환유냐고 물으셔서. '즐겁게 놀다' 라는 한자 뜻의 의미로 쓴다고 말씀드렸다. 즐겁게 노는 것, 중요한 거라고 웃으시면서 사인을 남겨주셨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된 시대. 시대적 배경도, 공간적 배경도 소설 속에서 추상화 된 '꽃섬'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어쩌면 욕망으로 가득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에, 고개를 돌리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일런지도 모른다. 작가의 날은 무디어졌지만, 따뜻하고, 정겹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같기도 하다. '꽃섬'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보면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서 소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주인공 '딱부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보면 하층민의 삶 속에서 자란 소년의 성장동화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명 이 책은 쉽게 익히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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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니 2011-07-0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희가 가까우시지만, 말씀하시는 것 보면 열혈청춘이시지요! 교보문고 싸인회서 봬서 신청은 안 했지만, 환유 님의 좋은 후기를 읽고 보니, 갈 걸 그랬나, 살짝 후회도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