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비평가 이재현의 [인문학 사용법] 특강
특강일시 : 2010년 10월 28일 7시30분
특강장소 : 정독도서관 시청각실
"몰라도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인문학에 대해 내가 평소 갖고있던 생각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딱 이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 TV나 책을 통해 인문학에 대한 강의를 접하고 나면 자꾸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린다.
몰라도 되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
바로 호기심이었다.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
도데체 인문학이 뭘까. 뭘 말하려는 학문일까.
이런 나에게 구미가 당길만한 강연회소식이 들렸다. 제목부터 다름아닌 <인문학사용법 특강>
10월의 마지막 목요일 특강이 열린 곳은 바로 정독도서관.
고등학교때 시험공부를 하러 종종 들렸던 그 곳. 여고시절의 꿈과 추억이 깃든 장소였다.
졸업 후 처음 찾은 도서관에 가니 시간을 거슬러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마냥 수업들으러 가는 기분이랄까.
10분전 쯤 도착한 시청각실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작가님께서 미리 준비해놓으신 강의 메모 종이를 받아들고 볼펜을 꺼내들고 귀를 활짝열고 기다렸다.
지식비평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웬지 양장을 입고 등장하실 것 같았던 예상을 깨고
현장에 계신 영화감독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편안한 캐주얼 복장이라는 뜻^^)
작가님의 특강 1시간+ 독자들의 질의응담 30분으로 진행된 특강은
그야말로 대학교에서 인문학교양강좌를 듣는 듯 했다.
두 귀로는 강의를 들으랴, 손으로는 필기하랴
틈틈이 화면쳐다보랴, 작가님과 아이컨텍하랴 몹시 바쁜 1시간이었다.
간략하게 강의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1. 초등학교 현수막에 걸린 "목숨을 걸고"와 독일 집단수용소 정문에 걸린 "Arbeit macht frei" 이야기.
- 필사적으로 열심히라는 뜻이 와전된 것임을 알려주심.
2. Jedem das Seine의 역사
- 플라톤과 키케로 그리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 분배해야 함을 강조.
3. 공부,교양,인문학적 소양이라는 개념의 역사
- School과 negotiation의 어원은 모두 여가에서 시작되었음. 즉 공적인 일(공부,비즈니스)을 하려면 여가가 필요함.
4. 각자의 것과 사회적인 것
- 버지니아 울프는 연간 5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선언. 자기만의 공간(Room)은 개인이 해결해서는 안될 문제임.
5. 덧붙여, 요즘처럼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지식이 어디에 있으며 그 지식을 어떻게 찾을것인지를 알고있으면 된다고 하심.
그리고 인문학은 개별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다루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해주심.
사실, 필기해온 내용을 모두 적으려면 이걸로도 모자란다.
작가님께서 쉬지않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셔서 채 적지못한 말도 많았으니까.
1시간 동안 빠른 템포로 강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해오신 내용을 다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이 만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작가님은 지식비평가라는 타이틀이 싫다고 밝히셨는데,
강의를 듣고 나서 보니 깊고 넒은 지식을 가지신 분이신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원어를 직접 번역도 하실정도로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지니신 작가님 덕분에 좋은 강연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가득 채운 강연을 계속 하게 되지 않으실까.
이 날 정독도서관을 나서는 내 마음속에는 다시 한 줄이 새겨지게 되었다.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몰라도 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