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드 번콜’이라고 했던가?
주인공 남자의 두툼하면서 살짝 벗겨진 입술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 보다 더 인상 깊었다면 누가 나를 속물이라고 흉보려나?
암튼 주인공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에 끝없이 시선이 머물던 영화였다.
그의 어눌한 듯한 발걸음
뭘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氣 수련 모습
그리고 꼭 두 잔을 시켜 마시던 에스프레소 커피
또 장면마다 미술관을 찾아 그림을 보며 다음 수행과제를 연관 시키던 퍼즐 같던 게임.
그를 감히 누가 킬러라고 말 할 수 있으리?
전라의 여인이 옆에 있어도 돌부처로 지내는 냉정하면서 자제력 있던 남자
그런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아무리 의뢰인의 통제나 지시가 엄격하더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라면, 정말 나라면,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난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니까.
암튼 내 인생에도 나를 위해 모든 걸 자제하고 행해주는 그런 충실한 남자 한 명이 있다면
인생 성공 한 거 아닐까?
근데 그는 왜 그렇게 묵묵히 긴 여정을 걷게 됐던 걸까?
영화엔 나오진 않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게 킬러의 운명인 건가?
아! 잔인한 킬러의 운명이여~
펼쳐지는 장면 장면이 모두 미술 작품을 보는 듯 했고
가끔 잘 그려진 정물화를 바라보는 듯 했다.덕분에 영화를 감상한 게 아니라
잠시 미술관엘 다녀온 느낌마저 들 정도로.
특히 두 개의 성냥갑은 두 잔의 에스프레소만큼이나 인상적인 매개체였다.
중간 중간 나오던 의미 있던 대사들
중간 중간 나오던 ‘스페인어 잘해요?’ 라는 식별 문구.
어찌 보면 무척 단조롭고, 많이 절제하고 축약된 영화같다.
중간쯤 부분에서 스페인 배우들의 공연 장면은 밋밋했던 전개에 잠시 고요하던 나를 울컥하게 하는 마력을 뿜어냈다.
역시 음악이나 예술은 만국 공통어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잠자고 있던 감성이나 알 수 없는 맺힘을 툭 건드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지시와 반복되는 설정엔 잠깐잠깐 지루함도 없지 않았고
잠시 왜 이렇게 밋밋하게 그려놓았을까?
왜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 해 주려는 가 싶기도 했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잠깐 잠깐 영화 속의 장면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져들 게 한다는 거다.
그것 참 아이러니 하게 말이다.
영화의 기승전결에 연연한 나머지 영화 그 자체를 제대로 못 본 건 아닌가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이런 이상한 기분은 대중적인 영화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묘한 여운내지는 감흥이라는 건가 보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편안한 소파에 앉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처음 소극장을 찾았을 때 너무 작은 규모에 놀라 잠시 실망감도 있었지만
‘리미츠 오브 컨트롤’ 같은 영화는 작은 규모의 극장이 오히려 잘 어울리는 외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킬러가 등장함에도 전혀 액티브한 킬러 영화 같지 않고,
動적인 영화 같으면서도 엄청 情적인 영화 한 편을 느긋이 감상한 듯하다.
평소 즐겨보던 드라마도 포기하고, 먼 길도 감수하고 간 것을 크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게다가 한 편의 영화를 보며 함께 공감하고 영화 이야기,삶 이야기,우리들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던
동행인이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였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자막에 그려지던 인상 깊은 문구를 적어 본다.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꼭 묘지에 가봐야 해요’라던.
난 최고가 아니기에 꼭 묘지에 가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가끔은 위, 아래 없이 모두 낮게 묻혀 있는 이름 모를 묘지에 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지 앞에선 누구나 숙연해지고 겸손해질 테니 말이다.
암튼 이 영화는 제목(Limits of Control)과는 정반대의 세계를 꿈꾸는 영화 같다.
인간의 삶에 있어 통제 보다는 자유를 선택하게 하는 뉘앙스를 주는 영화랄까?
그러고 보니 내가 늘 꿈꾸던 세상과 너무도 흡사한 듯하다.
난. 너무 지나치리만치 방임적인 자유를 추구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삭 드 번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