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저녁 7시 홍대 근처에 위치한 '살롱 드 팩토리'에서 정이현 작가와 독자들이 만났다, 라고 하면 얼마나 재미없는 한 마디가 될까. 그 공간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과, 그 시간에만 공유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은 감춰지고 마는 것. 정이현 작가님의 <너는 모른다>에서 '강원도 홍천에서는 일가족이 탄 승합차가 눈길에 뒤집히는 교통사고가 났다. 사망 1명, 나머지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가족 중 누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외톨이가 되었는지는 보도되지 않았다.(p97)'는 구절에 밑줄 긋고 따로 기록까지 해두었던 나로서는 그 순간을 이렇게 스러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기록해두어야지. 기억하기 위하여.
+ 같은 책, 다른 눈.
행사는 작가님의 낭독으로 시작되었다. 밍과 옥영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던 그 장면을 작가님이 단아한 목소리로 읽어주실 때, 얼마나 낭만적이던지! 밍과 옥영처럼 대만에 있을 때는 한국을 향해있고, 한국에 있을 때는 대만을 향해 있는 화교들. 두 세계에 양 발을 담그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실감나게 담아내기 위해, 작가님은 이곳 저곳을 취재도 많이 하셨단다.
그리고 이어지는 낭독들. 이번 행사의 진행자는 인터넷상에서 유지와 '하울카'가 만나는 장면을, 뒤이어 작가님이 유지와 '하울카 언니'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장면을 읽어나갔다. 온라인의 관계가 오프라인의 관계로 넘어간 그 순간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가 몹시도 인상적이었다.
“환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환상이 소멸하는 순간. 그것이 일상이죠.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유지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요.”
뒤이어 독자들의 낭독도 이어졌다. 어느 독자는 혜성과 다희가 만난 장면을 읽으시며 나중에 다희같은 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하셨고, 다른 독자는 상호 앞에 자신의 장기를 사달라고 몸을 내던지는 사내가 등장하는 부분을 낭독하며 작가님께 "등장인물들을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대하기가 어렵지 않으셨냐?"고 묻기도 하였다.
낭독을 들으며 내가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라 접어두었던 페이지들을 만나기도 하고,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친 장면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너는 모른다>를 읽었지만, 결국 모두들 자기만의 눈으로 읽어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사는 우리네들을 보고, 작가님은 '너는 모른다'라고 이야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작가와의 만남이 소중한 이유 ? 대화
낭독에 뒤이어 자연스럽게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작품과 작가를 비롯해 각종 주제들을 넘나들며 궁금증을 쏟아내는 독자들에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성실히 답해주려 애쓰신 작가님. 급하게 휘갈겨놓은 메모로만 남겨두기가 아까운 그 질문과 답변.
Q. <너는 모른다>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A.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 마음의 문을 닫고 ‘나를 모르지?’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타인의 마음을 돌보려고도 하지 않지요.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은 그러한 마음이 바뀌는 순간이 오면서 끝이 납니다.
Q. 작가님의 작품들은 늘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관계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A. 여고, 여대를 나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자들은 삼삼오오 끼리끼리 무리지어 다니지요. 저도 그렇게 다니기지는 했지만 약간 느슨한 관계를 유지했어요. 관찰자처럼 그 무리 내의 관계를 관찰했던 것이죠. 또 누가 나랑만 밥먹고, 나랑만 놀자며 단짝을 하자고 해오면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관계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아, 인상적인 기억이 하나 있는데. 대학 개강 첫날이었어요. 교수님께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첫 번째 강의 시간을 마치버리셨어요. 두 번째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을 다른 동기들과 ‘넌 어느 학교 나왔니?’같은 질문으로 채우다가 어색해져서 나와버렸어요. 그 때 오락실에 가서 혼자 게임을 했는데, 혼자 있는데도 그 게임이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어요.
Q. <1Q84>를 보면 작가들의 삶이 굉장히 정갈하게 나오는데 작가님은 어떠신지, 출간된 책을 받아보면 느낌이 어떠신지요?
A.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정갈하게 살 수밖에 없어요. 몹시 예민하기도 하지요. 우선순위가 소설에 있으니까요. 출간된 책은 잘 읽지 않아요. 자꾸만 빼버렸으면 하는 문장들, 잘못 넣은 것 같은 조사나 부사가 눈에 보여서 절망감이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말이죠. 물론 10년 후쯤 보면 또 다를 수도 있겠지요.
Q. 작가는 신의 창조력을 가지려 했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작가님도 그렇게 고통스러우신지요? 그래도 행복한 순간이 있으니 쓰시겠지요?
A. 신의 창조력이라니. 생각도 못해봤어요. 저는 늘 ‘나는 왜 이렇게 보잘것없는 인간인가?’하고 생각하거든요. 고통과 행복의 비중을 보자면 9:1, 아니 95:5정도? 그런데 그 쾌감이란게 대단해요. 마라토너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대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는데, 30km쯤 뛰고 나면 몸은 너무 힘든데 쾌감이 있다는 거죠. 소설 작업도 그래요. 몰입하던 중의 그 쾌감의 순간은 좁고, 깊고, 강렬하죠. 그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Q. 작업방식은 어떠세요?
A. 폐인과 프로페셔널의 차이는 자신의 시간을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있죠. 전업작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주로 오전 시간에 작업을 많이 해요. 돌아보면 자고 나서 막 깨어난 직후에 쓴 부분들이 좋더라고요. 작업량도 매일 일정 분량을 써내려고 하지요. 사전을 옆에 두고 보기도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사전도 많이 봐요. 다양한 용례가 나와서 좋아요. 특히 한자어 같은 경우는, 어떤 의미의 한자가 쓰였는지도 꼼꼼히 봅니다. 그 의미를 알면 관련된 비유를 쓸 수도 있지요. 또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과 같은 비유를 쓸 때도, 나비가 어떻게 날갯짓을 하는지 꼭 찾아보고 공부하는 편이에요. 작품에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더라도, 제가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다르니까요.
Q. 처음 소설을 쓴 건 언제였는지와, 특별히 영향을 받은 책이 있다면요?
A. 중고등학교 시절에 백일장에 나가보기도 했지만 시를 썼어요. 그 짧은 시간안에 산문을 어떻게 쓰는지 신기했죠. 시간이 촉박하면 갑자기 마무리를 어떻게 하나 싶잖아요. 결국 처음 소설을 쓴 건 숙제라서 썼지요. 영향을 받은 책은, 사실 지금도 계속 책을 읽고 있으니 그 때 그 때 달라요. 그래도 한국작가들의 단편들을 추천하고 싶어요. 김승옥, 이청준, 오정희, 박완서…. 그 선생님들의 초기작, 그러니까 그 분들이 청춘이셨을 때의 작품들말이에요. 그것이 우리 문학의 토대라고 믿어요.
Q. <너는 모른다>에서 동일시한 인물과, 애정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A. 동일시한 인물은 딱 꼽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순간순간마다 그 인물과 저를 동일시 했던 것 같아요. 유지를 쓸 때는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상호를 쓸 때는 40대의 아저씨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면서요. 애정이 가는 인물은 밍이에요. 진짜 외로웠던 사람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이 작품을 가족소설이라고 말할 때마다 아니라고 이야기해요. 가족소설이라고 하면 밍이 설자리가 없어지잖아요.
* 작가님 말씀에 동감 또 공감이다. 나 역시 밍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특히나 그를 묘사해놓은 이 구절, ‘밍은 생래적으로 하나의 개인이었다. 결코 외톨이인 줄 모르는 외톨이. 빛 없는 선반 위에 따로 보관된 통조림처럼 안전하고 유일한 개체. 스스로 적막할 운명을 타고난 자. 그것이 밍이었다.(p56)’은 내 마음을 울리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Q. 소설가와 자연인의 경계에서 사는 것은 어떤가요?
A. 고통스러운 순간이 왔을 때, 관찰자처럼 그 순간을 보고 ‘언젠가 이걸 써야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알지 못하면 쓰지 못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소설가는 일부러 환멸을 맛보려는 사람인 것 같아요.
+ 이제 새로운 기대
작가님은 올해 계획으로, 장편을 쓰느라 한동안 써내지 못한 단편을 쓰는 것과 다음 번 장편의 모티브를 잡는 것을 꼽았다. 그 단편과 장편이 어떤 이야기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알지 못한 채 기다리는 것도 설레는 일.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작가님의 목소리로 작품을 다시 보고 소소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 몹시도 뿌듯하기만 하다.
<너는 모른다>를 읽고,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피붙이라는 가족들, 십년지기라고 말하는 친구들, 회사에서 내 옆자리와 앞자리에 앉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련다. 모른다는 사실을 똑똑히 아니까, 이제 노력해서 알아가면 되니까. 이렇게, 나는 오늘도 책과 함께 배우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 끝 -
※ 사진이 생기면.... 그 때 추가 편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