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그런데를 다녀올 수 있었을까?  

경사스러운 날 잔치집에 초대 받은 것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하고 설레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잔치집이 우리가 흔히 먹던 불고기와 갈비찜, 잡채와 나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지중해 어느 나라의 음식을 접하는 것이라면 참 남다르지 않을까? 

음식을 통한 문화교류는 요즘 같은 웰빙 시대에 핫이슈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음식의 우수성이야 널리 알려진바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남의 나라의 음식을 아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 나라의 슬로우 푸드를 아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슬로우 푸드 아르치골라! Slow Food Arcigola! 

이것은 영어와 이태리어의 합성어로서 이태리어의 arcigola는 영어의 movement를 의미하는 말로 이 운동이 이태리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글쎄, 우리나라의 된장 고추장이 몇 세기를 걸쳐 슬로우 푸드의 대표적 음식으로 정평이 나있는 마당에 과연 슬로우 푸드 운동이 이태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어느만치 신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금속활자와 쿠텐베르크의 오랜 싸움 같은 것은 아닐지?

어쨌든 난 최근 박찬일 셰프가 쓴 저 <지중해 요리사>의 발간 덕분에 지난 2일 학동역 근처의 이태리 레스토랑 '누이누이'를 방문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애초에 행사의 타이틀이 '박찬일-쥬세페 요리대결'이라고 하니 모험심이 발동한다. 우린 이미 '식객'이나 '대장금'을 통해 요리 배틀은 익히 봐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 보니 요리 배틀은 아니었다. 지중해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저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슬로우 푸드에 걸맞게 마냥 천천히 나오는 음식을 음미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옛부터 스승은 그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데 박찬일 셰프가 어찌 스승인 쥬세페와 요리대결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청출어람이란 말도 있지만 스승만한 제자도 없을 터. 박찬일 셰프는 시작할 때부터 오늘은 그냥 선생님을 돕는 역할만 하겠다고 했다.  

박찬일 셰프를 키운 스승의 정식 이름은 쥬세페 바로네다. 시칠라아 슬로우 푸드 협회 창립자면서 슬로우 푸드 마스터라고 한다.(그는 비교적 잘 생긴 편이긴 했지만 요리사답게 배가 약간 나왔다.ㅋ) 그들이 그날 내놓는 음식은 총 5가지고, 각각의 음식에 어울리는 포도주를 제공 받는다.    

첫번째는 La Fuga라고 하는 음식인데 확실히 짚어 낼 수 있는 건 이 음식이 주로 내는 맛은 바다를 머금은 멍게의 맛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키조개와 더불어 김도 들어가고 여러가지 과일과 지중해 사람들이 매 식사 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먹는다는 올리브유가 첨가 된다. 그리고 그 맛은 아주 시원했다. 두번째로 나온 음식은 Chianti Classico Riserva. 갈치와 고등어로 레드 파프리카 크림과 많이 들어온 발사믹 식초로 맛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맛이 독특했다. 그리고 한참만에 세번째 요리가 나왔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오징어 먹물로 만든 파스타였다. 우리가 보통 먹는 파스타는 면이 약간 굵은 편인데 여기서 먹는 파스타는 가늘어 마치 우리나라의 모밀 국수를 연상케 했다. 여기엔 늙은 호박 크림과 삶은 한치가 그 풍미를 더했다. 이것의 이름은 Tancredi다. 다음으로 나온 음식은 Mille e Una Notte 검은 깨가루와 허브를 입힌 소 등심과 깻잎 카포나타다. 단백한 것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마지막 코스로 아쉬운 디저트. 그 시간의 마지막 코스라고 생각하니 아쉬울 밖에. Ben Rye라고도 하는데 상당히 부드럽고 달콤한 우유맛이 난다. 그것은 일명 '쥬세페 바로네식' 리코타 디저트라고 하니 아마도 쥬세페 셰프가 직접 개발한 디저트인가 보다. 탱탱한 푸딩 같은데 그것을 조금씩 헐어 먹으면 그안에 유백색의 크림이 터져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신기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아마 한 날 그 처럼 많은 포도주를 종류별로 마셔보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평소 술이 약해 취기가 돌까 봐 조심하느라 많이 마시지도 못했다. 남기기도 했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돈나푸가타 벤리에'란 와인은 정말 좋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화가 맛이 났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것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살구에 대추야자까지 들어가 예쁜 황금색을 띄고 있엇다. 그렇지 않아도 와인을 소개 받았을 때 설명하시는 분이 다른 모든 와인은 남겨도 용서 받지만 이것만큼은 남기면 음식을 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주인이 손님한테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을 보여주는 대미를 장식하는 와인이라는 말일 게다. 또한 그것은 소화와 숙취 예방에 탁월하다고 했다. 그 말은 확실히 맞는 말 같았다. 같이 간 친구나 나나 앞의 네 가지의 와인을 치사량을 훨씬 넘겼을텐데도 취기를 느끼지 못했고 다음 날도 속이 편안해 맛있게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러니 손님이 예의를 갖춰 마실만 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섯 가지 음식을 맛보는데도 3시간이 족히 걸렸다. 지중해 사람들이 그쯤 걸려 식사를 한다는 말이 과연 거짓이 아니었구나 실감했다. 함께 초대받아 온 사람들의 얼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화색이 돌고 만족한 표정들이다. 정말 좋은 대접을 받았다는 만족감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 초대 받아 온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온화한 얼굴이 되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던가. 그것이 연상이 되었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 두 사람으로부터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요리를 만들어 내느라 바빴는지 그러질 못했다는 것이다. 하긴 음식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보여주는 것이지. 그래도 그렇게 바쁜중에도 간간히 홀에 나와 손님들과 인사하고 대화하려고 했던 박찬일, 쥬세페 셰프의 노력에 심심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날은 정말 오래도록 잊지 못할 황홀한 만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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