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다보면 심심찮게 마주치게 되는 장소, "살롱". 
점잖은 귀부인들이 문인들이나 예술계 명사들을 초청해 차와 음식을 대접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곳인데  
문학을 포함한 예술의 부흥은 물론이고 여성 지위의 향상에도 도움이 됐던 장소다.
소설을 읽다가 살롱 씬이 나올 때마다 왠지 지적인 유희가 벌어지는 그 곳의 낭만과 활기가 너무도 부러워서 침만 줄줄.

우리나라로 치자면 80년대 문인들이 밤새 술마시고 토론을 벌였던 피맛골 <열차집>이나 <시인통신> 정도랄까.
아니면 시인 황동규의 시에도 등장했던 반포의 <반포치킨>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집이 아니라 돈 주고 술을 먹었던 술집이란 게 다르지만. (많이 다른 건가? --;;;)

나는 문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이런 분위기의 모임은 또 되게 좋아해서 언제나 갈증상태였는데
압구정 아티제에서 했던 <정혜윤 작가와의 만남>은 정말로 안주인한테 초대받아서 간 딱 '살롱' 느낌이었다. 
정혜윤 작가가 나오기 전에 아티제 관계자분께서도 앞으로 이런 살롱 문화를 많이 주도해 나갈 거라 굳게 다짐해 주셨는데
그럼 그건 홈페이지를 매일매일 체크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이렇게 알라딘 이벤트를 통해서만?
한 번이라도 참여했던 사람들에겐 메일링 서비스라도 해주면 정말정말 감사해서 넙죽 절이라도 할 텐데.
돈 좀 받으셔도 되고. 

 
 
실제로 아티제에서 파는 커피와 차, 케이크와 쿠키, 그리고 완전 사랑하는 마카롱까지 잔뜩 차려져 있어서
회비를 내고라도 종종 참가하고 싶을 지경. 
 

 
그리고 잠시 후 정혜윤 작가가 나왔는데, 끼욜~!! 내가 생각했던 '작가'의 이미지가 아니잖아!
샵에서 하고 왔을 스모키 메이크업도 예쁘고 스타킹도 예쁘고.
사실은 싸인해 주실 때 스타킹 어디서 사셨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나는 사회적 체면이 있는 사람이라 꾸욱 참았다.

저자와의 만남 자체는, 책 좋아하는 친한 사람들끼리 수다를 떠는 느낌.
이미 책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쓴 작가답게 책 이야기를 할 때는 너무 좋아서 안달난 표정으로 들떠서 얘기하시던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좋아 보였다. 

특히나 기억나는 이야기는 세 가지인데,
책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태지고 보태져서 아코디언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로이드 존스가 쓴 <미스터 핍>이란 소설에서 나온 구절인
"이집트에 관해서 이야기해 줄 수 없으니 대신 파란색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들려주겠다"는 할머니의 말을 읽고
정혜윤 작가 역시 "런던이 궁금하니? 런던 대신 파란색을 들려줄게" 라는 첫번째 챕터의 제목을 정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엄지와 검지 사이의 직각 부분인데
그 이유가 그 직각 부분에 항상 책이 끼워져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게 내 지론인데, 정혜윤 작가는 일상 자체가 '책'으로 꼭꼭 채워진 사람 같다.

 

그리고 끝날 무렵 촌스럽게도 나는 작가 싸인까지 줄서서 받아들고 나서려는데
어머나 아티제에서 선물도 주네. 마카롱 세트다.
겉은 파사삭, 속은 찐득.
돈 많이 벌어서 하루에 마카롱 100개씩 사먹어야지.
 



 

사실은 저자와의 만남 후기는 책을 다 읽은 다음에나 쓰려고 했는데 아직 4분의 3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생각보다 속도가 안 난다.
아티제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어서 추억을 곱씹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그런데...!
여행기나 이야기책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논문' 같기 때문.
현지에서 느낀 점이나 만난 사람들 이야기보다는, 돌아와서 책상 앞에서 책 뒤적여서 공부해 가며 쓴 책 같다는 얘기.
(실제로 정혜윤 작가 스스로도 현지에서 글을 쓰지 않고 귀국하고 나서 매일 퇴근 후 두세시간식 책상 앞에 앉아서 썼다고..)
챕터 사이사이의 사진도 흑백컬러라서 보는 맛이 조금 떨어져 아쉽다.

만약 런던을 여행하고 싶어서 이 책을 사려고 한다면, 자신의 성향을 좀 더 따져봐야 할 터.
런던의 역사와 건축물의 의미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이 책을 '써머리' 용으로 생각하고 사도 좋다.
여행 갈 때도 옷보다는 책을 더 많이 넣어간다면 반드시 여행 한 달 전에 미리 읽어두어야 한다.
런던의 유명 장소나 인물에 얽힌 소설이 상세히 소개되는데, 
소개되는 책들을 미리 읽어두고 가거나 현장독서용으로 가방에 꾸려도 좋겠다. (이 점은 정말 최고!)
그러나, 만약에 런던의 맛집이나 트렌드, 예쁜 사진을 원한다면, 미안하지만 이 책은 아니다.
그런 분은 좀 더 말랑말랑하고, '엣지'며 '스타일' 같은 단어가 남발된 여행서를 구매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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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ware 2010-07-0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갔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그 뒤에 나온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에는
두 번 갔어요.
기분 캡방 왕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