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원더스페이스. 2009년 10월 24일 오후 5시 공연 관람.
작년에 보려고 눈독만 들여놓고 보지 못했던 연극 '나생문'을 알라딘 문화 초대석에 당첨되어 보게 되었습니다.
연극 '나생문'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원작의 소설로서, 연극의 주가 되는것은 '덤불속'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덤불속이라는 이야기보다는 연극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라쇼몽'이라는 이야기만 읽어봤는데요.
뭐랄까.. 다분히 일본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뒷맛이 찝찝한 그런 느낌이랄까요.
연극 '나생문' 또한 뒷맛이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 숲속 무사가 죽은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도적에게 폭행을 당한 무사의 아내와 무사와 그의 아내를 보았다는 도적의 재판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도적은 이 사건에 대해서 자신이 무사를 죽이고, 아내를 폭행하였다. 라고 증언합니다.
무 사의 아내는 자신이 폭행 당한 후, 자신을 보는 무사의 눈빛이 더러운것을 보는 듯하여 무사를 제 손으로 죽였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무당을 통해 불러낸 무사의 영혼은 도적과 아내가 통정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그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신이 자결했다고 증언합니다.
각기 다른 입장에서 증언한 세 사람의 증언.
그리고 그 일말의 모습을 보았던 한 나무꾼의 증언은 세 사람의 증언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자신이 본 실제 사건은 요즘말로 하자면 찌질이들의 웃긴 헤프닝정도밖에 안됬던겁니다.
살아있던, 죽었던간에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겉 모습만을 생각한 서로 다른 증언들은 결국 나무꾼의 증언으로 인해 어이없이 깨지게 되는것이죠.
개 인적으로 이 연극을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것은 제 자신이 나무꾼이 한 조그만 거짓말로 인해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그런 불신감이었습니다. 자식 6명을 먹여살리기위해 무사의 검을 빼서 팔 수 밖에 없었던 나무꾼을 그저 잡도둑나부랭이로 치부하고, 버려진 아이의 옷마저 팔아넘기는 것이 아닐까.. 라고 한 순간 의심해버린 자신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극 중 스님의 생각이 오버랩되었을지도 모르죠.
각기 다른 네 사람의 증언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은, 가발장수와 스님이었습니다.
가 발장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며, 자신이 살기위해서 죽은 노파의 옷을 벗기고, 죽은 여자의 머리채를 벗겨 그것을 내다파는 타고난 장사꾼입니다. 그리고 스님은 세 사람의 증언을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 마디로 남의 의심하지 못하는 그런 성격의 인물입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한것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그렇게 자기 자신을 감춤으로서 어느 한 쪽도 대범하게 고르지 못하는 연약한 인물인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 증언을 들으면서 가발장수는 도적의 이야기는 무조건 진실이다. 그 놈은 그런짓을 할 만한 인물이니 충분히 폭행하고 살인을 했을것이다. 라고 단정하고, 스님은 세 사람 다 증언에 진실성이 보인다. 자신으로는 어떤것이 진실일지 헤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스님쪽의 말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유우부단한 일면을 조금 가지고 있는지라 이 사람의 증언도 저 사람의 증언도 다 진실처럼 들렸습니다. 어느 한 쪽을 택하기란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거든요.
그런 스님의 모습을 보고 타박하는 가발장수의 모습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꼭 유우부단한 내 자신을 꾸짖는듯한 느낌이었어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가식적인 모습을 증언하는 세 사람과 다를 바가 어디있느냐! 라는 이야기가 정말 가슴을 콕콕 찔렀달까요..;
남 에게 보여지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긴 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스님의 착한 모습도 결국 가식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가발장수는 끝까지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그렇게 독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거짓세상을 살 수 있겠느냐! 라고 외치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무섭고 야박해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가발장수의 모습이 현실에 딱 맞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착하고 대단하게만 보였던 스님의 캐릭터보다는 가발장수의 캐릭터가 기억 속에 오래 남는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극의 연출효과를 이야기하자면 꽤 신선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숲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때문에 재판소를 어떻게 연출할까.. 하고 궁금해했었는데요.
조 명으로 증언하는 사람들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줌으로서 증언하는 캐릭터의 비중을 높이고, 재판관의 말은 하나도 없이 재판망치 소리만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무척 매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단이 높은 관객석은 극 중 인물이 증언할때마다 자신이 재판관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더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출은 무사의 영혼이 등장하기 전 무당의 영혼을 불러내는 연출이었습니다.
강렬하면서도 정말 영혼을 불러내는 듯한 오싹함이 잘 어우러진 멋진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정말 무당분이 허리를 휘어서 관객석을 쳐다볼때는 너무 무섭더군요.. 소름이 돋았었습니다..;
아 쉬웠던것은 재판소와 숲 속의 배경을 바꿀때 어쩔 수 없이 모든 불을 끄고 변경을 하는데, 그 시간이 좀 길어서 극의 흐름이 조금씩 깨뜨리는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배경의 한계가 있는 연극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지만 조금 길었달까요.. 그게 정말 아쉬운 연출 중 하나였습니다.
배우분들의 연기를 논하자면 워낙 캐릭터들의 개성이 강한지라 어떻게 해도 무난했을듯 싶습니다.
그 중에서 뽑자면 능청스레 연기를 하신 가발장수와 각기 다른 세 모습을 보여준 무사의 아내에게 한 표를 주고 싶더군요. 특히나 무사의 아내는 증언에 따라 전혀 다른 세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기때문에 연기가 무척 어려웠을터인데 너무 다른 세 모습을 보여주셔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갈때는 적당히 가식적인 모습도, 적당히 진실적인 모습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생문'에 나오는 인물들은 지나치게 가식적인 모습으로 남을 속이고, 진실까지 속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려면 진실된것보다는 가식적인 모습이 더 많이 필요할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한번쯤은 자기 자신의 가식과 진실된 모습 사이에서 많이 방황할때도 있을것입니다.
하 지만, '나생문'에 나오는 스님처럼 믿었던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거짓을 듣고, 자신이 믿었던 진실에 대한 방황을 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나무꾼을 믿는 그런 조그마한 진실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수 많은 가식적인 삶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것보다는 누군가를 의심하는 상황속에서도 조금이라도 그 사람을 믿어주는 마음을 갖는것. 그것이 연극 '나생문'이 말하고자하는 답이 아닐까요.
또 시간이 난다면 한 번 더 보러가고 싶은 연극입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주신 알라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