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히트 다섯번 째 이벤트, '로쟈의 인문학'의 로쟈 저자의 강연회
로쟈의 인문학 서재-삶에서의 인문학에 대하여
로쟈라는 필명으로 알라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현우 저자를 지난 2009년 6월 19일,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만나고 왔다.
![](http://pds15.egloos.com/pds/200906/23/97/a0013597_4a4051fb38a7a.jpg)
책에 그려져 있는 로쟈의 얼굴보다는 좀 샤프해 보였다고 하는 게 그날의 인상이었다. 로쟈는 강연 방식을 알라딘 컬쳐에 질문자들이 올려 놓았던 질문을 가지고 답변하는 식으로 강연을 진행해 나갔다.
그는 독서를 할 때 서평의 분량을 고려해서 읽는 다고 하였다. 그래서 깊게 읽으려고 하지 않고 딱 적당히 읽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블로그에 서평을 할 때는 길게 쓰게 되고 그렇게 길게 쓸 때는 더 많은 책을 읽고 각주도 달고 그런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이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그의 블로그의 글을 편집한 책이기 때문에 적어도 어느 정도의 긴 흐르믈 담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가령 러시아의 자유에 관한 소재와 지젝에 관한 부분 그리고 철학과 문학의 언어 그 사이에 있는 그의 사유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읽어도 알게 된다. 이런 그가 다른 서평에는 적당히 쓴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많이 본다고 한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읽어도 어디에 쓰일 것인지를 잘 염두해 두고 정독을 한다고 말했다. 정독을 한다는 것은 내가 그의 말을 풀이해 본 것이다. 어디에 쓰일 것인지를 잘 안다는 것은 한 권을 읽더라도 정독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학교 도서관에서 오십 권을 빌려오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세 권을 빌려와 한 권의 책도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그는 그 오십삼 권의 책이 각각 어디 어디에 쓰일지를 안다고 말했다. 그게 정독과 관련이 있는 듯 했다.
그는 이 시대의 인문학의 위기가 모든 인문학과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은 한다. 영문학과, 일문학과, 중국학과는 전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얼굴표정을 잘 지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가 러시아 전공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책에 태그 속에 국문학 폐지론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국문학의 위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국문학과를 포함해 모든 인문학과들이 통합 학부제로 하기 때문에 학부서부터 그런 폐지론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걸로 답변을 한 듯하다. 물론 내 질문이 자신에게는 무리라고 하였지만 그런 학부제의 문제에서부터 인문학이, 국문학이 위기로 다가온 것이 아니냐는 말로 그는 마무리 한 듯하다. 더 자세한 인터뷰를 듣고 싶으면 다음 링크로 가보시는 것이 좋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 저자와의 대화 3부
나는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그가 왜 대중지성인을 자처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했었다. 그것에 대해 그는 이 사회에 많은 지성인이 양극화 되어 중간이 비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 중간의 지성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중간의 지성인이 대중지성인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책머리에 그가 쓴 대목에도 이런 내용이 있었다.
" 나는 하녀고 광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중략) 기쁨을 주는 건 나의 몫이 아니라도 말이다.(중략)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게 끼니가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대단찮은 것이어도 '겸손한 식사' 정도는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이것이 그가 말한 대중지성인의 정의라고 생각하며 그날의 강연을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