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유치할 수는 있지만 나는 항상 책을 구입한 후 맨 앞 장에 간단한 소회나 다짐을 써두고는 한다. 정욱식 선생님 책은 출간 소식을 익히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출간 직후 바로 구입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 때 앞에 적어두었던 말은 거창하게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였다. 
 

2.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단숨에 독파한 후, (이것은 내 집중력보다는 정욱식 선생님의 글 솜씨 덕택이다) 한반도의 상황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읽고는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개념들(ex :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구분, 비핵화와 비확산 등), 미국, 중국, 러시아, 중동, 그리고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넘나드는 그의 책을 따라가기가 ‘살짝’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직접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볼 겸, 더 솔직하게는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강연회 신청을 했다. 운 좋게 당첨이 되어서 드디어 5월 20일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리는 정욱식 선생님 강연회에 다녀올 수 있었다.

강연회의 내용 구성은 기대와는 달리 사실 책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를 책의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  

  우리는 흔히 경제, 즉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평화의 문제는 말 그대로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문제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논의들은 지나치게 한반도 문제를 남과 북의 문제로만 바라보았고, 밖으로 시야를 넓히더라도 그것은 동아시아의 문제, 혹은 북한과 미국의 문제로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복합적이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재의 세계의 문제는 안의 시각으로든, 밖의 시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는 안과 밖을 아우르는 세계적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정욱식 선생님은 이를 거대한 그물망network을 읽어내는 시각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오바마의 미국은 분명히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다. 정욱식 선생님은 부시 정권의 ‘미국 예외주의’와 대비되는 오바마 정권의 ‘스마트 파워’를 제시하면서 오바마 정권이 정말 부시와는 달리 큰 변화를 이루어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연 오바마 정권의 여러 외교 정책들이 구체적인 결실을 내놓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선생님은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셨다. 오바마의 정책이 외교적 수사가 아닌 현실적인 성과를 내기는 사실상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쌍방향이 함께 이루어가는 것인데, 오바마의 미국이 아무리 담대하게 바뀐다고 한들, 그것이 타방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지 없는 지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이란의 사례, 미국의 NATO군 증파를 거절한 유럽의 사례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또한 설령 미국의 새로운 외교 정책이 지금까지 ‘불량국가’인 이란이나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한들, 전통적 우방이었던 중동의 이스라엘이나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의 반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역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부시 정권이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결국 정권 몰락의 결정타가 되어버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은 현재 오바마 정권의 외교력을 무의미하게 소진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강연회의 묘미는 시작된다. 이렇게 비관적인 분석 중에도 정욱식 선생님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물론 세계 정치적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세계 정치의 수많은 외부효과들이 한반도 상황에 악영향을 미쳐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긍정적 외부효과들도 있었다. 이라크인 들에게는 참혹한 비극이지만,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는 네오콘의 몰락을 가져왔고, 이로써 북한은 핵 실험을 하고도 오히려 케리가 아닌 ‘부시’ 정권과 대화를 지속할 수 있었고 6자 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좀 더 나아가보면,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전 세계적으로 ‘긍정의 나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 체제를 고민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12년은 이 지역의 정치질서가 요동치는 해이다. 미국에서는 오바마의 재선 도전이 확실시 되는 대선이 있고, 중국에서는 후진타오 이후의 시진핑 체제가 첫 출발을 하는 시점이다. 또한 대만의 총통선거도 2012년이다. 한국에서는 대선과 총선이 맞물리며, 한국전쟁 당시 넘어간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 받게 된다. 북한에서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구체화되고 내부적으로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자, 김정일 탄생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러시아에서는 메드베네프 이후 푸틴이 다시금 대선에 도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겹칠 수 있을까. 이를 포착해낸 저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4. 

   

  이 때 만들어지는 질서가 정말 책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평화 한반도의 첫 단추가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거대한 그물망 시대의 외교는 서로 마주보고 두는 체스라기보다는 마치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사다리 타기 게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연회를 마치고 후기를 쓰는 그 짧은 기간 와중에도 북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한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미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 반면, PSI에 전격 참여를 결정해 맞불을 놓았다. 북한의 핵 실험이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그것이 추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분석하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단기적인 보복성 화풀이 정책에 급급하다. 한반도 문제가 다시금 어려움에 빠지고 있다.

  이 강연회를 통해 나는 이렇게 상황이 긴박하고, 급박할수록 거시적으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중요하다는 소중한 문제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현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악무한으로 빠지게 하는 힘 대 힘 정책이 아닌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의 기틀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이 강연회의 참여했던,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고민해야할 숙제로 남았다. 

 

5. 
 

  강연회를 마치고 저자 사인을 받기 전, 책 맨 앞 장에는 새로운 구절이 하나 더 조심스럽게 추가되었다. 그리하여 최종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사족

정욱식 선생님 강연은 오마이뉴스에서 동영상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책을 읽지 않았거나 사정상 강연회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동영상을 통해 정욱식 선생님을 만나고, 또 2차 북핵 실험에 한국의 전격적인 PSI 참여로 날로 우울해져 가는 한반도에 대해 고민해보고 대안을 암중모색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쁘신 와중에 좋은 강연회를 해주신 정욱식 선생님과 강연회와 즐거운 뒤풀이까지 좋은 기회를 준 알라딘에게 감사를 전한다. 

 

1부 - 저자 강연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59629)

 

2부 - 저자와 청중의 대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5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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