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 한홍구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국방부 불온도서에 포함된 대한민국史의 저사이며 최근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란 책을 냈습니다. 

이번 강연은 이것과 관련되어 '군사주의와 불온도서를 통해 본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군사주의와 불온도서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것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강연을 했습니다. 

최근 한국에 다시 '불온'이란 말이 얼굴을 디밀고 있습니다. 더불어 '좌빨'이란 말도 많이 쓰이고 있죠. 뭔가 조금만 다르고 튀면 좌빨이란 말이 아주 쉽게 붙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언제부터 좌빨이란 딱지를 붙이며, 어떤 책은 읽는 것 조차 하지 못하게 한국이란 나라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선 한홍구 교수는 요즘와서 다시 불온도서라는 말이 나왔는지 부터 되물었습니다. 
불온도서라는 말이 다시 나온 이유에 대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말씀하셨는데요,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국민들의 문화가 많이 성숙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은 문화를 접하면서 '똑똑해졌다' 는 것이죠. 그래서 예전처럼 국가에서 선전하는 것에 속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서 판단을 해 나간다고 말하셨습니다.

이에 국방부의 높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책들이 버젓히 군인들에게 읽히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그 책들을 불온도서로 낙인찍고 못읽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홍구 교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지금 윗자리에 계신분들이 읽었던 현대사에 관한 책들은 5공화국에서 주도해 만든 현대사 책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한국 현대사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데요, 한홍구 교수가 쓴 88년 독립운동사 논문이 한국인으로 최초였다고 하니 말은 다한 셈입니다.

금서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이에 한홍구 교수는 금서의 사회사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금서는 아마 권력이 있을때부터 있었던것 같더군요. 아래의 책들은 한홍구 교수가 제시했던 예전 금서목록이었습니다.

성경, 도덕경, 수호지, 코란, 신곡, 데카메론, 군주론, 유토피아, 천로역정, 법의 정신, 에밀, 상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적과 흑, 종의 기원, 죄와 벌, 톰 아저씨의 오두막, 곤충기, 인형의 집, 아큐정전, 무기여 잘 있거라, 의사 지바고.....

정말 재미있는건 요즘 이 책들은 대학생, 혹은 고등학생 필독서이거나 교양인으로 읽어야할 책으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옛날엔 금서였죠. 예를 들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조금 알것 같습니다. 미국 흑인이 노예라는 신분에서 해방되기 전이라면 금서죠. 당시 미국인들의 관점에서 어떻게 동물과 같은 흑인 톰의 오두막에 놀러갈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런 이야기하면 바보소리 듣기 십상이죠. 말하자면 권력을 잡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이나 지식을 배워 눈을 뜨는 것을 왠지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금서들이 선정 조건은 무엇일까요? 한홍구 교수는 몇가지 예를 듭니다.

금서
일본에서 발행된 <최신아세아요도>는 소련과 한국이 같은 색(분홍색)으로 되어 있어 판매금지 처분
<박정희 시대>는 월간지에 발표되었을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단행본으로 출간하자 판매금지 처분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 마르크스와 막스의 발음이 같다고 하여 판매금지 처분
잘 판매되고 있던 책들도 시위하다 잡힌 학생의 집에서 나오면 판배금지 처분


금지곡
아침이슬/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 북한 찬양노래
행복의 나라/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 한국이 행복한데 어디로 갈라고?
금관의 예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잘살고 있는데 여기로 예수님을 왜불러?
거짓말이야/ 손동작이 간첩사인, 3선개헌과 맞물림
왜 불러/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하는 경찰에게 하는 한마디(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에 아주 잘 표현되어 있음)


뭔가 뚜렷한 이유가 없습니다. 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군요. 금서 이외에도 필화사건-즉 글 쓰는 것을 박탈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남정현의 <분지>나 김지하의 <오적> 등은 잡혀갈 각오를 하고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만큼 내용이 당시엔 읽히면 안되는 그런 내용이었겠죠.

이렇듯 국가에선 금서를 정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틀어막을 작정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금서는 재생산됩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한홍구 교수는 기자의 대량해직(동아투위 113명)과 제적당한 학생들이 생계를 위해 출판사를 차리거나 출판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 '금서'를 재생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금서를 생산하도록 부축였다고 할까요? 돌베개, 한길사, 광민사, 형성사, 일월서각, 풀빛...등은 그때 만들어진 출판사들이라 합니다.

금서는 재생산되었지만 탄압은 계속됩니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 이념도서를 해금한다는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 도서들은 반공도서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전두환 정권당시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1천여명 해직)은 계속되었고 172종에 달하는 정기간행물이 폐간되었습니다.  특히 김지하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는 사장이 직접 책을 작두로 자르고, 출판사는 세무사찰을 당하는 일도 있었답니다.

근데 웃긴건 아무리 금서로 정해져도 충분히 책을 구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때론 어떤 책은 금서목록에 올라서 오히려 책이 잘 팔려 재고를 처리해주기도 했다는군요.각주:1 일전에 한홍구 교수가 자신이 소속되어있는 평화박물관에서 '금서'라는 특별전을 했는데요, 그 책들을 어디서 구했는가 하니 자신의 책장을 조금 뒤져보니 다 나왔다 합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국방부에선 왜? 불온도서 목록을 만들었을까요? 앞서 이야기 한것보다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군인이란 직책은 많은 생각을 해선 안됩니다. 기본적으로 살인을 하도록 훈련을 받는 직책이기에 많은 생각을 하면 자신이 괴로워질수 밖에 없습니다. 군대에선 정훈교육을 통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일사분란하도록 합니다. 또한 괴로운 사람들을 위해 군종-종교를 통해 보듬어줍니다.각주:2

재미있는건 이러한 분위기가 군대에서 끝나면 되는데, 국가전체로 퍼지는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는 군대에서 배우고 몸에 벤 분위기들이 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국가 분위기가 하나의 병영과 같아진다고 하셨습니다. 70년대의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검사, 국기 하강식, 수업전 경례 등은 군대문화가 그대로 묻어있는 사회의 한 단면이었던 겁니다.각주:3 또한 한국 문화안에는 정말 많은 군대문화가 스며들어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장난감, 군인과 정치가 중심의 위인전, 밀리터리 룩, 언어의 군사화, 초.중.고등학생의 극기훈련 등은 군대문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하네요.각주:4

군대문화가 스며든 분위기에서 남성은 군대가야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인 즉 엄격한 위계질서를 지키고, 선후배를 따지며, 힘에 논리에 쉽게 굴복하며, 하면된다라는 말도 안되는 정신 등을 배우고 나와서 그것들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이런 논리에 무너지면 안되는데 군대라는 곳에서 교육을 받고 일명 '사회인'이 되는 것이죠.

왜 금서를 만들었는지 결론이 나옵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회인'을 만들기 위함이죠. 국민들이 더 이상 생각하고 똑똑해지면 윗분들이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전에 배웠던 대로 지금의 학생들이 배운다면 윗분들의 통치는 쉽습니다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방부에선 금서를 만들고 반입을 금지해 읽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홍구 교수는 '발칙한 상상력을 갖어라'라고 권유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도 착하고 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발칙한 청년은 거의 없어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지금 젊은 청년들에게 오히려 불온하고 발칙한 상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진보는 늘 기성의 권에 대한 비판과 도전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한홍구 교수의 강연회가 끝나고 박지웅 변호사의 강연도 이어졌습니다. 박지웅 변호사는 원래 육군법무관으로 '불온서적 헌법소원'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으며, 현재 징계와 관련해 항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지웅 변호사는 항소에서 승리하면 군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군에서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자 했습니다. 뭐랄까 박지웅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한국 군대도 지속적으로 변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은 늦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중간에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앞에서 열심히 강연하시는 분을 봐서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많은 준비를 해서 좋은 이야기를 더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강연이 길어지는건 듣는 사람으로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아무쪼록 강연회를 마련해주신 알라딘과 한겨례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수고해준 고려대학교 학생복지위원회분들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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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으로 인해 많은 책들이 팔렸습니다. 각 서점들은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 코너를 신설해 책을 팔 정도였습니다.

2. 이에 대해 한홍구 교수는 많은 불만을 토로하셨는데요, 군종이 존재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을 금하는 종교에서 살인하는 군인들을 위로한다는 것이 넌센스라는 것이였죠. 또한 한국에서 병역거부를 하는 종교는 특정종교 하나밖에 없는데 이것 또한 넌센스라고 하셨습니다. '특정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살인을 금하는데 왜? 한국에선 '특정종교'만 집총거부를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3.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4. 요즘은 모르겠지만 제 어린시절 위인전은 군인이나 정치가가 많았습니다. 맥아더, 박정희, 워싱턴, 장제스....휴. 또한 극기훈련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산에서 야영하며 텐트를 치는 보이스카웃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이유없이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얼차려를 받는 건 이해할수 없는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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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보 2009-05-2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세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해주셨네요.
저는 독자로 갔다가, 이번주부터 한겨레출판에 나오고 있는 신입사원이에요
그 날 고려대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셔서
전 그저 포스터 붙이는 일만 도와드리고
강의 편하게 듣고 왔었죠.

아직 기획중이지만 특강은 후속 시리즈가 나올 예정이랍니다. (기대기대 >.<)

AdishNinsol 2009-05-2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좀 일찍 갔는데 그때 일하고 계신 분들중 한분이셨군요.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