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다소 식상하고 진부하게 시작해보자. "길"이란 한글단어의 정의는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공간 _ 표면적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그 안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들은 무궁무진하다. 영화제목에서부터 지레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영화, 도대체 어떤 "길"을 보여줄 것인가?  

영화 속 공간, 대추리와 나. 

나이 일흔의 깡마른 체구, 한 눈에 봐도 천상 농사꾼임을 알 수 있는 방효태 할아버지. 그는 평택 대추리에서 평생 논밭을 일구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 공간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푸른 오월의 햇살과 함께 젊음을 만끽하기도 모자랐을 대학교 새내기 시절, 우연찮게 대추리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폭력 현장'을 접하게 되었고 무작정 대추리로 달려갔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2006년 5월 4일. 그곳은 내 평생 잊지못할 가슴아픈 기억을 남겼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심장박동은 쉽사리 진정되지 못했다. 

깡소주는 어떤 맛일까? 

영화 중간중간 거북할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군용헬기들과 아무렇지 않게 동네를 지나다니는 전경들의 모습들을 뒷 배경으로 무신경하게, 그리고 꿋꿋하게 논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심지어 운동회까지 여는 대추리 주민들과 방효태 할아버지. 카메라를 보며 벌컥벌컥 들이마시던 깡소주를 건네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나즈막한 푸념도... "에휴 씨발것들.."  

카메라의 초점 자체는 대추리에서 일어나는 국가의 폭력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군용헬기와 전경들은 시종 방효태 할아버지을 따라다니는 앵글안에 자연스레 잡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화면안에 공존하기에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한 이 조합은, 나도 깡소주를 맛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영화 상영 후 전성태 작가님, 김준호 감독님과 가진 관객과의 대화>

"길은 길이여..." 

방효태 할아버지가 대추리에서 맞는 마지막 촛불집회때 했던 말로 기억한다. 결국 남아있던 대추리 주민들은 공동이주를 하게 되었고 할아버지는 자식보다 소중했던 논과 그 곳으로 향하던 길을 두고 떠난다.  

김준호 감독은, "길"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너무 많아 영어로 직역할 수 없었기에 이 영화의 외래제목은 "Old Man and the Land" 로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차용한 제목이란 설명까지 덧붙여주었다.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소설 속 노인과 방효태 할아버지가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로, 논으로 나가는 Old Man. 그 끝은 비록 좋지않을지언정 언제나 한 길을 향했던 할아버지의 묵묵한 발걸음은 우리들이 진정 가야할 길은 어디인지 충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위대한 것이었다. 

자, 지금 우리들 각자의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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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9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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