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를 두어 시간 남겨두고 언론보도 약간을 살폈다.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원효대사는 정말 해골물을 마셨을까?’ 등, 보도는 대부분 책이 다루고 있는 ‘상식의 반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아예, 책의 한 꼭지를 ‘철갑 거북선 신화 흔들린다.’는 제목으로 후속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 것 뿐인가.. 상식을 뒤집는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 선생의 노작을 불평할 의도는 없다. 다만, ‘아 그랬었구나’라며 끄덕이는 것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했다. 그 해답, 강연회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상상마당(홍대)으로 향했다.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의 공동저자 박은봉 선생의 강연회가 11월 26일(수) 홍대 상상마당 4층 교육실에서 열렸다.
강연회장은 후끈했다. 다수의 여성들이, 간혹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그 중 한명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박은봉·이광희 지음, 김경옥 그림, 책과 함께)의 공동저자 박은봉 선생이었다. 검은색 자켓에 감색 셔츠를 받쳐 입은 선생의 인상은 단정했다. 그는 높지 않은 목소리로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의 어린이편을 펴낸 과정에 대해 짧게 소개한 후,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1,000여 편의 논문, 100여 권의 단행본 등 3년여의 사료 분석과 준비를 통해, 선생은 100개 남짓한 꼭지들을 뽑아냈다. 모두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유통시켜온 상식들이다. 각각의 꼭지들을 사료로 받침하고, 추론으로 연결시켰다.
"온달은 하급귀족이었을 것이다."라는 추론에 대해 '과도한 상상력'을 지적하는 청중도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준객관의 영역에 오를 수 있는 것은, 기초 사료와 추론의 논리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치열함과 다른 해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이 전제되어 있을 때이다. 역사는 과거의 해석에 다름 아니며, 당신의 노작 또한 하나의 해석, 하나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선생의 철학이다.
그래서,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는 옳고 그름이라는 객관의 영역에서 다툼하지 않는다. “온달은 하급귀족이었다.”라고 단언하기 보다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왜 그런 잘못된 상식이 생겼지?”라고 질문하고 공부하고 드러낸다. 역사를 만들고 참여한 모든 이들을 지면으로 끌어내 대화한다. 물론, 선생까지 포함해서.
그 치열한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선생은 준비한 꼭지들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식민 지배에 영향을 받은 역사, 통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역사, 정설과 구전 사이에서 떠도는 역사.
편의상 분류했지만, 해석과 유통의 문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온달을 시기하고 질투했을 고구려의 장삼이사들을 빼놓고 온달을 이야기 할 수 없고,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최남선을 빼놓고 김정호를 이야기 할 수 없으며, 산업화의 근대사를 빼놓고는 현모양처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석과 유통의 주체인 역사학계와 시민의 소통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이정명의 문화적 상상력과 집권세력의 역사교과서 개정 논의가 화두인 요즘, 이 책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가 의미심장하다.
[보탬] 선생의 강연 전에, 강연회를 준비한 ‘책과함께’ 출판사 류종필 대표가 새 브랜드 ‘책과함께어린이’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내용의 전문성’과 어린이 독자에 맞춘 ‘글쓰기의 전문성’이라는 출판원칙과 함께였다. ‘책과함께어린이’가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어린이편을 내며 박은봉 선생과 더불어 이광희 선생을 모신 이유이기도 하다. 부득이 강연회에 참석하지 못하신 이광희 선생이 아쉽다.
<작가와의 만남 1기 오성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