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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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가을 허멘 멜빌의 소설《모비 딕》이 미국에서 출간된다. 화자로 등장하는 이슈마엘은 몇 년 전 자신이 포경선을 타면서 경험했던 독특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오직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자들은 《모비 딕》을 외면했다. 태평양까지 뻗어가는 미국 영토의 확장, 골드러시, 노예 문제 등 당면한 현실을 살아가기도 벅찼다. 이후 1859년 펜실베니아에서 검은 황금이 발견되자 이제 고래들은 비로소 인간의 모진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때문인지 고래에 관한 관심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고 《모비 딕》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격동의 19세기 구대륙과 신대륙

1850년대 구대륙은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다. 1848년 1월 시칠리아에서 발화한 시민혁명은 파리로 이어져 밀라노, 빈 등 전 유럽에 들불처럼 퍼졌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이탈리아 왕국, 독일 제국 등 유럽에 새로운 민족국가가 등장했으며 헌법을 통한 통치가 시작된다. 신에게 부여받았다고 여겨진 절대권력의 허상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내 심판대에 세워지고 파멸을 예고했다.

대서양 건너의 신대륙은 유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 동부 13개 식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1850년, 미국은 전쟁, 약탈, 영토 구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이르는 광대한 대륙 국가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인종, 종교, 사상, 철학은 주류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특히 많은 원주민이 자신들이 뿌리를 내렸던 터전에서 이주해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면화 재배를 위해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었으며, 조만간 노예제도를 둘러싼 이슈로 인해 남과 북이 나뉘어 큰 전쟁을 치를 참이었다. 이런 사회 배경에서 허먼 멜빌은 《모비 딕》에서 당시의 사회 문제를 은유와 비유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성찰한다.

‘이슈마엘’이라 불러달라는 남자

화자는 자신을 이슈마엘로 불러달라면서, 몇 년 전 있었던 특기할 만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뉴베드퍼드에서 태평양의 작은 섬 출신의 원주민 퀴케그를 만났을 때 인종적/종교적 선입견을 품었다. 하지만 퀴케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관찰하면서 그의 매너와 진실성을 경험하면서 제 생각이 짧았음을 시인한다. 이어 피쿼드호에서 만난 다국적 인종들을 만나 서로 부대끼며 그들을 자신과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한다. 이슈마엘은 항해를 통해 고래의 생태학적, 해부학적, 골상학적 부분을 세세히 관찰했고, 포경산업의 세세한 구조까지 자세히 연구한다. 다른 선원들처럼 에이해브의 맹목적 질주에 동조했으나 나중에 이를 반성하는 성찰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렇듯 모험은 늘 가까이 한 지점에서만 바라보는 세상이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몇 걸음 떨어지게 만든다. 관점이 달라지자 더 큰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가깝게 있을 때는 파편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하나의 큰 모자이크와 같은 입체적 실체로 인식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구원의 기회를 놓쳐버린 자들

《모비 딕》은 다국적 선원으로 구성된 포경선 피쿼드호가 미국의 유명 포경기지였던 낸터킷 항을 출항하는 것으로 본격 시작한다. 선주, 선원 모두가 고래기름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에 들떠있다. 하지만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빼앗아 간 ‘모비 딕’이라 불리는 향유고래를 찾는다. 평생 자신을 고래 뼈로 만든 다리에 의존하게 만든 모비 딕의 파멸을 꿈꾸며...이러한 광적인 집착은 이성의 눈을 가리고 오직 본능에만 충실하게 만들면서 결국 자신을 스스로 파멸로 이끌 운명이었다.

인생은 권선징악처럼 단순치 않다. 스스로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자에게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기회를 준다. 아킬레우스의 광기를 아테나가 조절하지 않았다면 희랍군은 트로이아에서 파멸을 맞이했으리라.

통제력을 상실한 폭주 기관차와 같은 에이해브 곁에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어르고 달래는 스타벅이라는 일등 항해사가 있었다. 스타벅은 끊임없이 에이해브의 독선을 지적하며 당면한 현실을 보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그 실낱같은 기회마저 저버린 선장은 함께 배에 탄 선원들까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총동원한다.

선원들 또한 선장의 카리스마에서 벗어나 파멸을 피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그들 또한 잘못된 에이해브 선장의 이상에 경도되어 함께 자멸한다. 왜 그들은 선상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였던가. 스타벅은 왜 선원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에이헤브의 권력에 맞서지 못햇던가. 결국 절대권력에 대항하고 그것을 저지하지 못했을 때 독재자뿐 아니라 그의 권력 아래에 있던 무고한 사람들 또한 심연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이 고래와의 사투끝에 바다에 수장됨으로써 소설은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화자인 이슈마엘은 죽음에서 부활한다. 작살잡이 퀴케그의 관(부명부표)이 부이 역할을 하며 그를 구원한다. 서두에서 결국 이슈마엘이 이 이야기의 전말을 전해준 것이 오직 그만이 가능했던 이유다. 모세, 석가, 예수, 마호메트 등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발견한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준 선지자들처럼 이슈마엘도 《모비 딕》의 특별한 경험 공유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 성찰하길 바란다.

《모비 딕》의 재평가

허먼 멜빌은 12세 때 상인 출신의 아버지가 죽자 외판원, 구두닦이, 교사, 선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특히 그가 포경선 선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모비 딕》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다. 기존 전통과 다르게 자주 작품의 시점이 변하고, 느닷없이 고래학에서나 볼법한 해부/생태학적 내용이 튀어나오니 대중이 좋아할 리 없었다. 이후 익명성보단 개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했고, 뒤이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모든 소외된 대상에게도 빛이 찾아들며 《모비 딕》은 재평가된다.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멜빌은 《모비 딕》 이후 대중이 기억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의 첫 히트 작품 《타이피》 같은 대중이 관심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해양 모험 소설이 아닌 《모비 딕》같은 심오한 생각이 담긴 작품을 고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일정기간 자신의 인지도를 굳건하게 인식시킨 다음 실험적인 작품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가족 관계도 그리 좋지 못했다. 두 아들은 각각 자살과 지병으로 자신보다 일찍 죽었다. 아내와의 관계가 좋을 수 없었다.

그는 일흔이 넘어 죽을 때까지 고독하게 살았다.

자기 작품이 인정받기를 꿈꾸면서.

마치 흰고래만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의지를 집중했던 그가 창조했던 에이해브 선장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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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솔로 - 유리의 지평선
라인홀드 메스너 지음, 김희상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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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은 영원한 것일까?

라인홀트 메스너는 그렇지 않다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8,125m의 낭가파르바트를 무산소로 그것도 단독으로 등정했던 것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정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계속 도전을 감행했다.

이 책은 메스너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 단독등정으로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아마다블람 등정이 실패하고 네팔에서 유럽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시작된다.

메스너는 낭가파르바트 등반의 성공으로 다른 히말라야의 고봉도 무산소 단독등정이 가능함을 깨닫고 다음 목표는 에베레스트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한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1980년 겨울에 단독등반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메스너는 자신이 더 먼저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네팔 정부에 허가를 요청한다.

나는 우에무라 나오미보다 앞서 정상을 단독 등정하고 싶었다. 나는 세계 최고봉을 혼자 오른 최초의 등산가이고 싶었다.” 81

 

그러나 네팔에서는 몬순시기 등반은 위험하니 등반은 어렵다고 한다.

때마침 중국에서 외국 등산가에게 에베레스트를 개방한다는 소식을 접한 메스너는 그 길로 중국으로가서 티벳쪽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중국에 도착 후 티베트로 이동하면서 중간에 들렀던 장소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은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는 글쓰기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는 6500미터에 전진캠프를 설치한다. 그리고 정상까지의 구간 중 가장 까다로운 노스콜까지 고군분투하며 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주먹을 불끈 쥐는 것과 같다. 주먹을 쥐지 않고 펼친 손만이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는다. 단독 등반에서 맞닥뜨릴 모든 위험에 맞서기 위해 나는 힘을 조금이라도 허비해서는 안된다.” 149

 

7주 동안 50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고소 적응을 마친  , 1980817일 마침내 출사표를 던졌다.

해발5000미터 이상의 지점에서 7주를 보낸 나는 베이스캠프 주변을 고향땅처럼 돌아다닌다 191

 

첫날 노스콜 아래까지 올라 배낭 데포에 성공 후 전진 캠프까지 내려왔다.

전체 구간 중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기에 미리 배낭을 그곳에 가져다 두었던 것이다.

다음 날 그는 다시 노스콜까지 올라 배낭을 찾았으나 얼마 안가서 크레바스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에 봉착하고 만다. 그러나 신은 그의 편이었다.

크레바스를 빠져나오자 심각한 고민을 한다. 계속 오를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하산을 할 것이냐. 그의 본능은 그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아래 크레바스 안에서 나는 돌아가자고, 포기하자고 거의 마음을 굳혔었다. 몸 성히 빠져나올 수 있다면 나는 등반을 중지하고 싶었다. 다시 위에 선 지금,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정확히 의식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 발은 마치 프로그래밍이 된 것처럼 앞만 향해 나아갔다.“215

모든 동작은 몇백 번이라도 연습한 것처럼 빠르고 확실했다. 단 한 번의 손놀림도 나는 허비하지 않았다. “211

 

해발고도 7000미터가 넘어가면 공기는 희박해져 지상의 1/3만 남게된다. 뇌로 충분한 산소가 전달되지 않으면 인간은 무너진다. 고산병의 원인이기도 하다. 위로 오를수록 공기는 옅어지지만 반대로 불안,공포,회의감,고독,지독한 외로움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시시포스의 진짜 아픔은 같은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 때문에 빚어지지 않는다. 시시포스는 위에도 아래에도 머무를 수 없어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을 괴롭히는 진짜 위협은 위에도 아래도 머무를 수 없는 자신의 존재에서 오는 회의감 아닐까?” 204

휴식 사이의 걷는 구간이 갈수록 짧아졌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 나는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다시 일어서는 일은 엄청난 의지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힘이 부칠 때마다 스스로 정한 하루 목표를 채워야만 한다는 굳은 다짐이 도움을 주었다. 목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228

 

7220미터에서 첫 비박을 시도했다.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경험을 통해 터득한 교훈을 애써 무시하지 않고 고산에서 꼭 해야하는 루틴을 충실히 해나간다. 좁은 텐트 속에서 물을 만들고 식사를 하고 양말을 갈아신고 등의 일을 할 바에얀 차라리 계속 등반하는 것이 훨씬 쉽다라는 그의 표현은 얼마나 고산에서의 비박이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한 일인지 반증한다.

그의 정신은 이제 오로지 한곳에 집중되며 고도로 순수해진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르게 된 동기들은 연기처럼 사그라들어 버린다.

그동안 등반을 하며 경험을 터득한 진리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루트나 날씨와 마찬가지로 이런 경험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233”

두려움에 떨며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바라는 안일함과 싸우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지녀야 하는 걸까? 234”

맬러리의 시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에베레스트에 단독으로 그것도 최초로 오르고 싶다는 야심 등 이런 모든 피상적인 동기들은 이미 깨끗이 날아가 버려다. 지금 나를 이끄는 힘은 나 자신, 그리고 심리학자의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240”

 

다음날8,220m까지 고도를 올리면서 고통은 더욱 심해져다. 하지만 한발한발에 집중하며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멈추어 서는 것, 계속 걷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 계속 가고자 하는 의지에 힘을 북돋워준다. 성공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체험은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기쁨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동안 정상을 추구하는 것만 이야기하느라 등반하면서 느끼는 이런 만족감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247

 

대망의 20일이 밝았다. 흐린 날씨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뒷일은 이제 신경쓰지 않았다. 모든 장비를 텐트에 두고 카메라만 챙겨 정상을 향해 계속 올랏다. 희박한 공기와 가파른 지형이 그를 위협했다. 그는 맘을 다잡는다.

과거를 돌이키거나 내일을 생각하지 말자. 올라가려는 의지를 꺽는 절박함을 누를 방법은 이것 뿐이다. 272

 

그리고 오후3시 그는 안개에 쌓인 알루미늄 삼각대를 발견한다. 바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희열을 느끼기 보다는 담담하다. 정상은 단지 그에게 수단에 불과할 뿐 진정한 목표는 죽음에 맞서 자신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인간 정신의 높은 향상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다. 우리는 간혹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다.

해냈다는 승리의 도취감은 없다. 그냥 너무 피곤하기만 하다. 이 순간, 특별하다거나 행복하다는 느낌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은 미리 예견했던 바다. 정상 등정은 내가 설정한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일종의 마침표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나는 차분해진다. …..나 자신은 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애써도 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시시포스다.283

 

그는 결국 살아서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인간을 절망끝에서 깨달음을 얻곤한다. 죽음의 경계 임계점까지 다가선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에베레스트는 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죽음의 경계까지 모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메스너가 진정 원하던 삶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 등반의 동기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죽음이야말로 내 태도를 바꾸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나는 이처럼 경계,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 가까이 가본 적이 없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에 서서 나는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경험했다. 이번 등반처럼 내 존재를 뒤흔든 경험은 없다. 아마도 이번에 나는 경계를 뛰어넘는 도약을 한 게 아닐까? 물론 이 도약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이 도약의 의미를 차분히 새겨야만 한다. 인간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환경에서 몇 주 동안 벌인 생존투쟁은 나를 바꾸어 놓았다. 303

 

메스너가 등반하면서 느꼈던 시간의 상대성에 관한 사색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중력이 강한 행성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절대적인 시간의 틀 속에서 살아가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등반은 매일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산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동안 시간은 평소 일상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다. 정상을 오르며 무수히 많은 감각적 인상을 받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런 인상 가운데 기억 속에 저장되지 못하고 흐러가버리느 ㄴ것 역시 무수히 많다. 다른 한편으로 정상 등정은 300킬로미터를 가는 여행과 마찬가지로 대체 이게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로 더딘 시간을 느낀다. 말하자면 무수히 작은 순간들로 이뤄진 영원이랄까. 그 작은 순간들은 붓질한 색이 번지듯 빠르게 기억속에서 흐려진다. 304

 

성공 적인 등반으로 메스너는  중국 및 유럽 언론으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기록과 흥미거리 위주였다. 이에 메스너의 촌철살인의 답을 내놓는다. 그의 등반 철학을 다시금 볼 수 있는 대복이었다.

 

출발에 앞서 질문 이어졌다. 왜 에베레스트 정상에 두 번이나 올라가야 했느냐? 필요한 돈은 누가 주었느냐? 어떤 사람이 후원을 했느냐? 어떤 국기를 가지고 갔는지도 물었다. 어느 나라를 대표해 등반하느냐?

나는 말했다. 등반은 오로지 나의 욕구로 내가 경비를 마련해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내가 나의 고향이며, 내 손수건이 곧 내 국기입니다” “307

 

유럽에서도 사람들은 내 기록, 메스너의 무의미한 기록 중독에만 관심을 가졌다. 나의 단독등반은 미지의 차원으로 올라서려는 탐험이다. 몬순 시기의 날씨만 미지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몸, 더 나아가 인간 정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한계는 언제나 미지의 것으로 남아 우리의 도전을 자극한다. 등반가로서 내가 오른 정점이 이제 내 디에 놓였다.”308

 

 

메스너의 글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영감을 준다. 그가 산에서 경험한 수많은 상황들과 우리의 인생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오는 공감때문이 아닐까.

많은 나이에도 2016년 까지 고비 사막으로 모험을 떠나고 최근에는 울산 산악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정력적인 그의 모습은 내게 많은 귀감이 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많은 힘이 된다.

나는 다시금 길을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함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다. 나를 가능성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도록 모든 힘을 쏟게 만드는 욕구는 이런 부담감에서 나온다. 삶의 기쁨을 누리며 이런 도전을 감행할 때 행복감이 샘솟는다. 이제 다른 산이, 내가 알지 못하는 풍경이 내 안에서 생동히기 시작했다.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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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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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내가 만나 왔던 많은 주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직장생활 할 때 출산으로 인해 정규직의 여직원이 퇴사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모습을 보아왔다. 
또한, 회식 때 직급이 높은 상사 옆에 여직원 자리를 배치하고 술 따르는 모습, 상사의 노래방에서 위험 수위 수준의 여직원에게 신체접촉 등 그때는 뭔가 잘못인지 알면서도 쉬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당하는 입장에 대해 진지하게 공감하지 못했고 하려는 노력조차 안 했다.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으로 자리를 비울 때도, 아이 때문에 일찍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도 이래서 남자직원을 회사에서는 선호한다는 말을 동료들과 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육아에만 전념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 또한 어떠한가. 육아에만 매달리면서 그들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사회로부터 배제되면서 가정에 유폐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살아오신 모습을 보고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충분히 인지하고 생각해낼 수 있는 문제였다. 그만큼 주변에 관심 없이 살아왔다. 

건물 안에 있을 때보다 밖에 있을 때 안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는 법이다. 
너무 가까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떠한 점만 보려 했고 전체적인 면을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예전과는 상황이 바뀌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보니 인제야 사회가 힘없는 개인에게 가하는 차별이 눈에 보이고 공감이 가기 시작하고 관심을 끌게 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이제 접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현재 고민하는 사람에게 같잖은 조언 따위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경험해볼 수는 없지만, 많이 조심스러워진다. 

지금의 나는 사회 부조리와 차별에 반대해 권력자에게 저항할 수 있을까. 
쉽게 자신할 수 없다. 전에 비해 변한 것이 있다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깨닫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느냐가 관건이다. 주변이 조금씩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더는 김지영 씨 같은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를 꿈꾸며…






<책속 문장>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46

 

1990년대까지도 한국은 출생 성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나라였다. 김지영 씨가 태어났던 1982년에는 여야 100명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남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1990년에는 116.5명이 되었다.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103명에서 107명이다.. 53

 

한번은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다 교문에서 붙잡힌 여학생이 왜 남학생들에게만 면티와 운동화를 허용하느냐고 항의했다. 선도부 교사는 남자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여학생은 괘씸죄까지 더해져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교사는 쭈그려 앉으면 속옷이 보일 수 있으니 치맛단을 잘 붙잡으라고 말했지만 여학생은 끝까지 치맛단을 추스리지 않았다. …..역시 복장 불량으로 적발되어 나란히 교무실로 끌려가던 같은 반 아이가 왜 치맛단을 붙잡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옷차림이 얼마나 불편한 건지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학칙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도부와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의 면티와 운동화를 모르는 척했다. 56

 

김은영 씨가 스무 살이던 1999년에는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김지영 씨가 스무 살이던 2001년에는 여성부가 출범했다. 72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93

 

김지영씨가 졸업하던 2005,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96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101

 

나란히 앉아 있던 과장이 맥주잔과 수저를 들고 일어서며 김지영 씨에게 부장 옆에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김지영 씨는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고 죽어도 그 자리에 앉기가 싫었다. 116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그렇게 멀어지다가 그 밤 일로 크게 싸웠다. 119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혔다. 124

 

결국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2005 2월에 호주제가 헌법상의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왔고, 곧 호주제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민법이 공포되어 2008 1 1일부터 시행됐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호적 같은 것은 없고, 사람들은 각자의 등록부를 가지고 잘 살고 있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인신고 할 때 부부가 합의했다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 132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146

 

낮 시간 강좌들은 대부분 취미반이거나 독서, 논술, 역사 지도사 같은 어린이 대상 강사 자격증 준비반이었다. 여유가 있으면 취미 생활을 하고, 여유가 없으면 내 애든 남의 애든 가르치라는 건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관심사와 재능까지 제한받는 기분이었다. 163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를 위한 것들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를,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의 의무인데, 개별 가정에서 대부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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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에릭 시노웨이 &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유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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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십붕지구十朋之龜'라는 말이 있다. 군자나 현인을 찾아가 투자의 도와 방법, 시기의 문제를 상담한다는 뜻이다.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에 올바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멘토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힘들고 지칠때, 그리고 어떠한 고민이 있을때 조언을 구할 멘토가 주변에 있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대답을 하기 어렵다.

에릭 시노웨이의 '하워드의 선물'은 십붕지구와 같은 멘토와 멘티의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하워드 교수는 미국 경영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런 그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에릭은 병문안을

갔다가 하워드 교수의 죽음앞에 초연한 모습을 보며 내적으로 각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한번 스승에게 가르침을 요청한다.

 

그때부터 캠퍼스 및 다양한 장소에서 에릭은 하워드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그가 가진 여러 문제점들을 스승과 함께 토론하며 해결 방법을 찾아나간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때 방관하지 않고 스스로 고민해 보는 것, 그리고 의문이 풀리지 않을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것,

격 없은 토론을 통하여 새로운 해결 방법을 모색 하는 일, 자신이 갖은 노하우를 남김없이 제자에게 전수해 주고 자신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채우는 일,

이 모든 일련의 문제해결 과정들이 바로 이 책의 주제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여타의 개발서 내용과 그리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 보다 스승과 제자의 소통의 방식이 더 눈의 띄이는 대목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중 하나는 소통의 부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서로 가식의 격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문제에 깊이 생각해 보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하는 능력

이 필요하다.

 

'하워드의 선물'은 이러한 소통과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 속 문장>

-.지금 넘어진 그 자리가 당신의 전환점이다.

 

"전환점이란 뭘까. 지금까지 달여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어야 할 지점이지"

 

"전환점도 마찬가지야. 그 속에는 우리의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엄청난  '잠재적 동기부여 에너지'가 들어있어. 점환점이란 '지금까지와는

전혀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라 '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잠재적 동기부여 에너지란 이전에는 해본적이 없는 행동을 과감히 할 수 있게끔 박차를

가하는 힘이다"

 

"여행자와 방랑자의 차이를 알겠나? 여행자는 스스로 길을 걷지만, 방랑자는 길이 대신 걸어준다네"

 

"전환점은 기회의 덩어리 이기는 하지만 오래 기다려주진 않아. 폭주 기관차처럼 돌진해 왔다가 번개처럼 멀어지지. 기관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그것이 전환점 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재빨리 올라타야해"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시작하라

"언제나 나는 근사한 누군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문제는 그 바람이 좀 더 구체적이어야 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과 일에는 수많은 퍼즐 조각이 있지 않나? 그런데 완성된 전체 그림이 어떻게  생긴지 모른다면 퍼즐 조각을 어디에 끼워 맞춰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조각 하나에 몰두한 채 그것이 더 큰 그림에 어떻게 들어맞을지를 신중히 고려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돼"

 

"최고급 승용차 멋진 별장.....그들은 자신의 성공이 인생의 보다 복잡하고 장기적인 밑그림에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몰라. 단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만 생각할 뿐이지. 그 목표가 다른 퍼즐 조각들, 그러니까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목적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거야"

 

"조지처럼 능력있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것이 있어. 잠시 멈추는 것. 쉬지 않고 달리는 일에만 익숙하다 보니 멈추는 법을

모르는거야. 솔직히 무조건 달리는 건 쉬운일이지.

정해진 트랙만을 도는 경주마를 생각해보게. 무슨 고민이 있겠나? 골인 지점만 바라보고 무작정 달려가면 되잖아?

하지만 야생마들은 달라. 가야할 곳이 어딘지, 피해야 할 곳이 어딘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천천히 달려야 할 때와 질주 해야할 때를 매순간

판단 해야돼.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추네"

 

"멈춘 다음에는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넓고 깊게 생각해 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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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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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범인들은 현실에 무게로인해 새로운 많은 곳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이러한 현실을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혹은 영화와 같은 간접 경험을 통하여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을것이다.

이노우에야스시의 둔황에서는 격동의 11세기 서중국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다.

 

1026년 송나라에 살던 조행덕이라는 서른두살 청년은 당시의 고등 문관 임용 시험인 진사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수도 개봉을 찾아간다. 그러나 당일 잠시 잠이 들게 되고 시험의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의 인생 최대의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다음 시험까지는 3년을 기다려야 하니 정말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이 허사가 되버렸을 때 자신의 무능을 탓하고 그동안 절제해왔던 자신을 놔버린다. 그러면서 그 자신은 더욱 황폐해 진다. 그러나 신은 항상 앞쪽을 문을 닫으면 다른쪽의 문을 열어둔다. 누구나 그 상황을 해쳐나갈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렇게 믿는 사람만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조행덕 또한 잠시 실의에 빠졌으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서하의 여인을 통해 운명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서하라는 나라에 궁금증을 가지고 서쪽으로 간다. 그 여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게 그의 운명을 개척한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며 서하,토번,거란등의 당시 11세기 중앙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을 잠시나마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중심지 둔황, 그곳의 천불동에 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다.

 

조행덕은 비록 자신이 생각하는 최대의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주변 인물과의 복잡한 관계속에서 자각을 하고 좀더

의미있는 삶을 위하여 종교에 귀의한다. 천불동에서 발견된 수많은 고문서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천불동은 다시금 생명을 얻었다.​

 
이 거대한 스케일의 소설은 우리나라 작가 오세영의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탈리아에서 봤던 루벤스의 그림을 모티브로하여 안토니오꼬레아라는 주인공이
16세기에 어떻게 이탈리아로 갔으며 어떻한 경위로 루벤스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는지를 역사적 팩트와 픽션을 조화시켜 훌륭하게 묘사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꿈꾸는 젊은이드에게 이 소설을 잠시나마 둔황의 사막냄새를 맡게 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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