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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솔로 - 유리의 지평선
라인홀드 메스너 지음, 김희상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7월
평점 :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은
영원한 것일까?
라인홀트 메스너는 그렇지
않다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8,125m의 낭가파르바트를 무산소로 그것도 단독으로 등정했던 것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정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계속 도전을 감행했다.
이 책은 메스너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 단독등정으로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아마다블람 등정이
실패하고 네팔에서 유럽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시작된다.
메스너는 낭가파르바트 등반의
성공으로 다른 히말라야의 고봉도 무산소 단독등정이 가능함을 깨닫고 다음 목표는 에베레스트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한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1980년 겨울에 단독등반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메스너는 자신이 더 먼저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네팔 정부에 허가를 요청한다.
“나는 우에무라 나오미보다 앞서 정상을 단독 등정하고 싶었다. 나는
세계 최고봉을 혼자 오른 최초의 등산가이고 싶었다.” 81
그러나 네팔에서는 몬순시기
등반은 위험하니 등반은 어렵다고 한다.
때마침 중국에서 외국 등산가에게
에베레스트를 개방한다는 소식을 접한 메스너는 그 길로 중국으로가서 티벳쪽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중국에 도착 후 티베트로
이동하면서 중간에 들렀던 장소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은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는 글쓰기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는 6500미터에 전진캠프를 설치한다. 그리고 정상까지의 구간 중 가장
까다로운 노스콜까지 고군분투하며 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주먹을 불끈 쥐는 것과 같다. 주먹을 쥐지
않고 펼친 손만이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는다. 단독 등반에서 맞닥뜨릴 모든 위험에 맞서기 위해 나는 힘을
조금이라도 허비해서는 안된다.” 149
7주 동안 50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고소 적응을 마친 후, 1980년8월17일 마침내 출사표를 던졌다.
해발5000미터 이상의 지점에서 7주를 보낸 나는 베이스캠프 주변을 고향땅처럼
돌아다닌다 191
첫날 노스콜 아래까지 올라
배낭 데포에 성공 후 전진 캠프까지 내려왔다.
전체 구간 중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기에 미리 배낭을 그곳에 가져다 두었던 것이다.
다음 날 그는 다시 노스콜까지
올라 배낭을 찾았으나 얼마 안가서 크레바스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에 봉착하고 만다. 그러나 신은
그의 편이었다.
크레바스를 빠져나오자 심각한
고민을 한다. 계속 오를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하산을 할
것이냐. 그의 본능은 그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저,아래 크레바스 안에서 나는 돌아가자고, 포기하자고 거의 마음을 굳혔었다. 몸 성히 빠져나올 수 있다면 나는
등반을 중지하고 싶었다. 다시 위에 선 지금,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정확히 의식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 발은 마치 프로그래밍이 된 것처럼
앞만 향해 나아갔다.“215
“모든 동작은 몇백 번이라도 연습한 것처럼 빠르고 확실했다. 단 한
번의 손놀림도 나는 허비하지 않았다. “211
해발고도 7000미터가 넘어가면 공기는 희박해져 지상의 1/3만 남게된다. 뇌로 충분한 산소가 전달되지 않으면 인간은 무너진다. 고산병의 원인이기도 하다. 위로 오를수록 공기는 옅어지지만 반대로
불안,공포,회의감,고독,지독한 외로움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시시포스의 진짜 아픔은 같은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 때문에 빚어지지 않는다.
시시포스는 위에도 아래에도 머무를 수 없어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을
괴롭히는 진짜 위협은 위에도 아래도 머무를 수 없는 자신의 존재에서 오는 회의감 아닐까?” 204
“휴식 사이의 걷는 구간이 갈수록 짧아졌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
나는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다시 일어서는 일은 엄청난 의지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힘이 부칠 때마다 스스로 정한 하루 목표를 채워야만 한다는 굳은 다짐이 도움을 주었다. 목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228
7220미터에서 첫 비박을 시도했다.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경험을 통해 터득한 교훈을 애써 무시하지 않고 고산에서 꼭 해야하는 루틴을 충실히 해나간다. 좁은 텐트
속에서 물을 만들고 식사를 하고 양말을 갈아신고 등의 일을 할 바에얀 차라리 계속 등반하는 것이 훨씬 쉽다라는 그의 표현은 얼마나 고산에서의 비박이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한 일인지 반증한다.
그의 정신은 이제 오로지 한곳에 집중되며 고도로 순수해진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르게 된 동기들은 연기처럼 사그라들어 버린다.
“그동안 등반을 하며 경험을 터득한 진리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루트나
날씨와 마찬가지로 이런 경험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233”
“두려움에 떨며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바라는 안일함과 싸우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지녀야 하는 걸까? 234”
“맬러리의 시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에베레스트에 단독으로
그것도 최초로 오르고 싶다는 야심 등 이런 모든 피상적인 동기들은 이미 깨끗이 날아가 버려다. 지금
나를 이끄는 힘은 나 자신, 그리고 심리학자의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240”
다음날8,220m까지 고도를 올리면서 고통은 더욱 심해져다. 하지만 한발한발에 집중하며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멈추어 서는 것, 계속 걷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 계속 가고자 하는 의지에 힘을
북돋워준다. 성공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체험은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기쁨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동안 정상을 추구하는 것만 이야기하느라 등반하면서 느끼는 이런 만족감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247
대망의 20일이 밝았다. 흐린 날씨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뒷일은 이제 신경쓰지
않았다. 모든 장비를 텐트에 두고 카메라만 챙겨 정상을 향해 계속 올랏다. 희박한 공기와 가파른 지형이 그를 위협했다. 그는 맘을 다잡는다.
과거를 돌이키거나 내일을
생각하지 말자. 올라가려는 의지를 꺽는 절박함을 누를 방법은 이것 뿐이다. 272
그리고 오후3시 그는 안개에 쌓인 알루미늄 삼각대를 발견한다. 바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희열을 느끼기 보다는 담담하다. 정상은 단지 그에게 수단에
불과할 뿐 진정한 목표는 죽음에 맞서 자신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인간 정신의 높은 향상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다. 우리는 간혹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다.
해냈다는 승리의 도취감은
없다. 그냥 너무 피곤하기만 하다. 이 순간, 특별하다거나 행복하다는 느낌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은 미리 예견했던 바다. 정상
등정은 내가 설정한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일종의 마침표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나는 차분해진다. …..나 자신은 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애써도 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시시포스다.283
그는 결국 살아서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인간을 절망끝에서 깨달음을 얻곤한다. 죽음의 경계
임계점까지 다가선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에베레스트는
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죽음의 경계까지 모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메스너가 진정 원하던 삶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 등반의 동기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죽음이야말로
내 태도를 바꾸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나는 이처럼 경계,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 가까이 가본 적이 없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에 서서 나는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경험했다. 이번 등반처럼 내 존재를 뒤흔든 경험은
없다. 아마도 이번에 나는 경계를 뛰어넘는 도약을 한 게 아닐까? 물론
이 도약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이 도약의 의미를 차분히 새겨야만 한다. 인간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환경에서 몇 주 동안 벌인 생존투쟁은 나를 바꾸어 놓았다. 303
메스너가 등반하면서 느꼈던
시간의 상대성에 관한 사색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중력이 강한 행성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절대적인 시간의 틀 속에서 살아가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등반은 매일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산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동안 시간은 평소 일상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다. 정상을
오르며 무수히 많은 감각적 인상을 받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런 인상 가운데 기억 속에 저장되지
못하고 흐러가버리느 ㄴ것 역시 무수히 많다. 다른 한편으로 정상 등정은 300킬로미터를 가는 여행과 마찬가지로 대체 이게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로 더딘 시간을 느낀다. 말하자면 무수히 작은 순간들로 이뤄진 영원이랄까. 그 작은 순간들은
붓질한 색이 번지듯 빠르게 기억속에서 흐려진다. 304
성공 적인 등반으로 메스너는 중국 및 유럽 언론으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기록과 흥미거리 위주였다. 이에
메스너의 촌철살인의 답을 내놓는다. 그의 등반 철학을 다시금 볼 수 있는 대복이었다.
“출발에 앞서 질문 이어졌다. 왜 에베레스트 정상에 두 번이나 올라가야
했느냐? 필요한 돈은 누가 주었느냐? 어떤 사람이 후원을
했느냐? 어떤 국기를 가지고 갔는지도 물었다. 어느 나라를
대표해 등반하느냐?
나는 말했다. 등반은 오로지 나의 욕구로 내가 경비를 마련해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내가 나의 고향이며, 내 손수건이 곧 내 국기입니다” “307
“유럽에서도 사람들은 내 기록, 메스너의 무의미한 기록 중독에만 관심을
가졌다. 나의 단독등반은 미지의 차원으로 올라서려는 탐험이다. 몬순
시기의 날씨만 미지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몸, 더
나아가 인간 정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한계는 언제나 미지의 것으로 남아 우리의 도전을 자극한다. 등반가로서 내가 오른 정점이 이제 내 디에 놓였다.”308
메스너의 글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영감을 준다. 그가 산에서 경험한 수많은 상황들과
우리의 인생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오는 공감때문이 아닐까.
많은 나이에도 2016년 까지 고비 사막으로 모험을 떠나고 최근에는 울산 산악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정력적인 그의 모습은 내게 많은 귀감이 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많은 힘이 된다.
“나는 다시금 길을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함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다. 나를 가능성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도록 모든 힘을 쏟게 만드는 욕구는 이런 부담감에서 나온다. 삶의 기쁨을 누리며 이런 도전을 감행할 때 행복감이 샘솟는다. 이제
다른 산이, 내가 알지 못하는 풍경이 내 안에서 생동히기 시작했다.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