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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내가 만나 왔던 많은 주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직장생활 할 때 출산으로 인해 정규직의 여직원이 퇴사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모습을 보아왔다.
또한, 회식 때 직급이 높은 상사 옆에 여직원 자리를 배치하고 술 따르는 모습, 상사의 노래방에서 위험 수위 수준의 여직원에게 신체접촉 등 그때는 뭔가 잘못인지 알면서도 쉬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당하는 입장에 대해 진지하게 공감하지 못했고 하려는 노력조차 안 했다.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으로 자리를 비울 때도, 아이 때문에 일찍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도 이래서 남자직원을 회사에서는 선호한다는 말을 동료들과 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육아에만 전념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 또한 어떠한가. 육아에만 매달리면서 그들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사회로부터 배제되면서 가정에 유폐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살아오신 모습을 보고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충분히 인지하고 생각해낼 수 있는 문제였다. 그만큼 주변에 관심 없이 살아왔다.
건물 안에 있을 때보다 밖에 있을 때 안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는 법이다.
너무 가까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떠한 점만 보려 했고 전체적인 면을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예전과는 상황이 바뀌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보니 인제야 사회가 힘없는 개인에게 가하는 차별이 눈에 보이고 공감이 가기 시작하고 관심을 끌게 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이제 접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현재 고민하는 사람에게 같잖은 조언 따위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경험해볼 수는 없지만, 많이 조심스러워진다.
지금의 나는 사회 부조리와 차별에 반대해 권력자에게 저항할 수 있을까.
쉽게 자신할 수 없다. 전에 비해 변한 것이 있다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깨닫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느냐가 관건이다. 주변이 조금씩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더는 김지영 씨 같은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를 꿈꾸며…
<책속 문장>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46
1990년대까지도 한국은 출생 성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나라였다. 김지영 씨가 태어났던 1982년에는 여야 100명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남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1990년에는 116.5명이 되었다.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103명에서 107명이다.. 53
한번은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다 교문에서 붙잡힌 여학생이 왜 남학생들에게만 면티와 운동화를 허용하느냐고 항의했다. 선도부 교사는 남자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여학생은 괘씸죄까지 더해져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교사는 쭈그려 앉으면 속옷이 보일 수
있으니 치맛단을 잘 붙잡으라고 말했지만 여학생은 끝까지 치맛단을 추스리지 않았다. …..역시 복장 불량으로
적발되어 나란히 교무실로 끌려가던 같은 반 아이가 왜 치맛단을 붙잡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옷차림이 얼마나 불편한 건지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학칙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도부와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의
면티와 운동화를 모르는 척했다. 56
김은영 씨가 스무 살이던 1999년에는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김지영 씨가 스무 살이던 2001년에는 여성부가
출범했다. 72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93
김지영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96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101
나란히 앉아 있던 과장이 맥주잔과 수저를 들고 일어서며 김지영 씨에게 부장 옆에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김지영 씨는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고 죽어도 그 자리에 앉기가 싫었다. 116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그렇게 멀어지다가 그
밤 일로 크게 싸웠다. 119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혔다. 124
결국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2005년 2월에 호주제가 헌법상의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왔고,
곧 호주제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민법이 공포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호적 같은 것은 없고, 사람들은 각자의 등록부를 가지고 잘 살고 있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인신고
할 때 부부가 합의했다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 132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146
낮 시간 강좌들은 대부분 취미반이거나 독서, 논술, 역사 지도사 같은 어린이 대상 강사 자격증 준비반이었다. 여유가
있으면 취미 생활을 하고, 여유가 없으면 내 애든 남의 애든 가르치라는 건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관심사와 재능까지 제한받는 기분이었다. 163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를 위한 것들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를,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의 의무인데, 개별 가정에서 대부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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