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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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가을 허멘 멜빌의 소설《모비 딕》이 미국에서 출간된다. 화자로 등장하는 이슈마엘은 몇 년 전 자신이 포경선을 타면서 경험했던 독특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오직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자들은 《모비 딕》을 외면했다. 태평양까지 뻗어가는 미국 영토의 확장, 골드러시, 노예 문제 등 당면한 현실을 살아가기도 벅찼다. 이후 1859년 펜실베니아에서 검은 황금이 발견되자 이제 고래들은 비로소 인간의 모진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때문인지 고래에 관한 관심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고 《모비 딕》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격동의 19세기 구대륙과 신대륙

1850년대 구대륙은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다. 1848년 1월 시칠리아에서 발화한 시민혁명은 파리로 이어져 밀라노, 빈 등 전 유럽에 들불처럼 퍼졌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이탈리아 왕국, 독일 제국 등 유럽에 새로운 민족국가가 등장했으며 헌법을 통한 통치가 시작된다. 신에게 부여받았다고 여겨진 절대권력의 허상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내 심판대에 세워지고 파멸을 예고했다.

대서양 건너의 신대륙은 유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 동부 13개 식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1850년, 미국은 전쟁, 약탈, 영토 구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이르는 광대한 대륙 국가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인종, 종교, 사상, 철학은 주류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특히 많은 원주민이 자신들이 뿌리를 내렸던 터전에서 이주해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면화 재배를 위해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었으며, 조만간 노예제도를 둘러싼 이슈로 인해 남과 북이 나뉘어 큰 전쟁을 치를 참이었다. 이런 사회 배경에서 허먼 멜빌은 《모비 딕》에서 당시의 사회 문제를 은유와 비유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성찰한다.

‘이슈마엘’이라 불러달라는 남자

화자는 자신을 이슈마엘로 불러달라면서, 몇 년 전 있었던 특기할 만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뉴베드퍼드에서 태평양의 작은 섬 출신의 원주민 퀴케그를 만났을 때 인종적/종교적 선입견을 품었다. 하지만 퀴케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관찰하면서 그의 매너와 진실성을 경험하면서 제 생각이 짧았음을 시인한다. 이어 피쿼드호에서 만난 다국적 인종들을 만나 서로 부대끼며 그들을 자신과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한다. 이슈마엘은 항해를 통해 고래의 생태학적, 해부학적, 골상학적 부분을 세세히 관찰했고, 포경산업의 세세한 구조까지 자세히 연구한다. 다른 선원들처럼 에이해브의 맹목적 질주에 동조했으나 나중에 이를 반성하는 성찰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렇듯 모험은 늘 가까이 한 지점에서만 바라보는 세상이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몇 걸음 떨어지게 만든다. 관점이 달라지자 더 큰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가깝게 있을 때는 파편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하나의 큰 모자이크와 같은 입체적 실체로 인식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구원의 기회를 놓쳐버린 자들

《모비 딕》은 다국적 선원으로 구성된 포경선 피쿼드호가 미국의 유명 포경기지였던 낸터킷 항을 출항하는 것으로 본격 시작한다. 선주, 선원 모두가 고래기름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에 들떠있다. 하지만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빼앗아 간 ‘모비 딕’이라 불리는 향유고래를 찾는다. 평생 자신을 고래 뼈로 만든 다리에 의존하게 만든 모비 딕의 파멸을 꿈꾸며...이러한 광적인 집착은 이성의 눈을 가리고 오직 본능에만 충실하게 만들면서 결국 자신을 스스로 파멸로 이끌 운명이었다.

인생은 권선징악처럼 단순치 않다. 스스로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자에게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기회를 준다. 아킬레우스의 광기를 아테나가 조절하지 않았다면 희랍군은 트로이아에서 파멸을 맞이했으리라.

통제력을 상실한 폭주 기관차와 같은 에이해브 곁에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어르고 달래는 스타벅이라는 일등 항해사가 있었다. 스타벅은 끊임없이 에이해브의 독선을 지적하며 당면한 현실을 보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그 실낱같은 기회마저 저버린 선장은 함께 배에 탄 선원들까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총동원한다.

선원들 또한 선장의 카리스마에서 벗어나 파멸을 피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그들 또한 잘못된 에이해브 선장의 이상에 경도되어 함께 자멸한다. 왜 그들은 선상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였던가. 스타벅은 왜 선원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에이헤브의 권력에 맞서지 못햇던가. 결국 절대권력에 대항하고 그것을 저지하지 못했을 때 독재자뿐 아니라 그의 권력 아래에 있던 무고한 사람들 또한 심연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이 고래와의 사투끝에 바다에 수장됨으로써 소설은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화자인 이슈마엘은 죽음에서 부활한다. 작살잡이 퀴케그의 관(부명부표)이 부이 역할을 하며 그를 구원한다. 서두에서 결국 이슈마엘이 이 이야기의 전말을 전해준 것이 오직 그만이 가능했던 이유다. 모세, 석가, 예수, 마호메트 등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발견한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준 선지자들처럼 이슈마엘도 《모비 딕》의 특별한 경험 공유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 성찰하길 바란다.

《모비 딕》의 재평가

허먼 멜빌은 12세 때 상인 출신의 아버지가 죽자 외판원, 구두닦이, 교사, 선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특히 그가 포경선 선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모비 딕》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다. 기존 전통과 다르게 자주 작품의 시점이 변하고, 느닷없이 고래학에서나 볼법한 해부/생태학적 내용이 튀어나오니 대중이 좋아할 리 없었다. 이후 익명성보단 개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했고, 뒤이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모든 소외된 대상에게도 빛이 찾아들며 《모비 딕》은 재평가된다.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멜빌은 《모비 딕》 이후 대중이 기억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의 첫 히트 작품 《타이피》 같은 대중이 관심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해양 모험 소설이 아닌 《모비 딕》같은 심오한 생각이 담긴 작품을 고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일정기간 자신의 인지도를 굳건하게 인식시킨 다음 실험적인 작품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가족 관계도 그리 좋지 못했다. 두 아들은 각각 자살과 지병으로 자신보다 일찍 죽었다. 아내와의 관계가 좋을 수 없었다.

그는 일흔이 넘어 죽을 때까지 고독하게 살았다.

자기 작품이 인정받기를 꿈꾸면서.

마치 흰고래만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의지를 집중했던 그가 창조했던 에이해브 선장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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