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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 사랑과 인성을 키우는 밥상머리 이야기 ㅣ 처음부터 제대로 10
우현옥 글, 최미란 그림 / 키위북스(어린이) / 2015년 2월
평점 :
어제저녁의 일입니다. "얼른 저녁 해 줄게, 밥 먹고 같이 놀자!"라고 해두고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아이가 그러는 겁니다. "엄마, 밥은 여자만 하는 거지?"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성평등에 관해서라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꽤나 신경 썼던 부분이고, 아이 아빠도 이에 동의해 곧잘 요리와 부엌일을 하는 편이었거든요(물론 부엌일을 조금 한다고 성평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부엌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아이 앞에 앉아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이 책을 내밉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었어요.
저녁 하는 것도 잊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어요. 커다란 설정은 이렇습니다. 맞벌이 가정인 보리네 집에 청학동에 사는 큰아빠네 가족이 일주일 동안 오게 된 거예요. 큰엄마는 친정에 가고, 큰아빠와 사촌동생 수리만 왔습니다. 지리산 청학동 서당의 훈장님인 큰아빠는 상투머리에 한복을 입고, 한자뿐 아니라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지며 예절을 가르치는 분입니다. 음식은 여자가 해야 한다, 아침은 꼭 '밥'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죠. 그렇지 않아도 바쁜 보리네 엄마는 일주일을 보낼 생각에 정신이 아득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일단 하는 데까지 해봅니다.
아침은 건너뛰거나, 시리얼이나 토스트로 가볍게 먹던 보리네는 갑자기 한식으로 아침을 먹으려니 힘에 부칩니다. 익숙하지 않은 요리를 새벽부터 하려니 일이 만만치 않지요. 그런데 와중에 큰아빠는 엄마를 자꾸 보채네요. 아빠가 돕지도 못하게 하고요. (부글부글) 가만히 앉아서 언제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냐, 숟가락 위치와 젓가락 위치가 틀렸지 않냐-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지요. 엄마 아빠의 퇴근이 늦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보리를 보면서도, 저녁을 밖에서 종종 사먹는 것에 대해서도 큰아빠는 한마디씩 얹습니다. 밖에서 사먹는 게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하는 전형적인 레퍼토리지요. 이쯤 되니 큰아빠가 하는 밥상머리 교육은 제게 아무것도 와닿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되려면,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야 할 텐데 이미 누군가의 마음이 상했고, 누군가의 마음이 불편해졌으니까요.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식탁에 올라왔다 한들 기분 좋은 식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큰아빠도 많이 변했어요. 하지만 엄마를 위해 준비하는 밥상이 여전히 이벤트성이었다는 점, 그마저도 아빠와 큰아빠가 완성하지 못해 엄마가 마무리해야 했다는 점, 마지막 장면에서도 요리를 하는 건 엄마라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밥상머리 교육 중요하죠. 밥 먹기 전에 손 씻는 것은 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골고루 먹고, 천천히 씹으며 대화하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피하고 공감과 칭찬, 경청이 오가기에는 이미 식탁에 앉기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존중의 언어가 식탁에서 오고 간다 하더라도 이미 그 이전의 과정이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밥, 정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