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 세계의 젊은 작가 9인 소설 모음
올가 토카르축 외 지음, 최성은 외 옮김 / 강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세계문학축전 '2006서울, 젊은 작가들'이란 대명제 아래 폴란드,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칠레, 스웨덴, 멕시코, 헝가리, 체코 의 젊은 작가들이 한곳에 모였다.
 
우선 제목이 끌리지 않는가?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아이러니, 혹은 뫼비우스의 띠같은 제목...
 
이 제목은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축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C라는 주인공이야기와 그 주인공이 읽는 추리소설이 제시되어지는데 후반부에 이 두 이야기가 서로 얽히면서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만약 이러한 형식이 영화에 차용된다면 어떨까 읽으면서 상상해보았다. 영화를 보던 내가 영화 안으로 들어가 살인을 저지르고 영화밖으로 나온다. 영화 안의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종잡을 수 없는 범인을 찾아헤매고 두려움에 떤다. 그것을 다시 화면 밖에서 감상하는 관객, 곧 나, 곧 살인범... 뫼비우스의  띠가 연상되지 않는가? 이런 기법으로 인하여 이 단편은 첨단의 작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생각한다. 책 제목으로 이 단편의 제목을 내건 것도 그만큼 이 단편의 가치를 높이 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가 뒤이은 단편들은 또렷히 무릎을 치게 만들진 않았다. 아무래도 외국소설은 감성과 생활환경의 차이 탓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다가 문장 역시나 익숙하게 이어지지 않는 번역체들이라 읽고 난 뒤에도 머리 속에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잘 없다.

그러다 다시 기억에 담긴 단편은 스웨덴 작가 레나 안데르숀의 '정상회담'이다.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권력가이다. 대통령, 총리 등.
그러나 사회적 권력보다는 개인적 권력, 친구사이 연인사이 가족사이 일상적 관계에서도 언제든 적으나 많으나 권력은 존재한다는 내 생각을 기반에 둔다면 이 소설에서 권력자가 본인이 지닌 권력을 인식하지 못한 채 휘두르는 권력과 권력 아래에서 순응하며 따르는 비권력자의 모습을 나는 본다.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이 워낙에 당연한 것이라 권력이라 인식조차 못한 채 때론 자만으로 때론 이중성으로 권력자가 되고 비권력자는 때론 무능하게 때론 자포자기로 때론 사랑으로 권력자에 응하고 그 모습에서 나는 권력자가 되었다가 비권력자가 되었다가 하며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마음이 떨려온다. 그는 나와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점점 크고, 점점 흐트러지게 그림을 그리더니 갑자기 멈추고는 나를 낯선 사람인 듯 바라본다.
그의 이런 양면성에 나는 익숙해지고 있다. 아프다. 그는 주자마자 다시 가져가버린다. 아니면 우리의 사랑을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의 인과 개념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가벼운 그림자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바로 그와 함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로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니 그냥 내버려둔다.
 
이 외에도 '정상회담'에서 발견되는 몇몇 문장들은 나를 재밌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잠들어 잔다.
나는 깨어나서 깬다.
 
와 같은 문장. 내가 행하는 행위들을 내가 아닌 남이 행하고 있는 듯 무심히 바라보는 느낌의 문장. 나를 객체화시키는 문장. "왜 나는 네가 아니고 나인가" 언제나 '나'의 우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게 이 문장은 비록 회피라 느끼면서도 평안을 준다. 또한 나의 어깨를 도닥여도 준다.
 
"일상생활 속의 귀납법도 그래. 텔레비전에서 철학자가 얘기하는 걸 들었어. 자기가 보는 모든 까마귀가 검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했어."
 
까마귀가 전부 똑같은 색이든 아예 무색이든 상관없다. 그가 내게 기대어올 때, 내게 다가앉아 머리를 헝클어뜨려줄 때,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 그의 논리에 맞서려는 마음 속의 반박들은 그의 커다란 불 속에 작디작은 물방울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다. 술기운에 이마께가 뜨끈거린다. 우리는 호텔로 간다. 이불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서로의 냄새를 맡는다. 그는 아름다운 말을 속삭이고 나의 애정은 샘솟는다.
 
(옮긴이 : 기영인-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문학석사, 영국 요크 대학교 문학석사)
 
문득 오래전 드라마 '거짓말'에서 성우의 대사가 떠오른다.
 
"사랑을 하면서 강한 사람은 없어.  사랑을 하면 모두가 약자야.  상대에게 연연하게 되니까.  그리워하게 되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지지 않으니까.  우린 모두 약자야."

책 표지가 썩 미묘하다. 반짝이는 흰색 어쩌면 은색인 표지는 햇빛아래 놓이면 금색으로 보인다. 사진으로 그 색을 찍어 올리려 하였으나 사진에선 언제 금색으로 변했더냐는 듯 도로 흰색이 되어 있다. 어쩌면 은색또한 찍히지 않는다. 직접 눈으로만 확인 가능한 표지의 색은 보고 싶으면 사서 보라는 도도한 유혹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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