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작가들의 부고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신영복, 움베르트 에코에 이어 황현산과 필립 로스. 부끄럽게도 끝까지 읽은 책이 없는 작가들이다. 하지만 최근에 돌아가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야기가 다르다. 뉴스를 듣고 며칠 동안 우울했다. 방황하던 20대 시절에 피터슨과의 만남은 내게 용기와 희망을 다시 되찾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읽은 피터슨의 책은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였다. 교회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한참 동안 서있는 체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2010년 스크랜튼 코스타 집회에서 반값으로 판매되고 있는 책 2권을 구입했다. “그 길을 걸으라”와 “이 책을 먹으라.” 그 당시만 해도 IVP에서 출간 중이던 영성 시리즈는 아직 완간되지 않은 상태였다. 각각 제자도와 성경을 다루고 있는 이 책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피터슨이 ‘목회자들의 목회자’라고 불리던 이유를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영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성경 읽기에 대한 열정은 젊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후로 구입한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한 길 가는 순례자,” 그리고 “메시지 신약 성경”도 자연스럽게 아끼는 책들이 되어갔다.

 

며칠 전 시편 묵상집인 “한 길 가는 순례자”를 다시 꺼내서 읽었다. 책갈피를 꽂았던 부분을 읽자 갑자기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던 그의 육성이 궁금해졌다. 바로 유튜브에 가서 영상을 찾아봤다. 내가 상상했던 그 목소리였다. 친절하고 차분하고 나지막한 목소리. 눈시울이 붉어졌다. 피터슨의 따뜻한 성품을 잘 드러내는 것 같은 문단을 옮겨 적어본다.

 

“사랑도 매일 사선을 오간다. 내게 사랑만큼 자신없는 것도 없다. 사랑보다는 경쟁에 훨씬 능한 편이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기보다는 내 분야에서 성공하고 명성을 얻으려는 본능과 야망을 따른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결심한다. 내가 거뜬히 잘 해 낼 수 있는 것은 잠시 미뤄 놓고, 정말 못하는 것을 시도하기로 말이다. 즉 사랑하다가 실패하는 것이야말로 교만에 찬 성공보다 낫다는 것을 담대히 믿으면서 사랑의 좌절이나 실패를 받아들일 각오를 하는 것이다.” (79쪽)

 

다른 책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글은 세련되고 현학적인 동시에 풍성한 문학적 상상력과 은유 또한 겸비하고 있다. 그의 문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피터슨은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영감과 위로를 건네준, 인류에 “메시지 성경”이라는 큰 유산을 남겨주고 떠난 감사한 분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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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믿음의 글들 227
정성욱 지음 / 홍성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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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정성욱 교수님의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을 읽고 싶었으나 선물로 받아서 이 책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분의 저서는 모두 읽을 계획이다. 조직신학에서 다루는 10가지 큰 주제들에 대하여 간략하지만 소상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입문서로 쓰이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물론 더 깊은 논의를 위해서는 다른 책들을 펼쳐봐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에게 조직신학의 필요성과 교리 공부에 대한 지적인 갈증을 불러 일으켜주는 아주 소중한 책이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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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이런 말을 했더랬다. 부부란 참 묘한 인연이라고. 누구하고 친하다고 같이 목욕도 하고 밤에 껴안고 자지는 않을거라고. 참 맞는 말이다 싶었다.


아내가 전에 인스타에 커플사진을 올리면서 나를 베스트 프렌드라고 해시태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내가 왜 너의 베프야? 교회언니랑 제일 친한거 아니었어?" 아내가 말했다. "아니야, 오빠랑 제일 많이 통화하고 자주 만나니깐 베스트 프렌드가 맞지." 난 내가 베프보다 더 괜찮은 존재인 줄 알았는데, 아내의 사전엔 그런게 없었나 보다.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그렇다. 결혼을 해서 참 좋은건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매일 함께 먹고 자고 지낼 수 있다는 거다. 내 온기를 나눠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사를 하자마자 가구를 주문했는데 배달이 2주 정도 걸린다고 해서 급한대로 식탁과 의자,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을 사들였다. 사진은 월마트에서 17불로 득템한 3단 책장이다. 그래서 이케아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100불짜리 책장은 일단 리턴하기로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홍순범의 "인턴일기", 하루키의 "먼 북소리", 그리고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영문판이다. 세번째건 장인어른의 책장에서 발견하고 훔쳐왔다. 이것도 득템이다. 윤종석씨가 번역한 한국어판도 있는데, 왠지 나중에 동생한테 선물로 줄거 같다. 가끔은 두꺼운 책들도 원서로 읽는 게 더 빠르고 편하다.



책장을 보니 주로 아내와 연애하면서 함께 읽었던 결혼에 관한 에세이, 신앙서적과 자기계발서들이 꽂혀있다. 이사 오기 전에 책을 진짜 많이 샀는데,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아서 일단 가볍게 읽을 만한 것과 당장 땡기는 것만 풀어놨다. 독서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읽어 나가자.



지난 금요일에 국경을 넘어서 잠시 캐나다에 다녀왔다. 근처에 와이너리가 있어서 그 유명하다는 아이스와인도 하나 사왔다. 디저트랑 같이 마시는 졀먼 리슬링처럼 알코올 도스는 낮고 맛은 엄청 달다. 딱 내 스타일이다.



내일부터 출근이다. 지금 긴장되서 잠이 오질 않는다. 사진을 첨부했더니 더 흥분되서 잠이 달아나 버렸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후회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블로그에 일기를 쓰니깐 재밌다. 그럼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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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02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프라...지상최대의 찬사 아닐까요? ^^

crazymed 2019-01-02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아내가 제 베프죠^^
 

알파와 오메가

하지만 사랑에 대해 논의한 부분에서 마지막에 던졌던 질문이 아직 남아있다. 도대체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이제야 우리는 비로서 질문을 근본적인 것으로 확대시킬 있게 되었다. 진화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우리는 은혜의 근원에 대한 불가사의함 또한 질문에 덧붙일 있다. 사랑은 의식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은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인간의 의식 외부에서 비롯되어 인간의 영적 성장을 도와주는 강력한 힘은 어디에서 나타나는 걸까?

우리는 질문들을 밀가루나 , 혹은 번데기의 근원을 찾으려 때와 같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다룰 없다. 그것들이 단순히 무형적인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과학에 비추어 질문들이 너무나도 근본적인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이 해결할 없는 근원적인 문제들은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진실로 전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처음 에너지가 만들어진 곳은? 우주의 탄생에 대해서는? 아마 과학이 이런 기본적인 문제들에 답할 있는 날은 결국 오게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린 때까지 추측하고, 이론화하고, 상상하고, 가설을 세우는 밖에 없다.

은혜의 기적과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로 하여금 성장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우리를 사랑하시는 ) 존재에 대해 먼저 가설을 세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분이 존재한다는 명제 자체를 단순하고 쉬운 것으로 생각한다. 지나치게 환상적이거나 순진하며 어린아이의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는가?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주어진 자료들을 무시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우리는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찾을 없기 때문이다. 단순해 보이긴 하지만, 자료들을 검토해보고 그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많은 무리들 중에서 그보다 나은 가설이나 혹은 가설 자체를 내세울 있던 이는 명도 없었다. 어느 누군가가 그럴 있을 때까지 우리에게 허용된 것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어린이 수준의 괴이한 개념 혹은 이론적 공허함뿐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사실이 쉬운 철학적 사고로 안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만약 사랑할 있는 능력, 성장하고 진화하고 싶은 욕구가하나님이 우리에게 숨을 내쉬듯주어진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우린 모든 과연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물어봐야 한다. 분께서는 우리가 성장하길 원하시는가? 우리는 무엇을 향해 성장해야 하는가? 끝은 어디에 있고 진화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가? 나는 여기서 신학적인 논의들에 연루되는 의도하지 않으며, 학자들이 내가만약에, 그리고, 그러나 관련된 올바르고 추론적인 신학에서 다루는 세부사항들을 건너뜀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유부단하게 질문 근처를 서성인다 해도,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결국 하나의 끔찍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처럼(혹은 그녀처럼, 그것처럼) 되길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신성을 향해 자라나간다. 하나님은 진화의 목적이시다. 그 분 진화적 힘의 근원이시고 목적지이시다. 이것이 그 분이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심을 의미하는 바이다.

나는 사실이 섬뜩하다고 말했지만 이는 부드럽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굉장히 오래된 사상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사실로부터 달아나려고 애를 써왔다. 그처럼 인간의 마음에 엄청난 멍에를 씌운 사상은 유례를 찾을 수가 없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인간에게 가장 요구를 안겨주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와 반대로 단순함의 본질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을 믿는다면, 그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전부를, 우리가 드릴 있는 전체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얻고자 해도 얻을 없는 무한한 권력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서 우리를 살피시고 돌봐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분의 위치, , 지혜, 그리고 정체성을 획득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처럼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믿음은 자연스레 우리에게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지우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직무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수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책임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해야만 하는 책임을 마다한다. 신격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 우리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높은 인식의 차원과 사랑의 행위를 향해 스스로 채찍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안심하고 그저 인간됨을 누릴 있다. 만약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우리가 계속 아래에 머물고 있다면, 그리고 서로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에게 진화해야 하는 의무와 우주의 감독에 관한 모든 책임을 전가할 . 우리는 안정된 노년기를 얻기 위해 노력할 있고, 가능하다면 건강하고 행복하고 고마워하는 자식들과 손자들도 얻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 자신들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물론 목적들 자체는 이루기 힘들뿐더러, 폄하시킬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오랫동안 휴식을 취할 없고, 내가 해야 있이 끝났다고 말할 없게 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크고 넓은 지혜와 유용성을 얻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적어도 죽을 때까지, 자기계발과 영적 성장을 위한 없는 달음박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하나님의 책임이 우리의 책임이 되야 한다. 이것이 신격을 이룰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 혐오스러울 밖에 없는 이유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처럼 성장하기를 바라시고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양분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 자신의 게으름과 대면하게 만든다.

"The Road Less Traveled" by M. Scott Peck 원서, 268-271쪽 번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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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02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I agree!!! 만나서 반가워요~여기의 글들을 읽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네요 crazymed님의 맘을 반영한 듯! 커피한잔 마시면서 볼 글들이네요 ^^

카알벨루치 2019-01-02 09:14   좋아요 1 | URL
제게 그럴만한 꺼리가 있다니 감사하네요 ^^ 브라이언 트레이의 <Get Smart> 처음에 보니 노후대책에 필요한 돈을 계산해보라는 말로 시작하던데...진짜 답이 안 나오더라구요! 저자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한번 강의할 때 8억씩 번다는 사람인데...과연 인생이 내 설계대로 되는가? 준비는 하되 그걸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위험하단 생각입니다 오늘도 강건하소서!


crazymed 2019-01-02 09:35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준비하시면 그에 맞는 합당한 열매를 맺으시리라 믿어요. 저도 올해엔 재태크 공부를 시작해보려구요! 언급하신 책도 한 번 검색해봐야겠네요^^ 그럼 오늘도 승리하세요~

crazymed 2019-01-02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카알벨루치님^^ 선배님이 쓰신 글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 과학과 신앙에 얽힌 해묵은 편견 걷어 내기
우종학 지음 / IVP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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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 교수이자 크리스천 작가인 우종학 박사가 쓴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이다. 정확하게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크리스천들에게 유신 진화론을 소개하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무신론 과학자들은 기독교를 향해서 무분별한 공격과 비난을 퍼부어 왔다. 이 책은 그 도전에 대한 응답이요, 한 개인의 신앙고백이며 지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안일한 태도와 무책임으로 일관했던 크리스천 과학계에 경종을 울리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입문서라 기대했던 것보단 내용이 쉽고 깊이가 얕은 책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후속작도 목차를 확인해보니 기본적인 내용과 골격은 비슷해 보인다. 평소에 관심이 가던 저자의 책이라서 시험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 만에 읽었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믿음을 잃어버린 한 청년 기자가 어렸을 적 주일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대학교수가 된 은사를 만나서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하나의 전제를 세우고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과학은 중립적인 학문이어서 신과 자연, 그리고 성경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많은 현대인들이 과학과 신앙의 대립구도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영향, 한국 교회에 만연한 반지성주의와 무관심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과학은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침묵한다. 아니 침묵해야만 한다. 같은 태양을 보더라도 한 사람은 초월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상상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 반대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과학자는 후자에 해당된다. 과학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는 과학을 쉽게 무신론 편에 들게 하였지만, 저자는 과학자들 중 상당수가 불가지론자이거나 크리스천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아인슈타인도, 얼마전에 작고하신 스티븐 호킹 박사도 신에 대한 질문을 끝내 놓질 못했다그리고 중세시대부터 과학발전을 주도해나갔던 세력이 기독교라는 역사적 사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자연과 성경은 각각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다. 하지만 자연을 해석하는 것은 과학이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신학이다. 두 학문은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별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같은 질문에도 상이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과학은 자연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초첨을 맞추는 반면, 신학은 자연현상이 ""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예를 들어 진화과정은 과학이 설명해줄 수 있어도, 진화의 초기와 원인에 대한 담론은 신학이 감당해야 마땅하다. 이 두 가지만 분리해도 어느정도 지적 혼란은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단 한번도 신앙과 과학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은 적이 없다. 두 학문은 양립할 수 있으며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 더 폭넓은 신에 대한 이해에 다다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크리스천은 과학연구의 업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요지이며 유신 진화론을 옹호하는 기본적인 자세다.


저자는 진화, 진화이론과 진화주의가 각각 다르다고 설명한다. 진화는 자연현상을 말하고, 진화이론은 그것을 정리한 과학적 이론이며, 진화주의는 세계관의 성격을 띤 정신적 흐름을 의미한다. 그리고 "틈새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는 주로 창조과학 지지자들이 본인들 주장의 빈틈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표현이다. 하나님을 기적이라는 영역에 제한해버려서 자연현상을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을 때에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단정짓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래서 연구에 의해 인과관계가 드러나게 되면 하나님의 역할이 축소되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창조과학론자들과 리처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 진화주의자들이 곧잘 빠지게 되는 함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기적으로도 일하시고 창세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자연원리와 물리법칙을 통해서도 일하신다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지 결코 연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유한한 인식적 틀 안에 가둘 수 없고,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분이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늘 논란의 중심을 차지하는 창세기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방법, 구조, 연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지만, 넷째 날에 빛의 근원인 해와 달을 만드셨다. 이 구절은 과학적 원리에 명백하게 어긋난다. 하지만 저자는 창세기가 창조물들이 "" 만들어졌으며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기능적인 것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고 말한다.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으며, 그 당시의 우주관과 풍습, 언어와 번역의 한계 또한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과학자로서 과학의 한계 또한 분명하게 지적한다. 빅뱅이론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발견했지만, 과학은 여전히 우주, 생명과 의식의 기원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아담의 원죄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나 창세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에 대한 설명은 복잡하므로 그냥 넘어간다.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의 현주소, 그리고 그에 대한 기독교 내에서의 우려와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도 담겨있다. 크리스천들 중에 진화-창조 논란에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을 만한 책이다. 챕터들마다 있는 요약정리, 토론문제와 추천도서 목록은 이 책을 더욱 가치있게 만든다. 교회모임이나 스터디 그룹에서 같이 읽어도 좋겠다.


세계관은 철학적 신념이나 가치관이라 부를수 있고, 신학적 지식을 실천척 학문으로 정리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가끔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했다가 상대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길 때도 있지만,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으며, 믿음체계와 사상이 다른 타인과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역시 타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적 견해들에 대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굳게 믿는 것이 나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안다면, 독서를 통하여 신앙과 교리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를 해보는 시간도 가져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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