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슬 - 유금 시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
유금 지음, 박희병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집을 읽게 된 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까닭도 있지만 『말똥구슬』이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거기 덧붙여 유금이 유득공의 작은아버지이며 연암 일파 사람이라지 않는가. 평소 서얼출신 연암 일파에 무작정 좋은 느낌을 갖고 있었던 나는『말똥구슬』이란 책이 어떤 글을 담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유금(柳琴) 1741 ~ 1788. 시인이자 실학자이다. 연암 일파의 일원이며, 저명한 실학자 유득공의 작은아버지다. 작은아버지라고는 하나 유금과는 나이 차가 일곱 살밖에 나지 않아 서로 아주 친밀하게 지냈다. 유금은 기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고, 거문고와 해금 연주에 뛰어나며 전각(篆刻)에도 일가를 이루는 등, 문학과 예술과 자연과학에 두루 탁월했다.

정조 7년 극심한 가뭄이 들어 이조판서로 있던 서호수(연암일파 중 한 사람인 서유구의 아버지임)가 상소를 올려 용미차(양수기) 제작을 건의했는데 정조는 이 건의를 받아들였고 유금은 이때 서호수의 요청에 따라 용미차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듯 빼어난 재주와 세상을 향한 뜻을 품은 인물이었지만 서얼이란 출신성분 때문에 끝내 벼슬에 기용되지는 못하고 평생 포의로 살다가 하직하였다. 유금이 재주가 있음에도 그 재주를 펼쳐보지 못 하고 평생 포의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얼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서얼에 대한 극심한 차별이 있었다. 정조는 서얼 금고의 문제점을 완화하고 검서관이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이 자리에 서얼을 임명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대다수 서얼들은 여전히 정치․사회적 진출이 막혀 있었다. 그렇다고 수공업이나 장사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일 양반이 그런 일을 하면 비천하게 여겨 더 이상 양반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양반은 가난해 굶어 죽을지언정 생산직에 진출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생계가 막막한 현실임에도 사회적으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려 시라도 짓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유금의 시를 읽으며 그 마음을 짐작해본다.


유금의 시는 고사나 전거(典據)를 사용하지 않아 자연스럽고 담백하다.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곤조곤 말하듯 하여 정답기까지 하다. 소박하고 어렵지 않아 나처럼 시를 잘 모르겠는 사람도 읽기 쉽고 그 마음 또한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아끼고, 자신의 처지를 애달파하는 마음이 그의 시에 담겨있어 진실함이 느껴진다.

『말똥구슬』엔 유달리 벗에 관한 시가 많은데 이는 유금이 평생 벼슬이 없는 선비로 살아가면서 달리 위안받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유금이 특히 가까이했던 벗은 이덕무, 박제가 등 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서얼로서 유금과 신분적 처지가 같았다. 이들에게 벗은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동시에 살아가는 힘이었을 것이다. 즉, 벗이 나이고, 내가 벗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벗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시 곳곳에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애잔하게 한다.

새벽 북소리 은은히 들리고
밥솥에선 푹푹 김이 나누나.
앉아서 먹구름 개길 기다렸더니
뜨락 나무에 후두후득 빗소리 듣네.
(......)
 

이처럼 비 내리니 글쎄 형암은
남성에 대체 어찌 갈라나.
모를레라 그이도 집에 앉아서
내가 어찌 갈라나 걱정할는지.
(......)

큰딸은 처마의 낙숫물로 장난치고 있고
막내딸은 침상에서 자고 있어라.
그 어미는 서쪽 창 아래에 앉아
눈을 깔고 무명을 손질하고 있네.
 

-「무자년 한가위에 아우 및 조카와 성묘가려고 했으나 비가 와서 못 가게 되자 함께 시를 읊으며 회포를 풀다」 중에, 110쪽.

*형암 : 이덕무의 호

박지원이 써 준 『말똥구슬』서문에‘말똥구리는 제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일세.’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듣고 유금이 시집 이름을 『말똥구슬』이라 했다고 한다. 담백하고, 애틋하면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를 읽다보면 유금이 왜 시집 제목을 『말똥구슬』이라 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


마음이 한없이 우울하고 초라한 날 유금이라는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재능 있었던 한 사람이 꾸밈없이 진솔하게 읊은 시들을 읽어봄은 어떨까.

그리하면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 위안 받을 수 있지 싶다.

이 글을 쓰면서 곱씹어 시를 읽으니 애잔하고 따뜻한 기운이 내 온 마음에 꽉 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