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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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 싸우게 된걸까?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지 않던 시절도 있었을까? 심진경 평론가의 말대로 과연 우리 시대에 자매애란 가능한 것일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는데 (지금도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적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만인은 만인의 적이다. 만인은 만인에 대하여 투쟁한다. 굳이 토마스 홉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시민론]까지 파고 들어가지 않아도 이 사실은 명백하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구촌 인류 중에 이 말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투쟁'에 프레임을 들이대면 곤란하다. 여자는 여자에 대하여 싸운다든지 남자는 남자에 대하여 싸운다든지 뭐 이런 프레임 말이다. 사람의 뇌는 변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변수는 위기와 위험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수를 줄이기 위하여 뇌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 중 하나가 프레임이다. 시야를 자꾸 좁히는 것이다. 타조가 구덩이에 대가리를 박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행태를 우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발 타조 대가리를 비웃지 마시라. 사람의 뇌도 비슷한 행태를 의식 중에 혹은 무의식 중에 자주 반복한다. 지금도 뉴스 기사나 그 기사의 댓글란에 보면 프레임을 자처해서 뒤집어쓰고 자기가 보고 싶은 세상만 보는 타조들이 얼마나 많은지.

[붕대 감기]는 가능한 모든 프레임을 거두고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재단하지 않은 소설이다. [붕대 감기]는 제목과는 달리 친절하고 부드러운 소설은 아니다. 독자에게 친절하게 붕대를 감아주기 보다는 붕대를 툭 던져주고 어떻게든 저떻게든 감아보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책 뒤에 실린 심진경 평론가의 글을 읽고 작품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작품이 무엇을 묻는지, 무엇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지를 좀더 선명하게 느낀 후에 작품을 읽으면 훨씬 얻는 게 많을 테니까.

전업주부와 워킹맘, 기혼녀와 비혼녀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적대시한다. 서로 불화하는 이 여성들에게 과연 자매애란 가능한 것인가. 서로 입장과 처지가 다른 다양한 여성들이 펼쳐가는 각색의 에피소드와 대화를 통해 이 소설이 암시하는 고민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175-176쪽 심진경 평론가의 글 중에서

이 책은 여성들의 연대에 대하여 감히 이야기하는 동시에 왜 이렇게 우리-여성, 남성, 장년과 청년, 부모님와 자녀 등등-는 서로 싸우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한 힌트까지 담고 있다.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형은과 채이의 대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언니, 자원이 부족한 거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거지 같은 걸 어떻게 해? 지금은 모두가 풍족해질 만큼 힘을 나눠 가질 수가 없어. 덜 가진 쪽은 더 가진 쪽을 보면 화가 나기 마련이야. 얼굴을 보자마자 화가 나는데 만나고 싶겠어?

146쪽

나는 지금 우리 세상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계급'과 '차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어느 사회나 계급이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든 동물의 세계든 식물의 세계에서조차 계급이 있다. 조직이 존재하는 한 계급은 없어질 수 없다. 조직이 존재한다는 건 그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적합한 역할에 따른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계급과 차별이 동의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계급은 구분되는 것이지 차별의 정당화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 구별이 안 되는 게 지금 우리의 세상이다. (이 구별이 되었던 적은 지금까지의 역사 중에 한 번도 없었다) 차별을 없애려면 계급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급을 빌미로 차별을 당연시하는 것 모두가 틀렸다고 본다. 그런데 이 구별이 어려워서일까? 현실에 적용하기 까다로워서일까? 계급은 권력과 자본 즉 가진 자들의 소유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형은과 채이의 대화는 이 비틀린 현실을 꼬집는다.

그럼, 그래서 뭐 어쩌라고? 보기만 해도 화가나니까 계속 싸우자고? 그런 방향 말고 다른 방향을 제시하려고 [붕대 감기]는 이야기한다. "시간이 지나야 해. 서로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일에는 시간이 걸려." 진짜 좋은 말이라고, 이 소설에서 [붕대 감기] 중에서 가장 뜨거운 한 문장을 고르라면 나는 이 문장을 고를 것이다.

단순한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참 다양하고 다각도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 [붕대 감기]

서로에게 붕대를 감아주기를 원하는 모든 동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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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방통 홈쇼핑 - 2018년 제24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79
이분희 지음, 이명애 그림 / 비룡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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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만 방송되는 홈쇼핑 채널이 있다면 어떨까? 하얀 소복에 머리를 길게 풀어내린 창백한 쇼호스트가 나와서 오늘 밤에만 파는 아주 특별한 한정 상품을 소개한다면? 가령 소원을 이뤄주는 도깨비 방망이나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게 해주는 여우 꼬리 같은 것들. 그런 상품들을 소개하는 홈쇼핑채널이라면 잠을 설치는 한이 있더라도 꼭 칼같이 본방 사수할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동네에선 이런 유니크한 채널이 나오지 않는다.

로또는 원래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찾아가는 법. 이런 특이한 채널을 보게 된 행운은 어느 심란한 꼬마에게 찾아갔다. 독각면에서 큰할아버지와 둘이 살게 된 찬이는 고물 티비에서 우연히 도깨비 홈쇼핑 채널을 보게 된다. 찬이가 혼자 있을 때만 방영되는 이 특이한 홈쇼핑 채널은 판매 상품도 참 별스럽다. 도깨비 감투니 도깨비 수염이니 하는 것들을 판다. 진짜 촌스럽게 생긴 외형에 상품 대금도 떡갈나무 잎으로만 받는 이 홈쇼핑 채널, 참 특이하다. 언젠간 우리 집 티비에서도 꼭 한번은 나오면 좋겠다는 기대가 크다.

[신통방통 홈쇼핑]은 부모님과 도시에서 살다가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별안간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로 전학가게 된 찬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자주 보지도 못했던, 너무나 생소하고 낯선 큰할아버지와 큰할아버지의 시골 동네, 큰할아버지의 집. 심지어 마을 이름은 촌스럽게도 '독각면'이다. 차가운 도시 소년인 우리 찬이. 이 시골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여기 이름이 ‘독각면’이잖아. ‘독각’이 무슨 뜻이게”

명석이 말에 어제 본 면사무소 간판이 생각났다.

“뭔데?”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도깨비야, 도깨비! 히히.”

“도깨비? 너, 바보냐?”

“진짜야! 우리 할매가 그랬어. 우리 마을은 옛날 옛적부터 ‘도까비골’이라 불렸다고 했어. 도까비가 지금 말로 도깨비거든. 그런데 그걸 한자로 말하면 ‘독각귀’래. 재밌지. 그치?”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명석이를 똑바로 봤다. 명석이는 싱글벙글이었다.

“독각이라는 말이 진짜 도깨비야? 그럼 여기가 도깨비 마을이라는 거야?”

29쪽

 

 

그 도깨비 마을, 나도 가서 함 살아보고 싶네. 휴가를 떠나지도 못하는 마당에 독각면에서 한 달 정도 살았음 딱 좋겠다. 거기에 찬이 큰할아버지, 명석이네 가게가 있다면 더없이 좋을텐데.

찬이가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큰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린 [신통방통 홈쇼핑]은 신비로운 도깨비의 도술을 무척이나 잘 활용한 재미있는 동화다. 요즘 도깨비는 오밤중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막 그러지 않는다. 홈쇼핑을 개설해서 적법하고 체계적으로 도깨비의 도술을 판매한다. 와우!!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 [신통방통 홈쇼핑]은 동화작가 이분희 작가의 최근작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전개되는 시골 생활 적응기랄까. 도시 생활과는 모든 것이 다른 독각면의 생활에 적응하는 찬이의 생각과 마음이 성숙해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고 따듯하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아주 정겹다. 말없이 찬이를 돌봐주는 찬이의 큰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찬이의 친구들인 대성이, 명석이, 주영이 그리고 명석이의 할아버지 등 독각면의 어른들. 만약 이런 분들이 있는 시골동네가 정말 있다면 지금이라도 귀농하고 싶을 것 같다. 무엇보다 독각면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단연 도깨비 홈쇼핑이다. 떡갈나무 잎사귀를 누구보다 잘 주울 자신이 있는데 나도 좀 어떻게 이 홈쇼핑 이용할수는 없을까?

 

 

휴가철이라 그런지 책을 추천해달라는 문의를 많이 받는다. 아무래도 어딘가로 떠나기는 좀 어렵고 그렇다고 이 휴가 기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에는 너무 아쉬우니까. 그래서 편안하게 그리고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책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신통방통 홈쇼핑]은 휴가철에 읽기에 좋은 책이다.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함께 읽기에 더더욱 좋다. 어른이 읽으면 마음을 다정하고 깨끗하게 씻어주고, 아이와 함께 읽으면 아이에게 어려움과 문제가 닥쳤을 때 어떤 선택이 더 좋을지를 이야기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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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 - 시베리아의 난로 최 페치카
문영숙 지음 / 서울셀렉션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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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복절이 가깝다. 아마 한반도가 걸어온 모든 순간 중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치열한, 기적보다 극적인 순간이 광복의 그 날일 것이다. (가장 절박하고 핍절한 순간이라는 표현은 한국전쟁을 위해서 남겨두어야 겠다.) 교과서에 실린 한국사를 막연하고 모호하게, 연도와 사건명으로 대표되는 정보로만 받아들일 때는 몰랐다. 일제강점기라고 불리는 시기의 모든 것이 혼란하고 암울했다. 한반도 안은 물론이고 한반도 밖의 어떤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자금도, 무기도 빈약했던 의병들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자신들의 목숨 뿐이었고 그나마도 날이 갈수록 그 수가 줄어갔다. 나라를 팔거나 자신을 팔지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고 그 무엇도 팔지 않은 채 견디는 사람들의 삶은 참혹했다. 아마 그런 시절에 내가 태어나 살았다면 나는 감히 '광복'을 꿈꿀 수 있었을까? 광복을 위해 내 개인의 안위를 기꺼이 내던질 수 있었을까?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살기 힘든 세상은 위대한 인물들을 빚고 살기 편한 세상은 부패한 인물들을 빚는다. 위대한 인물을 찾기 어렵고 부패한 인물들이 도처에 넘쳐나는 이 시대에 그럼 우리는 어딜가서 영웅을 찾으면 좋을까?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들은 우리의 가까운 역사 속에 살아있음을 함께 떠올린다.

 

아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들려달라고 물어보면 그 중에 '최재형'이라는 인물을 답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부끄럽게도 나는 최재형이라는 독립운동가를 올해 처음 알았다.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그의 거사를 도운 러시아의 거부다. 조선 말기, 신분제도의 부당함을 피해 러시아로 도망한 노비 출신인 최재형은 우연히 무역선에 올라 거래의 수완을 익히게 된다. 러시아로 귀화하고 무역선에서 익힌 감각으로 부를 쌓은 그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공생을 도모했다. 함께 잘 살기 위한 그의 행보는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으로 이어진다. 의병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 먹이고 입히기까지 한 최재형은 그의 별명 그대로 '난로' 같은 존재였다. 러시아에서는 최 페치카(난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최재형은 그의 나이 환갑에 이를 때까지 전폭적이고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 내 조선인들을 위한 학교를 32개나 설립하고 인재 개발을 위해 학 생들의 유학 자금을 댔으며 러시아 거주 조선인들의 민심을 모아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얼음을 녹이는 훈풍처럼 뜨거웠던 최재형의 삶은 그의 나이 60세에 차가운 들판에서 끝을 맺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그를 붙잡아간 일본인들의 손에 살해된 후 유족들은 그의 사체도 수습할 수 없었다.

 

조선인들이 러시아로 도망쳐 삶을 시작한 이래 150년이 지났다. 러시아 고려인들의 고단한 삶이 벌써 그렇게나 오래된 역사가 되었다는 거다. 연해주에서의 낯선 시작, 강제로 이주된 중앙아시아에서의 혹독한 삶, 조국에게조차 외면당한 슬픈 이주민 2세대, 3세대를 지나 고려인 4세대에 이르렀다. 엄연히 이들의 역사는 혼란했던 조선 말기로부터 파생된 한반도의 역사이자 우리나라의 기록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내에서의 독립운동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에 한반도 밖에서의 독립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맥을 이어간 인물들의 중심에 고려인들이 있다. 늦었지만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문영숙 소설가가 쓴 작품이다. 문영숙 작가 역시 러시아를 방문하여 돌아보던 중 최재형 독립운동가의 자취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이런 인물이 알려지지 않을 수가 있는지 놀라워하며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좋은 작가의 훌륭한 작품 덕에 최재형 독립운동가의 궤적을 잘 알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살면서 굳이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만하다면,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필요하다. 길게는 100년, 짧게는 70~80년 전을 살다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역사로 물려받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런 우리이기에 알아야 한다.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인가? 영웅으로 살았던 인물들이 내린 선택을 통해 오늘날 나의 선택의 방향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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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비적성 - 살림 비적성 요리 비적성 엄마 비적성 여자의 육아 탐험기
한선유 지음 / 라온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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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날고 기는 위풍당당 초당당한 커리어우먼이 있다. 업무 능력치로든 경험치로든 만렙을 찍은 그녀는 무서울 게 없다. 거칠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다.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뱃속에 있던 사랑스러운 아가와의 오프라인 조우 후에 그녀는 위기에 처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육아에 비적성이었다니! 아가가 햇빛 속으로 나온 이후 날마다 그녀는 깨닫는다. 살림 비적성, 요리 비적성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육아 비적성은 정말 위험하다. 다른 일은 잘하는데 왜 아이 앞에서만 작아지는걸까?

 

골드미스의 삶을 청산하고 순박한 남편을 장만한 한선유 저자는 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밀레니얼맘을 위해 책을 냈다. [육아 비적성]은 이미 제목부터 육아에 소질도, 재능도, 취미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이는 정말 예쁘다. 사랑스러운 존재다. 육아가 이토록 어렵지만 않았다면 셋째도 가능했을 터. 그러나 한선유 저자는 셋째 아이 대신에 [육아 비적성] 출간을 택했다. 육아 비적성인 여자가 세상에 당신만이 아니라는 걸 당당하게 외치기 위해 그리고 안전하고 스마트하고 안온한 엄마 육아의 시대는 가고 폭풍처럼 다이나믹하고 강력한 아빠 육아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아빠 육아는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나? 바로 3단 강풍을 틀어버린다. 본인이 그렇게 선풍기 바람을 쐬기 때문이다. 애는 화들짝 놀란다. 태풍이다. 이런 걸 보고 엄마 육아는 아빠 육아는 위험하다고 자꾸 아빠들의 육아 기회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이뿐인가? 아이 좀 흔들흔들 하며 놀아주랬더니 바로 냅다 던져 받는 자이로드롭이다. 아이가 기겁한다. (중략)

강풍 육아, 난 적극 찬성이다. 아이만 안 날아간다면 아이들도 이런 시원시원한 육아 재미있어한다.

적응되면 선풍기는 바로 3단이다.

이게 아빠 육아의 진짜 ''이다. 원래 맛집은 간이 세다.

227-228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가보면 알 수 있다. 엄마는 놀아준다. 아빠는 같이 논다. 그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체력을 온몸으로 받아주는 아빠 육아는 그래서 힘이 세다. 물론 지켜보는 엄마가 기겁하는 순간은 여럿 있겠지만 정작 아이들은 숨넘어갈 듯이 꺄르륵 거리며 즐거워한다.

 

한선유 저자는 출산과 육아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혼자 감당하지 말고 남편에게도 역할을 주라고 말한다. 임신 중에 남편은 배달의 민족, 출산 후 남편은 육아 보조가 아닌 육아 전담반이 되어야 한다. 사실 아빠들은 생각보다 육아에 특화되어 있다. 시켜보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것. 한선유 저자는 [육아 비적성]에서 자신의 육아 사례를 들어 임신과 출산, 육아는 부부 공동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빠 육아가 무척이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걸 알기에 목숨 걸고 일자히 않는 것처럼 육아도 나를 괴롭히면서 뛰어내릴 것 같은 우울증이 오기까지 하면 안 된다. 그건 목숨 거는 것이다. 아이의 울음을 너무 민감하게 큰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마음속 울음을 더 챙겨보려고 애쓴다.

190

 

[육아 비적성]은 워킹맘들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회사엔 휴직을 내고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라거나 직장과 육아라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여성에게는 꼭 권하고 싶다. 한선유 저자가 [육아 비적성]에 쓴 대로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고 굳이 최고 좋은 엄마가 될 필요도 없다. 영화 []에서,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함을 토로하는 엄마에게 6살 난 아들은 말한다. 괜찮다고, 그냥 엄마라고. 엄마라는 역할로 이미 된 것이다.

 

 

 

[육아 비적성]은 한선유 저자의 재기 넘치는 문장들 덕분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힌다. 마치 아는 언니와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이야기들이 워낙 웃겨서 출산과 육아를 주제로 한 시트콤을 보는 듯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육아란 시트콤이 아니라 스릴러나 뭐 그런 비슷한 일이겠지. 한선유 저자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체험기를 [육아 비적성]에서 풀어놓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는 어쩌면 아주 큰 일이 아닐지 모른다. 워킹맘에게 육아란 삶의 전부 혹은 전체가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하루 24시간, 일주일의 시간 중 일부다. 그래서 한선유 저자는 [육아 비적성]에서 이야기한다. 짬뽕반과 짜장반을 합친 짬짜는 결코 각각의 한 그릇을 오롯이 먹은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고. 그러니 처음부터 두 가지 맛을 다 제대로 보겠다는 생각을 뒤집는 게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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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속이는 말들 - 낡은 말 속에는 잘못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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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말 속에는 잘못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이 문장에서 하나만 고치고 싶다. 낡은 말이 아니라 어떤 말로. 신조어가 쏟아지는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낡은 말 뿐 아니라 새 말에도 잘못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이 잘못된 생각은 인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 정보의 전달, 감정의 표현 뿐 아니라 타자의 삶을 조작할 수 있는 위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술과 인문학 서적을 주로 출간한 박홍순 저자의 신간 [우리를 속이는 말들]의 머릿말은 '말의 위험성'을 정확히 지적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을 읽었던 기억으로 박홍순 저자가 낯익다. 미술과 사람에 대한 통찰과 해박한 지식이 탁월한 저자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의 신간 [우리를 속이는 말들]을 읽고나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시대에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 그리고 해로운 것을 냉철하게 구별할 줄 아는 시선과 쓴소리도 가차없이 뱉을 수 있는 소신을 함께 가진 저자다.

 

 [우리를 속이는 말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말들이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짚어낸다. 우리의 삶을 잘못된 말들이 흔들고 있음과 더불어 이런 강제적인 왜곡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자는 저자의 전언이다.

 

말을 통해 생각하기에 말은 우리 생각을 조종한다. 사고와 행동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가장 큰 힘을 가진 말은 단연 상식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격언과 명언이다.

5쪽 저자의 말 중에서

 

 아무리 개인이 원해도 상식의 규칙에서 벗어나거나 변경하기 어렵다. 말은 생각과의 관계에서 권위적 위치에 있다.

그 결과 생각은 상식의 함정에 빠진다. 생각 왜곡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처음에 상식적이고 규범적인 말이 만들어질 때의 의도와 다르게, 혹은 현재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임에도 부당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나아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생각을 왜곡하고 조작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심없이 무심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생각은 왜곡과 조작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정신은 길을 잃고 무력해진다.

어찌해야 하는가? 짧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속지 말자! 물론 말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덜 속는 것만으로도 삶과 생각이 더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첫 발걸음을 뗄 수 있다.

7쪽 저자의 말 중에서

 

[우리를 속이는 말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통념을 형성한 말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 인간은 다 이기적이다, 소확행을 즐겨라, 손님은 왕이다, 여성은 모성애가 있다 등등 총 12개의 상식과 유행, 속담 등을 해부했다.

 

정말 하나 가지고 열을 알 수 있어? 하나 가지고 하나만 알기도 어려운데. 찬물은 위아래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먼저여야지. 세포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세포의 집합체인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소확행은 기업과 미디어가 조장하는 무한소비풍조이자 조작된 유행이며 대한민국에 현재 왕은 없고 손님은 손님일 뿐이다. 여성은 모성애, 남성은 부성애, 자녀 양육은 부부 공동의 일일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우리를 속이는 말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확행을 해부한 9번 꼭지였다. 소소한 소비 그러니까 예쁜 쓰레기나 자잘한 것들 소비하면서 위로와 만족감을 느끼는 우리 세대들의 이 '소비 욕구'가 과연 자발적이고 진정한 욕구인지를 되묻는 저자의 시선은 매우 날카롭다.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말을 인용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소비 기조가 대량소비 촉진과 욕구불만 해소를 위하여 의도되고 조작된 욕구임을 밝혀낸다. 9번 꼭지는 통으로 이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내용이 좋다. 단순히 소확행의 허와 실을 밝혀낼 뿐 아니라 개인이 기업과 미디어에 휘둘리고 있는 현재의 위험성을 잘 설명한다. 강제적인 유행 선도와 그로의 편입은 그저 취향을 저당잡히는 문제가 아니다. 산채로 수족관에 갇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여러 측변을 고려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적, 비판적 사고는 사라진다. 대부분의 판단과 선택이 소비를 통한 욕구 충족에 수동적으로 자동반응한다는 점에서 '일차원적 인간'으로 전락한다. 일차원적 사고와 행동이라는 한정된 패턴 안에서 살아간다.

한국의 소비적인 소확행 역시 하나의 바람직한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일차원적 인간을 양산하는 통로가 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책 169쪽

 

한 달 안에도 몇 권씩 출간되는 인문학 서적 속에 이 책이 묻히기에는 너무 아깝다. 정말 아까운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 자신이 세상에 범람하는 온갖 말들에 속지 않도록 말이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동서양의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이런저런 인문학 책들도 물론 유익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인문학 서적은 이런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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