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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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_ 서철원 _ 다산책방_ 2019 (혼불문학상 9회 수상작)

 

 전라감영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형을 당했다. 나라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서학(천주교)을 섬기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이유였다.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가계를 허물었나이다.
조상의 신주를 불태운 사실만으로 별장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죄인으로 몰아갔다. 그것만으로 논리가 부족했는지 제사를 갈아엎은 죄를 덧씌워 울먹였다.
  ... 기일에 맞춰 올려야 할 제사를 망각하고 십자가를 집 안에 들였나이다. 그 십자가를 아비보다 높고 임금보다 거룩하다 여겼나이다.
12쪽

 

 정조는 서학인 치죄를 빌미로 나라를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노론의 속내를 경계하여, 서학인 치죄를 내켜하지 않는다. 서학인을 향한 노론의 칼날에서 아버지를 뒤주에서 죽도록 몰아간 그물을 떠올리는 정조는 왕권을 공고히 하길 원하나 그 길은 요원하다. 특히나 정조가 총애하는 정약용의 형제들이 연이어 서학인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임금은 자신의 실세에 더욱 위협을 느낀다.
 임금의 명으로 윤지충과 권상연을 조사하러 갔던 최무영은 윤지충의 집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발견하고 보고한다. 그림에 담긴 기운과 속뜻을 수상히 여긴 정조는 도화서 별제 김홍도를 불러 그림에 대해 조사하라 명한다.
 
“나머지 열두 명은 누구라고 하던가?’
“예수라는 자의 열두 제자라고 하였사옵니다.”
임금이 숨을 멈추고 최무영을 바라봤다.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는 그림 속에서 무엇을 구상하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임금의 생각과 무관한 지점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 그렸을 그림을 상상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 또한 의문이었다.
36쪽

 

 한편 정약용은 신앙을 깊이 감춰두고 생존을 고민한다. 외사촌이었던 윤지충의 순교를 전해 듣고 정약용은 임금에게도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서학인을 향한 서슬퍼런 핍박의 칼날을 벗어나려 한다. 그런 정약용 앞에 기묘한 아이, 도향이 나타난다. 도향은 전라도에서 순교한 늙은 여령의 딸로 가야금 연주에 탁월하다. 특히 사람을 죽일 수 있기에 금기로 알려진 변주까지 스스로 익힌 천재다. 그 옛날 가야의 기운을 실은 연주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도향은 한쪽 눈은 파랗고 한쪽 눈은 노랗다. 정약용은 여령으로서도, 여인으로서도 도향을 마음에 품는다. 그러나 도향은 정약용이 그토록 피하려는 서학을 배워 ‘구원’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모두가 평등한 길로, 평등한 세상으로. 

 

 약용의 입 속에 돋던 꿈같이 고요하고 물같이 평등한 나라, 예루살렘 어느 곳에 있다는 골고다 언덕에서 바람과 석양에 기우는 가나안 땅은 결국 허균의 이야기 속 나라 율도와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멀리 문장으로 임할 수 없는 나라를 생각할 때, 임금은 그림과 현실의 중간을 가늠했다. 목측할 수 없는 나라의 임금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인데, 저마다 가고자 하는 세상은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79쪽

 

 김홍도는 <최후의 심판> 그림 속에 숨은 비밀을 임금에게 보고한다. 300년 전에 과학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었던 장영실이 이 그림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림 속 13명의 인물 중 가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영실이며, 이는 밀라노에서 직접 확인하고 왔다며 고한다. 300년 전 장영실은 조정을 떠난 후 아무도 모르게 밀라노로 건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만난다. 과학을 다리 삼아 뜻을 함께한 두 학자는 밀라노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다빈치는 장영실을 그림 속에 넣어 그렸다는 것. 더구나 예수의 뒤로 보이는 산세는 인왕산이었다.

 

 조선 너머 너른 땅에서 살아갔을 장영실을 생각했다. 가본 적 없는 남의 나라에서 장영실은 조선의 긍지로 과학의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밀라노에서 별무리를 이끌고 날마다 혁신하는 삶을 살았을지 몰랐다. 현주일구에 비쳐든 해그림자를 따라 하염없는 사색으로 유일무이한 조선을 세상의 중심으로 원했을지 몰랐다. 그 삶은 한 덩어리 고뇌를 싣고 너른 세상에서 대동을 외치며 살다 갔을 것이다.
229쪽

 

 그러나 그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보이지 않는 위협도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어디든지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프리메이슨’이 조선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과 장영실은 이를 경계하고 경고하기 위하여 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림으로 다시 조선에 돌아온 것이다.
 때마침 궁궐을 시작으로 향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향기가 없어지면서 미각을 잃고, 감각의 상실을 느끼기 시작한 임금은 국가에 큰 재난을 느낀다.
 
 위협은 또 있었다. 전라도에서 순교했던 여령에게는 도향이라는 딸과 함께 도몽이라는 아들도 있었다. 도향의 오빠인 도몽은 어머니의 순교를 지켜본 후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초라니패에 합류한다. 초라니패(박해무, 배손학, 김혁수, 김순, 이하임, 도몽)는 서학을 향한 핍박의 칼날에 희생된 저마다의 사연으로 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하여 떠도는 자들이다. 이들은 임금이 향기의 회복을 위하여 벌인 연회에 공연단으로 잠입하여 시해를 꾀한다. 그러나 이들의 시해는 도향의 신기 어린 연주에 방해를 받아 실패로 끝나고 초라니패는 사헌부 감찰어사 최무영이 이끈 금위영 나장과 내금위에게 토벌당하여 모두 죽는다.

 

 

 김홍도의 목에서 임금이 풀 수 없는 의문과 의혹과 의심의 파편들이 무뚝뚝하게 들려왔다.
“하오나 <최후의 만찬>이 중요한 것은 빵과 물고기로 지은 오병이어 기적이 아니옵니다 .이교도의 아가페를 굴복시킨 인간 예수의 참된 눈빛을 바라보소서. 희생과 순교의 의미가 물처럼 출렁이며 그 물은 만 가지 별을 품고 있사옵니다. 순수한 결정만이 세상을 정화하고 조선이 잃어버린 향기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마도 장영실은 훗날 조선이 처할 불운을 미리 내다보며 그림 속에서 파우스트 폴의 숙명으로 조선을 다독이고 있을 것이옵니다. “
(중략) 임금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파우스트 폴이라고 했느냐?”
“아마도 프리메이슨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옵니다.”
“비밀결사 조직이라고 둘었다. 조선에도 누군가 그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고...“
임금이 말을 아꼈다.
349쪽

 

청나라를 거쳐 윤지충에게 전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약용의 머릿속에 뚜렷이 그려졌다. 임금을 경계로 좌우로 갈라선 여섯 신하와 여섯 외인들의 엇갈린 모습은 다빈치의 그림과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 옵스큐라 속에 모두는 <최후의 만찬>으로 맺혀 있었다.
407쪽

 

 정약용은 카메라 옵스큐라에 비친 임금을 중심으로 좌측의 여섯 신하, 우측의 여섯 일당(초라니패)의 구도를 보면서 삶과 죽음, 선과 악, 생성과 소멸 등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언제나 존재하는 동시성의 가치들을 발견한다. 임금 역시 그림 속에 담긴 것은 결국 동시성의 가치가 아니겠느냐는 김홍도의 보고를 듣고 깊이 사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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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의 율도국을 꿈꾼다. 임금으로부터 연약한 여령인 도향까지 모두가 그러하다. 가나안 땅으로, 구원의 처소로, 모두가 평등하고 자기 가치를 확인하며 존재를 존중받고 박해나 눈물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으로 건너가려는 각 인물들이 고뇌와 여정을 이 소설은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야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소설이 아니다. 한 쪽 노를 가지고 보트를 젓듯이,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를 맴맴 돈다.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버둥거리는 소설이라 스펙터클한 이야기 전개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답답하게 읽힐 수 있다.

 

 엑셀을 밟고 달리는 드라이브가 아니라 창문을 열어두고 손등을 스치는 미풍을 감지하는 사람에게, 아마 이 소설은 더 즐겁게 읽힐 것이다. 서학이라는 신앙과 그를 향한 핍박이 대두되지만 실상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단순한 종교 탄압이 아니다. 바꾸려는 자와 간직하려는 자, 다음 세상으로 떠나려는 자와 다음 세상을 부정하는 자, 죽음으로 삶을 증명하려는 자와 생존으로 죽음을 건너가려는 자.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사상과 이념이 충돌하는 곳마다 이런 충돌이 벌어진다. 허균의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율도국이 예루살렘과 가나안의 모습에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상상력이 좋고 조선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저 건너편의 나라까지 확장되는 이야기의 흐름이 좋았다. 그런데 너무나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들이 연이어, 어느새 정말 소설 같은 소설로만 느껴졌다. 이 상상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개연성, 입증물이 없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난입해 버린다. 다빈치와 장영실의 조우에 적응이 되지도 않았는데 프리메이슨에 파우스트 폴까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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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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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로 다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말로 다 못한다. 자기의 감정을, 그 생각을,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마치 무지개의 수만가지 빛깔처럼 각양각색으로 움직이고 있는 내 안의 감상과 감각은 말로 다 못한다. 하나의 감상을 표현할 수 있는 몇 가지 적합한 단어는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의 총체를 고스란히 담아 전할 수 있는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의 한계다.

 

 흔히 우리는 ‘말’로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조금 더 꼼꼼히 이 작용을 살펴보면 말 그 자체가 칼이 되어 날아와 꽂히기 보다는, 말 속에 채 다 담기지 못한 감정이나 말을 벗어나는 생각들이 화살이 되어 찌르는 게 아닌가 한다. 우리의 눈이 빛을 반사하는 물성에만 닿지 않고 그 내면 속으로 가닿아 혼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는 그곳에까지 이를 수 있다면 어떨까? 그의 진짜 마음이 어땠는지, 그의 생각과 감정의 세세한 결들이 어떤 감촉인지, 그가 간직한 추억의 색채와 소리와 선율을 알 수 있다면? 모든 진심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몰라서 엇갈려버린 안타까운 순간들을 만회해볼 수 있지 않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녹나무의 파수꾼]은 ‘이런 일이 정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면?’하는 상상력으로 빚은 환상소설이다. 녹나무와 가문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속에 따듯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마음이 봄햇살처럼 내려와 앉는다. 

 

 

   “언어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 모두를 언어만으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녹나무에게 맡기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믐날 밤에 녹나무 안에 들어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염원합니다. 그것을 저희는 예념이라고 합니다. 염원을 맡긴다는 뜻이지요. 예념을 하는 사람은 예념자라고 합니다. 녹나무는 예념자의 그 모든 생각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보름날이 다가오면 그것을 뿜어냅니다. 그때 녹나무 안에 들어가면 그 염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혈연관계인 사람뿐이지요. ”
373-374쪽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로 유명하지만 그의 소설들을 단순히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이미지로만 연상하기에는 아쉽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작품만 해도 그렇다. 시간을 뛰어넘는 편지의 교신이라는 미스터리 장치를 통하여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 사는 일의 따듯함’이다.
 [녹나무의 파수꾼]도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놀라운 일, 미스터리 혹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근사한 일은 서로 간에 사소한 따듯함과 신망을 주고받을 때 일어난다. 녹나무는 다만 그 사이에 꽃처럼 피어난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것을 받을만한 사람에게 향기로 전해줄 뿐, 녹나무 자체는 기적이 아니다. 염원을 남기고 간 사람의 용기와 그것을 전달 받은 사람의 각오와 애정이 진짜 기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원래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이제 나는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이 작품 [녹나무의 파수꾼]은 너무 너무 좋다.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불운하게 여기는 스무살 청년의 ‘낭만적인 성장기‘가 이 작품의 전부였다면 이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젊은 층이 삶의 애착을 잃고 가족애는 희미해져가며 온고지신의 의미가 이미 오래전에 퇴색된 현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작품에 담았다.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레이토에게 우리 시대 10-20대의 얼굴이 비치고, 레이토와 치후네를 비롯하여 서로 연을 끊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가장 최소 단위인 가족이 해체되어 모두가 철저히 개인으로 살아가게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고독한 표정이 읽힌다. 역사와 전통과 계승이라는 든든한 뿌리와 혈맥이 자취를 감추고 현재의 효율성만이 최고의 미덕이 되어버린 데에 대한 비판은 일본과 한국이 다르지 않음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사상 최초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함께 출간되었다. 출간 상황만 특별한 게 아니다. 책 앞장에는 은색 글자로 작가의 전언이 인쇄되어 있기도 한다. 책 표지에서부터 영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작은 촉매제로, 곳곳의 작은 녹나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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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줄거리 (스포일러가 매우매우매우 강함 주의!)
 레이토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 컸다. 레이토의 엄마 미치에는 긴자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 유부남과 불륜 끝에 레이토를 혼자 낳아 키우다 레이토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유방암으로 세상을 뜬다. 후미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 근근이 레이토를 키웠다. 생활고 속에서 자란 레이토는 할머니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하여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식품제조회사에 취업했지만 누명을 쓰고 회사 사람들 눈 밖에 난다. 친구가 일하는 유흥업소 웨이터로 일을 옮겼으나 호스티스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켜 거기서도 쫓겨난다. 간신히 공작기계 회사로 재취업했지만 거기서도 역시 억울하게 쫓겨난다. 분한 마음에 공장 기계를 훔쳐 팔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한다.
 경찰에 체포된 레이토를 방면해준 것은 레이토의 이모인 야나기사와 치후에였다. 이제까지 이모가 있는 줄도 몰랐던 레이토는 가족관계에 대한 세세한 사연도 듣지 못한 채, 이모가 요구한 방면의 대가로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게 된다.

 

 녹나무는 레이토의 할아버지가 데릴사위로 있었던 ‘야나기사와’ 가문의 지경에 속한 일종의 소원나무다. 그믐날이면 누군가 녹나무에 염원을 전하고(예념) 보름날에는 염원을 남긴 자의 혈족이 녹나무로 찾아와 그 염원을 받는다(수념). 반드시 혈족만이 염원을 받을 수 있는데, 마치 유언장을 보관했다가 그것을 전해주는 듯한 녹나무의 신기한 작용은 벌써 백 년이 넘게 야냐기사와 가문의 파수꾼에 의해 지켜져 왔다. 녹나무 파수꾼이었던 치후에는 자신의 병세가 깊어지자 급히 후계자를 찾아 나섰고 그녀의 먼 혈족, 심지어 그간 왕래도 하지 않았던 조카인 레이토가 파수꾼 견습생이 된 것이었다.

 

 녹나무와 염원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한 레이토에게 처음에는 모든 것이 기이했다. 살면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 받지 못했고 변변한 기술이나 꿈도 없이 살아왔기에 레이토의 생활 습관 역시 엉망이었다. 치후네 이모는 레이토의 사소한 습관과 태도를 교정하고 고쳐주면서 레이토를 야나기사와 가문에 소개한다. 자신을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으로 여기던 레이토의 삶은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면서 그리고 치후네 이모와의 동행과 대화를 통해 숨겨진 가족사를 이해하게 되면서 점차로 근면하고 따듯한 방향으로 변해간다.
 
 그런 레이토 앞에 유미가 나타난다. 유미는 녹나무에 기념을 하러 찾아오는 사지 씨의 딸로,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걸 막기 위해 레이토에게 도움을 구한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간 이후 아버지가 이상해 졌다는 것이다. 레이토와 유미는 사지 씨의 행적을 함께 추적하게 되고 그 끝에 사지 씨와 형 기쿠오의 숨겨진 사연을 알게 된다. 천재 피아니스트로 촉망받던 기쿠오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열등감에 휩싸여 가족도 멀리하다 알콜 중독과 합병증으로 일찍 사망한다. 기쿠오는 사망하기 직전, 녹나무에 찾아와 가족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속죄를 염원으로 남겼고 동생 사지 도시아키는 형의 염원을 받은 후 비로소 형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사연을 듣게 된 딸 유미는 사지씨와 함께 기쿠오가 귀가 먼 상태에서 어머니를 위하여 지은 피아노곡을 복원하여 연주회를 연다.

 

 녹나무가 전달하는 염원이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마음, 그 진실하고 솔직한 고백의 총체임을 깨달은 레이토는 치후에 이모에게도 솔직한 자신의 진심을 전한다. 치후에가 앓고 있는 인지장애를 숨기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곁에 있을 것임을 그러니 치후에 이모 역시 옆에서 자기를 계속 가르쳐달라고 이야기하면서, 둘은 비로소 가족이 된다.

"네,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곳이 과연 어떤 세계인지, 치후네 씨도 아직은 알지 못하잖아요. 잊어버렸다는 자각도 없다면 그곳은 절망의 세계 같은 게 아니죠.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세계예요. 데이터가 차례차례 삭제된다면 새로운 데이터를 자꾸자꾸 입력하면 되잖아요. 내일의 치후네 씨는 오늘의 치후네 씨가 아닐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뭐, 그래도 좋잖아요? 나는 받아들입니다. 내일의 치후네 씨를 받아들일 거예요. 왜요, 그러면 안 됩니까?" - P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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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 - 차별화된 기획을 위한 편집자들의 책 관찰법
박보영.김효선 지음 / 예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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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강점 콘텐츠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강점 콘텐츠는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늘 관심있게 생각하고 탐구했던 영역, 너무나 어려워서 자꾸 실패했던 영역, 그래서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했고 마침내 이런저런 해법을 찾아냈던 영역, 무엇보다 제삼자 입장에서 나에게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영역을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누가 봐도 당신은 그 분야의 전문가로군.”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영역 말이다.
122쪽

 

 자기 사업을 해보려는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고민은 ‘나의 강점 콘텐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고용직으로, 그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만 수행하면 되는 입장이라면 굳이 자신의 강점 콘텐츠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지만, 최근에는 나이 마흔만 넘어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자기 사업을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건, 굳이 자기 사업을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기 강점 콘텐츠를 안다는 건 살아가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거다. 하다못해 글 한편을 쓰는 일에도, 자기 강점 콘텐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편차가 매우 크다. 자기 강점 콘텐츠는 자존감, 자기애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나 자신이 어떤 콘텐츠에 특화되어 있는지, 누가 봐도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타의 인정을 획득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건 내가 나 자신으로 견고하게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의 두 저자인 박보영, 김효선 씨는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책 쓰는 일’을 고민해보라고 하지 않는다.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는 글쓰기 자체에만 집중되어 있는 시점을 상품의 형태인 ‘책’의 위치로 확대하여 책쓰기에 대한 실질적인 가이드를 쓴 책이다.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빠지기 쉬운 ‘원고’의 함정에서 벗어나 상품으로서,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구매하게 만드는 좋은 상품으로서의 책을 어떻게 만들지를 조언한다.

 

 책의 가치는 단지 판매 수입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책은 자신의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에, 많은 저자들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객관적으로 체계화되었다는데 만족감을 표한다.
125쪽

 

그렇다고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가 책을 파는 데에만 혈안이 된 건 아니다. 책은 우리의 생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자아 발견의 도구, 자기 정체성의 도구, 위로와 격려의 도구, 자기 경쟁력의 도구 등 책의 역할은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책은 사람의 존재감, 인생의 의미, 심리 상태와 직결된 특별한 존재다.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에서도 지적했듯이 책을 전문성 증명의 도구로, 자기 성취의 도구로 삼아 책을 쓰고 싶어하는 예비저자들이 굉장히 많다. (내 주변만 해도 여럿...) 이런 상황에, 책을 직접 만들고 팔아야 하는 출판사와 편집자들의 입장은 어떨까? 좋은 책을 쓰는 저자들을 찾기 위하여 출판사와 편집자들도 굉장히 성심성의껏 원고들을 살피고 좋은 저자를 찾고 있다고,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의 저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독자들과 저자, 출판사 모두에게 정말 의미가 있고 유익이 되는 ‘좋은 원고’를 쓰는 것. 이런 원고를 생산하여 책을 내는 것. 그래서 편집자인 저자들은 이 책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를 냈다. 좋은 원고를 쓰는 저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전문가는 숱하게 많다. 그들 중에서 하필 ‘나’에게 찾아오게 할

방법이 필요하다. 저자라면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131쪽

 

 책이 너무나 흔한 요즘이지만, 오히려 정말 읽을만한 책은 적어진다.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지, 자기 강점 콘텐츠가 확고한 좋은 원고란 무엇일지, 오늘도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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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리커버) - 인간을 완성하는 12가지 요소
제롬 케이건 지음, 김성훈 옮김 / 책세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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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드 몽테뉴는 불과 서른여덟의 나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기 성으로 들어가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 그 에세이는 400년 이상 지난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그로부터 21년 후인 1582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가 거짓말쟁이에서 식인 풍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여 쓴 에세이들은 <수상록>이라는 세 권의 수필집으로 남았다. 나는 2013년 3월 어느 추운 토요일에 이 에세이집을 다시 꺼내 읽다가 이번 세기에 대해 나도 그와 비슷한 책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몽테뉴와 비교하면 나이도 많고, 성도 없지만, 최대한 가식적이지 않게, 그리고 애매하지 않게 써볼 생각이다.
책 4쪽 저자의 프롤로그, 가장 첫 문단

 

 

 몽테뉴의 에세와 비슷한 글을 써보겠다는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면 절로 웃음이 터진다. 몽테뉴보다 많이 가진 건 나이요, 적게 가진 건 성(城)? 저자 제롬 케이건은 아예 성이 없다고 하니 적게 가졌다고 하는 건 맞지 않는 말이겠다. 본문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이 프롤로그를 떠올려보니 ‘최대한 가식적이지 않게, 그리고 애매하지 않게 써보겠다’는 저자의 시도는 성공한 듯 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이 쓴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는 무슨 책이라고 딱히 짚어서 말하기 어려운 책이다. 아마 몽테뉴의 ‘에세’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독자의 반응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몽테뉴의 에세는 다른 어떤 책과도 비슷하지 않았기에 에세이라는 고유명사가 되고야 말았지.) 언어, 지식, 배경, 사회적 지위, 유전자, 뇌, 가족, 경험, 교육, 예측, 감정, 도덕의 12개 주제에 따라 저자는 그의 생각을 정리해 썼다.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안다는 건 무엇인가? 배경은 어떻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가? 인간은 왜 남과 비교할까? 성격도 타고나는 걸까? 뇌로 정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가족은 꼭 있어야 할까? 어린 시절 형성된 특성은 평생 갈까? 교육은 왜 필요할까? 예측은 힘을 갖고 있을까? 느낌과 감정은 다른가? 도덕적인 사람은 도덕적으로 행동할까? 


 목차에 나란히 줄지어 앉은 질문들만 읽어도 딱 감이 온다. 이 책 범상치 않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와인 한잔을 곁에 둔, 여유로운 저녁 시간에 읽으라고 권했는데 아마 그럴 수 있는 독자는 몽테뉴의 에세 3권을 모두 다 읽고 소화하여 그걸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토론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하리라 싶다. 즉, 저자와 식견이 비슷한 수준의 독자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지적했듯이 ‘고릴라가 자기 먹이가 어디 있는지 안다.’고 했을 때의 ‘안다’와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느낌과 감정의 상태를 안다’고 했을 때의 ‘안다’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20년차 수목원지기가 소나무를 ‘안다’는 것과 고작해야 등산 몇 번 다녀본 내가 소나무를 ‘안다’는 것 역시 동일한 ‘안다’가 아니다. 이 책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실제적으로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가 언어, 지식, 유전자, 가족, 경험 등에 대하여 꺼내어 놓는 문장들은 내가 꺼낼 수 있는 것과 다르다.

 

 이 책은 특정한 사상이나 이론 등에 대하여 설명하는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전체에 대한 통찰을 쓴 에세이다. 이제까지 읽은 에세이가 그냥 커피라면 이 책은 레알 TOP다. 독자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와 토론을 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온 책이다.

 

 

 최근에 폐렴으로 사망한 17세 고교생의 구체적인 사인이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추정되면서 사이토카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사이토카인’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5장 유전자와 11장 감정, 두 개의 꼭지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중에 포털 검색어로 사이토카인이 올라와서 굉장히 신기했다. 동시에 이 책이 심리학, 철학, 사회학, 과학 뿐 아니라 의학의 영역과도 걸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가난, 일자리 불안, 만성 신체질환, 사회적 배제 등이 있으면 사이토카인이라는 단백질이 분비된다. 이 단백질은 상처의 치유, 감염과의 싸움을 돕고, 근육이 찢어지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독감에 걸렸을 때 동반되는 피로감이나 불쾌감을 만들어내는 뇌 영역을 활성화시킨다. 이런 느낌을 당사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우울해질지가 결정된다. 대부분의 성인은 피곤한 느낌이나 불쾌한 느낌은 자기가 아프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특히 부상을 입었거나 감염의 신호가 있는 경우에 그렇다.
218쪽  5장 유전자 중에서

 

 5장에서 지속적인 가난, 학대, 잦은 질병은 사이토카인이라는 단백질의 생산을 자극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이토카인은 질병과 함께 찾아오는 피로감이나 무관심함을 만들어내는 뇌 영역을 활성화한다. 이런 느낌을 감지했지만, 자신이 아프다고는 믿지 않는 사람은 다른 해석을 찾아내려 한다. 자기가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결론내리는 것도 한 가지 흔한 해석이다. 사이토카인 단백질은 우울한 기분을 직접 야기하지 않는다. 이 단백질이 만들어낸 느낌이 우울증으로 해석됐을 뿐이다. 
416쪽 11장 감정 중에서

 

 진정될 줄 모르는 코로나19 사태(전 세계가 다 영향권이라 한 국가, 한 도시에서 잡는다고 안심할 수 없는 전염병) 속에서 ‘사이토카인 폭풍’에 대한 염려까지, 엎친데 덮친 느낌이라 마음이 더 불안해지는 시기다. 다만, 무분별한 즉 근거 없는, 추상적인, 모호한 염려는 없던 병도 만들 수가 있으니 이런 때에는 감정과 느낌을 단속하는 일도 무척이나 중요해 보인다.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를 읽고 나서 무엇을 제대로 안다고 하기가 참으로 조심스럽고 겸손해졌는데, 이와 동시에 애매하지 않게, 피상적이지 않게 알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생각을 정리해나갈 것인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한 번에 다 읽으려 하지 말고 저자와 독서토론하듯이, 주의깊게 읽게되는 좋은 책이다.

 

유전자는 뇌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똑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라도 똑같은 경험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생각이 행동과 감정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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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식당
미원x이밥차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20~30년 전에는 오븐이나 냉장고 같은 대형 가전을 사면 꼭 레시피북이 곁들어 왔다. 고추장 사면 맛보기용 쌈장이 딸려 오듯이. 어릴 때는 그런 레시피북을 살펴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찾아보는 게 재미였다. 베이킹도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였다. 엄마손 안 거치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맛있는 걸 찾아보다가 내 눈에 딱 걸렸던 것.
 
 요즘에는 가전을 살 때 사은품으로 오는 레시피북이 의미가 있을까. 인터넷에만 검색어를 넣어봐도 수만가지 레시피가 뜬다. 그래서 어떤 분은 레시피북 자체의 의미가 없지 않냐고도 하신다. 레시피나 요리 동영상을 켜둔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가지고 조리를 해도 충분하니까. 그런데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레시피북은 의미 있다. 나만 해도, 인터넷에 그렇게 많은 베이킹 레시피가 있어도 책으로 가지고 있는 레시피북이 적지 않다. 이따금 이 책, 저 책 펴 놓고 레시피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요리하는 마음’의 이런 특이점을 <미원>도 알았나보다. 미원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을 수록한 레시피북 <미원식당> 이 나왔다. 일상에 꼭 필요한 쉬운 요리 만들기에 주력하는 <이밥차>와 <미원>이 손잡고 함께 책 <미원식당>을 냈다.

 솔직히 미원이 이렇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조미료인줄 처음 알았다. 한때 MSG가 몸에 안 좋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미원은 사실 사탕수수를 발효하여 만든, 몸에 해가 없는 조미료다.

 

 <미원식당>은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다양한 메뉴를 실었는데, 최근의 트렌드에 맞게 조금씩 변형한 레시피들이 인상적이다. <미원식당>이라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모든 레시피에 조금씩 들어간 미원이 화룡점정을 담당하고 있다.

 항상 계량스푼으로만 계량을 하는데에 익숙해서, 밥숟가락 계량이 오히려 낯설었는데 <미원식당>에서 너무 잘 설명해주어서 알았다. 친절한 설명 너무 좋음. 레시피마다 오른쪽 페이지 하단에 요리팁이 두세줄 씩 들어가 있는데, 나처럼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용도 꽤 쏠쏠한 노하우가 된다.

 

 

 <미원식당>에 실린 레시피들을 살펴보다가 급땡겨서 만든 치즈감자전. 너무 맛이 좋다보니 뱀가루가 아니냐는 낭설에 휩싸이기도 했다던 <미원>의 매력은 여기서도 발휘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3명 이상의 가족이 함께 사는 가정에도 어울릴 레시피북 <미원식당>. 한식, 정식 요리, 분식, 간식까지 다양한 레시피가 있어서 이것저것 활용하기에도 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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