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매슈 설리번 지음, 유소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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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가장자리를 빙 둘러 수초가 자란다. 저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리듬도, 그 키도, 꽃을 피우는 순간도 다르다. 몸을 기대로 이웃하여 살 뿐 제각각 자기 생을 사는 별개의 생명체로 보인다. 적어도 수면 위에서는 그리 보인다. 하지만 수면 아래, 수초들이 그 발가락으로 굳세게 움켜쥐고 있는 진흙 바닥으로 들어가 보자. 그 눅진한 바닥 아래를 캐 들어가 보자. 그럼 알 수 있다. 자기만의 줄기로, 자기만의 호흡으로, 각자 자기 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던 수초들이 실은 진흙 깊은 곳에는 서로 연결된 뿌리로 인연을 맺고 있는 게 보인다. 수초들의 힘으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질긴 뿌리로 하나의 흐름 속에 엉켜 있는 것이.

 

처음에는 이 책의 장르가 스릴러인줄 알았다. 주제가 아주 무거운 추리소설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작품을 단순한 추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에 많은 이야기는 못하겠다. 다만, 나는 이 책의 결말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무심하게 부는 바람에 제각각 흔들리는 줄 알았건만, 수초는 그렇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인연의 끈에 서로가 얽혀 우리는 그렇게 알 듯 말 듯한 운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나보다.

 

주인공들의 인연과 운명 그들의 선택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슬프지만, 그를 그리는 작가의 시선과 이야기의 분위기는 따듯하고 서정적이다. 8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지냈다는 저자가 그의 성장과정에서 느꼈던 대가족의 우애와 정서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느낌이다. 주인공인 리디아와 그녀의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 성인이 된 리디아가 자리 잡은 서점의 사려 깊고 다정한 직원들은 안정적이고 너그러운 관계의 온기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이 더욱 비극적이고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물들 사이의 온기와 그 결말이 대비되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각별한 재미는 독서가들의 공감을 부르는 장면들이 많다는 점이다. 주요 인물들이 일하는 곳은 서점이고, 또다른 주요 인물들의 관심사는 서적이다. 당연히 수많은 소설가들와 그들의 작품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언급될 때 동지를 만난 것처럼 기쁘고, 언급되는 작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 이야기속의 인물이나 사건이 이해가 될 때 뿌듯하더라.

 

사연 있는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진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처럼 애틋하고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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