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시마 상, 정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나라는 현실의 그릇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요. 태어나서부터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어. 오히려 나는 그것을 줄곧 증오해 왔어요. 내 얼굴이나, 내 두 손이나, 내 피나, 내 유전자나..... 어쨌든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것이 저주스러웠어요.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집을 나온 것처럼.”

275-76

 

생각해 보니까 그 가운데서도 제일 이상한 것은 누가 뭐래도 아저씨야. 그래, 나카타 상이라구. 왜 아저씨가 이상하냐 하면 음, 아저씨는 나라는 인간을 바꿔버렸기 때문이지. 불과 열흘 동안에 나는 엄청나게 변했어. 뭐라고 할까, 여러 가지로 주위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지금까지 그냥 대충 보던 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구. 지금까지 조금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음악이 묵직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거야. 그리고 그런 느낌을 누군가, 비슷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야. 그래서 말인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내가 줄곧 나카타 상 옆에 있었기 때문인 거야. 그리고 나카타 상 눈을 통해 사물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라구. 물론 하나에서 열까지 다 나카타 상의 눈을 통해 본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극히 자연스럽게 나는 아저씨의 눈을 통해서 여러 가지 것을 보고 있었던 거야.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아저씨의 세계를 보는 자세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 호시노는 여기까지 아저씨를 계속 따라온 게 아닐까? 아저씨와 헤어질 수가 없었어. 그것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서 제일 알맹이가 있는 일이야.”

2342-343

 

오시마 상은 연필의 지우개 부분으로 관자놀이를 몇 번이가 가볍게 누른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으나 그는 무시한다.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전화벨이 그친 다음에 그는 말한다.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 위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공기를 바꿔 넣거나, 꽃의 물을 바꿔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바꿔 말하면, 넌 영원히 너 자신의 도서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야.”

나는 오시마 상이 손에 쥐고 있는 연필을 보고 있다. 그것은 나를 무척 마음 아프게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좀더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으로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어 폐를 공기로 가득 채우고, 감정의 덩어리를 어떻게든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2449-450

 

누구나 몸의 성장기를 겪듯 누구나 자기 혐오를 겪는다. 몸의 성장과 마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함께 간다. 함께 흘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이 텅빈, 알맹이가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하루키는 15살이라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주인공에게 이 격변의 시기를 투영시켰던 것일까. 자기 혐오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알맹이를 가진 인간으로 거듭나는지를.

 

조니 워커를 죽여야 하고, 어머니를 부정해야 하고 그리고 진실로 자기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확인했을 때에 인간은 현실에 뿌리를 내린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고 어느 독자가 그랬다고 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그래서 전 세계인에게 인상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어린왕자가 그랬듯이 이 작품 역시, 나이가 좀 든 후에 읽으니 진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지금에서야 눈에 들어온다.

 

... 이러다가 하루키 역주행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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